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란, 01
김실장의 비밀.
"00씨, 이것좀 부탁해"
"네"
"00아- 이것도"
"네"
"00씨. 여기 복사도!"
"네"
네,네,네..... 분명히 나는 회사에 들어왔는데 왜 네네네 로봇이 되었는가. 나는 분명 컴퓨터를 두드리는 지적인 사원이 되기로 결심했는데 왜 호치케스만 박고, 뽑고, 복사기 열기에 손이 데일때까지 인쇄기 앞에서 죽치고 있는가. 말단사원의 현실은 내 로망을 와장창- 깨트렸다. 입사 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류 정리와 커피배달만 했을 때 벌써 깨졌던 로망이었지만, 달을 거듭하며도 내용만 변하는 막노동 신세에 최소한의 로망도 깨지는 판국이랄까.
"
![[EXO/준면] 사내연애란, 01 (김실장의 이중성)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d/2/4d223ad57bf00c0214c21a492f84fc6c.gif)
"박사원, 잠깐만 나좀 봐요"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엄청나게 많아지는 서류들을 아예 걷어가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를 반복하는데, 실장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은은하게 웃음을 띄며 잠시 나좀 보자며 뒷짐을 지고 있는 준면의 모습은, 성자다. 성자.
"부르셨어요"
"노트북들고 저기서 일해요."
"헤헤헤"
"다 알고 있었다는듯이 웃는데?"
역시, 그럴줄 알았어! 회사에서 너무 풀어지는거를 좋아하지 않는 그 때문에 정좌세로 가서 섰더니, 턱짓을 작은 소파를 가르키며 앉으랜다.
언제였나- 마감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엄청나게 깨진적이있었다. 워낙 서류 심부름이 많아야지.... 내가 잘했다는 거는 아니었지만. 워낙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준면이 제일 싫어하는것이 마감시간을 안지키는 거였다. 그래서 앞뒤사정 다 제치고 된통 혼났었다. 짧은 입사기간이지만 진짜 눈물 쏙 빠지게 혼났었지. 그때는 내가 잘못한 마음이 커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퇴근을 같이 하는데 그제서야 보인 물집잡힌 내 발을 보고 눈물이 줄줄 났던거다. 연애 초라 엉엉 울지도 못하고 찔끔찔끔 고개만 돌리고 있는데 계속 해코지 하는 준면에게 토하듯 다 말하니,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 그리고 맨날은 아니지만 자주자주 마감시간에 가까워지면 아예 실장실에 불러다 놓고 업무를 시키는거다. 아, 이게 사내연애의 묘미인가..ㅋㅋ
얼른 노트북을 가져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턱을 괴고 웃고있는 준면이 보였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못본 척 일에 집중하려 하니, 큭큭 거리면서 저도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향한다.
"이렇게 하면 편해요?"
"그럼요- 일단 앉아있다는 자체가...ㅋㅋㅋ"
"다행이네, 편해서."
은은히 웃는 그 미소와 함께, '다행이네, 편해서-'그소리에, 잠시 내 머릿속 타임라인이 과거로 향한다.
준면을 처음 본것은 입사 1차시험때였다. 필기2번, 면접2번의 대장정을 걸치는 이 기업의 특성상 3월에 시험이 시작되어 12월에 끝나는, 뭐 그런 엿같은? 제도였지. 여튼, 내가 그래서 그를 본 날이 3월이 된 것이다. 공무원처럼 영어와 다양한 전문 문제를 푸는 필기시험날, 하필이면 마법에 걸려서 생리통이 심한 날이었다. 끙끙 앓으면서 1교시 시험을 봤는데, 준면-당시 시험감독- 이 다가왔었다.
"어디 아프세요?"
시퍼런 젊은 남자에게 생리를 한다고 말할수 없지 않은가.... 낑낑 앓으면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니,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디론가 가서는 타이레놀과 뜨거운 물을 가져오는거다. 멋쩍게 내 눈도 못마주치고 오히려 얼굴이 붉어져서는-
"핫팩은 시험때 못쓰는 물건이고, 초콜릿을 주자니 감독과 수험생 교류문제가 될 것 같아서 그런건 못주겠어요. 의무실에서 약하고 물 받아왔으니까 얼른 먹어요."
그러면서 황급히 앞에 자리로 돌아가 핸드폰에 고개를 쳐박는거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꽤나 눈치빠른 그의 매너에 기분이 좋았었지. 성함을 알고 싶었지만 그때는 이름도, 나이도 몰랐다. 그저 동료가 와서 김팀장- 이렇게 부르기에 팀장인 것만 알았지.
