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었던가?
퇴근을 준비하다 무심코 달력을 보자 네 생각이 났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벌써 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나는 점점 무뎌져갔다.
매일 밤 나를 괴롭히는 악몽도, 끔찍했던 기억들도.
아니, 사실 나는 온 힘을 다해 너를 지우려 애썼다.
너는
내 가장 추악하고도 아름다웠던 기억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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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찬란했던 너와 나의 19살을.
그리고 한치앞도 보이지 않던 깊은 심연 속의 그 날들을.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난 이젠 기억도 나지않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나는 직감했다.
우리는 평범해 질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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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항상 웃었다.
맨발로 집에서 쫒겨났을때도,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병원에 실려갈정도로 손찌검을 당했어도,
너는 내 앞에선 늘 그렇게,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처럼.
그리고 사실 나는 알고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내가 아는척 하는 순간,
이 모든것들이 깨져버릴 것을 나는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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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꽤 화목한 가정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어머니가 도망가기 전까진.
이 맘때 쯤이었던것 같다.
추적추적 장마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그 날
술에 취해 눈이 반쯤 뒤집힌 아버지가 나를 범하려 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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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꽤나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찢겨진 나의 옷을 갈아 입히고 피가 묻은 내 손을 닦아주었다.
경찰앞에서 너무도 담담하게
너는 없던 너의 범행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너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가 되었고
나는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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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나는 너를 다시는 일어날수없을 만큼 짓밟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19살,
내가 너에게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오늘따라 네가 더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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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왔구나, 너.
거실로 걸어가니 소파에 앉아있는 네가 보인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우리 오랜만이지,
넌 더 예뻐졌네,
보고싶었어."
내 기억속의 19살의 너,
많이 변했구나.
난 항상 생각했다.
언젠가, 그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이 공간 속에서
나는 그 짧은 한마디에 숨이 막혔다.
난 그저 너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넌, 나 안보고 싶었어?"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