![[방탄소년단/홉총] 밀회 0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b/3/db3c63de16f6aba2a9c795a489f6d7ff.gif)
밀회
密會
02
「도착했다. 내리거라.」
태형이 손을 뻗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호석의 손을 잡아 지탱해주었다. 멋쩍게 웃으며 가마에서 한 발을 내딛은 호석이 크게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비치는 광경에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말로만 듣던 영의정의 저택이었다. 감히 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끔 높은 담장이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위에 얹혀진 기와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여 먹 같은 흑색을 뿜어냈다. 높다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궁궐 같은 기왓집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집의 오른편에는 둥그런 연못이, 그리고 그 위에는 연꽃과 몇 마리의 오리들이 제 자태를 뽐내었다. 집 내부 전체에는 담장을 따라 빙 둘러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개화한 각양각색의 꽃들이 그 아름다움을 서로 겨루기라도 하는 듯 했다. 화려했으나 황제의 색인 금색과 붉은색은 절제하여 고풍스럽고 잔잔한 멋이 느껴졌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란 말인가. 황제 바로 다음으로 나라를 쥐고 흔들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더니 그 말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너무도 으리으리하고 수려한 기왓집에 호석이 발을 뗄 줄을 모르자 작게 웃은 태형이 몸종 아이 하나를 부르고는 호석을 향해 돌아섰다.
「너는 이 아이를 따라가거라.」
「예? 무, 무엇을…」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알아서 다 보살펴 줄 것이니, 조금 이따 보자꾸나.」
「아아, 네….」
그 말을 건네고는 모퉁이를 돌아 제 방으로 태형은 사라졌다.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호석이 자신의 손목을 잡아 이끄는 몸종 아이의 행동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 아이의 뒤를 따랐다.
저택의 맨 안쪽이었다. 담장의 끝자락이 보였고 본채와는 조금 떨어진 공간인 듯 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아이가 안에서 문을 걸어잠갔다. 훅 끼치는 진한 꽃향이 호석의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미간을 슬쩍 찌푸린 호석이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그다지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대부분을 커다란 욕조 하나가 차지하고 있었다. 욕실이구나, 호석이 생각했다. 호석이 슬쩍 욕조 가까이 다가가 찰랑거리는 물에 손가락을 담갔다. 물은 따뜻했다. 늘 냇가나 우물가의 물로 간단히 세수만을 하곤 했던 호석은 이렇게 호화스러운 욕실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욕조 안의 물엔 장미꽃잎이 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담뿍 담기어 있었다. 욕실의 벽면은 찬장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찬장에는 갖가지 향료들이 가득했다. 욕실을 가득 메운 향기는 그곳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옷을 벗으십시오.」
「예!?」
마치 밥을 먹었냐는 듯 당연하게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호석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 어깨를 감싸쥔 호석의 얼어붙은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이가 웃었다.
「도련님께서 몸을 깨끗이 하라 명하셨습니다.」
「아, 그럼-」
「옷을 벗고 물에 몸을 담그십시오.」
영의정 댁 사람들은 몸종까지도 잘난 인간을 뽑는 건가. 왠지 거역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표정에 호석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뒤돌아서 몸에 걸쳐져 있던 천쪼가리들을 풀러 바닥에 벗어놓았다. 비록 늦봄이라 하지만 몸에 직접 공기가 닿으니 오소소 소름이 돋은 호석이 제 팔을 슥슥 손으로 문질렀다. 휑하니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나신이 민망해 서둘러 물 속으로 들어간 호석이 살결에 부드럽게 감겨 오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액체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씻겨드리겠습니다.」
「예? 아니, 아니요. 제가 씻을 수 있는데요.」
「씻겨 드리라 명하셨습니다.」
호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한 번도 남이 제 몸을 씻겨 준 일이 없었기에 닿아오는 온기가 생경했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왠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표주박에 물을 떠 부드럽게 어깨와 목을 적셔주었으며, 향유로 뻐근한 어깨와 다리의 근육을 문지르고 풀어주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물. 호석이 눈을 감았다.
