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안방에 있는 오세훈이나, 거실에서 새근새근 잘도 자는 아저씨나, 집에 두 남자나 들인 나나. 아무도 정상적인것이 없었다. 난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잠이 오지 않아 방문을 살짝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4시였다. 밖은 아직 깜깜했다. 덕분에 어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손을 이리저리 뻗다가 안방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안나는걸 보니, 오세훈은 자고 있는듯 했다. 참 쟤도 남의 집에서 잘 잔다. 그것도 여자 집에서. 나는 웃음섞인 한숨을 내쉬고 거실로 나갔다. 이제 어둠이 적응이 되어, 거실에 이불로 꽁꽁 싸매진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아무 움직임도 없이 자고 있었다. 혹시나 아저씨가 죽은건 아닐까 싶어 아저씨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댈정도로. 나는 두 남자가 자고 있는것을 확인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반팔 반바지에 베란다로 나오니, 역시 새벽은 춥다. 나는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문지르며 난간에 살짝 기댔다. 그리고 아래를 쳐다보며 조용한 아파트를 구경했다.
" 야 "
한참이나 넋을 놓고 조용한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뒤에서 남자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란채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 보았다. 뭐, 누군지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말이다.
오세훈은 나를 보며 피곤이 그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왜 나왔어' 라고 작게 소근거렸다. 그러자 오세훈은 살짝 붕뜬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이며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 자다가 깼어. 근데 왜 넌 이 새벽에 잠도 안자고.. "
" 그러게. 오늘따라 잠이 안오네 "
" 음...그럼 내가 얘기나 해줄까? "
" 내가 언제 들어준대? "
" 들어줄거잖아 "
" ...한번 해보던가 "
오세훈은 내 옆에 나와 똑같은 자세로 난간에 기대섰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오세훈이 무슨 얘기를 해줄까 싶어 고개를 살짝 꺾어서 오세훈을 쳐다 보았다.
" 내가 왜 너를 좋아하게 됬는지 말해줄까? "
" 아니 그거는- "
" 그냥 말해줄테니까 듣고 잊어. 그럼 됬지? "
" .... "
" 너랑 나랑 처음 만났던게 저번주였나? "
" 저저번주 아냐? "
" 아무튼, 그때 내가 너한테 벨튀했냐고 막 화냈잖아 "
" 응 "
" 근데 니가 날 보면서 어이없다는듯이 웃는데, "
" 응 "
" 그게 그렇게 귀엽더라 "
" 너 변태냐? "
" 그건 아닌데. 그냥 너 자체가 귀여워서 그랬나 "
오세훈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하다는 듯이 허허- 웃어댔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내가 뭐..뭐가 귀엽다고.
" 그땐 그래도 지금만큼 좋아하지는 않았거든? "
" 응 "
" 근데 니가 후드집업 쓰고 편의점 왔을때 "
" 응 "
" 그때부터 였던거 같아 "
" .... "
" 나 되게 생긴건 잘 놀게 생겨도 여자친구 사겨본적은 없거든? "
" .... "
" 누굴 좋아해본적도 없고 "
" .... "
정곡이 찔렸다. 내가 오세훈을 상상했던게 진짜 맞아서, 왠지 미안하기도 했고. 오세훈은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앞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밤이라 그런가, 문득 오세훈이 잘생긴 얼굴인걸 깨달았다. 그리고 밤에 듣는 오세훈 목소리는 또 색다르고.
" 그래서 니가 좋아졌을때, 진짜 니가 좋은건지 모르겠는거야 "
" .... "
" 근데 니가 집에 가고 난뒤에 걱정되서 미치겠는데 "
" .... "
" 이게 좋아하는건가 싶고 "
" .... "
" 친구들은 다 맞다고, 고백하라고 떠 밀고.. "
오세훈은 이렇게 나에게 2번째 고백을 하고 있었다. 남이 본다면 내가 아마 나쁜년처럼 보일거다. 이렇게 절절하게 고백하는데도 아무 말 없이 듣고나있고. 하지만 난 오세훈이 싫은건 아니다. 싫은데 집까지 데려와서 재워줄 미친년은 없을거 아닌가. 그런데 오세훈과 만약 덜컥 사귄다고 해도 얘가 내 외로움에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다 그랬으니까.
