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찬열] 사신밀담 08
(부제 : 대망의 재회)
태산에 온지 사흘이 지났다.
찬열은 그간 루한에게 상이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것과(찬열은 그 말을 듣고 상에 대한 격한 반감이 생겼다. 루한도 이미 가사 상태에 빠
진 사람이니 고인드립을 아무리 쳐도 욕먹지 않는다고 했다) 몇몇 인물을 더 소개받았다. 불가사리 김민석, 이무기 타오(타오는 정말 잘 우
는 울보였다.), 해치 이씽과 백룡 종대까지. 기린아와 삼족오는 추후 도착한다고 한다. 청룡 형은 조만간 오긴 올 건데, 워낙 방랑자라서 어
딜 갔는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짓는 세훈을 찬열이 계속 다독여줘야 했다. 찬열은 소개받은 다른 사람들과도 전부 친해졌다. 워낙 친화력이
좋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딱히 그들이 까칠한 성격도 아니었고 말이다. 사실 찬열도 그렇고 다들 인간비글들이었다. 종대와 타오, 이씽
과는 나이대가 비슷해서(물론 천계에서 따지면 사백 살이라고 했다. 인간 나이로 찬열과 비슷했을 뿐이다) 친해지기 더욱 쉬웠다. 남자가
더러 그렇듯 시시껄렁한 이야기에도 낄낄대며 잘 맞는 공통점이 있었다. 민석은 루한과 준면처럼 아주 나이가 많았는데, 역시나 어르신 소
리를 격하게 거부했다. 찬열은 그래도 그들 모두와 쉽게 친해졌다. 그들과 같이 더킹투하츠와 적도의 남자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들
도 전부 드라마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린과 삼족오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라는데, 찬열은 성격이 뭐 어떻든 다가가는 대인배적 풍모를
지녔으므로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모두가 쉬쉬하는(세훈이 말하려고 했지만 준면에게 고나리당했다) 청룡은 좀 걱
정되긴 했다. 성격이 보통 개차반은 아닌 것 같던데. 살며시 걱정이 된 찬열이 조금 쫄았다. 그래도 나이는 어리다던데 그렇게 싸가지가 없
지는 않겠지?
찬열은 오늘도 여느 때처럼 다른 이들과 같이 산을 탔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신천지로.. 그런데 구름을 타고 날아가면 될걸 왜 산을 타냐고 물었더니 체력 단련이랬다. 하긴 맞는 거 같기도 해.. 북한산 위에 있는 태산은 요괴 이하의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못챈다고 했다. 말 그
대로 환상 속의 산인거다. 좀 격한 산책으로 인해 기초 체력이 거의 바닥에 가까운 찬열은 늘 헥헥대기 일쑤였다. 세훈이 도와주면서 좀 나
아지긴 했지만 역시나 힘들었다. 신이라 수입 그런거 없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찮긴 했지만 수입은 있었다. 루한은 북한산에 조
그마한 집을 지어서 민박집을 차리고 숙박시설 요금을 받아먹고 있었고 준면은 저 멀리 온양에 온천을 차려서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정
말 현실적인 돈벌이였다. 집앞에는 밭이 있었다. 그걸 직접 다 농사짓는 건 아니고 다른 애들도 그렇고, 루한과 준면의 신수가 좀 거들고 있
었다. 당연히 찬열도 거들었다. (여담으로 루한이 자신도 이렇게 신수를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그냥 모텔을 차리시지.. 하고 찬열
이 운을 띄우자 모텔이 뭔지 모른다며 루한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얼굴과 같이 이천구백 살치고는 몹시 순수한 사람이었다.