「일어나십시오.」
언제 잠이 들었던 건지, 곤히 물 속에서 잠이 든 호석을 몸종이 살살 흔들어 일으켰다. 단잠에서 깨어난 호석이 민망한 듯 웃었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좀 피곤해서요. 머뭇머뭇 호석이 변명을 하자 아이가 아닙니다. 라며 작게 웃었다.
「목욕을 마치셨습니다. 몸을 닦고 입을 옷을 드리겠습니다.」
「아, 저기, 네.」
호석이 욕조 밖으로 나와 아이가 건넨 흰 천으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는 아까 바닥에 벗어두었던 제 옷들을 찾았지만 그 옷들이 보이지 않았다.
「저, 죄송합니다만 제 옷이 사라졌는데요.」
「아, 그것들은 버렸습니다. 이것을 입으시면 됩니다.」
호석이 몸을 다 닦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옷 한 벌을 건네었다. 하늘을 닮은 푸른 빛깔을 띄고 있었는데, 너무 푸르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하늘빛이 고왔다. 깃과 소매 부분은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 옷을 받아들자 손끝에 여지껏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했던 부드러움이 닿았다. 비단이었다. 호석의 눈이 토끼눈처럼 동그래졌다.
「이게 뭡니까?」
「도련님께서 그것을 입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어서 입으시지요. 도련님이 기다리십니다.」
맨몸에 닿아오는 비단결이 익숙지 않았다. 늘 거칠고 다 해져 때가 탄 천만을 걸치고 다니던 호석에게는 비단을 걸치기는 커녕 만져 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옷 자체도 입기가 쉽지 않아 끙끙거리자 아이가 다가와 옷을 입혀주었다. 그러고 나자 호석은 제 발이 휑한 것을 깨달았다. 신발도 없어져 있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자 그것을 눈치챘는지 아이가 아, 라며 무언가를 옷이 들어 있던 보따리 안에서 주섬주섬 꺼내었다.
「신은 이것을.」
이건, 호석이 중얼거렸다. 태형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갖고 싶어했던 그 옥빛 비단으로 만들어진 신이었다. 그제야 옷보다는 신이 낫겠구나. 라던 태형의 말이 기억난 호석이 떨리는 손으로 신을 받아들었다. 푸르면서도 마냥 푸르지만은 않은 묘한 옥색의 비단에 노란색으로 자그만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도련님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
「마음에 드십니까.」
「…예… 너무….」
예쁩니다. 끝말을 맺지 못한 채로 호석이 마냥 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어서 신으십시오, 도련님이 기다리십니다. 호석을 한 번 더 재촉했다. 퍼뜩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도리도리 휘저은 호석이 신 안에 발을 넣었다. 묘하게도 발에 딱 맞아오는 신 크기에 호석은 가슴 한 켠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
태형은 제 방 안에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상 위에 올려진 차와 다과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태형의 표정이 밝아졌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는 동그란 머리통이 빼꼼, 문 새로 보였다. 틀림없는 호석의 것이었다.
「들어오거라, 어서.」
태형의 허락이 떨어지자 호석이 방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문을 닫으려다 저절로 닫기는 문에 놀라 움찔했다. 호탕하게 웃은 태형이 이리 와 앉거라, 라며 호석을 불렀다. 총총 걸어와 머뭇거리며 저와 좀 떨어진 곳에 앉는 호석이 마냥 귀여웠다. 제가 직접 고르고 고른 옷과 신발을 입고 있는 호석을 보니 괜시리 아들을 키운 아버지마냥 뿌듯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태형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에 호석도 곧이어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옷과 신은 마음에 들더냐.」
「저,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마음에 들면 되었다.」
태형이 차를 따랐다.
「아, 그리고. 내 너를 계속 이리 곁에 두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호석이 되물었다. 낮게 웃은 태형이 차 한 잔을 더 따르고는 그것을 호석에게 건네었다.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어디를 가든 옆에 있으며 간단한 시중을 들면 되는 것이다.」
「아, 몸종 말씀이십니까?」
호석이 분명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형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어두워진 태형의 얼굴에 자기가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호석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입술을 닫고는 태형의 안색을 살폈다.
