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태영의 집은 웬일로 분주했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종인과 경수의 부모님. 경수의 형과 종인의 누나들까지. 아침부터 들어오는 택배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주문한 돌상부터 종인의 회사 직원의 남편인 사진작가까지. 그 상황에 태영은 종인의 엄마, 즉 할머니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야오이! 경수가 키우던 고양이 설이까지. 두 사람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잠시 후 사진을 다 찍고, 태영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알아듣지도 못할 덕담을 듣고 있을 때 쯤 찬열과 백현도 도착했다.
“어머, 수진이 많이 컸다.”
“좀 크더니 말을 죽어라 안 들어먹네요.”
갓난애기 때 한 번 본 적이 있는 수진을 경수의 엄마가 안아보려 하자 수진의 표정이 또 일그러졌다. 아, 저한테서 떨어지려하질 않아서. 고생이라며 어깨를 토닥여 준 경수의 엄마가 앉아서 뭐 좀 먹으라며 떡 접시를 내밀었다. 백현과 찬열이 자리에 앉자 설이가 쪼르르 달려와 백현의 무릎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그걸 본 수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진을 쳐다보았다. 결국 설이는 종인의 품에 들려왔다. 그렇게 태영의 돌잔치는 시끌벅적하게 끝이 났다.
몇 년 후, 태영과 수진이 유치원에 가게 되었을 쯤 백현과 찬열은 경수의 앞집으로 이사를 왔다. 태영은 벌써 동네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얼마 안 가 수진도 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갈색 원복을 입은 수진은 경수네 쇼파에 앉자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태영을 깨운 경수가 태영을 토닥이며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태영이 치카치카 혼자 할 수 있지? 우응. 잠에 취해 칫솔을 입에 문 채 대답은 곧 잘했다. 두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 종인과 찬열은 한 차를 타고 태영과 수진을 유치원까지 태워주고 회사로 향했다. 그에 따라 백현이 경수의 집에 와 있는 일은 더욱 비일비재해졌지만. 태영의 옷까지 다 입힌 경수가 식탁에 태영을 앉히고 손에 숟가락을 쥐어줬다. 밥까지 다 먹은 네 사람이 차에 올랐고 경수와 백현은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안녕!”
“태영이 조심해서 잘 갔다 와.”
“응! 엄마!!”
“응?”
“태영이 뽀뽀!”
피식 웃은 경수가 태영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하자 배시시 웃은 태영이 앞을 보고 앉았다. 태영과 경수가 그러고 있을 쯤 수진과 백현은 냉랭했다.
“박수진. 너 엄마한테 인사도 안 할 거야?”
“나도 고양이 사줘!”
“어허.”
“아 왜에!! 태영이는 있자나!!”
“태영이 고양이 아니라 경수 이모 고양이야.”
그럼 엄마가 고양이 사! 며칠 전부터 고양이를 가지고 냉전 중이었다. 또 삐져버린 수진은 볼을 한껏 부풀린 채 앞을 보고 앉았다. 백현도 그런 수진을 무시한 채 앞자리에 탄 찬열에게 인사를 하며 가벼운 뽀뽀를 했다. 너한텐 안 해줄 거야. 수진이 백현을 한껏 째려봤다. 나도 엄마랑 뽀뽀 안해!! 아빠랑만 하꺼야!! 그렇게 한 바탕을 하곤 종인의 차가 출발했다. 한숨을 푹 쉰 백현이 허리를 두드렸다. 내가 저걸 죽어라 안아서 키워놨더니. 아이고, 혈압. 뒷목을 잡은 백현을 보고 웃음이 터진 경수가 어서 올라가자며 등을 툭툭 쳤다.
유치원 내에서 간단한 입학식을 하고 각자 반에 들어간 수진은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었기에 어딘가 불안해했다. 선생님이 나름 통제를 하는 중 수진에게 말을 걸었다. 수진이 자리 앉자. 수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수지니 엄마아. 우엥. 결국 울음이 터져버려다.
집에 올라가 헤어진 두 사람은 갖은 집안일을 다하고 다시 만났다. 곧 돌아올 두 아이를 데리러. 노란 유치원차가 멈춰서고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내렸다. 마지막으로 수진과 태영이 함께 내렸다. 선생미 안녕히가세여. 꾸벅 인사를 하는 태영을 따라 수진이 꾸벅 인사를 했다. 처음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조금 많이 칭얼거렸어요. 그래도 적응하면 괜찮을거 같아요. 유치원 선생님과 대충 몇 마디 말을 나눈 백현이 꾸벅 인사를 하고 한 발짝 물러서자 차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수진이 말없이 백현의 옷자락을 꾹 쥐고 있었다.
“저리가. 너 엄마랑 말도 안 할 거라며.”
“말 안 한다고 안 해써!!”
“아침에 했잖아.”
“엄마랑 뽀뽀 안 한 대짜나!”
“절루 가.”
