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저격시켜 드립니다. 어느 남자가 좋으신가요?
부제: 남사친이 설레는 이유
"민석아!!!!"
"하.....저게 미쳤나....."
여우같은 눈을 해서는 내 술잔을 뺏어든다, 왜, 왜! 마실꺼야!
"뭐하냐 여기서,"
"헤어졌어-!"
"...그렇게 좋아 죽더만?"
"나만좋았나봐- 개새끼! 내가 나이가 들었다 이거지?"
3살 연하남이랑의 연애는 처음이었다. 26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인 나와, 군대에서 갓 제대한 전 남친이랑 연애를 참 불같이 했었다. 누가 연하 안좋다 했어! 성숙하고, 농담도 잘하고, 너무 어린것도 아닌게 뭐든지 마음에 들어 민석이한테 자랑 아닌자랑도 많이 했었다. 내가 드디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났다고. 근데 이상하게 김민석은 마음에 안들어했다. 눈에 바람기가 있댄다. 워낙에 까탈스럽고 기준이 높은 애였거니 했는데, 우리 민석이, 이제 작두도 타네? 보란듯이 200일이 되 던 어제, 다른 여자하고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나한테 들키고 만 것이었다. 신상을 조사해보니 대학 동기랜다.
"야, 너 돗자리펴라-"
"왜"
"니가 마악. 나보고 걔 눈알에서 바람기가 보인다고- 너무 정 주지 말라고 그랬자나-"
"....내가 뭐랬냐"
"짜증나 너어! 그러면 목숨을 걸고 우리를 갈라놨어야지!"
"니가 그렇게 좋아 죽는데 나보고 갈라놓으라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술잔 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시끄럽다는 듯이 인상은 찌푸려도 절대로 술잔을 안 준다. 병째로 술을 마시려니까 홱 낚아채가면서도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 꼬맹이가 뭐라고 이렇게 추태를 부리는거냐- 나지막이 중얼대는 소리를 내가 들었을 리가 없다.
"그새끼한테는 눈물도 아깝다. 그만 해"
"씨이- 내가 진짜....좋아했는데..."
그만하라며 나를 일으켜주는 민석에게 완전히 기대면서 중얼대니, 술냄새가 풍겼는지 인상을 팍 찌푸린다.
"어?"
이제 술을 마시니까 헛것이 보이나? 웬수같은 전남친놈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들어오는거다. 그리고, 나랑 눈이 마주쳤다.
"어- 00누나 안녕-"
가볍게 조소를 흘리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데, 분노에 눈물이 올라왔다. 저새끼가, 지금 지 친구들이랑 있다고 저러는거지?
"누나 여기서 왜그래요- 미-"
쟤가 저렇게 싸가지가 없던가? 내가 감정을 주체를 못하는 꼴이 웃겼는지, 아예 다가와서 내 옷자락을 쥐고 미안하다고 깐죽대다가, 둔탁한 주먹소리와 함께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그애가 쓰러진다.
"미친새끼."
"...야!!!"
술이 깬다는 말이 이 느낌이구나? 뇌를 단단히 마비시키던 투명한 막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 들고 정상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니까 지금...김민석이 전남친을 완전히 친거다. 넘어진 놈의 코에서 코피가 터진걸 보면 그 상황이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왜그래! 가자, 나 데려다줘-"
"야, 너 잘들어-"
"...."
"건들지마, 새꺄. 내 친구를 가지고 논것만으로도 충분히 빡치는데 사람 대 사람으로써의 예절도 무시해? 그딴식으로 살거면 군대 다시가라"
".....당신이 뭔데요? 아주 보호자 납셨네"
"보호자고 뭐고, 그냥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번만 더 얘한테 집적거려봐. 그땐 내가 진짜 법을 써서라도 족칠꺼니까-"
...내가 민석이를 재수학원에서 처음 봤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맨날 미친- 썅- 이런 말은 했었어도, 크게 언성을 높이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만큼 차분하고 잘 참는 애였는데, 내가 셔츠 자락을 잡고 말려도, 아예 나를 뿌리치고 그애 멱살을 잡고 진짜 무섭게 협박을 하는거다. 전남친이 민석이보다 키가 컸음에도, 꼼짝도 못하고 얼어있을 정도로.
"너한테는 장난감이었어도- 누구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야. 함부로 대하지마라. 추잡스럽게 깐족거리지 말고."
.....오늘은 좀, 민석이가 달라보인다.
초등학교때부터 루한이랑 아는 사이였다. 난 정말로, 루한이가 중국애라는 것을 알고나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랐다. 나보다 더 똑바른 한국어 발음에, 완전히 한국형으로 생긴 얼굴에. 그러니 내가 얘가 중국에서 이사왔다는 것을 눈치 챌리 가 없었다. 그애가 중국인인걸 알게 된 날이, 그 애랑 짝궁을 한 다음날 첫 수업을 들은 날 이었는데, 한국 수업을 들으면서 중국어로 쓰는게 '와, 중국어 진짜 잘한다' 라고 생각했었다.(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멍하니 그의 필기를 보고 있는데, 루한이가. "왜? 문제 있어?" 라며 물어왔는데, 내가 "와, 너 중국유학 갈꺼야? 중국어 잘한다" 라고 속닥이니, 엄청나게 속으로 킥킥 거리더니, 내 책 구석에 한국어로 이렇게 적었었지.