사람이 외로우면 주변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생기면 얘기는 달라진다. 남자친구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집착을 하게되는거고, 갑자기 헤어지자고 할까봐 불안하게 되는거다. 그 덕분에 나는 차이기 일쑤였다.
" 그래서 고백한거야 "
" .... "
" 어떻게 고백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
" .... "
" 그런데 하고 나니까 후련하기보다는 불안하더라 "
" .... "
" 그래서 대답 듣기 싫었어 "
" .... "
" 앞으로도 강요안할거야 "
오세훈은 착잡하다는듯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미안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난 오세훈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위로가 될 수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오해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오세훈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거 같았다. 위로를 하는 대상이 나이므로.
" ..늦었다 세훈아 "
" 아, 응. 잘자고 "
" 너도 "
짧다면 짧은 대답이였다. 아니, 대답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나에겐 수천번, 수만번 고민해서 나온 말이였다. 그냥 저 말이 제일 적절할거 같아서라고 하면 이유가 될까.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 오세훈!!!!!!!!!!!일어나!!!!!!!!! "
" 아..으.....야... "
분명 엄청 늦게 잠든거 같은데. 아직까지 방학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짜증이 났다. 나는 새벽 6시쯤에 자서 10시에 일어났다. 무슨.. 새도 아니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안방으로 달려가서 오세훈을 깨웠다. 이유는 딱히 없다.
" 5분만....5분만... "
" ...그럼 다음에 깨우러 왔을땐 꼭 일어나 "
" 응.... "
오세훈의 목은 잠에 푹 잠겨 있었다. 그런 오세훈을 보니 좀 안쓰러운거 같기도 하고. 나는 꽉 붙잡고 있던 오세훈의 팔을 놓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서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려다 말고 주방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오세훈에게나 아저씨에게나 나도 밥을 잘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오세훈에게.
" 뭐.. 칼 안쓰고 하면 되지. 가위라는 좋은 도구가 있는데 "
오늘 아침밥은 김치볶음밥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김치와 햄을 가위로 쉽게 잘랐다. 가위는 누가 발명한걸까. 너무 고맙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말이야.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 저..아저씨 "
" .... "
" ....아저씨? "
" .... "
" 아저씨!! "
" .... "
" 김민석!!!!!!!! "
" ...으으 "
오세훈은 식탁 의자에 다리를 비스듬히 꼬꼬 앉아 ' 존나게도 안일어나네 ' 라며 중얼댔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한번 흘기고 미동도 없는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자 아저씨가 살짝 인상을 구기며 실눈을 뜨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뭐..뭐야.
" 아저씨 깼어요? "
" ..........어? "
" ....? "
" 어!!!! "
아저씨는 내 소심한 부름에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약 3초 뒤에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한번, 집을 한번 쳐다보더니 ' 꿈이 아니였다니.. ' 라며 중얼 거렸다.
" 나 왜 여기 있어요? "
" 저..그게... "
아저씨는어제 얘기를 들으며 아까보다 더욱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나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실수였다고.
" 아니 괜찮아요! "
" 정말요? "
" 네 정말요"
" 야 OOO! 밥 다 식겠다!! "
어휴 오세훈새끼. 나는 참을성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오세훈에게 아까와 같이 눈을 흘기고는 아저씨 손목을 잡고 식탁으로 걸어갔다. 아저씨는 내게 손목을 잡힌채로 ' 애기 이름이 여주였구나.. ' 라며 작게 중얼댔다.
