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 수진을 무릎위에 올려둔 채 경수를 부러운 눈으로 봐라봤다. 수진은 한 손으로 백현의 옷을 꼭 쥔 채 다른 한 손은 입에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TV만 보고 있었다. 점심 쯤 되자 수진이 배가 고픈지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백현이 수진을 내려두고 가져온 가방에서 이유식을 꺼내들었다. 그새를 못참고 엉금엉금 기어 온 수진이 백현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으에, 으에에. 웅얼거리는 수진을 한 쪽 팔에 끼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이유식을 들고 거실에 앉은 백현이 한 숟갈씩 수진의 입에 떠 넣어주었다. 마지막 숟갈까지 다 받아먹은 수진이 백현이 건네 준 물병에 입을 대고 물을 쪽쪽 빨아 넘기곤 백현이 물병을 치우자 다시 백현에게 안겨들었다. 한숨을 푹 쉰 백현이 수진을 고쳐 안자 수진이 머리를 눕혀 백현의 어깨에 기댔다. 어? 우리 공주님 졸린 거야?! 먼저 잠이 온다는 표시를 내는 수진 때문에 백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얼마 안 가 잠이 든 수진을 태영이 잠든 방에 눕히곤 밝으로 나왔다.
“와, 나 박수진 이렇게 곱게 자는 거 처음 본다. 특종 감이야. 찬열이한테 전화 해야지.”
“수진이 그렇게 안 자?”
“알면서 뭘 물어.”
핸드폰을 들어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간지 얼마안가 반대편에서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 피곤한 목소리였다. 찬열아, 지금 수진이 낮잠 자는데 투정 한 번 안하고 잤다? 헐 진짜? 진심으로 놀랐다는 목소리였다. 경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어딘가 모르게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찬열과의 전화를 끊은 백현은 나도 낮잠이나 자야겠다며 쇼파에 드러누웠다. 나도 한숨 잘까, 들어와서 자. 밖에 춥다. 방으로 들어 온 백현이 바닥에 누워 있는 수진 옆에 자리하고 누웠고 경수는 제 침대 위에 눕혀둔 태영 옆에 누웠다. 혹시 몸부림치다 다칠까 벽 쪽에 세워둔 베개를 한 번 더 만지곤 태영 옆에 누웠다.
으앙. 수진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먼저 깬 건 경수였다. 몸을 일으키려 눈을 제대로 뜬 순간 눈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태영 때문에 깜짝 놀랐다. 엄마, 깜짝이야! 어마 깜짜기야? 언제부터 깨 있었는지는 몰라도 태영은 경수보다 먼저 깨 있었던 듯하다. 일단 우는 수진을 달래보려 칭얼거리는 수진을 들어올렸다. 잠깐 눈물을 걷히는가 하더니 갑자기 으엥-!!! 큰 소리에 백현이 화들짝 놀라며 깼다. 어어, 엄마 아니라서 놀랐어…수진을 받아든 백현이 등을 토닥거리며 수진을 달랬다. 그제야 울음이 좀 그쳤다. 해가 벌써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경수가 거실로 나왔다. 태영도 뒤뚱뒤뚱 따라 나오다 걷는 게 힘들었는지 푹 앉아 엉금엉금 기었다. 백현아, 집에 밥 없는데 짜장면이라도 시킬까? 경수의 물음에 백현은 답이 없었다. 아마 수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못 들은 듯 했다.
“태영아, 백현이 이모한테 가서 짜장면 먹을래요 물어 봐바.”
“짜자?”
“응. 짜장면.”
“짜자며!”