-중국인이니까, 중국어를 잘해-
그때의 쇼크는....정말 수업 중간에 입을 틀어막고 그의 얼굴과 글씨를 번갈아 봤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었다. 한국어를 듣고 중국어로 필기하는 그 애를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맨날 옆자리에 앉아서 구경했었다. 가끔 모르는 거는 알려주기도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루한 친구들도 만나게 됬고, 사적인 얘기도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도 유난히 같은반이 되기도 했고, 나는 누구 덕분에 중국어학과에 갈 정도로 루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았다. 심지어 우리 둘은 대학교도 같이 다니는 중이다.
근데, 왜 요즘은 오빠노릇을 해대는건데? 루한 친구중에 한명이 나한테 관심이 있었는지, 계속 의심미스러운 문자가 오더라. 나야 뭐 가는남자 안막고 오는남자 안막는 성격에다가, 그 친구도 괜찮은 애길래 서서히 썸의 단계로 저무를 즈음이었는데... 루한이한테 얘기했더니 갑자기 단속을 시전하는 거다. 언제부터 왔느냐. 왜그러냐드냐, 뭐라드냐, 너한테 뭐해줬냐... 뭐 누군가는 루한이가 나를 좋아하는거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근데 그느낌이 아니였다. 심지어는 그 애 좋은애라고 고개도 끄덕거렸던 애였는데, 언젠가부터 걔가 얼마나 나한테 잘해주고 있는지를 계속 단속하는거다. 걔하고 만나서 노는 날이면, 밤 10시 30분무터 문자가 온다. 미친듯이- 들어갔냐, 아직도 걔랑있냐, 집에있으면 나와라. 으아...!!!!
"야, 너는 임마, 000한테 못해주면 나한테 갈린다아-"
"응, 응"
"어 밤 10시반까지 얘 안데려다주면, 내가 신고하는줄 알아"
"미친놈아"
그리고, 정식으로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무슨 친아버지라도 되는 듯이 우리 둘을 앞에 앉혀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그 애한테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얘기하는거다. 꽤나 잘생긴 얼굴이 술 때문에 빨개져서는, 중국인인 주제에 술을 먹고도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게 웃겼지만, 사뭇 진지하게 딸보내는 심정으로 술을 마시는 루한이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 루한- "
"왜"
"니가 얘 오빠라도 되냐-? 알아서 잘 해줄께. 그만 해라 이제"
오빠도 아닌것이 오빠 노릇을 하는 루한이가 그리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는지, 내 남자친구가 툭- 한마디를 밷자, 루한이 이녀석이 이러는거다.
"오빠지 오빠. 응?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는데 여자가 되가지고 딴놈이랑 히히덕 거리는데. 내가 오빠기분을 느낀다고! 알아?"
오랫만에 문제집을 폈다. 까만건 글씨요 흰건 종이인데 아무것도 모르겠는거다. 옆을 바라보니, 이어폰을 끼고 집중해서 적분을 하고 있는 짝궁 준면이가 보였다. 공부할 때 건들면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 준면이었지만- 워쪄- 내주변에 공부잘하는애가 너밖에 없는데!!
"야...야!"
엠피쓰리를 꽂고 공부하고 있는 준면이를 툭툭 치니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울상이 되서 문제집을 내미니,
"아이 참, 나 집중하고 있는데-" 라며 내 앞머리를 쓱 쓸어내린다. 그래도 문제 줘보라며, 문제집을 가지고서는 신중히 문제를 읽는다.
"....내가 이걸 풀때 가장 중요한게 삼각함수 합공식 이라고 했잖아. 합공식 불러봐."
"사인A 더하기 코사인은B 2 곱하기 사인(A+B/2)코사인(A+B/2)!"
"....뭔가 이상하지 않아?"
사실 아까도 모르겠다고 비슷한 문제를 들고 왔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유형을 들고오니 살짝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알려준다. 차근차근 생각해봐- 삼각함수 합공식을 불러보라는 말에 자신있게 불렀는데, 잘 듣던 준면이가 오묘하게 쳐다본다. 이상하지 않아?
"책 찾아서 알아와-"
모를수도 있지..!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준면이에게 배우려면 하나의 철칙이 있다. 연관 개념에 대답할 수 있게 기본개념 다 외워올 것. 수학이 유난히 잼병인 나를 위해 만든 나름의 규칙이였다. 맨날 똑같은 문제를 질문하는 거는 처음 개념을 헷갈리는거라나 뭐라나. 아니라고 박박 우겼지만, 맨날 공식을 물어볼때마다 하나씩 틀리는 나로써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슨 심통이 났는지 말을 듣기가 싫은거다.
"뭔데 답이?"
"찾아보라니까? 그러면서 거기 한번 읽고"
"아 진짜, 실수 한번한 것 가지고- 나 다른애한테 물어볼래."
그렇게 알려주기가 귀찮아? 짜증이 나서 그대로 문제집을 들고 다른 애한테로 갔다. 아예 이어폰을 빼고 다른애한테 설명을 듣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삐졌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일부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더 짜증나는거는, 하도 준면이 설명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다른애들 설명을 이해할 수가 없는거다. 얼마나 준면이가 나한테 맞춰서 천천히 설명했는지 알게 되고 말았다. 삼각함수 공식이 이거잖아?- 그니까 이거는 이렇게 묶어서 이렇게 전개가 되지? 그러면 이렇게 써서- 코사인x의 값이 1/2 니까- 이러면서 연속으로 다다다 설명해주는 친구 말을 끊고 다시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멍청히 식이 써지는 것만 보다가, 그래서 답은 60도야! 이러는 걸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해 됬지?"
"...응"
뻘쭘하게 다시 와서 식을 보는데, 이해가 안된다. 준면이가 그렇게 찾아보라던 공식들도 다 써져있었고, 식들도 있는데 해석을 못하겠는거다. 이게 왜 여기서 이렇게 쓰이는거지? 응? 낑낑거리다가 결국, 짜증나서 책을 덮고 엎드려 버렸다.