" 타오 딸기 먹구 싶어. "
" 루한이 딸기 다 먹었어.. 타오 나중에 먹어. "
" 타오, 그렇게 딸기 밝히면 영원히 승천 못 한다. "
준면의 장난에 타오가 금새 울먹울먹해졌다. 너무한다며 훌쩍이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재밌었던지 준면이 노망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
쨌건 계속 놀렸다. 타오는 벌써 삼백 살인데 아직도 이무기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종대만 해도 날 적부터 여의주를 물고 용으로 태어나 백
룡으로 씐나게 하늘을 날고 다니는데 타오는 하늘을 날긴 날지만 아직도 여의주가 주어지지 못했다.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데, 상이
개새끼다. 원래 타오의 집안은 걸출한 구렁이 집안이라고 했다. 구렁이는 딱 천년만 참으면 용이 되는데 당연히 타오네 집안은 대대로 구렁
이였으니 쭉 천년을 참아 용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오천년 전, 전전대 상께서 명계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타오의 고조 할아버지를
어여삐 여겨 용의 집안이 되었다. 그렇게 천년만년 잘살 줄로만 알았는데, 이놈의 상이 명계(저승)와 천계의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여
혼령들을 맞이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타오의 아버지를 고깝게 여겨 명부와 사통했다는 죄목을 내세워 타오의 아버지의 목을 베고 가문을
이무기로 격하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깥은 새끼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영면에 든 상이 얼마나 개막장에 견공자제분이었는가
하면, 이런 일을 당한 존재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죄도 없는 종대 아버지가 간언을 했다고 그것이 보기 고깝다는 이유로 재산을 전부 몰
수해버려 종대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질 것이 뻔한 전쟁에 이씽의 아버지를 반억지로 선봉장을 세워 죽게 만들었다. 그뿐만인줄 아
는가? 루한의 아버지인 전전대 환인이 세웠던 천계의 법도는 물론 그 무덤마저 파헤쳐 버렸댄다. 이 정도면 아주 개판 막장이다. 찬열은 그
들의 말을 듣다가 아주 기가 제대로 막혀야 했다. 뭐 이딴 새끼가.. 그런 놈이 강하기는 오질나게 강해서 어떻게 반항도 못하고 찬열과 삼족
오, 기린을 인간계로 숨겼는데, 결론적으로 모두 멸문지화당하고 셋중 둘은 구했으나 찬열은 상에게 희생당할 가능성이 몹시도 높아 일부
러 숨겨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한참 듣고있던 당시, 정말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찬열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아무리 지금 자리가 없다고 해도 그 사람 이야기는 왜 안 하지?
- 그런데, 청룡은요?
- 아, 찬열. 그게- 읍!
대답을 해주려던 루한의 입이 준면에 인해 틀어막혔다. 찬열은 그것을 보고 의문이 다시 생겨야 했다.그렇게 청룡의 일을 함구해야 하나?
그렇게 비밀스런 일인가? 의문점은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차마 내색은 못하고 생각을 그대로 접어야 했다.
타오를 계속 골리는 준면을 보고있던 찬열은 멀뚱히 그것을 쳐다보았다. 사실 저건 골리는 건 아니고 충격요법이랬다. 하도 사람이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은 용이 될 생각도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을 듣지 찬열은 타오가 한없이 측은해졌다. 적당한 수준의 충격 요법은 사람한테
도 도움이 된다니까, 꼭 응원해야지.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 형, 저랑 놀러가요! "
" 어디에? "
같이 수련하게요, 아. 응.
아직 활 하나 제대로 못 다루면서 남 걱정이나 하는 찬열은 역시나 오지라퍼였다.
" 더 팔을 길게 뻗어 봐요, 형. "" 이, 이렇게? "
엉거주춤하게 활시위를 달리는 찬열의 폼이 퍽 위태위태했다. 세훈이 다가가 팔을 제대로 뻗을 수 있게 교정해 주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
다. 벌벌 떨리는 팔에서 아슬아슬하게 화살이 매달려 있었다. 세훈이 아이구 나 죽겠네 하는 표정으로 좀 떨어졌다. 떨어지기 무섭게 화살
이 피융 날라가 세훈이 있던 자리로 날아갔다. 큰일 날 뻔했네. 미안해. 괜찮아요, 잘할 수 있을 거에요. 특유의 미자다움을 잃지 않은 세훈
이었지만 아까 그 화살을 맞았다면.. 참 아찔했을 거다.
