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섞인 울음
W. The Moon
터벅터벅—.
비가 내린지 오래되어 곳곳이 잔뜩 갈라지고 메마른 탓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답답한 먼지가 이는 골목에 갈 곳을 잃은 무거운 발소리가 그득하게 울렸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내 머릿 속처럼 텅 빈 길거리를 혼자 멀뚱하니 걷고 있으니 점점 내 존재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걸음을 옮기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따라 올라간 시선에 들어온 세상을 뒤덮은 요동치는 넓디 넓은 장막은 맑고 푸르렀던 모습을 잃은 채 잿빛으로 물들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걸은 지 꽤 되었나보다. 정확히 얼마간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런 것 같았다. 잘게 경련하는 손을 무시하고 차디찬 한숨을 토해내며 제자리에 멈춰선 나는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떨구고 미동도 없이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었다.
제자리에 멈춰서서 내가 걷고 있던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애초부터 어디론가 걸어가겠다는 목적의식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았다. 아니면 머릿 속에서 그냥 지워버렸다 던지. 전자건 후자건 상관은 없다. 내가 멍청하게 걷고만 있었다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걷는 것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몸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피곤함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제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겨우 버텨낸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고, 고단함에 지쳐있던 몸이 의지할 곳을 찾자 그제서야 악문 잇새 사이로 곧 끊어질 듯한 불안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너무 오래 걸은건가? 식은 땀까지 흐른다. 곧게 나가질 못하고 끊어졌다가 새어나가길 반복하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지친 고개를 담벼락에 툭- 기댔다. 먹색 구름이 어딘가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뱉어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언제부터 멍하니 걷기만 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천히 눈을 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다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
다행…이라고? 뭐가? 뭐가 다행인걸까?
은연 중에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기억의 파편을 찾은 듯 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지쳐있다. 더 많은 기억을 찾는 것은 나중에 하자. 다 갈라져버린 시멘트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무릎을 끌어당겨 얼굴을 묻으며 몸을 웅숭그린채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까, 이젠 익숙해진 정적 사이로 윙- 하는 진동 소리가 울렸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날 보호해주고 있던 정적이란 이름의 벽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지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짜증난다.
편안한 정적을 깨버린 불청객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나는 화면에 나타났을 누군가의 이름을 확인하려다가 핸드폰을 집어든 내 손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붉게… 물들어있다. 묻은지 꽤 시간이 흘렀는지 검붉은 색으로 바뀐 그 무언가는 내 손은 물론이고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던 핸드폰에도 조금 묻어 있었다.
이건 누구 피일까. 손에 가득 묻은 피를 보고도 담담하게 반응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순간 욱신 거리기 시작하는 배를 부여잡고 억눌린 신음 소리를 뱉어냈다.
“윽-.”
심각하게 욱신거리는 상처에 고통스러워 하던 나는 계속해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미 붉은 피로 흠뻑 젖어버린 윗옷을 살짝 들췄다. 내 배에는 꽤 긴 자상이 나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지혈이 그래도 꽤 됐던 것 같은데… 너무 꽉 누른 탓인지 벌어진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윗옷을 다시 잡아내리고 지혈을 하기 위해 상처를 손으로 누른 나는 고통에 터져나오려는 소리를 최대한 속으로 삼키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프다. 방금 전 까진 몰랐는데,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니 이제야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내 윗옷은 물론이고 외투와 바지까지 물들인 붉은 선혈은 내 옷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리려 하고 있었다.
아, 젠장 일났다. 어떻게든 지혈을 해보려 상처 이곳저곳을 강하게 누르던 나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힐끗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홀드를 풀었다.
- 어디야.
화가 난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애써 괜찮은 척 목소리를 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있냐?”
- 닥치고, 빨리 말해.
“알아서 뭐하게.”
- 어디냐고 물었잖아.
“…”
- 야!
“몰라.”
- 멍청한 새끼.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모르는 걸 어떡하라고?
- 전화 끊지마라. 위치추적해서 의료팀 보낼거니까.
“…”
- …괜찮냐?
“너 같으면 괜찮겠냐?”
- 상처 말고.
“…”
- 죄책감 가지지마라. 어차피 재판 넘어가도 사형 받고 죽을 놈이었어. 방어하다 생긴 불상사니까 징계도 덜 할거다.
“…”
- 정신줄 잘 붙잡고 있어라. 너 그거 놓치면 바로 황천길 간다.
