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오세여→ http://instiz.net/writing/621910
경수는 태생부터가 무심한 성격이였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나름의 막내인데도 좀체 웃지도 않고 먼저 말을 꺼내는 법도 드물 뿐더러 나서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다. 경수의 어머니는 집안 분위기와 다르게 내성적으로만 성장해 나가는 경수를 항상 걱정하였으나 경수의 친화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성격에도 친해지자며 손을 내밀어 오는 친구들이 있었는지 마냥 혼자는 아닌 듯 종종 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수를 보고 나서야 그의 어머니는 안심을 하며 「아이들을 활발하게 만드려는 엄마들의 모임」따위의 네이버 카페나 「올바른 대화를 가르치는 법」같은 책들을 버릴 수 있었다. 경수는 그렇게 자라왔다. 적당한 친구들과, 좀체 나이답지 못한 조숙함.
근처 남고에 입학하면서 경수는 적어도 하이톤의 웃음소리나 어느순간 굉장히 구역질을 불러 일으키는 화장품 냄새나 자신의 관심을 일구려는 표현이 서투른 여자아이의 심술 따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으며 맘 편히 살 수 있겠다며 작게 기뻐했다. 경수는 자신이 왜 그런것을 보거나 느끼면 참지 못하고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는지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경수는 입학식 날 백현을 마주쳤다. 그것을 경수는 똑똑히 기억했다. 백현은 경수와 부딛혔고, 아주 짧은 시간동안 눈이 마주쳤음을. 경수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간지러움을 느끼고 백현과 같은 반이라는 사실에 이유모를 희열이 끓어올랐음을. 경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묘한 감정들을 사랑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경수는 백현을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 부질없어 보이던 감정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렇게도 나서는 것을 싫어했던 경수를 반장이라는 직책에까지 올리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더러 경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리 배치권을 선생님께 얻어 백현의 짝궁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찬열과 백현이 아무사이가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요즘 티비에 한창 교복을 입고 나온다는 모 남그룹처럼 속으로 얼마나 으르렁 댔는 지 모른다. 이례적인 경수의 첫 질투의 나날이였다.
“ 고등학교는 좀 괜찮니? ”
“ 학교가 다 똑같죠. ”
“ 친구는, 사겼어? 종인이랑 같은 반 아니라고 했잖아. ”
“ 네. 친구 있어요. ”
“ 이름이 뭐니? 언제 한 번 집에 초대 해. ”
“ 백현, 변백현이요. ”
엄마, 저는 백현이와 말도 섞어본 적 없는걸요. 경수는 정말로 백현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백현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하루에도 열댓 번 자신이 멋드러진 고백을 시도하는 상상과 백현이 그것을 받아주는 상상을 할 게 뻔했다. 경수는 제 자신을 잘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추스리기로 했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은것이 어디 한두 번 일인가. 오늘따라 입 안이 썼다.
츤데레 경수 X 여고생 감성돋는 백현이
written by 오백병자
그렇게 바라던 백현과의 연애에서도 경수는 변한것이 없이 항상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해 왔다. 말 수도 더욱 없어지고, 더더욱 웃지도 않았다. 이유인 즉슨 그런 무심한 태도를 보일 때 마다 아이러니 하게도 백현은 경수에게 더 매달렸다는 사실이였다. 경수가 그 모습을 어여삐하지 않을 리 없었고, 그런 모습이 마냥 사랑스러워 제 자신을 최대한 절제하는, 경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백현의 데이트 신청 때 마다 있지도 않은 누나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들먹이며 거절하는 일에는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만 멈출 수 있었겠는가.
아침밥을 거른 백현이 신경쓰여 1교시 내내 집중을 할 수 없었던 경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나서 매점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매점을 가 보는 거지, 짧게 날짜를 헤아려 보던 경수는 직접 주기 창피하니 몰래 책상에 올려 두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 했다. 백현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기엔 경수는 아직 덜 자란 소년임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그 와중에 백현의 취향을 고려한 빵과 음료 선택도 역시 그 다웠고.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지 못하고 교실문을 들어선 경수는 다시금 특유의 굳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시발, 저게 뭐야. 저건 누가 봐도, 눈 씻고 봐도 박찬열과 변백현이였다. 우리 백현이, 우리 백현이가. 우리 백현이가 왜 저딴 도비새끼한테 안겨있는건지. 치미는 분노에 빵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언젠가 백현에게 줄 빵이였기 때문에 던질 수 없는 자신을 탓하며 물이 어느새 송골송골 맺힌 딸기우유의 표면만 만지작 댔다. 아오 씨발 내 신세.
