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여어.”
딱 봐도 쬐끔한 애가 엄마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인사말을 건넸다. 너무 귀여워!!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애기 손을 꼭 잡고 흔들며 물었다. 이름이 뭐야?
“세후니인데요오…”
낯선 사람이라 그런지 엄마 다리를 꼭 붙들고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뒤따라 나온 엄마가 아줌마가 들고 있던 떡을 받아들었고 두 여자는 꽤 나는 나이 차이에도 죽이 잘 맞았다. 세후니 몇 살? 꼬물거리며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빼더니 손가락을 쭉 펴 보인다. 다섯 살? 끄덕끄덕. 조그만 머리통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그게 귀여워 또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눈을 접어 밝게 웃어보였다.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어머, 그래도 되나요?”
결국 두 아줌마는 거실에서 수다의 꽃을 피우고 있었고, 나는 세훈이와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서 종아리를 달랑 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 자동으로 아빠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만히 제 발끝을 내려보던 꼬맹이가 고개를 휙 들더니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형아는 몇 살이야?”
“형은 15살이야.”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열다섯을 표현 해보려하지만 잘 안되는지 미간을 좁힌다. 손을 뻗어 좁혀진 미간을 꾹 눌렀다. 인상 쓰면 못생겨져. 그 소리에 얼른 미간을 핀 세훈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그럼 어떡하면 잘생겨져? 웃음이 터졌다. 귀여워도 너무 귀여워. 손으로 입꼬리를 쭉 올려주며 “웃어야 잘생겨지지.” 라고 말해주자 생긋 웃어 보인다. 차를 다 마셨는지 옆 집 아주머니가 문을 살짝 열었다. 세훈아, 집에 가자. 도리도리. 입을 쭉 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세후니 형아랑 놀 다 갈꺼야아.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쥐었다. 아주머니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타일러 봤지만 결국 으앙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다. 깜짝 놀란 내가 세훈이를 급하게 안아들고 토닥였다. 좀 놀다가 제가 데려다 줄게요! 아주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그래도 되겠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가 가고 조금 지나서야 울음을 그친 세훈이를 침대 위에 올려뒀다. 그러곤 바닥에 앉자 얼추 눈 높이가 맞았다.
“세훈이 울면 못난이 되는데 왜 울었어?”
“엄, 엄마가아, 세후니 더 놀고 시픈데에-”
또 훌쩍거리는 세훈이를 달래며 눈가를 쓱쓱 닦아 주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긴 몇 분 방긋 웃는 얼굴로 쫑알쫑알 거리는 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니였다. 결국 놀다 지쳐 허벅지를 베고 잠이 든 후에 세훈이를 업고 옆집으로 갔다. 고맙다며 아주머니가 쿠키를 몇 개 주셨고, 꾸벅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존나 미친 새끼.”
“닥쳐.”
“가증스러운 새끼.”
옆에서 계속 태클을 거는 김종인을 진심으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학교 오자마자 벗어던진 넥타이를 다시 매고 풀어헤쳤던 단추도 꼭꼭 잠궜다. 야 어때? 등교할 때랑 똑같냐? 내 물음을 간단히 씹어 먹은 오세훈이 들고 있던 가방을 내 얼굴을 향해 던졌다. 아, 씨발! 이거 형이 사준거란 말이야!! 버럭 소리를 지른 뒤 가방을 메고, 화장실을 나섰다. 얼마 안 가 김종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을 풀고 집에 들어가자 된장찌개 냄새가 폴폴 났다.
“세훈이 왔어?”
분홍색 앞치마를 맨 형이 국자를 들고 주방에서 현관을 빼꼼 내다봤다. 고개를 끄덕인 세훈이 가방을 벗어 쇼파에 얹어뒀다. 가방 방에 가져다 놓고, 옷 갈아입고 나와. 찌개 거의 다 끓었다. 밥 먹자. 교복을 벗어던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찌개를 옮기고 밥을 푼 형이 수저를 챙겨주며 오늘 학교에서 어땠냐느, 급식은 맛있었냐 등 물어왔다. 예전에는 주로 내가 쫑알거렸다면 요즘은 형이 쫑알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회사 상사 욕부터, 밉살스런 동기 욕. 주로 회사 욕이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 할 거리를 싱크대에 넣어두고 형이 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 하나하나 비누칠을 하고 거품기를 씻어냈다. 형이 씻고 나올 때 쯤 마지막 그릇을 건조기 안에 넣었다.
“우리 세훈이 아줌마 뒤에 숨어서 안녕하세여어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다 키웠냐.”
“누가 들으면 형이 나 키운 줄 알겠다.”
“야! 내가 키운거나 다름없지! 형 용돈 정말 다 너한테 썼던 거 기억하지?”
“아니?”
이런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 형이 삐죽거렸다. 또 삐진 것 같았다. 형의 얇은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내가 설마 형이랑 한 일을 잊어버릴까봐. 형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분명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려고 혼자 끙끙 거리고 있을 것이다. 형 나 과일 깎아 줘. 허리에 두른 손을 찰싹 대린 형이 쫄쫄쫄 냉장고로 향했다. 사과 하나와 배 하나를 꺼낸 형이 능숙하게 과일을 깎아 포크에 찍어 건네주었다. 한 입 베어물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포크를 형 쪽으로 내밀었다. 앙. 사과 한 쪽을 배어먹은 형이 오물오물 씹으며 배를 깎았다. 그렇게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적당히 눈치 봐서 방으로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수학 문제집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부해?”
“응.”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 봐. 형이 아는 거면 가르쳐 줄게.”
끄덕끄덕. 그러곤 형은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살짝 닫고 나가버렸다.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고 김종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뭐하냐.]
[또 공부한다고 뻥치고 방에 들어가셨냐]
[헐, 너님 돗자리 까셈]
[존나 빤한 새끼]
[ㅡㅡ]
[ㄲㅈ 난 잘꺼임,]
잠만보 새끼. 진짜 자는 것인지 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끄적끄적 문제를 한 두 개씩 풀어나갔다. 그렇게 두 시간 쯤 지났을까 거실로 찌뿌두둥한 몸을 이끌고 나오니 형이 쇼파에 앉자 쿠션을 끌어 앉고 졸고 있었다. 피곤했나보네. 형을 살짝 흔들자 형이 눈을 반쯤 떴다. 으음…우리 세훈이 공부 다 했어? 끄덕끄덕. 피곤하면 들어가서 자. 반쯤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에 비척비척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슬쩍 방문을 열어보니 불도 다 켜 놓은 채 잠에 빠져있었다. 조용히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준 뒤 방문을 살짝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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