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이 아니라 단편이 될 것 같네요 5편에서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량 늘리려고 갖은 노력 중입니다..
세루 팬픽인데 절대 네버 달달하지 않음주의 자 그럼 저의 침체된 발악을 들어보시죠 유유
아 그리고 제목에 대해 물을 게 있어요 침체된 발악이 좋아요? 아니면 침체의 밤이 좋아요?
[세훈루한] 침체된 발악 |
침체된 발악 作.밀레니엄
아침이 밝았다. 루한의 방에는 블라인드를 쳐두었으니, 그의 방안으로 들어가는 해의 빛은 많은 양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제, 있었던 수술로 인해 몸에 피로가 더 축적된 것 같다. 그 밤이 길었던 만큼 내가 쉴 수 있는 그 휴식은 너무나도 짧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모두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을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맑았지만 그것을 루한과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진실에 어두운 우울이 나를 잠식시킨다. 루한의 몸은 오래 햇빛을 쬐면 뜨겁게 달아올라 답답해한다. 그늘 아래 있어야 했고, 햇빛을 받으면 시야가 흐려지기도 한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시야가 흐려지는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답답해하는 루한을 보면 괴로운 것은 루한 혼자가 아닌, 나 역시도 괴로워 루한에게 햇빛을 보여줄 수가 없다. 늘 혼자 맞이하는 햇빛은, 제길스럽게도 밝았으며, 맑았다.
일으켜 세운 몸의 중심을 잡고 심호흡을 가다듬어, 잠이 부족한 육신을 달랜다. 그리고 나는 서랍장으로 향해 갈아입을만한 검은색 후드티를 찾아 거실에서 갈아입었다. 모든 것이 피로하고 지쳐서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피폐해진 정신과 육신을 보며 나는 폐인 같은 삶에 대한 반성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루한을 위해 일고 있는 일들이니 나는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었다. 검은색 후드 티와 검은색 바지는 그대로, 그리고 챙만 빨간색인 검은색인 모자를 쓰고 현관으로 나와 검은색 컨버스화를 신었다. 검게 물들은 나지만, 하얀색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이니 이러한 검은색에 나의 비인간적인 모든 만행을 담겠다. 검은색이 부디 나의 모든 과오를 가려주길. 하얀색은 나에게 있어서 좋은 색이 아니였다. 그래서 이렇게 검은색으로 몸을 꽁꽁 둘러싸고 다니는 것인지, 나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둘러싸고 다니는 것인지 나조차도 불확실하지만 검은색은 내게 안정을 준다. 컨버스화를 다 신고 나서 현관문을 밀어 열었다. 그 때 문뜩 어제 다 먹어가던 시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다시 컨버스화를 벗어 던지고 수술실로 쓰는 방에 들어가, 벌써부터 수술 부위에 부패가 시작된 그 여자의 시신을 짊어졌다. 나는 이러한 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시신을 짊어지고 루한의 방문을,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늘 나는, 루한이 죽어 있을까 봐 두려웠고 루한이 없을까 봐 두려웠으며 루한의 그러한 헝겊 인형 같은 모습을 보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깨어나서 거의 다 먹어 치운 그 시체를 보고 루한으로 시선을 이동 시키고, 나는 안심했다. 아직 루한은 내게 남아 있었다. 온전한 루한의 모습은 아니였지만, 나는 그러한 것까지 바라기에는 이미 늦을 대로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접는다. 루한의 앞에 짊어졌던 그 여자의 시체를 내려놓고 루한의 머리칼을 쓸어줬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치며 루한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나는 마른 입술을 떼어 말을 했다.
“다녀올게.” “…….” “잘, 먹고, 있어….”
