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노인은 색을 만드는 작업 중이었다. 노인은 절대 만들어진 색을 쓰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고지식해 보여도 이 또한 노인이 이곳에서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새벽에 겪은 사건을 노인에게 전하려다, 괜히 훼방하고 싶지 않아 2층으로 향했다. 2층엔 딱 두 개의 방만이 있다. 노인의 개인 방과 서재 겸 화실. 아니, 화실도 아니었다. 그저 완성작들을 모아놓기 위해 만들어 자 공간이었으니까. 난 처음 온 날부터 이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었다. 여기 있으면 왠지 생각도 잘 정리되는 기분이었으니까. 여러 크기의 캔버스들 위에 쌓인 먼지들을 손으로 쓸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새벽에 만난 홍빈을 생각했다. 그는 왜 비주류인 나에게 후원을 제안했을까. *** 홍빈이 큼지막한 대문 앞에 서서 그것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바닥에 쇠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대문이 천천히 열린다. 홍빈은 그 대문이 다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 정원을 성큼성큼 걸어간다. 물론, 쓸데없이 큰 자신의 집에 대한 불평들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현관이 나왔고, 홍빈이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을 열어준 것은 홍빈의 보모인 학연이었다. 학연이 웃으며 홍빈을 맞이했다. 홍빈은 그런 학연을 아래 위로 훑으며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학연은 늘 그래왔듯이 웃으며 홍빈의 뒤를 쫓아간다. "그림 그리고 있었어?" "여기서 할 건 그것밖에 없잖아. 그리고 그러라고 데려온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라며 홍빈이 호탕하게 웃는다. 학연은 그런 홍빈은 살짝 흘긴다. 사실, 학연은 홍빈이 보모를 핑계로 데려온 비주류 화가였다. 그는 정식 활동을 앞둔 견습 화가였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의 스승도 비주류였고, 스승은 학연에게 자신의 그림들과 기법을 물려주고는 사라져버렸다. 학연은 그가 어디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이곳과의 연을 끊은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학연의 그림을 본 홍빈이 그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앞에선 핑계라고 했지만 홍빈은 학연을 정말 엄마처럼 따르긴 한다. "형, 나 아버지 보러 갈래." 홍빈을 뒤쫓던 학연이 멈춰 서서 놀란 눈을 한 채, 홍빈을 본다. 뒤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멎자, 홍빈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학연을 본다. 학연은 홍빈을 보며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너 사고 쳤어?" "아니거든!" 홍빈이 입술을 툭 내밀고는 다시 성큼성큼 걸어간다. 학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그 뒤를 쫓는다. 그럼, 아버님은 왜 만나 뵈려고? 학연이 묻자, 홍빈이 계단을 오르던 발걸음을 멈춰세우고는 아래에 있는 학연을 내려다본다. "찾았거든. 내 쪽에서 싸울 선수." 그 말에 학연이 벙찐 채, 홍빈을 올려다본다. 홍빈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웃어 보이고 한마디를 툭 던진 채, 다시 계단을 오른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한테 선전포고하러 간다는거지." *** 원식은 노인의 커다란 캔버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_ "지겹지 않아?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내가 홍빈의 제안에 당황한 채, 멍하니 서있자 그는 지루한지 내게 질문을 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대답했다. "이곳은 그렇게 사는 게 정답 아닌가?" 홍빈은 내 대답에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넋을 놓았다. 그리고 곧 한참을 크게 웃더니 겨우 진정하고는 내 말이 맞는다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다시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는 나를 보며 무어라 중얼거린다. "어쩌다가 이런 곳에 온 걸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중얼거리기만 했다. "바깥의 화가들은 이곳이 유토피아라고 한다던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홍빈이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홍빈은 그런 나를 보더니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바지를 손으로 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럼, 너는 이곳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무슨 배짱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 질문에 아주 대담하게 대답했었다. "할 일 없는 귀족들의 사치품 컬렉션." 그리고 홍빈은 내 대답에 놀란 눈을 한 채, 잠시 벙 쪄있었다. 나는 그런 홍빈의 모습에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고 후회하고 있었다. 곧이어 홍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럼 너도 그 사치품인 거잖아. 그 말을 하는 홍빈의 입꼬리가 웃음을 참는 듯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귀족들 중에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내가 보기엔 그냥 있어 보이고 이런저런 기법들 많이 들어간 보기 좋은 그림들을 자기들 집에 걸어놓으려고 여기 화가들 모아놓은 것 같은데 말이야." 그동안 쌓인 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말들을 토해냈다. 그리고 홍빈은 그저 가만히 내 말을 듣기만 했다. 간간이 고개도 끄덕여주면서. "가끔 운 나쁘게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비운의 화가들도 있지. 비주류라고 하던가?" 홍빈의 표정이 약간 씁쓸하게 변했다. 그 화가들은 다시 바깥으로 도망치거나... "바깥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이곳에서 제 목숨을 끊어." 홍빈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홍빈을 아무 말없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홍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류들은 자신의 그림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집중했고, 귀족들은 사치를 하는 데에만 집중했으니까. 바깥에도 화가들은 많거든." 홍빈이 자신이 앉아있던 벤치 등받이에 걸터앉았다. 나는 작게 한숨은 내쉬었다. 홍빈이 손을 들어 내 시선을 그에게로 집중시켰다.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한 답은?" "글쎄... 내 그림은 주류 그림이 아닌데." "여기서 주류가 되는 법은 '누가 잘 그리는가.'가 아니라, '누가 후원을 받는가.'야."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홍빈을 보았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 정도면 든든한 스폰서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는 이곳의 왕격인 귀족의 아들이니까. 나는 바람 빠지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네 그림, 전시회에 걸어줄게." -------------------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도 들어가고 랍콩이들 연애도 시작해야지요°▼°/ 오늘은 주로 홍빈이 이야기였으니까 작품말고 홍빈이 사진 올려봤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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