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찬열] 사신밀담 09
(부제 : 너랑 나랑은)
찬열은 나름 열심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두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자세는 한없이 위태로워서 전신이 휘청거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종인이 결국 어이없
다는 얼굴을 하면서 찬열에게로 다가갔다. 종인이 찬열에게로 다가가기 무섭게 종인의 바로 옆을 스친 화살이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꽂혔다. 종인은 몹시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일부러 전혀 아니라는 표정을 했다. 이깟 화살이 뭐라고 내가 무섭다는 티를
내나?
" 너 지금 나 죽이려고 작정했냐? "
" 야, 아니거든? 이게 안 되는 걸 어떡해! "
기껏 잘난 활을 주면 뭐 하나, 제대로 쓸 줄을 모르는데. 신수의 힘을 온전히 끌어내는 것은 아직 종인을 비롯한 나머지도 내공
이 덜 쌓여서 제대로 부르지 못하니 그것은 둘째 치고, 제 힘인 불을 소환하는 일은 커녕 기본 중의 기본인 활 쏘는 것조차 아직
반도 익히지 못했다. 활 안에 주작의 힘이라도 넣을 줄 아냐고? 그럴 리가. 게다가 배우는 속도는 얼마나 더딘지 어제 무언가를
익히면 그 다음날 다시 까먹는 병신짓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씨발 진짜 돌아버리겠다 이거다. 초보자를 가르치는 게 이런 건가?
결국 고생하는 사람은 좋든 싫든 찬열과 같이 활동을 해야하는 종인이었다.
" 너 그래서 개죽음 당하면 어떡할 건데? "" … 개, 개죽음? "
" 어, 그 상태로 가다간 다 개털리고 뼈도 가죽도 안 남을걸. "
활도 못 쓰면 삼족오랑 교감도 못해.종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신에게는 각자 가신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힘을 합칠 수 있는 기린아와 해치가 있다. 세훈에게는 불가
사리인 민석, 준면에게는 이무기인 타오, 루한에게는 용의 수장인 우판이 있었고 종인에게는 백룡이자 그의 먼 친척이었던 종대
가 있었다. 그리고, 찬열에게는 삼족오라는 까마귀가 가신이다. 가신이 사신에게 도움을 주는 신하격 신수라면 기린아와 해치는
사신과 힘을 합쳐 싸운다. 적어도 활이라도 쏠줄 안다면 살 수도 있다. 적당히 결계 쪽이나 구름 타고 피하면서 제 힘이 담긴 활
을 쏘면 전력에 도움은 그닥 안되겠지만 뭐 그래도 가신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얻어 걸리는 요마라도 하나 둘 있을 수 있겠지. 그
런데 그것마저 못하면 답이 없다.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사신 특유의 싱싱한 육체는 썩어 없어지기 전에 영혼들이 꿰차고, 영혼
은 말할 것도 없고, 말 그대로 악귀랑 싸우다 죽는 거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종인이 진심으로 답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찬열의 혈색이 창백해졌다. 아직 몇년 살지도 못했는데 개죽음이라니!
" 진짜지..그거? "" 요마가 네 몸 다 뜯어먹고 있을 때 진짜인 거 알고 싶냐? "
" 헐! "
얼이 나간 찬열이 서둘러 다시 활을 잡고 기를 모은답시고 눈을 감으며 정신없이 활을 쏘아댔다. 당연히 될 턱이 있나, 종인은 계속 과녁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들에 한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종인과 찬열이 파트너 비슷한 관계가 되기까지의 비화는 대략 이랬다.
둘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것을 겨우 말린 다른 사람들이 기린과 삼족오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대나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여러모로 이 집은 신세계다. 동화속에서나 보던 신비의 세계 액소額所 부래니部來尼 같이
공간이 끝도 없이 쭉쭉 나온다. 그냥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좀 넓은 기와집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경수, 백현! 루한이 이름을 부르자 갑자기
텔레포트처럼 두사람이 쭉 나타났다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 찬열은 감탄했다.
" 삼족오 도경수. "
" 기린아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
호감형 인상들인 두 사람이 웃는 것을 보고 찬열도 따라 웃었다. 키는 좀 작은 것 같지만 뭐.. 찬열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그렇지 두 사람도 한국 사람으로 치면 정상인이…겠지? 뭐 앞으로 나름 잘 되겠지 싶은 찬열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런데 얼굴이 좀 낯익은데?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자 두 사람도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 저.. 우리 어디서 좀 마주치지 않았나요? "" 그러게요.. "
" 어쩐지 안면이 있는데.. "
당황한 셋 가운데 찬열이 질문했다. 혹시 수만초등학교 나오셨어요? 둘의 표정이 급변했다. 뭐지? 뭔가 기억은 나는데, 무언가
팍 떠오를 것 같은데, 떠오르지가 않는다! 셋은 기억상실증이 아니었으면서도 근 십분을 생각하고 나서야 찬열이 백현에게 질문
을 던졌다. 혹시 수만초등학교 나오셨어요? 그리고 셋은 동시에 서로를 가르키며 비명을 질렀다.