그리고 나는 문을 열고 루한의 방에서 나왔다. 그 여자를 향한 기도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루한,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살아 있어 줘. 나는 다시 현관으로 향해 검은색의 컨버스화를 신었다. 빠르게 신고 현관문을 다시 밀어 나왔다. 그리고 주인 없는 개집과 개밥그릇을 한 번 쳐다보고는 대문을 밀어 나왔다. 산으로 올라가기 전, 다른 주택들보다 조금 더 높게 조금 더 깊은 곳에 위치한 나와 루한이 살고 있는 주택의 느낌은 쓸쓸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어제 밤의 깊은 검은색 혹은 더러운 적갈색의 이 주택가를, 새하얀 햇빛이 드는 오늘의 아침으로 맞이해 그 곳을 걷고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택가를 내려가는 길이었다. 연구소를 그만 두고 내가 겨우 구할 수 있었던 알바는 아침부터 시작되어 저녁에서 밤사이까지 일을 하는 공사판이었다. 나는 머리 쓰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으며, 페이도 적당해 더 생각할 것 없이 그곳으로 매일 알바를 나갔다. 오늘 역시, 그 공사판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아침에 불어오는 바람은 나에게 살내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인간의 냄새를 목표로 좇는 것이 아니기에 집중해서 그것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기계처럼 입력된 공사판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다.
주택가로 내려오며, 이 주택가에 거주하고 있는, 흔히 말해,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수다를 의도치 않게 엿 듣게 되었다. 그들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름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손을 내젓는 그 제스처에 흥미를 느껴 무슨 이야긴지 잠시 발걸음을 느리게 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극성적이었으며, 작게 말한다고 해도 그 목소리가 크게 주택가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의 내용은 주택가 내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에 관한 괴소문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작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들에게 웃음처럼 보일지는 모르겠다.
“저번에는, 훈이네 막내 아들이 사라졌잖수. 아이고, 고 자식 참 싹싹한 아이였는데….” “어디로 갔는지, 경찰들이 놓아버린 이 주택가에서 맘 놓고 살 수도 없고!” “수현이 어멈은 오늘 이사 간다카던데, 민우 어멈은 언제 갈 생각인고?” “말도 마, 당장 빨리 가야한다고 난리를 쳐서 오늘 갑니다. 이제 여기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여.”
웬 살인마가 이 주택가에 살고 있다는 설, 어느 미친 싸이코가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설, 등등 아줌마들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할 그러한 신기한 말들이 일었다. 하지만 세훈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한 사실들보다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그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자신이니까 세훈은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더 들을 것이 없다는 듯 그들을 지나쳐 내려갔다. 주택가에 끝에 다다르면 꼭 한숨을 내쉬곤 한다. 세훈에게 이 주택가를 벗어난다는 것은 익숙함과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연구소에서만 살아왔던 세훈은, 아직도 주택가조차 완벽한 길을 외울 수 없었다. 세훈은 그러한 능력이 부족했다. 그랬기에 공사판을 가는 길 그것 하나 겨우 외웠을 뿐이고, 이것 또한 위태로운 기억력에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세훈의 머리에 있는 완벽한 지도는 연구소 하나뿐이었다. 세훈은 그 한숨을 내쉰 후 주택가 밖으로 나왔다. 주택가 밖으로 나오고,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세훈의 귀에 박혔다. 바람을 가르는 그 소리들, 세훈은 지금부터 자신이 외운 그 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공사판으로 향하는 그 길에는 아무런 방해물도 없어야했다. 세훈은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며 후드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여 걷기만을 반복했다. 주변 건물들을 보며 길을 외운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여기서 얼만큼 가서, 이쯤에서 왼쪽으로 돌고, 이런 식으로 길을 외운 세훈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세훈이었다. 이러한 접촉은 연구소에서도 흔치 않던 일이라고, 세훈은 생각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곧 세훈은 공사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캐한 모래 섞인 바람이 눈을 아프게 찔러 오고 공사판 특유의 소음이 귀로 날카롭게 날아온다면, 그 곳이 바로 세훈이 찾던 공사판이었다. 세훈은 그 안으로 몸을 들여 놓고 간이로 만들어 놓은 건물로 바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공사판 인부의 옷은 늘 먼지와 모래들로 매캐한 느낌을 가져다주었지만 세훈은 개의치 않고 그것을 입었다. 그리고 안전모까지 착용하고 세훈은 공사판으로 나왔다.
