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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수가 떠나고 잘 도착했다는 연락 외에 며칠 째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제 삶을 살기 바빴다. 아직 대학생인 난 과제에 치여 살았고, 그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배우기에 바쁘겠지. 단 하나, 자주 연락했던 방편이 메일이었다. 각종 스팸이나 청구서, 광고성 이벤트만 메일함을 꽉 채웠던 게 이젠 명수와 주고받은 메일로 가득 찼다. 이것도 그가 떠나고 보름쯤 지나서야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메일이라 해봤자 안부를 묻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게 전부였다. 담담하게 헤어지고 그 후에도 이렇게 그냥 아는 사이인 것 마냥 연락을 이어간다는 게 처음엔 나름 신기했다. 친구들도 그렇게 서로 좋아하고 난리였으면서 어쩜 그러냐며 다들 이해 못하는 눈치였다, 너무 조용하다고. 그렇게 간간히 오고가던 메일도 한 달이 지나고 점점 횟수가 줄어들더니 1년이 되었을 땐, 아예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렇게 우린 진짜 남이 됐다. *** 고갤 돌리면 그 날처럼 명수가 서 있을까, 또 수줍어하면서 다가올까.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살짝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뻣뻣하게 몸이 굳은 채 두근거림을 애써 진정시키려 심호흡하며 고갤 숙였다. 찰칵. 또다시 들리는 셔터소리에 이건 꿈도, 환청도 아님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돌려지는 고개에 그만 멈추라고 속으로 발악을 해댔지만 어느새 고개는 완전히 옆으로 돌려져 또다시 그대로 굳어버렸다. 파도소리만 둘 사이를 지나가고 그 간지러움을 다시 느꼈다. 그 때 그 날처럼, 같은 장소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완벽하게 정리를 끝냈다 하기에도 애매한 그 상태로 그에게 멈춘 시선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지냈어?” 약 2년 만에 듣는 그리운 목소리. 모래를 밟고 거리를 좁힌 명수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응. 너도 잘 지냈어?” 약속이라도 한 듯 오고가는 대화가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만나잔 약속도 한 적이 없었고, 하필 여길 다시 찾아왔을 때 그도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의 손엔 여전히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바람에 날려 흐트러진 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해주던 명수가 날 내려다봤다. 내가 유독 좋아했던 그 깊은 눈매를 똑바로 쳐다보자 왠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라 결국 눈물을 보였다. 헤어지던 그 순간에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에 창피함이 몰려와 고개를 숙이고 볼을 문대며 몸을 살짝 틀었다. “나 봐, 응? 오랜만인데 얼굴 제대로 안 보여줄 거야?” 아직 살짝 충혈 된 눈으로 애써 웃으며 고갤 들었다. 보자마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여간 창피한 게 아니었다. 눈가를 매만져주던 손길이 위로 올라가 머릴 쓰다듬었고 다시 그를 마주하자 내 얼굴 하나하나 유심히 보는 시선에 얼굴이 화끈 거렸다. “많이 보고 싶었어. 살 많이 빠졌네, 내가 많이 먹여놨었는데.” “그런 거 아니야..”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수줍음을 타던 명수가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한다는 것 정도. 마치 어제도 본 사람처럼 굴기 어려울 법도 한데, 어떻게 그를 대할 지 막막해하던 나완 다르게 꽤 능숙해진 그가 새로워 보였다. “나 많이 미웠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지만 갑작스런 통보도 그렇고 솔직히 밉기도 했으니까. 유난히 거짓말을 잘 못하던 난 입을 닫은 채 살짝 웃고만 있었다. 역시 예상한 듯 나의 반응에 명수가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고, 그럼 난 그를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흘겼다. 우리가 자주 하던 행동 중 하나였다. 조용히 내 이름을 불러보던 명수가 꼬집던 볼을 살살 만지다 감쌌고, 더 가까워진 거리에 숨죽여 눈치 보기 바빴다. 이내 맞닿은 두 입술에 명수의 허릴 감싸 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조심스레 입 맞추던 그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날 쳐다봤다. “좋아해.” 부끄러움에 고갤 끄덕임과 동시에 다시 입 맞추던 명수가 그대로 뒷목을 감싸 전보다 더 진하게 다가왔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나 역시 깨닫지 못했던 마음이 지금 너무나 와 닿았다. 두 눈을 감고 그를 느끼는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그간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듯 너무나 그리웠던 그를 꼭 안고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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