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진영 Just RelaX 3 회사에서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반쯤 지난 점심시간에 조금 놀랐다. 꿈을 꿨다. 늘 그랬듯 악몽이었다. 소년이 빛을 비췄다. 벽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몽상의 잔재처럼 지나간 꿈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배 아래 어딘가에서 사라지지 않는 묵직한 고통에 눈을 꾹 내리감았다. 무언가에 옥죄어 있는 느낌 같았다. "진영 씨." 마크의 목소리였다. 일어나기보다는 차라리 자는 척하는 쪽이 나은 것 같아 가만히 있었더니 마크가 피실피실 웃었다. 꼭 옥상에서의 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웃음이었다. 보진 못했지만 뭐, 꼭 봐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닌 그런 거. 마크가 천천히 내가 엎드린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진영 씨." "……." "자요?" "……." "자나 보네." "……." "잘 자요." 확인 사살을 마친 마크가 책상 앞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몸을 책상에 기댔다. 왠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괜히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 예쁘고도 고독한 눈동자가 내게 따라붙어있을 것을 상상하니 순간적으로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안 자고 있다면 들어요. 잭슨이 오늘 홍콩에 나가는데 공항에 배웅하고 올게요. 점심 사 놨으니까 먹어요. 미안해요." 처음부터 안 자고 있었으니 들었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마크는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크가 작게 소리내어 웃곤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민망함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자 마크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워요, 진영 씨." "좀 모른 척 해 주시지……." "그럴 걸 그랬나요?" "몰라요." 마크가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내 손 위로 손을 겹쳤다. 저쪽에 도시락 있으니까 점심 꼭 챙겨 먹어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입버릇처럼 되새기던 그 말을 기어이 한 번 더 꺼낸 마크가 내 손에서 손을 떼냈다. 갈게요. 마크가 내게 말하고 웃었다. 왠지 모르게 그가 웃는 모습이 가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크가 사 둔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충 때운 후엔 작업을 계속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악몽의 잔상을 떨쳐내려 점점 속도를 붙였던 탓인지 생각보단 작업이 일찍 끝났다. 점심 시간이 끝 난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마크가 다시 돌아왔다. 공항에 간다더니 꽤 빨리 돌아온 그가 신기해 가만 쳐다보자 마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진영 씨, 같이 옥상에 가서 커피 마셔요." 마크의 말에 잠깐 시간이 비는데 마침 잘 됐단 마음에 커피 포트에 물을 얹었다. 공항까지 벌써 다녀오신 거에요? 그에게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시간이라 차도 별로 안 막혔어요. 자랑하듯 말하는 그의 얼굴이 꼭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들뜬 것만 같아 보였다. "다행이네요." "점심은 챙겨 먹었어요?" "마크 덕분에요." "잘 됐다." 마크가 그렇게 말하고서 내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탁 소리를 내며 다 끓었음을 알리는 커피 포트에 별 생각없이 손잡이를 잡아 올렸는데, 갑작스레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면서 뜨거운 물이 확 쏟아졌다. 덕분에 왼손에 끓는 물을 부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뜨거운 건 둘째 치고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해 멍청하게 서 있는 내 손목을 끈 것은 마크의 손이었다. 조심히 손목을 그러쥐고 찬 물을 들이붓는 마크의 행동에 그제서야 정신이 되차려졌다. 괜찮아요? 마크가 그렇게 물으면서 내 손등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그의 얼굴은 걱정스러운 빛을 잔뜩 띄고 있었지만, 마크의 손길에서 다른 무언가를 떠올려버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손 다쳤으니까 불편하잖아요." "제 불찰이었는데요, 뭐." 말은 덤덤하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두려웠다. 마크가 내 손가락 하나하나를 조심히 쓸어올리더니 빨개진 손을 빤히 바라봤다. 마크? 그의 이름을 부르자 마크가 황급히 내 손을 허공으로 놓았다. "괜찮으면 좀 쉬어요. 잠시 옥상에 올라 갈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옥상을 향하는 마크의 얼굴은 어쩐지 뚱해 보이기도 했고, 조금 생각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번갈아 닿아 빨개진 내 손등 마냥, 내 볼도 덩달아 빨개진 것 같았다. 마크가 손을 잡았을 때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정체는, 비단 내 속에만 있는 것이었을까. 왠지 다친 손보다는 속이 아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