자신이 일을 하는 구역으로 들어가 세훈은 익숙한 몇몇의 공사 인부들이 건네는 인사에 가벼운 목례로 답을 했다. 세훈의 나이는 이들 중에서 어린 축에 속했고, 그것은 세훈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나이도 꽤 들어 있었다. 그들은 정을 나누기를 좋아했다. 세훈에게 이것저것 말도 붙이며 어리다는 이유로 더욱이 챙겨주고는 했다. 세훈은 그것들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적응을 하였다. 이런 것이 정을 나눈다는 것이구나. 나는 정에 대해, 이곳에서 미약하게나마 배워간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 모두 부질없는 것인 걸. 낮에는 이곳에 밤에는 주택가에만 있는 내가 정을 쏟는다면 그것은 루한이면 루한이지 타인일 리가 없었다. 세훈은 포대 자루를 등에 업고 그것을 옮기고 있었다. 세훈의 등에는 짐이 올려졌지만, 세훈은 그것을 미워하지 않는다.
“세훈아, 너 그 주택가에 산다고 하지 않았나?”
세훈이 포대 자루를 운반하고 돌아와서 다시 포대 자루를 들어올리며, 제게 포대 자루를 건네주며 자신의 주거지를 묻는 나이 든 인부를 쳐다보았다. 나이 든 인부의 얼굴에는 자글자글한 주름들과 다듬지 못한 수염들이 자라 있었다. 까맣게 탄 피부와 짧은 머리, 그리고 짙은 눈썹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세훈을 쳐다보는 그 두 눈. 정을 나누기를 좋아하는, 세훈에게 말을 붙여주는 인부였다. 세훈은 그를 올려다보며 포대 자루를, 등에 업지 않고 두 손으로 들어 대답을 하며 운반을 했다.
“네, 저 거기 살아요.” “요즘 그 주택가에 흉흉한 소문이 돌던데, 괜찮아?” “네, 뭐 저는 괜찮아요.” “그래도 거기 소문이 위험해서 다들 이사 가던 눈치던데, 너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저는, 괜찮습니다. 거기서 살 겁니다.”
돈도 없는데, 어디로 이사를 가요. 괜찮아요. 세훈은 여전히 그 포대 자루를 운반하며 그 나이 든 인부에게 답을 했다. 그러한 세훈의 말에, 하긴 여기서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버는 건 별로 안 되니…. 하며 나이 든 인부는 수긍했다. 그리고 세훈과 나이 든 인부의 길지 않은 대화는 끊겼다. 세훈은 묵묵히 포대 자루를 옮기는 일을 했고, 나이 든 인부는 다들 힘내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공사장에는 끊임없는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주택가와는 다르게 늘 시끄러운 공사판이, 세훈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포대 자루를 옮기다가 세훈이 있는 구역에 주어진 잠깐의 휴식 시간, 세훈은 생수 하나를 집어 들고 자신이 일하는 구역에서 잠시 벗어났다. 자신이 일하는 구역이 반쯤 지어진 건물에 의해 조금 그늘이 진 구역이라면, 세훈은 햇빛을 직면할 수 있는 장애물이 없는 구역으로 나와 섰다. 찡그린 두 얼굴로 햇빛을 향해 고갤 들어 올린다. 제대로 마주 할 수 없는 그, 해, 를 감히 올려다본다. 찌푸려진 눈을 펼 수가 없을 정도로 해는 밝았다. 세훈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생수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느낌이 형용할 수 없을 쾌감을 주었다. 그러한 쾌감에도 세훈은 웃지 않았다. 세훈은 웃지를 않았다. 웃지 못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세훈은 그 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을 끔뻑거렸다. 해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렵구나. 그리고 그런 세훈에게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 왔다. 고개를 숙인 세훈에게 불어 온 바람은 쇳덩이의 냄새를 담고 있었다. 이곳은 공사판, 쇳덩이가 난무하는 곳. 세훈은 비린 쇠 냄새를 맡고 고개를 다시 들었다. 이러한 비릿한 냄새에는 이미 익숙하다. 역한, 더러운, 비린 모든 냄새들이 공존하는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세훈에게, 공사판의 쇳덩이 냄새는 아주 작은 것에서 그쳤다.
