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브 투게더 !
: 같이 살다, 함께 지내다
" 민석 오빠! "
15번째였던가? 아님 16번째?
벌써 손으로 꼽을수 없을 정도로 김민석의 집에는 많은 여자들이 다녀갔다. 소파에서 김민석과 얘기 한 후로 친해졌냐고 묻는다면 난 단호히 그게 끝이였다고 대답 할 수 있다. 김민석과 나는 그 뒤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는 좀 신경쓰긴 했지만.
김민석의 방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분명한건 은밀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내 추측이고 예상이긴 하지만, 여자가 들어간 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기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여자들 매일 들이는걸까 싶었다. 나만 들어갈수 없는 방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 왔어 은지야? "
귀를 최대한 틀어막았지만, 소용 없었다. 왜 방문은 안닫고 지랄이야 지랄은. 난 최대한 이리저리 뒤척이며 김민석과 방금 들어간 여자의 대화를 엿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자 내 노력에 보답이라도 해 주는듯, 김민석의 방 문은 쾅 소리와 함께 닫혔다.
닫히길 원했지만 방문이 닫히는 소릴 들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별로였다. 마치 김민석에게 버림받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
양손에 묵직한 노란 비닐 봉투가 들려있으니, 걸음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리뒤뚱, 저리뒤뚱. 난 최대한 내 팔뚝에 힘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비닐봉투는 힘 없이 아래로 축 쳐지기 일쑤였다. 으으, 짜증나.
오늘은 내가 밥 당번이였다. 밥 당번이 뭐냐면, 김민석이 온 첫날에 김민석이 나에게 내밀었던 그 계약서. 그 계약서에 난 김민석과는 달리 집에 관련된 것을 썼다. 예를 들면 밥 당번을 정해서 밥을 한다던가, 청소 구역을 정한다던가. 김민석은 내 계약서를 대충 훑고 말았겠지만, 난 정말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다. 물론 김민석도 나름 애는 쓰는듯 매일 요리를 해서 아무말 없이 식탁에 올려놓곤 하는데, 정말 먹기 싫다. 너무 맛 없는걸 떠나서 처음 경험하는 맛들이라. 김민석의 요리엔 적응할래야 적응할수가 없다.
" 밥 먹었어요? "
" 아뇨 "
" 그럼 제가 밥하고 식탁에 놔둘테니까 먹고 싶을때 와서 먹으세요 "
묵직한 비닐봉투를 식탁에 올려놓고 나니, 손가락이 빨갰다. 난 잘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뉴스에 집중하고 있는 김민석에게 말을 돌렸다. 김민석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을 해댔다. 난 괜히 김민석을 흘기고는 카레 가루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짜장은 많이 해봤는데, 카레는 처음이라. 난 집안에 돌고있는 어색한 정적을 깨기위해 비닐봉지를 좀 과하다 싶이 뒤적거렸다. 그러자 김민석이 인상을 찌푸리곤 '시끄러워' 라며 중얼댔다. 난 김민석의 짜증스런 말투에도 굴하지 않고 이제는 주방으로 걸어가서 찬장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하며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자 김민석이 티비를 신경질적으로 끄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하게 이긴기분이였다.
" 가은?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는 개뿔. 김민석 방 문틈사이로 들려오는 전화소리에 이미 KO패 당한지 오래였다. 이기기는 무슨.
***
" 니년이 어디라고 여길 기어와! "
" .... "
" 더러운년.. 안 꺼져!? "
익숙할때도 됐는데, 분명 익숙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난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소금을 손으로 쓸어담았다. 내가 몸을 숙이자 옷에 있던 소금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수치스러웠다. 올때마다 입도 뻥끗 못하고 소금이나 맞는 내가 수치스러웠다. 소금이 젖어갔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할머니께는 보여주고싶지 않은 마음에 소금을 주우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았다. 할머니는 소금을 줍고 있는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차대며, '거지 피가 어디가겠어?' 라며 중얼댔다. 물론, 혼잣말은 절대 아니였을거다. 나보고 들으라고, 듣고 창피해하라고 하는 말 일거다. 하지만 난 꿋꿋히 소금을 주워댔다. 아까운 소금. 아까워, 너무 아까워.
" 다신 올 생각 추어도 하지말어라 "
" .... "
" 닐 보면 꼭 느이 엄마를 보는거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 "
할머니는 소금을 줍는 내 앞에 바가지를 툭 던지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에게 맞는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맞아서 할머니의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린다면, 그렇다면 그걸로 만족할수 있다. 하지만 이 곳을 올때마다 주눅이 들어버려서 말도 못꺼내고 맞는 건, 상관없지 않다. 내가 정말 오기 싫은 이 곳을 오는 이유는, 맞으려고 오는게 아니니까. 나는...나는 그냥..
" 엄마, 미워하지 마세요 "
" 뭐? "
" 우리 엄마, 미워하지 말라구요 "
5년 내내 입에서만 맴돌던 말이 그만 튀어나와버렸다. 적어도 이 말을 할때엔 진지하게, 할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하려 했는데. 소금을 뒤집어 쓰고, 목소리는 한껏 떨린채로 말하려고 한게 아닌데. 할머니는 내 얼토당토 않은 말에 조소를 띄우고는 '내가 왜 그래야하는데' 라며 말을 했다.