백현이 차갑게 수진의 손을 옷에서 때어냈다. 그러곤 아파트 안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태영과 경수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수진이 자존심에 입을 꾹 다물고 한 발 짝도 안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다시 수진에게 걸어간 백현이 다리를 굽히고 수진과 눈높이를 맞췄다. 수진이 팩 고개를 돌렸다. 엄마 안 볼 거야? 끄덕끄덕. 진짜? 끄덕끄덕. 엄마 진짜 가? 굳은 백현의 목소리에 수진이 움찔했다.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괜한 아랫입술만 꾹꾹 짓씹고 있었다. 휴우. 한숨을 내쉰 백현이 수진을 향해 팔을 뻗었다. 엄마 안아. 수진은 슬슬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백현이 구부리고 있던 다리가 아파 살짝 몸을 일으키자 깜짝 놀란 수진이 백현에게 훅 안겼다. 그 바람에 백현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잘모해써어, 엄마아- 수지니 나두고 가지마아-엉엉 울음을 터뜨린 수진이 백현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숨이 막힌 백현이 수진을 때어놓으려 하자 수진은 더 꽉 백현을 안아왔다. 엄마 목 아파! 그제야 팔에 힘을 푼 수진이 백현의 얼굴을 보고 훌쩍거렸다. 읏차. 수진을 안아 올린 백현이 태영이 놀고 있는 놀이터 벤치로 가 앉았다. 무릎에 수진을 앉혀 놓고 말을 시작했다.
“너 또 고양이 사 달라고 떼 쓸거야?”
“…엄마아, 수지니 고양이 가고 시퍼요오.”
“태영이 집 가서 설이 보면 되잖아.”
“수지니 고양이 아니자나아-요오.”
“고양이 갖고 싶어?”
백현은 저 나름 부탁할 때 존댓말을 하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는지 안 쓰는 존댓말을 써보겠다고 요를 붙이는 꼴이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끄덕끄덕. 수진이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숨을 푹 내쉰 백현이 저녁에 아빠랑 얘기 해보자고 답했다. 기분이 좋아진 수진이 백현을 꼭 끌어안았다.
“엄마랑 뽀뽀 안 할 거야?”
“아니!! 엄마랑 뽀뽀 많이 하꺼야!!”
백현이 입술을 내밀자 수진이 쪽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엄마 짱!! 엄마가 최고! 수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백현에 물음에 한 번 더 입을 쪽 맞춘 수진이 백현을 꼭 끌어안으며 답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푸스스 웃은 백현이 수진을 내려놨다. 태영이 탄 그네 옆에 달려가 앉은 수진이 다리를 휘적휘적 거렸다. 경수가 수진의 등을 살짝 밀어주자 꽤 높은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배고파 질 시간 쯤 마트로 향했다.
“엄마아-수지니 타요오-”
“박수진! 너 엄마 말 잘 듣는댔지?!”
“타요 사 주세요오-”
백현이 장난감 코너에 발을 딱 붙이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수진을 억지로 안아서 카트에 태워버렸다. 빽 소리를 지르는 수진을 노려본 백현이 표정을 굳히며 걸음을 뚝 멈췄다. 경수와 태영은 백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집에 가자. 경수야 나 반찬거리랑 거실용 슬리퍼 좀 사다 줘. 돈은 나중에 줄게. 카트를 돌리려는 백현의 손을 수진이 꼬집었다. 아!
“박수진!!”
“타요 사줘!!”
“…너 가.”
“…”
가서 니 맘대로 하고 살아. 백현이 수진을 카트에서 내려놓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렇게 백현이 모습을 감추자 수진이 훌쩍거리며 경수에게 걸어왔다. 이모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경수가 손을 뻗자 수진이 경수에게 안겼다. 수진의 등을 토닥이던 경수가 카트를 끌고 다시 장남감 코너로 향했다. 이모가 사 줄게, 어떤 타요 살 거야? 수진이 하나를 집어 왔다. 집어 온 장난감을 카트에 넣자 태영이 빤히 타요를 보고 있었다. 태영이도 하나 살까? 도리도리. 그럼? 딴 거?? 끄덕끄덕. 카트에 타고 있던 태영을 안아 내리자 태영이 뚜벅뚜벅 걸어가 에디 인형을 가리켰다. 태영이는 에디가 조아! 피식 웃은 경수가 에디 인형을 집어 들고 카트에 넣었다. 태영아, 수진이가 동생이니까 수진이 카트 타라고 하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경수가 수진을 안아 카트에 태웠다. 백현이 부탁한 반찬거리와 거실용 슬리퍼, 그리고 제 집에서 쓰일 물건을 산 경수가 계산을 마치고 차에 짐을 실은 뒤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내려 엘리베이터에 짐을 옮겼다. 수진이 발꿈치를 살짝 들어 11층을 눌렀다. 이모! 수지니가 눌러써! 눈물선이 볼에 남은 수진이 배시시 웃었다. 경수가 손을 뻗어 수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백현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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