그리고 멀리서 세훈을 찾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일을 재개한다며 세훈을 불렀다. 세훈은 쇳덩이 냄새를 맡고 살짝 고였던 눈물을 속으로 삼킨 뒤 그 부름에 응하여 가볍게 뛰어갔다. 여전히 세훈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루한을 위해서라도 나는 모오든 것을 참고 견뎌 내야한다. 비위가 상할 역겨운 그 모든 것들도, 괴물이 되어가는 나도. 세훈은 가볍게 뛰어 공사 구역에 도달해 나이 든 인부가 건네는 쇳덩이 한 아름을 팔에 쥐었다. 커다란 그것의 무게에 세훈의 팔이 아래로 축 쳐져 내려갔지만, 세훈은 입술을 깨물고 그 짐을 운반하였다. 자신이 사실 짊어진 죄는, 이러한 쇳덩이보다도 무거우니 이것을 놓는다면 자신의 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세훈은 그것을 운반하며, 루한을 떠올렸다. 루한을 위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추천해 준 길이 아닌, 내가 스스로 걷기를 결심한 길이다. 세훈은 공사판에 먼지들을 온 몸에 붙이고 일을 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세훈은 이 모든 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세훈에게 공사판의 모래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가 세훈의 시야를 가렸지만, 세훈은 쇳덩이들을 운반할 뿐이었다.
그렇게 운반하며 얼마의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시간이 늦자 해가 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세훈과 다른 인부들의 땀을 식혀 주었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그 시간까지 세훈은 자재료들을 운반하기에 바빴다. 안전모를 쓰고 있던 세훈은 이것을 벗으며 잠깐 동안 주어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훈에게로 불어오는 그 바람들을 맞으며, 모래 섞인 쇳덩이 냄새가 나는 그 바람들을 맞으며 세훈은 루한을 떠올린다. 지금 쯤,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은 부질없었다. 당연히 그 여자를 먹어 치우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세훈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 역시 웃음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세훈의 옆으로 나이 든 다른 인부가 앉았다. 세훈에게 담배를 건네며 필 생각이 있느냐 물었다. 세훈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며 됐다고 손짓했다. 인부는 그에 여기서 피워도는 되냐 물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들었다. 세훈은 그러라며 답을 했고, 인부와 둘이 앉아서 해가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둘에게서 어색함이 보이진 않았다. 서로, 힘들고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그리고 다시 재개된 공사 일, 세훈은 자재료를 운반하며 그의 하루를 보냈다. 재개된 공사 일은 얼마 안 가 매듭을 지었고, 내일 다시 이곳에 올 것을 기약하며 오늘의 할당량을 마쳤다. 세훈은 탈의실에 들어가 자신의 본래, 검은 후드티를 찾아 입으며 공사판의 그 회색빛 옷을 벗어냈다.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세훈을 보며 주변 인부들은 역시 젊은이는 다르다며 농담을 던지고는 했다. 그에 세훈은 아주 어색하게 인조적인 웃음만을 지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웃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표정이었지만, 세훈에게는 그 표정이 웃는 표정이었다. 세훈은 웃는 법을 잃었다. 루한을 잃은 그 순간부터.
