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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던 섭섭함 때문일까. 끼익 끼익- 조용한 놀이터에 낡은 그네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 너 좋아해. 작게 그네를 타며 구르던 발을 멈췄다. 땅에는 작은 흙 굴곡이 생겼다. 그리고 내 심장 박동에는 더 큰 굴곡이 생겼다.  


 


 


 


취기를 빌려
 


 


 


둥그렇게 둘러앉은 술판에 어쩌다 내 옆엔 김재환, 앞에는 그 아이가 앉게 됐는지. 오늘 하루 종일 날 괴롭혔던 장면들을 또 봐야 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느 정도 술 들어갔으니까 진실게임하자!”

저 선배는 아직도 술만 먹으면 진실게임 타령이구나. 그렇게 시작한 진실게임에 툭 내려놓은 술병이 빙글빙글 돌더니 그 아이를 가리켰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네... ㅎㅎ”

그 아이의 대답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과 함께 김재환을 쳐다봤다. 김재환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억지웃음을 짓고는 앞에 있는 잔을 들이켰다.

“야야 ㅇㅇㅇ, 적당히 먹어.”

너 취하면 오빠 힘들다- 김재환이 장난스레 술잔으로 향하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오빠는 무슨 오빠야ㅋㅋ.”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김재환의 장난을 받아쳤다. 그 이후로도 술병이 빙그르르 돌아가길 여러 번 반복했지만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집중돼 있었다.

“배진영! 진영이 걸렸다.”
“여기서 제일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
“어.. ㅇㅇ누나요.”

나? 토끼 눈을 하고 진영이를 쳐다보자 다른 사람들은 제 일인 마냥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와 ㅇㅇ에게도 드디어 봄날이 오는구나.”
“얘네 나가서 둘이 산책하라 그래. 빨리 내보내고 방 문 잠가. ㅇㅇ야, 진영이랑 데이트 잘 하고 와!”

벙쪄 있는 나를 미는 손들에 내 몸은 이미 문 밖에 떠밀려 있었다.

“진영아, 얘네 진짜 문 잠갔어...”
“ㅋㅋㅋㅋㅋ 앞에 놀이터나 갈까요?”

.
3월의 밤은 아직 바람이 꽤 차가웠다. 그네에 앉아 찬 바람을 맞으니 술 때문에 달아오른 얼굴이 식는 것 같았다.

“아 누나, 저 누나랑 제일 친해서 고른 거예요.”
“ㅋㅋㅋㅋㅋ 잘 했어.”

귀여운 진영이... 동생 삼고 싶다. 진영이의 귀여운 해명에 고개를 돌려 진영이를 쳐다봤다.

“누나도 어차피 그 자리 나오고 싶었죠?”
“뭐 그렇지. 술도 많이 먹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재환이랑..

“재환이 형 때문에요?”

혼자 속으로만 머금고 있던 이름이 진영이 입에서 나오자 당황한 나였다. 누나, 저 눈치 완전 빨라요- 진영이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나를 놀렸다.

“지금 여기 있어야 될 사람은 저가 아닌 것 같은데. 그죠?”

웃으며 장난을 치는 진영이에게 말없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재환도... 눈치 챘을까?”
“재환이 형이요? 그 형 눈치 없어서 모를걸요. 알면 그렇게 가만히 안 있죠.”
“무슨 소리야?”
“제가 보기에는 형도 누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걔가? 걔한테 나는 완전 친구야.”
“에이, 제가 지금 형 부르면 바로 달려올걸요?”

내가 큐피드 역할 좀 해줘야겠다. 진영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재환이 형! ㅇㅇ누나랑 저랑 바람 쐬러 나왔는데 누나가 좀 다쳤어요.”
“내가 다치긴 어딜 다ㅊ..”
“어... 여기 조금 나오면 있는 놀이터요.”

뒷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더 이상 진영이를 말리지 않았다. 김재환을 좋아하는 마음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던 섭섭함 때문일까. 김재환이 보고 싶었다.
누나 저 잘 했죠? 장난스레 웃는 진영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얼마 동안 진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ㅇㅇㅇ... 어디.. 어디 다쳤는데...”
“야 김재환... 숨부터 쉬어.”
“형, 저는 이만 가볼게요. 누나 저 나중에 밥 사줘야 돼요!”