신기하게 우리 만남이 그렇게 이어졌었다. 2차 필기 때도 그가 감독이었고, 마지막 면접장에서 보조를 보는 사람도 그였다. 그 날,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면접장에 들어오는 나를 보며 웃어주던 그를보며 그 긴장된 상황에서도 설레임을 느꼈었다. 면접준비실에서 열심히 면접지를 보고 있는데, 그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었다.
"대단하네, 여기까지 못올라오면 어쩌나 했어요."
"하하"
"이름이 박00?"
"어, 아시네요"
"명단이 있으니까-"
"아"
내 이름을 아는것에 당황해서 어떻게 알았냐는 말을 하니, 명단이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영구 박터지는 소리를 냈었다. 푸스스, 고개를 돌리며 웃는 그의 눈웃음이 참 선하다고 생각했다.
"제 이름은 아세요?"
"....네?"
"그래도 자주 뵜잖아요. 지원하는 과 보니까 우리 과던데?"
"정말요?"
"네. 잘하면 제가 상사가 되겠는데요"
"아....."
"제 이름은 김준면 이에요."
웃음기를 띄었지만 묘하게 빨려들어가는 그의 말에 빠져 듣고 있다가,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머리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김준면.....
"다음다음이 00씨 차례네"
"헐-?"
"긴장 많이 풀어진것 같은데?"
"그렇네요. 말 많이 시켜주셔서요. 그럼 긴장이 좀 풀려서.."
"그렇게 하면 좀 편해요?"
"네"
"다행이네, 편해서."
아마 내가 그 매너에 넘어가지 않았나 싶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했을 때에도, 다시 만나자 했을 때에도. 최종 합격이 되었을 때 그가 내 상사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지속적인 만남을 가진지 한달만에 그의 고백을 받아주었었다. 참, 나 쉬운여자 같아-
"마감 10분전-"
그의 목소리에 간신히 다른생각에서 벗어났다. 나즈막이 압박을 주는 그의 표정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괜히 찔려서 타자 속도를 더 빠르게 하니,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저거, 저거 지금 나 놀리는거다. 절대로 그는 내 업무를 도와주지 않았다. 제출시간에 5분의 특혜도 없었고, 못하면 야근인것도 똑같았다. 하나 다른점이 있다면 내가 야근이면 그도 야근이라는거...? 사람좋은 저 웃음이 저렇게 사악할 때가 있을 줄이야.
"제출 완료했습니다"
"이야. 1분전이네. 좀 미리미리하는 습관을 들여요. 이러고 리플레이 되면 무조건 야근이잖아"
그럼 나도 야근이고- 살짝 투덜거리는 그의 뒷 말에, 웃음이 나와 고개를 숙이니, 그걸 힐끗 보고는 또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정시에 갈수 있겠네- 박사원?
사내연애란, 01.
"으아아아아"
퇴근을 하고 집에 가기위해 준면의 차를 타자마자 투정소리가 들려 흠칫, 놀라고 말았다.
"힘들어. 배고파. 야식먹고싶어요"
정장을 입고 사원이든 누가 되었던지 점잖은 말만 쓰고 항상 단정한 그가- 퇴근만 하면 풀어지는 이 모습을 과연 누가 예상할까. 운전대에서 내가 오자마자 야식이 먹고 싶다며 칭얼대는 그가, 아까 10분남았다며 나에게 사악한 웃음을 날렸던 철두철미 김실장이 맞나 싶다. 그래도 이런게 그의 매력 아니겠는가- 가방을 뒷자석에 놓고 하얀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야식먹으러 우리집 갈까요? 라 하니, 핸들에 엎드려서 감고있던 그가 눈을 번쩍- 뜬다.
"오, 라면?"
"라면 끓여줄께요. 비빔면 좋아하잖아. 삶은달걀도 얹어서?"
"오오, 왠일이래요?"
"일찍 퇴근시켜줘서 고맙다는 사원의 조공."
"아 근데, 나 00씨 집 들어가면 오늘 내로 못나올것 같아"
엥? ....아. 헐- 소리와 함께 내가 그의 등을 퍽퍽 때리는 걸로 결국엔 야식을 근처 포장마차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사뭇 진지하게 오늘이 금요일이라 자기가 사고를 칠것 같다며 집에는 못가겠다는 그의 소리에,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은 내 몫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능글맞아져서 큰일이다. 이사람.