세훈은 다시 기계적으로 입력된 그 길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세훈은 여전히 소수라도 사람들과 공존한다는, 평범한 사람들과 공존한다는 것이 익숙치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하고, 아무런 거리의 풍경을 담지 않은 세훈은 금방 주택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그 거리가 멀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그 길에만 집중하며 돌아 온 세훈이었기에, 더욱이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닐까. 주택가 안으로 발을 들인 세훈은 뭔가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숙였던 고개를 들고,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그리고 바람과, 세훈의 직감으로 서서히 주택가를 올랐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던 세훈의 후드 티 포켓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울린 진동을 세훈은 금방 느낄 수 있었고 후드 티 포켓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핸드폰인 것 같았다. 세훈은 그것을 보며 발신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발신인을 확인하고 뭔가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아 그것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누군가와의 통화, 세훈에게 있어서 핸드폰이란 아주 소용이 없는 존재이겠지만, 한 사람 소통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아주 드물지만, 세훈은 그것을 굳이 도려내려고 하지 않았다. 구태여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낌도 있었고, 도려내지 않아도 피해가 오는 것은 없었다.
“…왜.” [이번에 새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제발 다시 연구소로 돌아 와 세훈아.] “끊어.” [아직도, 루한 때문에 그래?] “…끊어.”
세훈의 핸드폰 저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미성이었으며, 올곧은 소리를 내었다. 세훈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받치고 있었으며, 떨리는 숨소리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건 자는 남성이다, 세훈과는 무슨 관계인가. 세훈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숨소리가 아주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통화를 하는 세훈은, 주택가의 불쾌한 적갈색의 조명을 받고 있었다. 세훈은 그 자리에서 언 듯 핸드폰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아주 오래 전 일이야, 세훈아.] “…….” [이곳은 네가 필요해.] “…루한도 내가 필요해.” [오세훈,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어?] “형은, 나를 잘 알잖아. 내가 거길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준면이 형, 나를 잘 아는 형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세훈은 말끝을 흐렸다. 그 말끝에는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 세훈의 몸은 점점 더 떨려오고 있었다. 준면이라 불린 핸드폰 너머의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말을 했다. 그리고 핸드폰 통화는 끊겼다. 언제나 이런 식의 반복이었다. 세훈은 핸드폰을 쥔 손이 아닌 다른 손의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리고 세훈은 핸드폰을 든 손을 떨구듯 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한이 죽은 곳인데, 내가 어떻게 거길 가…. 그리고 세훈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깊은 어둠 어딘가에 위치한 루한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빨라진 걸음이었으며, 아까보다 세훈은 더 작아 보였다. 그리고 적갈색의 조명은 더욱이 기분이 나빠져왔다. 이 주택가는 무언가, 이상하다.
세훈은 걸음을 빠르게 재촉해, 자신의 직감을 따라 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어둠으로 가득 쌓인 그 집 안은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로 까맸다. 이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무언가가 튀어 나와 나의 목을 조를 것만 같다. 세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역시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루한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갸르릉거리는 소리만이 들렸으며 세훈은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켜 빛을 밝혔다. 어둠 속에 묻혀져 있던 그 집 안을 살펴보는 것은 꽤 담력을 요구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세훈은 이제 이것이 익숙함을, 익숙해야함을 알고 있었으며. 집 안으로 들어 섰다. 검은색 컨버스화를 벗고 들어 온 세훈은 가장 먼저 루한이 있는 방을 쳐다보았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야. 세훈은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두려웠다. 세훈은 그 방 문 앞에 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한 냄새가 문 밖까지 진하게 펴졌지만 세훈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 문을 열었다. 이 문을 연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루한.