5교시 종이 치길래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봤는데- 수준별 수업시간인지 몇몇애들이 나가고 들어오면서 분주해졌다. 심화반에서 수업을 듣는 준면이가 가방을 정리하고 나가는데, 뭔가를 올려놓더라.
"이게 뭐야?"
"풀이"
A4한장 가득히 정갈하게 적혀있는 준면이의 풀이가 있었다. 황급히 나가는 준면의 뒷모습을 보다가, 풀이를 보는데, 세상에. 편지를 써놨다 편지를. 자기가 설명하듯이 대화체로 '자, 삼각함수 덧셈공식이 뭐라고 그랬어. 너가 ~라고 말했잖아. 여기서 이걸 빼줘야 맞아. 그럼 이걸 이용해 보자.' 이런식으로 다 풀이가 이어져서 준면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얼마나 자세했는지, 모든 공식의 증명을 뒷장에다 다 써놨다. 덕분에, 그 종이를 읽고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맨 뒤에는 추신까지 있었다.
- 미안. 다음부터는 내가 더 잘 알려줄께. 나는 혼자 공부해 보라는 의미였는데...
나 홀로 오게된 중국유학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일단 내 귀를 울리는 낯설은 중국어도, 거기다가 드센 성격들을 가진 국가적 성격에도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해야하나. 어딜가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쉽게 지쳤고, 언어가 잘 되지 않으니 학교 공부가 잘 될 일이 없었다.
" 니하오- 를 항국어로 안뇽하세요오- 라고?"
그러던 중, 레이라는 친구는 참 나에게 고마운 존재로 다가왔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레이는, 안뇽- 이러면서 서투른 한국어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빠른 중국어를 잘 못알아 듣는 나를 위해 항상 천천히 얘기 해 줬고, 용하게도 나의 더듬거리는 중국어도 잘 알아들어줬다. 그렇게 단짝이 됬던 것 같다. 맨날 점심시간마다 일주일에 세번은 중국어를 그 애한테 배웠고, 두번은 그애가 나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어- 발음을 오- 발음으로 둥글게 발음하는게 얼마나 웃긴지, ㄴ 발음도 ㅇ 발음으로 뭉게 하는것도 뭔가 귀여웠고.... 중국어만 하면 똑부러지는 모범생이면서, 한국어만 하면 거의 일곱살 수준으로 발음이 귀여워지는게 너무 웃겨서 일부러 어려운 발음만 시켰다. 니가그린기린그림 해봐- 이랬더니,
"너 지굼 나 놀리지?"
이마에 딱밤을 아프지 않게 놓고서는 꼭 한번은 읽어본다. 그럼 또 내가 깔깔대고. 그렇게, 나도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지고, 레이는 항상 그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그랬는데, 사실 대학교까지 졸업을 하고 귀국을 하려고 했던 내가, 우리가족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갑작스럽게 귀국을 하고 만것이다. 얼마나 갑작스러웠냐면- 레이한테 간다는 말도 못하고 급하게 떠날 정도로. 한국 와서 그 애한테 편지를 보내서 연락을 하기는 했었다. 답장은 서투른 한국어로 '한국 어디에 살아?' 라는 말 한마디였다. 국제 편지를 쓰면서도, 우리의 내용은 별거 없었고, 내가 고3이 되어 수능을 준비하면서 그것 조차 뜸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편지는 내가 대학을 합격했다는 사실을 보냈고, 축하한다는 장미를 받은 후로 보내지 못했다. 아니, 내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뒤로 답장이 없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1학년, 2학년이 되면서 다른 애들과도 어울렸지만, 항상 마음구석에 레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잘 사는건지, 이번 겨울방학에 가보고 싶은데 돈은 없고.. 대학생만 되면 여행삼아서라도 꼭 중국에 가겠다는 결심은, 내가 토익과 학점에 치이면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날도, 그저 그런 날이였다. 강의실은 조금 서늘할 정도로 에어컨이 가동되고 덕분에 밖이 더 훅훅 찌는 듯한 느낌을 드는 시점이 시작된다는 때가 시작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혼자 내려가다가, 전화가 오더라.
"여보세요"
-안뇨옹
".....?"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분명히, 레이 목소리였다.
"나 모르는고야?"
"...레이?"
"어- 아네- 나 요기 항국이다"
".....어?"
"너가 다니는 학교. 요기가 오디냐묜....대..분..수...대"
"거기 있어. 내가 갈께"
더듬더듬 자기 위치를 말해주면서도, 그 익숙하면서도 서투른 한국어에 웃음이 나면서도 왜 눈물이 날려고 했는지. 내가 다니는 대학교를 기억하고 왔다는게 너무 벅차서 그대로 레이가 있다던 분수대로 뛰었더니. 진짜 있었다. 고등학교때보다 더 말쑥해진, 레이가- 무슨 영화 한장면처럼 서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웃고 있었다.
"니가 하두 안와서- 내가 왔어-"
"....."
"你已经很漂亮了(넌 지금도 아주 예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뛰는 심장은 내가 뀌어서 나는 심장소리가 아니였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레이와 내가 주연이 된 로맨스 영화 한 편이 막이 오르고 있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친한애가 한명도 없어! 왜 때문이죠? 친구가 없는편도 아닌데, 유난히 우리 반에는 아는 애가 없었다. 게다가 작년에 한바탕 싸웠던 패거리까지 있었다. 들어가는 순간 그 쪽 패거리에서 헐헐 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 해서 교탁 앞 자리에 혼자 앉았다. 첫날부터 왕따야....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연습장만 피고 끄적거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는 빈 자리가 되고 말았다. 답답하고 뻘쭘한 마음에 고개를 처박고 핸드폰만 하고 있는데,
"세잎!!!!"
