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먼저 말하자면, 김태형의 음식은 매우 맛있다는 것이었다.
자취도 해본 적 없는 애가 언제 요리를 배우고 익힌건지는 알 길이 없다만, 어쨌거나 나보단 실력이 훨 좋았다.
나는 여러모로 김태형에게 꿀리는 면이 많았다. 예전엔 이것이 약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정도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면 내가 못하면 김태형이 해줄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달까. 거지본성, 조금 인정하는 바이다.
"어때, 어때?"
"뭐, 나쁘진 않네."
"오, 다행이다."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서 저렇게 묻는다면 맛이 없어도 맛있다 해줘야 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 맛있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굳이 김치찌개를 고집한 나를 위해 끓인 김치찌개 하나로 밥을 싹싹 비웠다. 어째 엄마와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식사 내내 저것만 먹을 것 같긴 하지만.
어느 새 불러온 배를 붙잡고 그대로 쇼파에 가서 누웠다. 그러자 김태형은 아까 마트에서 사온 딸기를 씻어 내왔다.
남녀의 역할이 약간 바뀐 것 같지만, 생소한 상황이 아니라는게 웃겼다.
쇼파 위에 쭉 뻗었던 다리를 접으니 그곳엔 김태형이 앉았다. 뉘였던 몸을 일으키자 티비가 있는 앞을 보고 앉아있는 김태형을 바라보는 꼴이 되었다.
김태형은 접시에 든 딸기를 제 입에 하나 넣더니, 고개를 돌려 다른 하나를 내 입에 넣었다. 그 와중에 딸기 존맛.
영혼없이 입에 든 딸기를 씹다가, 나도 김태형과 같이 자세를 고쳐 티비를 보았다.
딱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지 않는 밤시간인 탓에, 우리 둘은 참 무료한 표정으로 무엇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 김태형은 돌연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버렸다.
"뭐하냐."
"내 방 베개보다 푹신한듯."
"디져."
딱히 별 생각은 안들고, 머리가 존나 무거웠다. 빈 깡통 주제에 든 것도 없으면서 많이 든 척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티비를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태형이 티비를 아니라 밑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 눈을 내리깔았다.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더라. 나는 그게 부담스러워서 뭘 봐, 하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버렸지만 김태형은 곧 내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밑에서 보니까."
"... ..."
"못생겼다."
"디져, 진짜."
좋은 말 해줄거라고 예상 안 했다. 새개끼.
내 반응에 푸스스 웃던 김태형은 다시 고개를 돌려 티비를 본다. 그럼 나도 따라 티비를 보면서, 생각없이 그의 머리에 얹은 손으로 연신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그나마 보던 프로그램마저 끝이 나버렸을 때, 다시 내려다 본 김태형은 새근새근한 콧소리를 내며 잠들어있었다.
"... ..."
막상 김태형이 잠들어있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 지켜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티비에서 나오는 광고음악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나름 김태형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는데 깊게 잠든줄 알았더니만 갑자기 눈을 번쩍 뜬다.
눈을 마주친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나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김태형은 능청맞게 몸을 일으켜 애써 잠들지 않은 척을 했다.
"아, 재밌네."
"뭔 내용인데?"
"어?"
"안 잔 척 하네."
"...봤어?"
흫, 하며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김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더니 물을 들이킨다. 굳이 잠에서 깨려는 노력은 안해도 되는데.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며 거실 불을 끄더니, 리모콘으로 채널을 열심히 돌렸다. 바쁘게 넘어가던 채널은 처음 보는 영화가 나오는 곳에서 멈춘다.
"무슨 영화지?"
"나도 몰라. 그냥 하길래 틀었는데."
"볼 것도 없는데 그냥 보자."
우리는 그렇게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외국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불 꺼진 집안에선 티비가 훨 잘 보였다. 그러나 불을 끈 이상, 잠이 밀려오는 것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김태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째 번갈아가면서 졸으니 둘 다 깨어있는 시간이 더 적은 듯 했다.
비몽사몽한 정신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가 귓가에 들려온다 싶을 때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저 앞, 저 티비 속에서 주인공으로 예상되는 두 남녀의 뜨거운 키스신이 한창일 때 눈을 떴는지.
다시 눈을 감아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그 전에 고개를 들어 힐끗 바라 본 김태형이 티비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느 새 그 둘의 키스신은 끝이 났고, 남은 건 우리 둘만의 정적 속에서 눈을 맞추고 있는 우리였다.
"... ..."
"... ..."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김태형의 표정은 지난 날 온천 여행 밤에 보았던 그 표정과 다를게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 표정을 보는 나였다.
그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몰라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태형이 그 날 대답을 들으려한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오늘에서야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태형의 얼굴이, 내게로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떨려오는 마음을 감추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코 앞까지 그가 다가왔다는 것이 전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따뜻하고 보드란 무언가가 내 입술에 닿음과 동시에, 공중 어딘가에 굳어 어쩔 줄 몰라하던 나의 손은 그에게 붙잡힌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따뜻한 기운이 내 앞에서 사라지고 천천히 눈을 떴다.
티비에서 나오는 불빛에 비친 태형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얼굴이 확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처럼 뜨거웠다.
평소보다도 더 다정한 눈으로 날 보고 있는 태형이 부디 내 얼굴이 붉어진 것을 알아채지 않길 바랐다.
"예쁘다. 김탄소. 누구 건지, 참."
그러고보면 늘 그랬다. 매번 듣던 그 소리가, 매번 보는 저 눈빛은 수 년간 달라지지 않았었다.