아직 혀가 짧아 발음이 좋지 못한 태영이 기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모 짜자며! 짜자며! 태영의 발음이 귀여워 경수가 태영을 안아들며 번역해 줬다. 이모 짜장면 먹을래요? 라네. 아…그제야 이해했다며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 시켜먹던 집에서 짜장면 두 그릇을 시킨 경수가 침대에 다시 드러누웠다. 백현은 수진은 안고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태여이도 맘마!! 태영이 경수의 다리에 붙어 맘마, 맘마 거리고 있었다. 피식 웃은 경수가 분유를 태워 와 베개를 툭툭 쳤다. 태영이 누워. 휙 돌아누운 태영이 경수가 분유병을 들려주자 두 손으로 꼭 쥐고 쪽쪽 빨아 먹었다.
“에휴, 난 언제 쯤 저렇게 되려나…”
“너무 애 같지 않아도 별로야.”
위로냐? 백현의 날 선 목소리에 경수가 크큭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비웃다 배달 온 소리에 문을 열고 계산을 했다. 쫄래쫄래 따라 나온 태영이 배달하는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앙녀하세요. 귀엽다며 태영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은 아저씨가 돈을 받고 나가고, 식탁에 짜장면을 올린 경수가 백현을 불렀다. 그렇게 짜장면을 먹고 나서 거실에 널부러진 두 사람이 핸드폰을 만지며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근데 태영이 말 되게 빠른 거 아니야?”
“그런가?”
“돌 된 애들 엄마, 아빠만 겨우 한다던데?”
“그래?”
“내가 보기엔 태영이 엄청 똑똑한 거 같아. 혹시 알아 제 2의 에디슨이 될 지,”
태영은 말이 빨랐다. 남들이 겨우 아빠, 엄마나 낱말 같을 걸 말하는 것에 비해 태영은 경수의 말을 곧잘 따라하곤 했다. 뒤집기도, 기기도, 걷기도 남들보다 훨 배 빨랐다. 집에서 태영과 둘이 혹은 종인과 셋이 가끔가다 백현과 찬열, 수진과 만나는 게 전부였다. 태영이 남들보다 빠른지 느린지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화둥둥 내새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주의였기에.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나자 태영이 엉금엉금 현관 쪽으로 향했다. 아쁘! 종인이 온 것인지 태영이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가 슬금슬금 현관으로 향했다. 종인이 태영을 안고 쪽쪽쪽 입을 맞추고 있었다. 왔어? 경수가 종인의 가방을 받아들며 물었다. 뒤에선 찬열이 신발을 벗고 있었다.
“현아, 수진아.”
백현이 수진을 안고 현관 쪽으로 나왔다. 수진이 큰 눈을 접어 웃으며 찬열에게 가려 버둥거렸다. 찬열이 매고 있던 크로스백을 벗고 수진을 안았다. 거실로 와 태영을 내려놓은 종인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찬열은 백현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을 챙기려는 듯 했다. 나 내일도 올 거니까 그냥 놔두고 가자. 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찬열이 짐을 다시 내려놨다.
“니네 집이지 아주?”
“헤헤, 경수야아-”
“어우, 박찬열. 저거 치워.”
그런 백현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꼭 껴안은 찬열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찬열이 수진을 안고 백현은 외투와 아기띠를 집어서 집으로 향했다. 삼촌 안녕히 가세요. 아냐히 가세여. 경수가 뒤에서 태영을 잡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백현네를 보내고 거실과 주방불을 다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밖에 춥지? 경수의 물음에 종인이 경수를 꼭 안으며 대답했다. 얼어 죽을 거 같았는데, 형이랑 태영이 보니까 별로. 푸스스 웃은 경수가 종인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씻고 와. 경수가 조용히 종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종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게요. 종인이 경수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러고 있다 경수가 종인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형, 샴푸 떨어졌어요.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간 경수가 선반에 올려져 있던 샴푸를 꺼내 주었다. 종인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경수는 태영의 옷을 찾고 있었다.
“태영이 씻기게?”
“응.”