「몸종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럼…」
「…나도 잘은 모르겠다만, 여하튼. 종이라는 말을 너에게 붙이지 않도록 해라.」
「네, 저…」
태형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잠깐 생각하던 호석이,
「도련님.」
이라 하자 태형이 크게 웃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맑은 웃음에 호석이 영문을 모르는 채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밖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황제께서 긴히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무어라? 황제께서 갑자기 왜… 서신을 가져오거라.」
문이 열리고 방으로 걸어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윤기였다. 연한 보라색의 천으로 온 몸을 감싸고 짙은 보랏빛이 도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윤기가 살짝 고개를 숙여 태형에게 인사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윤기를 바라보고 있는 호석을 한번 힐긋 쳐다본 윤기가 옷고름 사이로 손을 넣어 돌돌 말린 황제의 서신을 태형에게 건넸다.
「저 아이는 누구입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알 것 없다. 그나저나 황제께서 내게… 갑자기 생일 잔치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 도련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일 뿐입니다. 황제 폐하는 도련님의 둘도 없는 죽마고우이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내일 정오까지 오시면 됩니다. 달리 준비하실 것도 없고, 몸만 오셔서 연회를 즐기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잠깐, 태형이 무언가 말을 더 하려고 하는 것을 듣지 않고 윤기가 몸을 돌려 태형의 방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탁 하고 닫히는 문에 태형이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잠깐만 있거라. 내 금방 다녀올 테니.」
그 말만을 남긴 태형이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닫힌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고 윤기를 뒤따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던 호석이 방을 한번 둘러보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열린 문틈을 넘어 누군가가 또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형체, 선명하고 깨끗한 주황색의 비단을 걸친 남자였다. 석진을 알아본 호석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석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호석을 빤히 쳐다보던 석진이 문을 닫았다.
「이름이 무어라 했지.」
「저, 정, 호석… 이라고 합니다.」
「내 아우를 어떻게 홀려내었는지 그 묘책을 듣고 싶은데.」
예? 호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석진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깔끔했다. 그때 김 대감의 집에서 슬쩍 올려다본 석진의 웃는 모습은 참으로 부드러웠는데, 지금 호석의 눈 앞에 있는 석진의 눈매와 입매는 미동조차 없이 굳어 있어 냉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번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련님을 홀리다니요…, 저, 저는 결코,」
그만. 석진의 우아한 미간이 보기 싫게 찌푸려졌다. 그 차가운 눈빛을 받아내는 것이 호석은 너무도 힘들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무릎 앞에 모은 두 손을 맞잡은 호석은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 아우가 너에게 잠깐 홀려 널 데리고 다니려는 것 같다만」
「…….」
「착각 같은 건 하지 말라는 거다.」
「…….」
「원래 사리분별이 옳은 아이인데, 스무 살이 되었다는 기쁨에 잠깐 홀린 거야. 뭐든 제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
「천하게 굴리던 몸이니 지금 네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믿기지 않겠지만」
「…….」
「그것도 잠깐이야. 다시 정신을 차리면 너는 버려질 거다.」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그 말을 끝으로 석진은 호석을 뒤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호석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물론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행복하리라고는 진즉부터 기대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빛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아주 잠깐이지만 좋은 주인을 만나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실날같은 희망을 붙잡았던 것이 별안간 뚝 끊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어찌되었건 태형은 지체 높은 가문의 둘째아들이었고, 자신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천한 몸이었던 것이다.
또다시 버려진다, 버려진다. 호석이 머릿속에서 그 말만이 맴돌았다. 죽기보다 싫었다. 의지하고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호석에게는 지나치게 큰 고통이었으며 쓰라린 상처였고 견딜 수 없는 기억이었다.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낸 호석이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꽉하니 쥐었다.
「버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은 눈물을 담아낼 공간이 없었던 것인지, 투명한 액체가 태형의 방 바닥에 톡 하고 떨어졌다.
「두 번, 다시는….」
내 독자님들, 안녕 :)
나예요, 잘 지냈어요?
주말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거 지켰어요, 나 잘했어요? ㅋㅋ
날씨가 정말 좋네요,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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