"실장님"
",,,,"
"아이 참, 왜 내말에 대답 안해요?"
"나 이름 장님이 아닌데.......미안;;"
그래, 근무시간 외에 실장님 소리를 붙이지 말라는 금지령이 떨어진지 2주가 다 되어가도, 아직도 실장님 소리가 잘 안떨어져서 애를 먹고 있었다. 준면씨- 라고 부르기에는 회사에서 너무 그가 높은 위치이기도 했다. 그가 네살이 많았지만 직급은 하늘과 땅차이니...쩝. 아무리 해명을 해봐도 그래도 주말에 데이트 하는데 실장님 소리하면 오해받는다며 금지령이 풀리지를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실장님으로 시작했다가, 시덥잖은 그의 농담에 내 표정이 헐랭해지는것을 보았는지, 빠른 사과를 하는 그가 귀엽다.
"알았어요. 준면씨,"
"아~ 좋아 이거. 그래"
"어후, 이상해"
"뭐가요? 여자친구한테 내 이름 불리는게 좋다는데. 이왕에 오빠라고 해보면 안되나?"
아니 이사람이 왜그런데? 미친타이밍으로 빨간불에 차가 멈춰서자, 아예 그 소리를 듣겠다는듯이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아니, 내가 10살차이나는것도 아니고- 4살차이인데, 오빠소리 들을 수 있지 않나?"
"뭐 그소리가....하루아침에...나..나오나요...."
"시작이 반이래잖아. 응? 00아-"
저거, 내 약점이다. 맨날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그가, 00아- 불러주며 반말을 하면 내가 완전히 녹아버린다는것을 들켜버리고서는, 저가 꼭 하고 싶은일이 있으면 저렇게 내 이름을 불러대곤 했다. 그리고 기어이 나는 넘어가고.
"오빠...으아아!"
"아, 뭐야! 할라면 잘 해봐요. 오빠 사랑해요. 이거해봐 얼른. 응?"
"아니 애도 아니고, 응? 왜그러는데?"
"술들어가면 잘만 하는데...."
"내가 술먹고 그런적이 있어요?"
"몰라요? 술먹으면 내가 하라는거 다해. 당신-"
"아....."
"아, 맨정신일때 들어보자. 응?"
".....준면오빠. 앞에 보시고 운전해요"
"크하하하하하"
빠르게 오빠를 앞에 붙이고 할 말을 하니, 시원하게 웃어재끼면서 웃는 그다. 아니 이놈의 신호는 왜이리 많이 걸려? 사거리에서 멈춘 그가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EXO/준면] 사내연애란, 01 (김실장의 이중성)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b/b/5/bb5187e23260b1bae33db9b1e4fc76d8.gif)
"어쩜 이렇게 예쁠까? 응?"
"뭐래...요...."
"아 진짜로. 너무 예뻐서 내가 건들지도 못하겠는거 알아요?"
"치-"
"그냥 00씨 집 가야겠다. 오늘 나 자고 가도 되죠?"
휙, 핸들을 꺾어 유턴을 해 내 집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기가 역력하다.
아무래도 내일 주말 데이트는 집에서 이루어 질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편 예고.
_데이트는 역시 집에서_
언제였나. 옛날에 신혼이란- 끝나고 사내연애물이 후속작 1위 아니었었나요?ㅋㅋㅋㅋㅋㅋ 그때 2위였던 의사물을 쓰고, 이리빙글 저리빙글 돌아 순수 연애물을 써보고 싶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알것 다 아는 어른들의 연애니....불맠도 들어갈거고(유후).......그래도 비회원들을 위해 달달한 보통의 연애도 써보려고요.
아오. 플라토닉 다 썼는데 유에스비에 둬쓴ㄴ데.....유에스비가 바이러스 왕창 먹어서 꺼내질 못하고 있어요.....복구되는 즉시 올리겠습니당.....뀨뀨....
암호닉 정리는, 2편에서 할께요! 아직 계속 신청해 주시는 중이라서....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셔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ㅠㅠ
댓글 달아 주실때 암호닉을 언급해주시면 제가 외우기가 편해요! 암호닉 안달고 댓글달아주셨는데...제가 못외우면 섭섭하시자나요ㅠㅠㅠ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공지의 암호닉 모집에 양식에 맞게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두려워하지말고 컴온!
좋은 주말 되세용^^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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