복도 저 끝에서 우르르르 소리가 나더니, 교실문이 쾅- 열리면서 작년 같은반이였던 백현이가 헤실거리며 들어오는거다. 작년에 두달에 한번씩 자리를 바꾸는데 정말 세번 연속 같은 짝궁이 되서 학기 내내 같은 짝궁으로 지내게 되었고, 그래서 남자애들 중에 제일 친한 친구였다. 빤히, 뚤레뚤레 애들을 쭉 훑어보다가, 반가운 마음에 눈 크게뜨고 걔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안녕- 인사를 할까 말까 하다가, 뒤에 지네 패거리들도 있는것 같아서 말고서는 다시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으려고 하는데,
"얼레-000 너 반 여기야? 오오오올~~~~"
백현이가 아예 내 앞으로 와서 나를 툭툭친다. 괜히 나한테 말걸어준게 좋아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니 친구들은 아무도 안왔냐며 앞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친구들이랑 다 찢어졌어..."
다시 슬픈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저런-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저 뒤에서- '야 똥백! 니 자리 여기다. 내가 찜해놨어 새꺄' 이러면서 백현이를 부르는 찬열이와 종대의 목소리가 들리는거다. 백현이보고 어서 가라는 눈짓을 하니, 살짝 무표정으로 내 옆자리와 뒤에 빈 자리 하나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자리를 풀고 내 옆에 앉기 시작한...다?
"....?"
"혼자앉으면 외롭잖아? 옆에 앉아줄께-"
학기초부터 연애하는거냐며 징징대는 종대 목소리도, 으어어- 하며 책상을 두드리는 찬열이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행보였다. 그 때 정신을 들게 한건, 작년에 나랑 싸웠던 정민지라는 애였다. "아주 꼬리를 쳐라 꼬리를" 은근히 웅성거리던 반 목소리가 착 깔아지면서 잠시 침묵이 들고, 내 머리도 정신은 들어왔는데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야, 너는 친한 친구랑 앉지도 못하냐? 지금 세대가 어느 세대인데 남자여자 같이 앉으면 꼬리친대, 하여간 지들 수준으로 생각해요"
그 침묵을 깨고 더 위험한 침묵을 만든것은 백현이었다. 야아- 하지마- 하지말라는 식으로 백현의 교복 끄트머리를 잡아당겼지만, 똑바로 그 애를 마주하면서 오히려 나를 감싸주는게, 사실 그 애가 평판이 좋은 애는 아니었기 때문에 분위기를 깨줄 사람이 필요했다. 싸움의 기본은 분위기 제압이라고 하지 않던가. 순식간에 냉랭했던 분위기를 백현이가 나를 옹호하면서 옳은 쪽으로 둥글게 분위기가 흘러갔고, 스리슬쩍 애들이 자기들 말을 하며 잡담으로 공기를 채워갔다. 어이없다는 그 애의 표정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백현이가 너무 당황스러웠거든. 심지어, 갑자기 자리를 나가서 종대와 찬열이 앞으로 가는거다.
"야, 너네 우리 뒤로 와라"
"왜-"
"같이 놀아"
종대와 찬열이를 아예 내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게 시키는거다! 벙 찐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니, 종대와 찬열이가 서로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왜 또 그대로 내 뒤로 오는건데...?
"000 그냥 반 적응될때까지 우리랑 지내자! 우리 그래도 여자애들만큼 말도 잘 하고 좀 웃기거든?"
씨익 웃으면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데, 뭐여 이거는?
"악수- 얘네는 내 친구 찬열이하고 종대. 얘네도 착하니까 너랑 잘 맞을꺼야. 뭘 굳이 쟤네랑 놀라고 그러냐? 나랑 놀아-"
지지배처럼 내 팔뚝을 때리면서 깔깔대며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데, 순식간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거다. 이런 요물같은 놈.
그렇게 우리는, 4총사를 결성했더랜다.
'
'
'
'
아 물론, 지금은 의리의 친구에서 남자친구로 승격되신 변백현에게는 흑역사지만ㅋㅋ 항상 '아 그때 고백을 해서 그냥 우리 둘이 놀았어야 했어! 왜 박찬열하고 김종대는 끌어들여서...'라며 땅을 치면서 말이다.
"내꺼야아!"
"웃기시네. 니꺼는 없어졌잖아!"
"그으런가?"