아기욕조를 꺼낸 경수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을 둘둘 걷어 올리고 샤워기를 틀고 물 온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대충 온도를 확인한 경수가 태영의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벗기고 욕실로 들어섰다. 얌전한 태영은 몸에 물이 닿든 말든 머리에 샴푸칠을 하든 말든 경수가 욕조에 같이 넣어준 오리인형에 모든 신경이 가 있었다. 가끔 경수가 흘러내리는 샴푸 때문에 눈 위쪽을 만지면 살짝 움찔하는 게 다였다. 물을 몇 번 바꿔 거품을 다 씻어낸 후에 커다란 수건으로 태영을 둘둘 감싸 욕실을 나왔다.
“아이 추워. 우리 태영이 아이 추워.”
추어! 추어! 태영이 또 경수의 말을 따라했다. 둘둘 감은 수건을 풀어내고 베이비로션을 가져와 꼼꼼히 발라주었다. 종인아 태영이 기저귀 좀. 나 분유 타 와야겠다. 경수가 분유를 타올동안 종인이 능숙하게 태영의 기저귀를 채웠다. 아쁘, 아쁘! 종인이 엄청 작은 태영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빠.”
“아쁘!”
“아빠!”
“아쁘!!”
종인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태영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걸 본 경수가 피식 웃었다. 태영이 아직 돌도 안 됐어. 아쁘, 아쁘 하는 게 어디야. 우리 태영이 말 엄청 빠른거래. 그래요? 종인이 태영을 안아 올렸다. 공중으로 붕 띄우자 태영이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분유를 휙휙 굴리던 경수가 태영을 향해 팔을 뻗었다. 왕자님, 맘마 먹고 주무십시다. 태영이 경수에게 가고 싶어 버둥거리자 종인이 경수에게 태영을 넘겨주었다. 젖병을 물고 쪽쪽 빨아 당기다 분유가 바닥이 보이자 태영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집에 돌아간 두 사람은 엄청 피곤한 표정이었다. 차 안에서부터 엄청나게 울어댄 수진 덕이었다. 백현이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봐도 엉엉 울어재끼는 수진 때문에 백현은 저도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저귀를 경수 네에 다 두고 오는 바람에 갈 수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집에 오자마자 찬열이 수진의 기저귀를 갈아버렸다. 그제야 조용해진 수진은 혼자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었다.
“어우…진짜 저걸 어디 갔다 버리든가 해야지. 힘들어 죽겠네.”
쇼파에 널부러진 백현이 한 말이었다. 찬열은 수진을 안고 발개진 수진의 눈가를 큰 손으로 쓱쓱 쓰다듬었다. 우리 공주님, 자꾸 그렇게 울면 목 아프잖아. 울면 돼요? 안 돼요. 그에 수진이 대답할 리 없었다. 찬열보고 씻으라 한 뒤, 백현은 거실 쪽 욕실에 있는 수진의 욕조에 물을 받았다. 수진은 물을 싫어했다. 한 번 씻길 때 마다 전쟁, 전쟁 그런 전쟁이 없었다. 그런 수진을 보고 백현의 엄마가 우스겟소리로 한 말이 있었다. 어우, 이 집에서 세계 제 3차대전이 일어나나. 수진의 옷을 벗기고 욕실로 들어오자 수진이 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으으, 으응, 우에에엥. 터졌다. 빨리 씻겨야 한다. 나름 생긴 노하우로 빠르게 씻긴다지만, 전쟁은 전쟁이었다. 백현이 커다란 수건에 수진을 둘둘 감아 나왔다. 주말이 아닌 관계로 찬열은 일찍 자야했다. 피곤했는지 찬열은 이미 다 씻고 나와 자고 있었다. 팬티 한 장 입은채로. 혀를 끌끌 차며 백현이 욕실 문 앞에 있는 찬열의 옷가지를 들고 나와 빨래 통에 집어넣었다.
“우리 공주님도 맘마 먹고 낸내하자.”
그건 백현의 바램일 뿐이었다. 분유 한 통을 다 비웠음에도 수진의 눈은 말똥말똥하기만 했다. 박찬열 닮아서 눈 크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이제는 제발 좀 작아졌으면 좋겠다고 백현은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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