다만 내가 그것이 나를 향한 것임을 아주 늦게 깨달았을 뿐.
항상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곳을 멀리 내다보려고 애썼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는데도, 나는 불가능한 것을 굳이 보겠다고 쓸데없이 힘을 썼다.
그 덕에 멀고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이 결국엔 제자리였지만, 처음부터 제자리에 서있던 나보단 지금의 내가 훨씬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물론 그 처음과 끝엔, 지금 내 앞에서 날 보며 미소 짓고있는 김태형이 있었다.
-
[ 김탄소 - 김태형♥ ]
[ 응? ]
[ 우리 오늘 며칠이야 - 김태형♥]
[ 어? ]
[ 며칠이냐고 우리 - 김태형♥ ]
[ 어...98일?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김태형♥ ]
[ ㅎ..ㅎㅎ헤헿 ]
[ 김탄소 머리 박아 - 김태형♥ ]
[ ㅈㅅ ]
[ 오늘 우리 백일이야 몰랐지? - 김태형♥ ]
[ 아냐 알았어 ]
[ 구라친다 - 김태형♥ ]
[ 미안 ]
[ 진짜 한번만 더 까먹으면 - 김태형♥ ]
[ 뽀뽀해버린다 - 김태형♥ ]
[ 뽀뽀충 ]
[ ... - 김태형♥ ]
[ 어디야 - 김태형♥ ]
[ 기달 과동에서 나가는 중 ]
사귄 일수를 까먹는건 내 머리가 나빠서 그런거니까 결론은 내 탓이 아니라 내 머리 탓임. ㅇㅇ.
사실 그 동안 몇 번 까먹어서 김태형한테 혼날 뻔, 이 아니라 많이 혼났지만 역시 내 머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요 며칠 사이에 우리 백일이 있다는건 알았지만 우리가 평소에 백일같은 기념일을 특별히 챙기지 말자고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까먹은게 맞다.
미안하지만 난 내 생일도 가끔 까먹는단다.
나는 내 과동을 나서 김태형의 과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마침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김태형이 보였다.
휴대폰에 빠져, 사실 나랑 카톡을 하는 중이라 앞을 보지 않길래 마침 잘못한게 있기도 해서 후다닥 달려가 안아버렸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나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내가 무섭다. 이러다 곧 능글거림이 김태형을 넘어설 듯.
"깜짝이야. 아니, 이게 누구야."
"응?"
"사귄 날짜도 모르는 김탄소야니야."
"하..하하. 모르는게 아니라 잠시 헷갈린거지."
"헷갈릴게 따로있지. 너 또 누구랑 사겨?"
"나 사실...수정이랑 일 년 넘었어..."
"하...너 걔야, 나야."
"...미안."
조금 혼날 뻔 했지만 상황극으로 넘어갔다. 내가 넘어간게 아니라 누가봐도 김태형이 일부러 넘어가준거였다.
굳이 우리의 어설픈 상황극에 언급된 수정이는 꿈에도 모르는 이 상황을 겨우 넘긴 채, 나와 김태형은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김태형이 자연스럽게 잡고있던 나의 손을 제 자켓 주머니에 넣는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 왜 그러나싶었는데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주머니 안에서 자신의 손을 한참 꼬물거리던 김태형이 다시 내 손을 빼냈을 땐, 나의 네번째 손가락엔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헐."
덕분에 가던 길을 멈추고 어느 샌가 내 손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바라보니, 김태형은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둥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날짜도 가끔씩 잊을 정도로 이런 것은 챙기지 말자고 얘기해놓고 이런 식으로 서프라이즈를 하니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해준게 없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김태형은 다시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야. 이게 뭐야. 난 해준 것도 없는데."
"괜찮아. 너 임자있다고 표시해놓은거야."
"와. 서로 안 챙겨주기로 해놓고..."
"맘에 안 들면 주던가."
"누가 맘에 안 든대?"
정말 빼앗을 것처럼 걸음까지 멈추길래 손을 뒤로 숨기며 방어를 했다. 내가 못챙겨준게 싫긴하지만 이 반지가 싫다는건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꽤나 흡족한 표정으로 반지를 구경하니, 김태형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바람에 헝클어져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해주더니,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 일 축하해."
"... ..."
"김탄소."
-
안녕하세요 여러분 꾸비입니다.
갑작스럽게 제목에 저 한자가 보여서 당황스러우셨나요? 하하
평소같은 엔딩, 그렇게 열린 해피 엔딩.
사실 예전부터 완결에 대해 운을 많이 띄워놓았기에, 그다지 갑작스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있습니ㄷ...
너무 슬퍼하진 마세요. 저도 나름 번외편 써보려고 생각 중이에용ㅎ
글잡에 처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첫 화부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은 커지고 커져 지금 아래 보이는 수많은 암호닉분들과, 구독료 내고 읽어주시는 신알신 독자님들을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나름 숨가쁘게 방학 시간을 이용해서 연재했던 작품이 어느덧 완결이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작품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여러분과 저와의 만남은 끝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제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사실 소꿉친구 김태형글이나 연재중인 연하남 민윤기글이나 갑자기 떠오른 소재로 갑자기 시작한 연재였기에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은 전개를 하려고했는데 뜻대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컹.
지금 연하남 민윤기글 말고도 나름 열심히 준비중인 작품이 있지만 올해 안으로 나오긴 할련지.....
그 동안 '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글과 완결까지 함께 달려와 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보냅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저나 이 작품에 질문이 있으시다면 댓글에 적어주세요+_+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가 될게요. 감사합니다♥
~♥~ ~♥~〈 소꿉친구 김태형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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