경수는 그 둘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교실에 들어가 대충 사물함에 빵과 우유를 쑤셔 넣었다. 변백현은 저게 뭐길래 저렇게 꼭 껴안고 있는건지. 존나 변태같지만 달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될까, 경수는 잠시 생각했다.
혹시 백현이 일찍 나오지는 않을까, 약속시간 보다 한참 일찍 나온 경수는 버블티를 빨며 잠시 세훈을 떠올렸다. 이딴게 뭐가 맛있다고 그렇게 환장을 하는지 , 원.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맛에 재빨리 음료를 들이킨 경수는 화장실로 향하며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열심히도 살폈다. 좀 하얗고 귀여울 똥강아지일 뿐 인데, 징하게도 폭 빠져버렸다고 경수는 답지않던 지난 한달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백현을 향한 생각에 흥얼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경수는 그 유치한 감정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아마 그랬을거라 예상한다. 경수와 공식적인 연인이 된 이후 오가는 지우개 사이 스치는 손끝 하나에도 얼굴을 붉히고, 심지어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백현의 소녀스러움이 생각나는 밤이면 경수는 쉬이 잠에 들 수 없었다. 그 조용하고 요동없던 경수는 이불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이미 만 번쯤 외쳤을 문장을 경수는 다시한번 떠올렸다 변백현 존나 귀엽다!
손 건조기도 없는 작은 카페를 탓하며 대충 교복 바지에 젖은 손을 슥슥 닦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등을 톡톡 두드리는 것을 느낀 경수는 뒤를 돌아봤다. 벌써 백현이가 온 건가, 먼저온 핑계를 어떻게 대지. 갖은 생각을 하며.
“ 제 스타일인 것 같아서요. ”
“ 예? ”
“ 그러니까 제 말은, 번호 좀요. ”
사나운 눈매를 가진, 키가작은 단발의 여자였다. 깡마르고 빨간 입술을 가진 여자. 어쩜 제 취향에 이렇게 완벽하게 어긋날 수 있을까. 경수는 이런것도 인연인 것 같아 그 작은 여자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으나 끈덕지게 달라붙는 여자를 겨우 떼어냈다. 쬐끄만 게 그런 기운은 어디서 샘솟는 건지, 경수는 참으로 궁금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카페까지로 향하는 텅 빈 복도마저도 백현의 생각으로 온통 핑크빛에 빨간 하트들이 벽 사이에서 배어나왔다. 오늘만큼은 잘 해 줘야지.
언젠가 백현과 첫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하고싶은 일을 적어두었던 적이 있다. 짝궁인 그가 보지 못하게, 열심히도 가려가면서. 중학교 때 부터 친구였던 종인이 여자친구와 자주 먹으러 가는 초코 빙수 먹기, 친척 동생인 경아가 좋아했던 디스코 팡팡 타기, 페이스북에 자주 올라오는, 경수가 내심 보고싶었던 영화 보기까지. 백현의 앞이라면 평소 잘 움직이지도 않는 안면근육을 일그러뜨려가며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있어 보이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경수는 백현부터 떠올렸다.
시계를 보니 야속하게도 시곗바늘은 약속시간 보다 한참 뒷 부분을 달리고 있었…, 시발 이게 아까 그 년 때문이야. 백현이가 왔겠지, 오늘따라 말썽을 부리는 건지 지끈대는 머리를 뒤로하고 카페로 나왔을 땐 백현이…, 백현이는 있었다. 근데 왜 도비새끼랑?
“ 혼자 여기서 뭐 하냐고.”
“ …… ”
“ 오빠 시간 비어있는 거 어떻게 알고, 따라와 병신아. ”
어딜 가 개새끼야, 경수는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경수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오백개짱 |
진짜 끗끗끗끗 왤케 허접하져 나중에 또 글 쓰고 싶으면 올게요 님들 ㅃ2~~~~~ 손잡는건 일부러 안 넣었어요 그냥 이건 경수가 그동안 배쿄니를 좋아했던거ㅇ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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