김재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상태를 살피더니 떠나는 진영이와 앞에 있는 나를 번갈아 보고는 숨을 가다듬으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는 굳혔던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빈 그네에 앉았다.

“다쳤다며? 너무 멀쩡한데?”
“야 내가 말한 거 아니다? 진영이가 한 거야.”
“어디가 아프세요? 아, 이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셨어요? 으흫”
“조용히 해.”

하여튼 김재환 저 능글맞은 성격하고는. 끼익 끼익- 조용한 놀이터에 낡은 그네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김재환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진영이 짜식, 고맙네. 좀 전까지 속으로 욕한 거 미안하게.”

김재환은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

“진영이랑 너 나가고는 아무것도 안 들렸어. 신경 쓰여서. 이렇게 있다가는 진짜 너 놓치겠구나 싶더라.”

“나 너 좋아해 ㅇㅇ야. 너 처음 봤을 때, 우리 신입생 오티 때부터 좋아했어. 진짜... 오랫동안 말 못 했는데 취기 오르니까 못 할 말이 없네. 아 그렇다고 취해서 하는 가벼운 고백은 진짜 아니야.”

김재환의 고백에 작게 그네를 타며 구르던 발을 멈췄다. 땅에는 내 발이 만들어 낸 작은 흙 굴곡이 생겼다. 그리고 내 심장 박동에는 김재환이 만들어 낸 더 큰 굴곡이 생겼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혼자 김재환을 짝사랑한다고 믿었던 짧은 몇 주 동안에도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렸던 나를 돌이켜보니 그 긴 시간 동안 재환이가 겪었을 아픔의 크기는 이루 상상할 수 없었다.

“왜 말 안 했어?”
“모든 게 조심스러웠어. 친구로도 못 지낼까 봐. 지금 진짜 용기 낸 거야. 안 받아 주면, 어? 나 진짜 울 거야.”
“크흫”
“웃지 말고, 대답.”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앙 다물어 한껏 쳐진 입꼬리를 하고 나를 보는 김재환의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김재환, 손 줘봐.”
“내 손? 왜?”

하얗고 예쁜 김재환의 손을 내 쪽으로 가져와 손바닥에 작은 하트를 그렸다. 그제서야 환하게 웃는 김재환이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아 좋다, 좋다 ㅇㅇㅇ!!”

나도. 나도 좋아 재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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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작가님 너무 설레요ㅠㅠㅠㅠㅠㅠ이 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 중에 하나였는데 삭제되서 정말 슬펐는데 다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도톨깅
독자님 저야말로 다시 찾아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도 백업해둔 글 없는 줄 알고 정말 슬펐는데 다행히 메모장 휴지통에 파일이 남아있었어요 힝구... 글 좋아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5년 전
독자2
와 작가님 이거 제가 좋아해서 스크랩해놨던 글이었는데...!!!! 사라져서 얼마나 허탈했었는지 몰라요ㅠㅠㅠ 근데 작가님이 다시 올려주셔서 어 뭐지 설마?! 하고 들어와보니 진짜 그 글 맞네요ㅜㅜㅜ 신알신하고 가요 작가님 다시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5년 전
도톨깅
와아 독짜님! 다시 만나 뵙게 돼서 저도 너무 좋네요 히히 제 글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8ㅅ8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 오도록 할게요 신알신 감사드립니당☺️💞
5년 전
독자3
전에 봤었던 글이였는데 ㅠㅠㅠㅠㅠ 다시 보려구 보니까 사라져서 놀랐는데 다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 새벽감성 몽글몽글하게 올라오게하는 글인거같아요ㅠㅜ 잘 읽고갑니다❤️
5년 전
도톨깅
다시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항상 생각하는 건데 제 글이 몽글몽글하다고 이야기 해주시는 게 더 몽글몽글하고 기분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당 감사해요!
5년 전
독자4
다시봐도 몽글몽글 너무 기분좋은글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글다시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
5년 전
도톨깅
다시 보러 와주셔서 저도 너무 감사해요ㅠㅠㅠㅠ💞!
5년 전
독자5
김재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넘 달달해요ㅠㅠㅠ 학식오빠... 영원히 학식으로 남아쥬ㅓ!!!! 글 잘 봤습니다!
5년 전
도톨깅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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