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자꾸만 발이 엉키려는 걸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참으면서 도넛 가게 앞까지 달려갔어. 시야에 가게 간판이 보이자마자 뒤따라서 보인건 그 바로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마크였어. 이미 주문을 다 했는지 손에 종이 봉투를 들고 있는 채였어. 나를 발견한 마크는 별 말 없이 눈짓으로 길을 안내하더라고. 마크를 따라갔더니 더 조용한 장소가 나오더라고. 여름인데도 그렇게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기도 한 그늘진 자리였어. 내가 먼저 앉자 마크는 내 몫의 도넛을 내밀고는 살짝 웃었어. 나란히 앉고 나서도 우리 둘 다 쉽게 입을 떼지 못했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러다가 마크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나를 한 번 보면서 먼저 말하더라.
“I’m sorry.”
그렇게 착잡해보이는 표정은 처음이었어. 굳은 표정이라기 보다는 정말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표정.
“왜 네가 미안해..”
“이런 일 없게 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모르는 사이인 척 하려고 했는데,”
너무 욕심이 나서 라고 말하는 마크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거야. 그걸 바로 옆에서 듣는데, 진짜 가슴부터 손끝이 아리는 감각은 처음이라 너무 아프더라. 머리가 지끈 거리던 건 둘째치고 많이 억울해지는거야.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있어야 하는지 싶어서 두 눈이 뜨거워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크가 Can I.. 하고 입을 떼더니 내 어깨를 살짝 안아서 토닥이는거야. 미안해, 내가 .. 어떻게든 해볼게.
기껏해야 고등학생들의 연애사에 불과한 건데 이게 왜 이렇게 힘들지?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게 맞나, 끈임없이 현실 부정이 드는데 마크가 나를 살짝 잡아서 본인을 마주보게 하는거야.
“Everything will be alright, don’t worry.”
어떻게, 뭘 하겠다는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 말고는 내가 할 게 뭐가 있겠어.
#33
나는 사실 마크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평상시처럼 집으로 갈 줄 알았어. 근데 나랑 같이 교실로 들어가는 거야. 왜 그런가 조금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눈치챘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더라. 나 있으면 걔네가 좀 덜, 떠드는 것 같아서. 맞는 소리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어.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넘겼지.
집에 가서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 잘못도 없고 문제도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게 너무 서러워서 그래서 울 뻔 했는데, 엄마가 왜 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참았어. 진짜 꾹 참았어.
“다녀왔습니다.”
“응. 왔어?”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방에 들어왔어. 가방을 내려놓고 사실 앉아서 공부했던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좀 하려는데 한숨만 계속 새어오더라. 아니야 김여주 정신차리자. 정신 차려야지. 너는 잘못한게 없는데 왜 네가 시간을 이렇게 보내. 근데 그렇게 마음 먹은 거랑 다르게, 화요일은 너무 견디기가 힘들더라.
Please, Don't hate me. 〈〈
메시지 하나만 보내고 마크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거든. 이리 저리 떠드는 말은 그대로인데, 그 자리에 마크만 없었어. 내가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일을 한건지, 아니면 하려고 한 건지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남기고, 그리고 나까지 홀로 남겼어.
#34
비아냥 거리는 소리, 뭐라도 하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는 소리,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을 즐겁게 여기는 소리들이 이리저리 섞여서 내 귀에 들려오는데 내 성격 그렇게 좋은 편 아니거든.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중얼거렸어. 제발 다 닥치라고. 그랬더니 내 짝이 뭐라고? 다시 좀 말해줄래? 라고 하길래 웃으면서 다시 말해줬지. 너 포함 다 닥쳐줬으면 좋겠다고. 어차피 못 알아들을 거 한 번 질러본거였어. 그리고는 나 아파서 먼저 가겠다고 영어로 말하고는 데스크에 가서 우리 엄마한테 전화했어.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하겠다고. 사실상 통보였지 뭐.
“하나도 안 아프면서.”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우리 엄마가 처음 한 말이야. 진짜, 엄마는 못 속인다니까.
“왜, 그냥 그런 날 있잖아. 땡땡이가 치고 싶은.”
“그래, 한국에서 해보느니 여기서 해 봐라. 그럼, 엄마랑 마트라도 갈래?”
“마트보단.. 아이스크림?”
“네가 사주면, 생각해볼게.”
“와, 내 용돈 어차피 엄마 돈이거든?”
시덥지 않은 말싸움을 하면서 다시 나갈 준비를 했어. 내 상황은 하나도 모르지만 알게 되어도 내 편일 걸 아는 우리 엄마랑 같이 있는게 그렇게 편하더라.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연락이 없는 마크가 걱정됐어. 별 말 안하더라도 아까 그 문자에 답장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35
결국 내 지갑에서 돈을 썼지.. 아이스크림 가게에 자리 잡고 앉아서 엄마랑 얘기 하는데 학교 얘기를 묻는거야.
“캠프는 좀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영어가 느는 것 같아?”
“음..”
솔직히 놀면서 하는 영어가 정말 빨리 느는 거라고 하는데, 애들이랑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이번 일 터지고 나서는 대화를 전혀 안 하고 있으니 영어가 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비싼 돈 들여 바다 건너왔는데..
“입은 트이는 것 같아.”
“공부하기 싫지?”
뭐야, 왜 이래 오늘따라. 엄마가 정곡을 여러번 꽂네 싶어서 시선을 회피했더니 엄마가 딱 그러는거야.
오늘 너 아프다는 전화 받고 끊었다가 데스크에 다시 전화했어. 그리고 얘기를 좀 해봤는데 캠프는 이번주까지만 다니자 여주야. 그리고 다음주는 차라리 엄마랑 놀러다니자. 일주일 공부 안 한다고 뭐, 죽겠어? 암만 그래도 방학인데 놀기도 해야지.
그 말을 듣는데, 아 엄마가 무슨 얘기를 들었구나. 선생님들이 우리 엄마한테 뭐라도 말을 했구나 싶은 거야. 그래서 얘기를 해야하나 하고 입을 달싹거리는데, 엄마가 그러더라고.
“대신, 캠프 끝나기 전에 그 친구는 한 번 소개시켜주고.”
그래서 나는 울컥하는 걸 참고 고개를 끄덕였어. 눈물에 젖은 아이스크림이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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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연재가 밀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까지 쓰려면 다섯 편은 더 남은 것 같은데 큰일났네요 ㅠㅠ
암호닉 : 동쓰 베리 딸랑이 하라하라 혀긔 메리 슈비두바 작결단1호 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