" 공포의 주둥이 박찬열?! "
" 신당동 까마귀 도경수!? "
" 아이라인의 황제 변백현?! "
그랬다. 셋은 초등학교 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삼총사였던 것이다.떡볶이 집을 하는 경수의 별명은 까마귀였고, 일진 백현은 초딩얼짱이랍시고 항상 아이라인을 눈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찬열은 그 오리같이 생긴 주둥이가 강력한 무기였기 때문에 찰진 욕을 한다고 공포의 주둥이였다. 찰지구나! 여하튼, 그렇게 셋
이서 즐겁게 짝짜꿍을 하고 있을때, 조나잌- 하다가 정신을 차리며 박수를 짝짝 치는 루한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옮겨갔다.
" 파트너 필요해, 루한 정해줄게. "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종인과 짝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그러나 또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던 게 찬열의 실력은 지나치
게 형편없었고 종인 덕분에 꽤 나아지긴 했기 때문이다. 운은 없었지만 성과는 있었다. 종인은 그러다가 죽는다는 어투로 무심하
고 시크하게 던졌고 찬열은 그에 곧이곧대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 야 이 활 야매 아니냐? 안 되는걸 어떡해! "
" 미쳤다고 너한테 야매를 주겠냐? 그것도 온천부자 김준면이? "
" 너 어르신한테 또 반말! 진짜 싸가지없게 굴지말랬ㅈ…어? "
종인을 씹으며 활시위를 건성으로 당기던 찬열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뭔가 싶어 찬열을 쳐다보던 종인이 그대로
눈을 깜박였다. 드디어 안정적인 자세가 잡혔다!! 그대로 거기에 기를 집중하고 당겨, 종인의 한 마디에 찬열이 그대로 눈을 감
고 생각을 정리했다. 종인이 혀를 차며 전수했던 기 모으는 법은 겨우 깨우친 탓에 눈앞에 붉은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
다. 그대로 찬열이 활시위를 쭉 당기다가, 마침내 놓았다. 나 드디어 과녁에 하나 정도는 꽂을 수 있게 된 건가요?
" 어, 어, 어? 된다! 됐어! 야! "" 그거갖고 되냐? 좀 제대로 해라. "
겨우 저거 하나 성공했다고 저렇게 야단이다. 답이 없다는 얼굴로 짐을 챙기는 종인을 보고 재수 없다는 얼굴로 지켜보단 찬열이 물었다. 어디 가? 용궁으로 사과하러 가는데. 어, 그래? 잘 갔다 와라.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찬열을 종인이 무시하고 돌아서
려는데 세훈이 쪼르르 달려와 찬열이 형도 같이 가래요!! 하고 외쳤다. 둘은 존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발 이
런 거까지 동행해야 하나요? 종인이 띠꺼운 표정으로 찬열을 보다가 애매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말던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마냥 짜증나서(나름 찬열은 예전에 종인이 자신에게 했던 만행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기분이 나빠진 찬열
이 저 자식을 계속 괴롭혀주리라 결심하고 가거든? 하고 저도 짐을 챙겼다. 세훈이 크고 작은 보따리들읗 건네자 찬열이 받으려
했지만 종인이 됐다며 그것들을 전부 받아서 구름을 끌고 내려와 실었다. 이제 가려는데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다고 징징대는
세훈을 보고 찬열이 냉동실 안에 자신이 들고 온 복숭아들이 있다고 일렀다. 바로 잘 가라며 집으로 폭풍처럼 달려가는 세훈은
오죽 배고팠던 모양이었다. 어쨌건, 구름은 이내 저 밑에 사람들은 안 보이고 천계인만 보이는 선착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찬
열이 보따리 안에 든 여의주들와 금은보화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중 끼어있는 두툼한 용돈과 함께 있는 온천 여행권을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온천 여행권은 왜? "" 영감이 그거 없으면 안 들여보내 줘. "
그래? 참 특이한 영감님이시네, 온천 여행권을 보던 찬열이 용왕의 상상도를 고쳐잡았다. 동화 속의 위엄있는 용왕의 모습이 아니라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좋으신데 조금 깐깐하시고 용돈을 밝히시는 점잖으지 못하신 영감님으로 말이다. 온천 여행권
이라니.. 참 시트콤에 나오는 한국적이신 할아버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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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어른을 공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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