" 잘 안되네.. "" 형, 그럼 저 밑에 밭에서 딸기나 좀 가져올까요? "
" 어? 그런데 세훈아, 그거 범죄 아니야..? "
" 에이 괜찮아요, 좀만 가져오면 되죠. "
백호인 주제에 딸기 서리를 하자며 구름을 타고 손짓하는 세훈의 패기를 보면서 찬열은 새삼 그 패기에 감탄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거기 좀 있어? 아니요, 좀 더 가봐야 나올 것 같아요. 망을 보던 찬열이 불안한 눈길로 세훈을 보자 쾌남처럼 허허 웃어보인 세훈이 더 깊숙
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 찾았다. 찾았어? 네. 제대로 익은 딸기가 보였다. 나쁜 짓은 하면 안되지만 절로 군침이 돌았다. 먹구 싶은
데.. 눈을 반짝이는 찬열과 세훈이 딸기를 조금씩 따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의 목청이 귓가에 들려왔다.
" 그 딸기 따면 안 되는데! 뚜이짱이 나쁘다 그랬는데.. "
" 헉! "
" 보, 보고 있었어요, 형? "
" 응, 타오 딸기 먹지 말라고 나가려고 했다. "
해맑은 타오의 모습을 보던 찬열이 역시 이건 아닌거 같다 싶어 돌아가자며 세훈을 재촉했다. 하지만 세훈은 딸기가 먹고싶었다. 정말 먹고싶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차마 놓칠 수 없었다! 결국 세훈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 타오 형. "
" 응, 말해라 세훈. 딸기 먹으면 안돼! "
" 며칠 있으면 딸기 일년간 못먹어요. "
" ....응..? "
" 5월까지만 나요, 그 이상은 딸기 여기서 안 나요. "
" 정말..? "
" 네. "
금새 타오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 세훈은 아주 쉽게 타오를 꼬드겨 서리에 동참시켰다.먹을 때까지 타오가 이거 뚜이짱한테 혼나는데.. 안된댔는데.. 하면서 걱정했지만 세훈이 입에 넣어주는 딸기에 곧 묻혀졌다. 딸기를 물에
씻어 오물거리던 세 명이, 이윽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그럼 세훈아, 넌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거야? "
" 두살 때부터 있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상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 기억은 없지만, 어린 절 루한 형이 길러줬어요. "
" 아...정말? 그럼 타오는? "
" 타오 부모님 타오 열다섯 살에 상이 죽였다. 상 나쁜 사람이다. 현무가 타오 길러주셨다. 현무 착한 사람. "
둘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정사에 마음이 찡해진 찬열이 타오의 나이를 물었다. 타오는 나이 몇 살이야? 타오 인간 나이로 스무 살이
다! 타오 어리다. 타오 노안 아냐. 노안이 아니라는 소리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어쨌건 찬열은 오지라퍼답게 두 사람을 덥석 끌어안
았다. 짜식들, 형만 믿고 따라와. 찬열은 두 사람을 각별히 챙기기로 결심했다. 숨 막힌다고 무어라 하는 세훈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뺨
을 부볐다. 오, 세훈아 너 피부 좀 좋구나.
창고가 엉망이 됐어, 루한 지금 일 있어서 내려가야 해. 도와줄 사람 있어?찬열과 세훈이 같이 청소하게 되었다. 세훈을 보좌하는 민석이 보조로 이것저것 청소 도구들을 가져왔다. 창고 문을 열자마자 녹 냄새가 잔
뜩 풍겨왔다. 으, 냄새 쩔어. 걸레를 빨아 닦으려는데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들어 찬열이 민석에게 물어보았다. 참 만두같이 생긴 형이다.