갓난애기때부터 나는 맨날 김종대를 부려먹었었다. 옆집살던 종대네하고 우리집은 좀 각별한 사이였어서. 내가 있는 물건은 걔도 있었고, 걔가 있는 물건은 나도 있었다. 워낙 정신도 없고 잘 부셔뜨렸던 나는 김종대 장난감을 뺏어 가지고 놀았고, 김종대는 참 착하고 멍청(?)하게도 니꺼야? 이러면서 그냥 다 내주곤 했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고 하지 않던가. 초등학교때도, 중학교때도 항상 김종대 물건은 곧 내 것이었다. 물론 양심이라는 게 찔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놔" 에서 "주면 안되~?"로 변하긴 했지만. 숙제도 안해가지고 쉬는시간 직전에 배끼게 빌려달라고 하면 자기는 밤새서 했다면 옆에서 쫑알거리며 징징대도, 결국 제일 먼저 빌려주곤 했다. 먹을 것도 매점에서 과자를 사오면 당연히 그런 것처럼 내가 달라고 그러면 절반을 뚝 떼서 주고, 심지어 음료수를 사오라고 시키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김종대가 착하긴 엄청 착한거다. 항상 입이 나와서 징징거리긴 했어도, 고맙다고 가지고 있는 사탕 하나 주거나, 점심시간에 후식 하나 더주면 그세 히히 거리고 풀어지곤 했다. 물론, 아무짓도 안하고 있어도 한시간 이후에는 풀어지긴 했지만. 그랬던 애가 한번 정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심하긴 심했구나- 내가 중학교 3학년때 남자친구랑 점심시간에 놀다가 수업을 땡땡이 치고 4시까지 논 적이 있었다. 그래서, 종대한테 전화에서 가방을 가져오라고 그랬지. 그리고, 진짜로 종대가 그렇게 화 내는 것을 처음봤다. 물론 그 또래 남자애들이 화내는것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순하게 화냈지만. 한번도 종대가 그런 톤으로 얘기한 적이 없어서. "너 되게 나를 꼬봉 다루듯이 다룬다?" 이 한마디만 하고 내 가방을 던지고 혼자 집에 가는데, 옆에 있던 남친도 버리고 종대옆에 붙어서 샤바샤바 거렸었지. 그렇게, 우리의 중학교 시절도 평범한 듯 특별하게 지나갔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니, 남녀분반이 되면서 매일 얘기하는 시간이 적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노트필기 빌리러 종대를 부르곤 했지만, 학교에서 남자들 득실거리는 구역을 가고 싶지는 않아 학교에서는 남남으로 지내곤 했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그랬는데, 일이 터졌다. 별일도 아니였...던건 아니다. 분리수거를 하는데, 남자애들이, 허리를 숙일때마다 드러나는 짧은 내 치마를 보면서 히히덕 거리는게 시작이었다. 당연히 눈물이 나올정도로 수치스럽기까지 했지만, 오히려 그런 놈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누가 내 손목을 잡고서는 남자애들한테 엄포를 놓는거였다. 되게 익숙한 냄샌데. 어느새 훌쩍 키가 큰, 종대였다. 벙 쪄서 보고 있으니, 저가 그 마이를 벗어서 주고서는 얼른 교실로 쳐 들어가랜다. 지..질것같은데.... 벌써 김종대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다가오는 패거리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러는거다. 얼른 들어가라고. 넌 들어가서 나한테 딱밤맞을 준비 하라고. 진짜 미안하지만, 여튼 그래서 나는 종대가 준 마이를 허리에 두르고 교실에 와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야 했다.
"...너 지금 이거 맞은거야?"
1자습이 끝나자 마자, 곧바로 남자 교실로 김종대를 보는데, 어딜봐도 코가 시뻘겋게 부어있는, 김종대가 있었다. 날 보고 뭐가 그리 좋다고 와서는 '또 무슨 숙제를 빌려드릴까요?' 이러는데, 짜증이나서 그냥 훽 돌아왔다. 사실, 울것 같아서. 그랬더니, 또 저가 뭘 잘못한거냐며 강아지마냥 낑낑대며 쫒아오는거다. 구석 계단에서 내가 그 애 얼굴을 다시 보는데, 진짜 짜증나더라. 내가 뭐라고 니가 이렇게 맞고다녀? 너 부려먹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응? 따발총같이 말을 쏴대며 그 애 어깨를 툭툭 치니, 저는 괜찮다며 머리를 털고 만다. 뭐가 괜찮아, 이 물러터진 복숭아야! 홧김에 옆머리를 잡아당겨도, 아프다며 징징댈 뿐, 그 뿐이었다.
"너 근데, 이제 치마좀 늘리지?"
아 물론, 우리아빠도 안하는 치마단속을 매일 아침마다 했다는것은 짜증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여자 번호순으로, 남자번호순으로 각각 한명씩 주번을 하는 우리반은, 나와 찬열이가 오늘 주번이었다. 출석부 들고 싸인받기. 선생님 공문 정리하기. 시간표 적기 (+메뉴적기) .......잡일이 은근 많은 주번일인데!!!박찬열은 지가 주번인걸 알면서도 맨날 쉬는시간마다 복도에서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내 화는 점심시간에 터져버렸다. 점심시간에 주번들은 교실을 쓸고 칠판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모를리 없는 놈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다가 5교시 시작 1분전에 들어오는거다. 음료수를 쭉쭉 빨며 들어오는 박찬열을 보니, 화가 울컥 나서
"야!!너 한게 뭐냐???"
벌컥,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큰 눈을 데룩데룩 굴리면서 내 옆으로 슬금슬금와서는 나를 쿡쿡찌르며 미안하다는 거다. 아니. 미안하다는 말을 이제서야 하면 어쩌자는거야. 평소에 착하고 매너도 좋은 애가 또래 남자애들보다 성숙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오늘 일을 겪고보니 무책임하고 한없이 어린 친구같아보여서 괜히 기대한 만큼 실망을 하고 만 것이다. 오늘 하루 다 지나셨어요- 하면서 흥 하고 고개를 돌리니, 아씨..하면서 지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한번쯤은 들어본 문구 일 것이다. 난 이게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5교시 내내, 옆 분단에 있는 박찬열이 나에게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댔거든. 긴 팔을 이용해서 내 책상 위에 쪽지를 하나 올려놓으면 내가 읽지도 않고 그대로 구석에 두니, 아예 종이를 찢어 '미안'을 크게 쓰고 펼친 채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보고 무심한 척 구석에 두면서 눈길도 안주니, 다시 종이가 날라왔다. '진짜 미안' 어이가 없어서 그를 보니, 미안하다는 제스쳐로 우는 포즈를 내 앞에서 취하는거다. 피식- 웃으며 그냥 수업에 집중하려는데, 또 쪽지가 하나가 더 오는거다.