세훈은 문을 열자 여자의 다리를 손으로 잡고 뜯어먹고 있는 루한의 모습을 마주했다. 갸르릉거리던 루한의 그 숨소리 대신, 무언가 짜여지고 무언가 뭉개지는 듣기 싫은 역한 소리들과 냄새가 퍼졌다. 세훈은 루한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루한은 세훈을 바라보지조차 않고 그 여자의 허벅지를 물어뜯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세훈은 바람 빠지는 한숨을 내 뱉고는 루한의 이름을 입 안에서 불렀다.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것을 먹은 루한의 입가는 역한 액체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루한을 보며 세훈은, 한 명을 더 데리고 와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뿐이었다. 주택가의 밤은 언제나 소름이 돋는다.
“다녀…, 올게.”
세훈은 방문을 닫고 나갔다. 오늘도 역시 누구 한 명을 데리고 와야 한다. 오늘도 역시 나는 바람과 함께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세훈은 검은색 캐리어를 찾아 그것을 끌고 현관으로 나왔다. 적막으로 가득찬 검은색의 하늘을 생각하며, 검은색 컨버스화를 신고 현관문을 밀어 열었다. 오늘도, 이 밤의 바람은 차갑다. 세훈은 그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적막으로 가득찬 흑색의 밤을 걷기 시작했다. 세훈의 작은 발소리와 캐리어의 드륵거리는 소리가 섞여 주택가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세훈은 캐리어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바람을 기다렸다. 오늘도, 내게 인간의 냄새를 풍겨줄 수 있니, 바람아. 세훈은 찬바람이 일렁이는 그 주택가를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바람아, 어디로 가면, 사람을 만날까.
고요한 이 주택가에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찾아낸다. 이것이 신기할 법도 하지만, 집념으로 가득찬 나와 나의 직감과 바람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사람을 찾는 데에 바람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나는 그 바람을 좇아 걸을 뿐이었다. 오늘도 찬바람이 내 양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어딘가에 부딪혀 사라짐을 맞는다. 나는 그것을 보고, 다시 바람을 기다린다. 어디선가 인간의 냄새가 실려 오는 바람이 내가 불어 올 것을 알기에. 나는 캐리어가 드륵드륵 끌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그리고 시린 이 밤에 몸을 한 번 떤다. 하지만 나는 늘 짐을 싫어한다. 하지만, 루한으로 인해 짊어지는 나의 모든 짐들은 미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바람이. 인간의 냄새를 내게 실어다 주었다.
나는 그 바람을 좇아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빨리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하며 바람이 인도한 그곳으로 빠르게 걸었다. 긴 적갈색의 조명들이 나를 비추고 그것에 생기는 그림자를 보며 나는 붉은 느낌이 왠지 모르게 이 주택가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 나쁘고 역한 조명이었지만, 이 주택가 역시 기분 나쁘고 역한 주택가이니 잘 어울리는 초이스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바람을 맞으며, 또 그 바람을 가르며 거리를 걸었다. 주택가의 좁은 그 길목들을 걸어 내가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도달했다. 그 인기척은 조심스러웠다. 흉흉한 주택가 소문을 들은 사람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몸소 직접 체험하게 해줄 텐데. 나는 캐리어를 끌며 다가갔다. 그 인기척은 캐리어 소리에 놀란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 몸집은 조금 작았다. 나는 캐리어를 그 곳에 세워두고 작은 몸집의 사람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이내, 그 사람이 시야에 들어찼다.
아, 아침에 보았던 아줌마 무리 중 한 명이네. 그 아줌마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식겁했다. 긴장한 듯 땀을 흘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질색을 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뭐야, 어제 그 여자랑 다를 게 없네. 나는 그 아줌마에게 다가갔고, 겁에 질린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제 그 여자의 높은 목소리보다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루한의 목소리인데, 이러한 목소리들만 듣고 있으니 속이 좋지 않았다. 아줌마의 목을 치고, 쓰러진 아줌마를 짊어진 채 캐리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조금 무거웠지만, 나는 이 짐을 미워하지 않는다. 캐리어에 작은 몸집의 아줌마를 구기듯 넣어 놓고 문을 닫아 캐리어를 끌고 유유히 돌아간다.