" 아, 그런데 민석이 형. "
" 엉? "
" 진짜 쇠만 먹어요? "
" 내가 로봇이냐? 동화책에서 그러는데, 그거 다 루머여. "
" 형은 만두만 먹게 생겼어요. "
" 야 아무리 그래도 만두라니.. 하긴 루한도 그러더라. "
그럼 정확하게 형은 무슨 일을 하는 건데요? 나는 천계의 대장장이야. 그러니까 헤파이스토스. 오오, 유식하다! 민석의 지식에 감탄한 찬열
이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럼 형, 그리스 로마 신화도 진짜 있었던 거에요? 걔네들은 나대다가 진작에 망한 지가 천오백 년 전이야. 우린 아시
아 쪽 맡고 있어서 그쪽이랑은 잘 몰라, 하도 나대다가 망했다고 하더라고. 지금 유럽 지사는 예수가 임시로 맡은 지 오래 되었다는 민석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청소를 하고 있던 와중, 삼족오와 기린, 그리고 청룡이 도착했다는 말에 민석이 가보겠다며 내려가
기 시작했다. 세훈과 찬열만 둘이 남았다. 찬열은 문득, 청룡이라는 자가 궁금해졌다.
" 그럼, 청룡은 어떤 사람이야? "
"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좀 예전에 잘못을 해서 스승님께 뺨 맞고 쫓겨났죠. "
" 헐, 진짜? 무슨 잘못을 했는데? "
" 그게.. 좀 큰 잘못이었어요. "
찬열은 기겁을 했다. 오 맙소사! 나는 범죄자와 한 방을 써야하는 건가?
세훈이 형이 그렇게 한 건 절대 형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도착했다는 소식에 먼저 가보겠다며 천천히 오라
는 말을 남긴 채 창고를 나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먼지를 닦던 찬열이 세훈이 문을 닫으려 하자,
" 문은 열어놓고 가, 세훈아. "" 아, 네! "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세훈의 표정이 저렇게 굳었을까?
찬열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청소를 다 마치고 천천히 걸어나오던 찬열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싸우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언성이 높아지는 다툼임은 분명
했다. 말려야겠다 싶어서 큰방으로 달려나가던 찬열이, 비로소 싸움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
-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너?" 미안한데, 난 반성 하나도 안 했거든. 스승님, 아. 이제 스승님도 아니구나. 딱히 그렇게 부르고 싶지도 않고. "
- 너 진짜!
" 기껏 불러서 왔더니 용궁에 사과하라고, 허. 미쳤습니까, 내가 사과하게? "
찬열은 빡돌았다. 어르신한테 대꾸하는 말뽄새가 단단히 쓰레기였다! 뭔지 모르지만 귓가에 익은 목소리도 모르고 벌컥 문을 열고 상대의멱살을 잡은 찬열이 야 이 시바쇼키야, 하는 신랄한 욕부터 내뱉었다.
" 어르신한테 말하는 싸가지 보소, 너 진짜 개념이 덜 됐냐? 미쳤어? "
" 씨발 그쪽은 누군데 나보고 참견이ㅇ…… "
" 내가 주작이다 임마, 너 이 자식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청룡이면 다야? 어르신한테 하는 태도가 진짜.. "
멱살을 짤짤 흔들었지만 꿈쩍도 안 한다. 이상하게 말이 없다. 짜증이 확 난 찬열이 왜 말이 없냐고 되물으며 눈을 마주쳤다.
어? 어? 그런데.. 어?
싸…가지?
이번에는 찬열이 굳어버렸다.
" … 네가 주작이라고? "" 허얼…. "
말을 잇지 못하는 찬열으로 대답은 충분했다.그리고, 둘은 몹시도 커다란 패닉상태에 빠졌다. 쟤가 사신이라고? 쟤가?
+
나대지 않는 동양 사신들..ㅎㅎ 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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