- 엘사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뭔줄 알아?
뭐야, 뜬금없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니, 다시 열심히 종이를 찢어서 무언가를 크게 적는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빼고 보려 했지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굉장히 뿌듯한 얼굴로 그 종이를 들었다.
-렛잇고
"푸흐으읏"
그게 뭐라고 빵 터졌는지, 조용하던 수업시간에 내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고, 그 덕분에 종이를 들고서 킥킥거리던 박찬열까지 쌤한테 걸리고 말았다.
"둘! 뒤로 나가서 손들고 있어!"
너때문이야- 입모양으로 투덜대니, 조금 떨어져서 손 들고 있던 찬열이가 내 옆으로 붙어서 높이 올라가 있는 내 손목을 톡톡 친다. 미안하다는 거겠지. 샐쭉하니 노려보니, 흐이- 그 큰 눈이 작아질때까지 웃는다. 뭐가 이쁘다고 웃냐? 티 안나게 발로 그의 발 끝을 차니, 큭큭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 덕에, 나도 또 킥킥거리고 웃었다.
"너네 복도로 나가고 싶냐?"
선생님의 분필이 박찬열의 목을 명중하기 전까지.
"야, 이그조 팬덤 나왔더라"
"나도 안다...."
"엑셀이레 엑셀."
"엑셀 아니거든? 이그조- 엘 이거든?"
"그거나 그거나"
빙글빙글 웃으면서 등굣길에서 나를 놀려대는 경수가, 오늘따라 얄미웠다. 알아. 안다고! 팬덤이름 엑셀. 안티이름은 파워포인트. 시벌. 건들지마라.
"걔네가 그렇게 좋냐?"
"그럼-"
경수랑은 집이 옆 단지였다. 항상 마주치는 사이라서 아예 그냥 그 시간대에 나와서 암묵적으로 같이 학교를 가곤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계속 공홈에 안들어가져서 짜증을 내는 나를 한심하다는듯이 바라보며 그렇게 좋냰다. 아이고. 두말하면 입아프지. 내가 얘한테 11명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면서 프레젠테이션도 했었다. 한번 들어나 보자며 팔짱을 끼고 듣던 그 애가, 술술술 20분동안 설명하는 내 얼굴을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걸로 끝났지만.
"조심해"
버스에 올라타서도, 안들어가지는 공홈을 붙잡고 있다보니 계속 내 몸이 흔들거렸나보다. 차가 급하게 출발할 때 내가 크게 휘청거리니, 내 팔을 잡아주면서 조심하랜다. 그 때는 물론 몰랐지만, 손잡이 하나만 잡고 한쪽 손으로 불타게 새로고침을 누르던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커브를 돌아서 몸이 뉘어지면 뒤에서 티안나게 지탱도 해주었던 것 같다. 빈자리가 나서 앉아서 하라며 나를 밀어 앉혀서 편하게 새로고침을 하고 있는데, 계속 저도 보고 있던지 페이지 에러가 나올때마다 '바보...'를 중얼거리는거다. 너임마, 이게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인줄 아냐? 응? 별들은 숫자가 올라가는데? 세상끝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알아? 그 동그란 눈으로 쓰윽 웃으면서 얼른 하라며 고갯짓을 하는데...그래.... 내 인생은 이거야... 결국, 경수의 손에 잡혀 간신히 정류장을 놓치지 않고 내리게 되었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애가 누군데, 거기서?"
"D.O"
"뭐가 좋은거냐. 사진 속 애를"
"사진 속 애 아니거든? 내가 콘서트도 가서 보고 싶었는데..1!"
빠앙-
폰을 보면서 걸어서 그랬나? 내 귀 옆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의 경적소리에 놀라서 몸이 굳을 때 쯤 팔을 확 잡아댕겨서 제 쪽으로 두는 경수였다.
"조심좀 해라! 이그존지 뭔지, 넌 니 목숨 지금 계속 간당간당한거 알아?"
"...."
"아까 버스에서도 한소리 할려다가, 사람많은데서 그러는것 같아서 참았는데, 좀 폰좀 보고 걷지 마. 이렇게 사고날 뻔 했잖아."
아찔한 마음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아빠보다 더 무서운 불호령이 떨어지는거다. 진심으로 왜그러냐는 듯이 날 잡고 막 조심하라고 다그치는데, 순간 급 쫄은게 눈에 보였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는거다.
"그놈의 이그조"
",,,"
"가서 해라 가서. 좀 제발 정상적으로 걷자. 응?"
"아야!"
또 넘어졋어- 낄낄거리고 웃는 타오를 보며 모래를 집어 그에게 던져도, 꿈쩍도 안하고 웃기만 한다. 그래, 지금 나는 제자리 멀리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 안되서 우리반 체육부장이자 가장 체육을 잘하는 타오에게 강습을 받고 있었다. 근데, 하늘의 구름을 잡을듯이 뛰라는 말만하고는 바닥에서 내가 사준 아이스크림만 빨고 있는거다!
"알려달라고!"
"알려줘써! 붕- 하느를 보고 뛰라코!"
도리어 눈을 크게 뜨고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위로 뛰라고 그러는데, 이봐. 그거는 이론이고 실전을 알려달라고!!!!
"자아. 이렇게 하는거야. 하나-두울- 세엣- 하고! 위를 바라보면서 몸을 앞으로 끌면서! 이러케 뛰면돼!"
...분명히 똑같은 땅인데, 누구는 잘 뛰고, 누구는 죽어도 못뛰고. 무한정 반복연습하라며 다시 바닥에 앉아서는, 나보고 뛰어보랜다. 그래도 무술도 했던 녀석이니 왕도를 잘 알겠지 싶어서 속는셈 치고 또 뛰었다. 음?