바람은 불었으며, 나는 걸어온 길을 돌아간다. 감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나의 주택가 지도는 혼잡했다. 눈을 감고 찬바람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루한, 네가 있는 집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옮기며 오른 주택가의 길을 비포장도로로 불편했다. 이런 곳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는 꽤 골치인 일이었지만, 나는 이제 익숙해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둠으로 향하는 그 골목길을 걸으며 어둠으로 잠식해 가는 길 역시도 아무렇지 않다. 그리고 집 앞에 거의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문뜩 뒤를 돌아보았다. 이 주택가의 적갈색 조명이 수놓인 그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택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갈색의 이 주택가는 죽어 있었다. 충분히 그렇게 보였다. 이 주택가는 죽었다. 그리고 이 주택가는,
너를 위해 나의 모든 악이 시작되는 곳.
루한, 너를 위해 나의 모든 악이 시작되는 곳이야. 입술을 깨물고 좀 더 길을 올라 집 앞에 서서 흑색의 하늘 보았다. 흑색으로 까아만 하늘을 보며 세훈은 저 하늘이 내려와 이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리길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그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대문을 열어 그 안으로 캐리어를 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무표정의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아까 불을 끄지 않아 밝은 거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캐리어에서 아주머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있던 정도가 심한 마취제를 들어 그녀의 팔에 주사를 했다. 그리고 세훈은 혹시나 마취가 깰까 싶어서, 그녀의 발목과 손목을 묶어두고 하얀 천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아주머니는 거실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세훈은 깊은 마취제이니 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루한의 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늘 두려운 그 마음으로 방 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린 방문과 입에서 역한 액체를 흘리며 우걱우걱 무언갈 씹고 있는 루한의 모습, 헝겊 인형 같이 극단적으로 나뉜 피부색과 눈, 그리고 한 손. 세훈은 그것을 보면 자기가 한 짓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생각이 차오른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아닌데, 하고 세훈은 위로를 한다, 스스로를. 세훈은 루한에게 다가간다. 루한은 세훈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본다. 먹이가 있으니, 세훈을 향해 줄 관심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식욕만을 가지고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 루한은 가엾은 존재이다. 세훈은 루한의 머리칼을 쓸어준다. 푸석푸석하다. 하지만 씻기기에는 아주 귀찮은 일들이 뒤따르며, 루한이 원치 않아 했다. 세훈은 그래서 그저 루한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웃는다. 그리고 세훈은 입을 열었다.
“…사랑해.” “…….” “너무, 사랑해 루한.”
루한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세훈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훈은 루한을 향해있던 손을 거둬 올리고 뒷걸음질 치며 끝까지 루한을 눈에 담으며 방 문을 열어 나왔다. 그리고 거실 한 바닥에 놓여진 이불을 끌었다. 세훈은 이것을 덮고 잔다. 루한에게도 덮어주고 싶었지만 루한은 거절하는 그것. 세훈은 오늘 밤은 그래도 짧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밤은 다시 깊어 온다. 세훈은 아까, 준면과의 통화에 울컥하는 감정을 짓누르며 잠을 억지로 청해본다. |
[밀레니엄] 사담 |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제목이 침체된 발악이 나을까요 침체의 밤이 나을까요....... 아무튼 결국 그래도 주말동안 엄청 휘갈겨서 대충 써제낀 침악이 나왔네요...... 이거 너무 이상해서 나중에 혹시라도 텍본을 만들면 하나하나 다 수정해야겠어요 고칠 부분은 지적해주셔도 좋습니다!
월요일이네요ㅠㅠ 독자님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암호닉 걸어주신 분들 버블버블님 둥둥님 또라에몽님 딸기밀크님 싱라미님 그 외에 댓글 남겨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ㅠㅠ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EXO/세루] 침체된 발악 B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a/6/4a64f682893e4c2042862148eb707bc6.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