" 우와- "
" 김치 볶음밥인데, 맛은 별로 없을거에요 "
" 아니에요. OO가 만든건데 맛없을리가 "
" 당연하지. 우리 OO가 만든건데 "
아저씨는 무덤덤했던 오세훈과 달리 내 음식을 보며 감탄을 했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보며 은근 어깨가 올라갔다. 나는 아저씨를 째려보며 말하는 오세훈 뒷통수를 살짝 때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오세훈과 아저씨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이..야..맛있다 "
" 하하하.. "
아저씨와 오세훈은 들뜬 얼굴로 김치볶음밥을 한숟가락 떴다. 그리고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거리는데, 오세훈과 아저씨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가 1초만에 펴졌다. 내가 잘못 본건가? 분명히 인상쓰는거 같았는데.
" 그쪽은 맛 없으신가 봐요? "
" 네? 아뇨? OO가 만든건데 뭐가 맛이 없어요 "
" .... "
" 그럼 OO이 친구는 맛이 없어요? "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존나 맛잇구만 "
오세훈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지를 올려 붙이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보며 ' 입에 있는거 다 먹고 말해 ' 라고 말했다. 그러자 오세훈은 기가 죽은듯 밥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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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 내가 염치없이 밥도 먹고 가고. 미안해요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저씨. 앞으로도 자주- "
" 오시면 안되죠 "
" 야!! "
오세훈은 내 옆에 비스듬히 서서, 아저씨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내 말을 가로채갔다. 나는 오세훈을 흘겨보며 너는 왜 안가냐고, 빨리 안가면 내가 내쫓을거라고 하니, 그제서야 오세훈이 조용히 신발을 주섬주섬 신었다.
" 둘다 잘가요, 잘가 "
나는 아저씨에게 왼쪽손으로 인사를 하고, 오른쪽손으로는 오세훈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오세훈은 아저씨를 슬쩍 보며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오세훈을 무시하고 현관문을 쎄게 닫았다. 현관문에서 손을 떼자마자 힘이 풀렸다. 요리에 너무 힘을 쏟았나?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아저씨와 오세훈이 가고 방에 쳐박혀서 공부만 하고 있으니 벌써 저녁이였다. 나는 피곤해진 정신을 깨기 위해 안방으로 가서 책을 읽으려 책을 골랐다. 그런데 살짝 걷어진 커튼 사이로 움직임이 보였다. 나는 살짝 걷어진 커튼을 다 걷고 보니 아저씨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향해 살짝 웃자, 아저씨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창문에 붙였다.
' 그 친구가 너 좋아하는거 같아요 '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모양으로 '그친구요?' 라며 뻐끔대니 아저씨가 종이 뒤에 다시 크게 쓱쓱 쓰더니 종이를 뒤집었다.
' 오세훈이라는 친구 '
아저씨는 하하 하며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나를 향해 새로운 종이를 창문에 붙였다.
' 혹시 서로 좋아해요? '
내가 아무말 않고 고개를 소심하게 저으니 아저씨가 종이 뒷편에 열심히 무언갈 쓰다가 날 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종이를 뒤집었다.
' 다행이다 '
아저씨는 종이를 다시 뒤집어서 조그마한 펜으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로 긴 말은 아닌듯, 종이가 금방 뒤집혔다.
' 그럼 이제부터 나 좋아할래요? '
내가 종이를 보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있으니, 아저씨가 새 종이를 꺼내서 창문에 턱 붙였다.
' 나는 이미 좋아하고 있어서 '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난 멍하니 아저씨가 들고있는 종이만 쳐다 보았다. 아저씨는 종이를 천천히 내리더니 날 향해 ' 너를 ' 이라며 입을 오물 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 상황에서 오세훈이 생각나는건 도대체 뭘까.
아이디어 주신 독자님들 고마워요ㅠㅠ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됬어요ㅠㅠㅠㅠㅠㅠ
아! 제가 요즘 쓰고있는 글이 있는데..ㅎㅎ 곧 프롤로그 올릴게요. 근데 옆집 끝나고 난 후에 올려야 할거 같아요
제가 경험해본 결과 글을 2개를 쓰면 한 글은 망하더라구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오늘도 제 글 보신 독자님들 애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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