"오오- 쪼금 나아진거가타. 타이어 3칸 뛰어써- 이제 네칸 뛰는 심정으로"
쭈쭈바를 입에 물고 네칸 뛰는 심정으로 뛰어보라길레, 있는 힘껏 뛰어보니, 올, 세칸 반! 만세를 외치며 그를 바라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그르면 긴장되서 못뛰어. 연습때 완전 잘해야해"
그렇게 한 15번은 뛰었나. 계속 똑같은 자세를 반복하면 발과 손이 엇갈리지 않는가. 손과 무릎을 준비하며 굽히는 자세에서 이상하게 엉켜서 결국 황타오가 웃다가 철봉에 머리를 박을때까지 계속반복했다.
"그래도 마니 나아져써- 00이 잘하고 이써!"
"웃기시네"
"진짜야- 이제 너 네칸은 그냥 넘기고 이써!"
진짜였다. 가끔 그냥 넘어질 때 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뛰는 거리가 많이 늘은걸 깨달았다. 올, 황타오. 쫌 아는데? 신나게, 이제 마지막으로 뛰어보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타오에게 보여주기위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우와!!! 다섯칸!!"
"올! 좀 한다?"
드디어, 쫙 뻗어진 엄지손가락에 뿌듯해서 씨익 웃으니, 잘했다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 순간 영락없는 철부지 애 같이 귀여웠다가, 두손을 내밀며 아이스크림 한 개 더 사달라는 말에, 정나미가 똑 떨어지고 말았다. 꺼져.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야!
보호막 피구를 한다고 그랬다. 원래 뽑기로 짝을 정하는데, 이 썩을 친구들이 커플들은 이어주겠다며, 커플은 무슨 원수같은 우리 둘을 묶어놨다. 나와 김종인으로 말할것 같으면, 그냥 웬수였다. 치킨 뺏어먹는 나쁜 새끼. 동네 토박이인 우리는, 신기하게도 같은반도 많이되고, 심지어 짝궁도 많이 되서 어거지로 친해진 경우였다. 애들은 그게 천생연분이라며 난리를 치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남친여친 다 따로따로 있어서 못볼것 다 본 사이에 신비감도 없는 사이니, 그런말을 해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너무 꽉잡지마. 움직이기 힘들잖아"
그래도 한 로맨스 상상해보고 싶어 뽑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장난기 많은 놈들이 결국 우리 둘을 묶어놨다. 그리고, 이 신비감 없는 이 애는, 내 손을 턱 잡더니 옷 끄트머리만 잡게 시키는거다. 짜증. 짜증 왕짜증! 키는 대빵 많이 커가지고 나를 내려다보며 잘잡고 있으라며 그러더니, 경기 초반부터 앞에 있는거다. 원래 뒤에 있다가 구석에서 갑툭튀 해야 하는데...!! 체력이 좋을리가 없는 나는 점점 종인이 뒤에서 매달리는 꼴이 됬는데도, 아무말도 없이 잘만 끌고 다녔다. 단연 에이스가 된 우리는 모두의 타겟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적당히 하고 나가려던 내 바람과는 달리, 우리팀은 나와 종인이만, 상대팀은 두팀정도만 남게 된 것이다.
"이야아아아~! 역시!!!"
"역시, 천생연분!"
"...미친놈"
두팀 정도 남을 경우에는 이제 팀을 해제하고 개인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떨어지자마자 상대팀 여자애가 아웃되어서 3대 2 게임이 되었다. 종인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잘도 뛰어다녔고, 가끔씩 내 몸을 이끌어서 피할 자리도 마련을 해주곤 했다. 애들의 방해공작에도 가운뎃손가락만 들고는 공에 집중하는게, 어후 정말 이게 뭐라고.... 마음은 눕고 싶었지만, 또 몇명 남지도 않은 상황이라서 살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피해다니는데ㅡ
"...김종인 아웃!"
"이야!!! 흑기사!!!!"
정말 훅- 하고 공이 내 배 부근으로 하나가 날라오는데, 몸이 그대로 굳어버려서 머리를 감쌌는데, 호각소리는 났는데 왜 느낌은 없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공을 내 쪽으로 던져주고는 나가는 김종인이...있었다. 아까 저기 있었는데..
"김종인이 훅- 하고 날라와서 주먹으로 공 쳐서 보냈어! 와 쩐다!"
상대팀이었어도 감동이었는지, 수정이가 나한테 얘기를 해주는데, 똑같이 무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이고는 상대진 아웃진영으로 나가는 종인이다. 그리고 나는 공을 한번도 받은적이 없었다. 무조건 피하라는 종인이의 말을 착실히 듣기도 했고, 일단 우리팀이 공을 잡으면 무조건 돌리라는 김종인의 강한 말도 영향이 있었거든. 곧 상대편 애들이 다 아웃되었고, 나는 나 혼자 살아서 공 한번도 안맞고 피구게임을 마칠 수 있었다.
"고마워"
"알면 치콜좀..."
그래, 내가 오늘 치콜 쏜다! 까무잡잡하고 살짝 졸린 듯한 무신경한 얼굴이, 이렇게 예뻐보일 수가 있을까. 무심하게 내 뒤에 체육복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는 그 손길마저 감동해 눈물이 날뻔했다.
"...너 안씻냐?"
"밥먹어야해"
"...씻고 먹어"
"그럼 지각하는데?"