" 내가 왜, 니네 엄마를 미워하면 안되는데? "
" ...우리 엄마는 살인자가 아니- "
순식간에 고개가 돌아갔다. 너무 급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피할수도 없었다. 나는 얼얼한 왼쪽 뺨을 붙잡고 멍하니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화가 잔뜩이나 난 얼굴로 '니년이 소금을 덜 맞았구나' 하시며 집안으로 달려가셨다. 난 할머니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쥐고있던 바가지를 내려 놓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동안 뺨을 스치는 바람덕분에 뺨을 맞았을때보다 몇배는 더 아팠다. 눈물이 났다. 소금을 주으며 참았던 눈물이 계속 터져나왔다. 난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내내 악을 질러댔다. 시골인 덕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몇배는 더 크게 악을 질러댔다. 아까부터 계속 머리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엄마와의 기억을 없애버리고 싶어서.
***
" ....맞았어요? "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면서 거울을보며 뺨 맞은곳을 머리로 최대한 가린다고 가린건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검정 수트를 입은 김민석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고르다, 내 뺨으로 시선을 꽂았다. 난 김민석에게 대답을 하려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아뇨' 라고 들릴듯 말듯 말을 했다. 걱정해주는건 고맙지만, 오늘은 그동안 했던것 처럼 신경 안써줬으면 했다. 어차피 대답할 생각 없으니까.
" 그럼 뺨이 왜그- "
" 신경 쓸거 없잖아요 "
괜히 화풀이를 엄한데에 했다. 그 엄한데는 물론 김민석이고. 김민석은 아무 감정 없는 내 말에 이내 표정을 굳히더니, '아,네' 라며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신발장에서 광태가 나는 검정 구두를 꺼내 신고,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렇게나 짜증날 줄은 몰랐는데.
난 괜히 화풀이 대상이 되어버린 김민석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차려입고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날 김민석을 상상하니 짜증이 치솟다 못해 화가났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다가,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 ...하 "
머리카락으로 가리기 급급해서 뺨이 이정도로 심각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손거울에 비춰진 뺨에는 조금 심하다 싶은 피멍과 함께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나는 힘없이 들고있던 손거울을 아무데나 내려놓고는 김민석의 옆옆 방인 내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는 내내 온 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듯 했다. 덕분에 방 침대에 다다르자 마자 기절하듯 잠을 청했다. 오늘은 제발 김민석의 여자들 때문에 잠에서 깨는일은 없길 바라며.
***
" ...으..으.. "
" ...깼어요? "
" ..지금 뭐하는거에요? "
하필 꿈을 꿔도 엄마가 나오는 꿈을 꿔서, 눈을 뜨니 눈가가 촉촉했다. 나는 눈을 느리게 뜨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내 옆에서 내 얼굴을 향해 무언갈 하고 있는 김민석이 보였다. 그리고 김민석의 옆에는 아무렇게나 접혀있는 검정자켓도 눈에 띄었다. 김민석은 내가 눈을 뜨니 살짝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내 뺨을 향해 하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팔을 들고 내 뺨으로 향해있는 김민석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김민석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내 팔에 시선을 꽂았다.
" ...힘도 없으면서, 놔요 "
" 뭐하는거냐고 묻잖아요 "
" ..목소리 다 갈라졌네요 "
" 지금 장난치는- "
" 여주씨 뺨에 연고좀 바르고 있었어요, 됐죠? "
김민석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내 팔을 살짝 내리며 '다시 자요' 라고 하며 다시 내 뺨에 연고를 발랐다. 화를 내려 했는데, 목도 아프고 머리도 띵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일은 내 뺨에 집중하고 있는 김민석을 인상을 쓰고 바라보는것 뿐이였다. 김민석은 내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고를 바른 곳에 밴드를 붙였다.
" 앞으론 이런거 하지마세요 "
" 왜요? "
" ...그쪽이 분명 계약서에.. "
" .....아 "
김민석은 내 말에 무언가 생각이 난듯한 표정을 짓다, 이내 미간을 구겨댔다. 김민석은 한껏 기분 나쁜 표정이였다. 난 그런 김민석을 이해할수 없었다. 처음 입주할때부터 선을 그은건 김민석이였고, 그 계약내용을 다시 상기시켜주었을 뿐인데. 나는 괜히 이상한 기분에 이불을 뒤척이고는 김민석을 향해 등졌다. 김민석은 내가 등을 지고 난 후부터 한참을 말이 없더니, 갑자기 구급상자를 정리하곤 벌떡 일어나서 나가려는 행동을 취하는듯 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무엇을 하는지는 잘 파악이 되질 않았지만 확실한건 김민석이 무언갈 주저하는듯 방문고리를 잡았다가 놨다가를 수십번 반복했다.
" 여주씨는 계약 내용이 다 기억나요? "
" 네. 그쪽이 잘 보이는곳에 붙여놨잖아요. 덕분에 거의 다 외웠는데 "
" ....그렇구나 "
김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 하더니 방에서 나갔다. 나는 김민석이 나가자마자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다시 똑바로 누웠다. 그런데 김민석이 뭐가 그리 급했는지, 양복 자켓을 방 바닥에 두고 나갔다. 나는 김민석을 부르려다 어차피 자기가 알아서 오지 않을까 싶어,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때는 천장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머리가 아팠는데, 눈을 감으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두통이 금세 사라진듯했다. 나는 김민석이 주저하던것이 뭔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잠에 빠져버렸다.
내 사랑 독자님들!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
저는 정말 별로였어요ㅠㅠㅠㅠ요즘 너무 힘드네요ㅠㅠㅠㅠㅠ그래서 글을 안쓰려다 독자님들 생각이나서 부리나케 쓰고 저는 이제 자러갑니다ㅠㅠ
오늘 제 하루는 별로였지만 독자님들 하루는 꼭 좋았기를 바라며ㅠㅠㅠㅠㅠㅠ저는 자러가요~
*암호닉*
쎄쎄쎄훈님
들레님
춰쿼롸뛔님
세훈님
벚꽃만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