웃기고 있네.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차갑게 식은 숨을 뱉으며 다시 고개를 담벼락에 기댔다.
잊고 있었던 기억은 그 사이에 모두 돌아왔다. 난… 방금 전까지 연쇄 살인마를 뒤쫒고 있었다. 워낙 눈앞에서 놓친 적이 많아서 그런지 난 그놈과 마주치자마자 이성을 잃고 말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에는 피범벅이 된 그놈의 잭나이프가 들려있었고, 그런 내 바로 앞에는 복부를 수차례 찔린 채 미동도 없는 그놈이 쓰러져 있었다. 공기 중에 흐르는 역한 피냄새는 네가 저 사람을 죽였다고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고, 나에게 살려 달라 소리치고 있었는지 죽은 듯한 그놈의 손은 내 바지 끝을 움켜 쥔 채 굳어있었다. 내가… 내가 죽였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진호는 주변을 가득 채운 진한 혈향에 코와 입을 막고 들어오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당황한 듯 제자리에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진호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날 바라봤고, 그 미묘하게 떨리는 눈동자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잠시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진호는 곧 제정신을 차리고 내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물어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려운 감정이 앞선 나머지 난 대답도 하지 않고 현장에서 도망쳤고, 그렇게 난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진호는 내 혼란스러움을 눈치챘을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정당한 이유를 들어 내 행동을 이해하려 했겠지. 잠시 내 옆에 놓인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고통에 조금 쉰 목소리로 말했다.
“끊는다.”
전화를 끊은 나는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점점 더 멍해지는 기분인데다가 안정된 것 같았던 숨소리도 다시금 요동치며 불안해졌고, 시야도 점점 흐려지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출혈이 심해 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끙끙거리며 구부렸던 다리를 쭉 펴고 앉은 나는 피로 흥건하게 젖은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얕은 숨을 뱉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갑자기 내 다리 옆으로 빗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한 두 방울씩 툭툭 떨어지는 것 같던 빗방울은 순식간에 우수수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나기가 내린다.
먼지 냄새가 가득 섞여 답답했던 흙내음이 어느새 시원하고 깨끗한 비내음으로 바뀌어 내 주면을 그득하게 메우기 시작했다.
서늘한 빗방울이 내 온몸을 세게 두드리며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라고 아우성이었다. 하- 하고 답답한 숨을 뱉은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빗방울을 받았다.
깨끗해진다. 검붉은 피에 뒤덮혀 있던 손이 맑은 빗방울에 깨끗하게 씻겨졌다. 누군가를 해한 흔적이… 사라진다.
- 죄책감 가지지마라. 어차피 재판 넘어가도 사형 받고 죽을 놈이었어. 방어하다 생긴 불상사니까 징계도 덜 할거다.
정말일까? 정말… 죽여도 될 놈이었을까? 나도 상처 입었으니 괜찮은걸까?
“근데 진호야… 그거 알아?”
내 곁에 없는 진호에게 말하듯 중얼거린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상처를 바라봤다. 이건… 내가 낸 상처다. 그 놈을 먼저 죽이고 어떻게든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내가 직접 그어버린 자상이었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내가… 정말 정상인걸까?
차디찬 비를 맞아 몸이 빠르게 식어갔다. 미쳐버린 기분이다. 아니, 난 단단히 미친게 분명하다. 추위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고, 이미 텅 비어버린 지 오래인 시선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움직이던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예전의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잊었다 해도 곁에 있는 누군가의 믿음을 져버린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그 대상이 혼자가 되어버린 나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였기에 그 고통은 배가 되었다.
이 고통을 잊고 다시 날 되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진호의 도움으로 난 빠른 시일 내에 날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다. 이건 온전히 내 문제니까.
하지만 자신이 없다. 용기를 내려해봐도 계속해서 방금 전의 그 참혹한 광경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 넌 이미 망가져버려 회생할 수 없다며 내 용기를 계속해서 짓밟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젠장—.
작게 욕지거리를 뱉은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힘없이 늘어뜨린 손끝으로 붉은색 빗방울이 툭- 떨어졌고,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내 억눌린 흐느낌 소리가 울려퍼졌다.
***
수사/추리물로 구상하다 엎어진 작품 중에 남은 조각글입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서 한 번 올려보긴 합니다만.. 역시 재미는 없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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