대한민국 고등학생중에, 아침밥과 샤워를 둘 다하고 나오는 학생이 몇명이나 될까. 보통 이러면 샤워를 선택하고 밥을 굶다가 매점을 간다. 근데 나는 아침에 밥은 먹어야겠어서. 머리를 똥머리로 똬리를 틀어버리고 앞머리만 씻은 채 밥을 먹겠다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오세훈에게는 지금까지도 띠꺼운 장면일거다. 윗집 주인집 아들인데, 남자에게 얼마나 곧고 깔끔한지, 피부에 트러블하나 안굴러가고 옷도 주름하나 없다. 자고 일어나서 10분만에 교복을 챙겨입고 햄을 먹는 내 모습을 보더니, 헛웃음을 터트린다. 뭐임마. 꼽냐?
"대단해 진짜"
"뭐가"
"니 썸남이 이걸 알아야 하는데"
"말하면 죽여버릴꺼야"
"입도 험한건 아냐?"
"아니"
요즘 신났다. 신났어. 내가 요즘 핑크빛이 돌만한 남자애가 있는데, 진짜 운없게도 그애랑 오세훈이랑 친구인거다. 그거가지고 요즘 인질극을 하고 있다. 뭐만하면 말할꺼라고. 말해라! 뻥친다고 너네 절교시킬꺼다?
"햄좀 그만먹어라. 시금치가 운다 울어!"
"우리 엄마도 안하는 잔소리를 왜 니가 하는데에!"
씨빠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울컥해서 새 젓가락 하나를 집어던지자마자, 뒤에 있던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그걸보고 쿠쿠밥솥 웃음소리를 내며 웃겨 죽는 얼굴이 짜증나서 숫가락 뒤로 기어코 정수리를 콕- 찔렀다. 그래도, 오물오물 복스럽게 먹는다며 니가 누구 앞에서 이렇게 먹겠냐면서 아줌마같이 앉아서는, 이것저것 숱가락에 올려준다. 니 썸녀는 아니? 너 이런 기질 있는거? 가소롭게도 걔 썸녀는 내 친구였다. 주절주절 대면서 나한테 시금치를 기어코 올려주길레 썸녀를 끌어왔더니, 아니- 걔는 이렇게 안먹어. 이러면서 가정 자체를 부정한다 ......ㅅㅂ 그래 내가 돼지에요 돼지.
"아 그리고 누가 썸녀야? 걔랑 연락 이제 안해,"
"얼씨구, 왜?"
"지내보니까 별로라서."
"왜~?"
"너무 깨작거리면서 먹어. 누구처럼 이렇게 팍팍 먹어야지"
...지금 이거 놀리는거 맞지? 어디서부터 진짜고 아닌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제 할말 해가면서 또 얄밉게 햄도 올려주고. 눈만 샐쭉하니 노려보니, 저가 더 뱁새눈을 하고선 쳐다본다. 뭘보는거야?
"실내화 가방은"
"어딨지?"
"여기."
"너 오늘 미술도구"
"아맞다."
"야, 여기있네"
"....너 학생증은"
"맞다."
"아오 씨... 여깄네!"
어머, 여기서 사셔도 되겠어! 나보다 우리 거실을 더 휘적거리면서 하나씩 내가 빠트린 물품을 챙겨오는데, 민망해져서 눈을 크게뜨고 웃는 입을 해보이니, 안예쁘다며 똥머리를 흐트러놓는다. 미친거아냐? 등짝을 한대 퍽 치니, 또 도망가서는 교복 리본을 가지고 와서 정색을 한다. 니가 애도 아니고 뭘 이렇게 흘리고 다니냐는데, 이번엔 쫌 할 말이 없는거다.
"너는 나 없이 어떻게 살래?"
"응?"
"아주 그냥 내가 보호자여 보호자."
"웃기시네. 너 없어도 잘 살거든?"
"실내화 뭐 넣는거냐"
하이라이트로, 삼선슬리퍼까지 동생것이랑 헷갈려 같은 방향의 실내화를 두개 넣으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그냥 멋쩍은 웃음을 흘린채 엘리베이터에 서니, 내 정수리를 톡톡, 치고는,
"누가 데려가나- 이 꼴통을-"
이러는 한탄에, 아무말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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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거 남사친.... 저희 학교에 남자가 많아서 이런 경험은 흔히 있는데.....현실은 결말이 다 욕으로 끝나는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훈훈하고 여운남게 만드느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죽을뻔했네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저거 경수썰도 붙들어주기는 하는데 누가 저렇게 붙들어줘요. 후드 목 잡아댕기지.....그리고 커브 갈때는 잡아주고 평화롭게 갈때 갑자기 뒤에서 잡아당겨서 놀래키고......현실과 이상을 구분해야합니다...암암.....
다음편은, 여름휴가를 가자, 가 될것 같네요.
소재는 항상 받습니다. [소재] 이렇게 주시면 되요!
흔한_ 고3의_ 공부할때도 안쓰는_계획들_ 순서는 랜덤랜덤!
5편에 하나씩 특별하게, 단편글 혹은 의심미 문답으로 갈까 해요. 의심미 문답은 제가 기가 빨리므로 K와 M을 번갈아섴ㅋㅋㅋㅋㅋㅋㅋ하고, 비회원들을 위해 단편글 하나 쪄오겠습니당. 단편글은, 지금 남사친중에서 가장 핫한 반응 중 하나를! 외전으로 써드릴께요~!
ㅠ 근데 이거 조각글이라 쉬워보이는데ㅠㅠ 11명이라 죽을것 같은데ㅠㅠㅠ 사실 감정선이 이어지지는 않아서 드문드문 쓰기 쉽지만...그래도 하루에 두명씩 써야 일주일에 하나 나오는거에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달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진짜오래걸린다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항상 댓글은 저에게 큰 응원과 힘이 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