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경수는 청담동 자신의 샵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물뿌리개와 커피찌꺼기를 찾았다.
개수대로가 호스를 풀어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고, 아직 여린 작은 꽃들을 위한 소형 분무기도 찾아 물을 담았다.
경수는 자신이 찾은 물건들을 양 팔에 한가득 안고 가장 여린, 약한 꽃들부터 분무기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비닐에 담겨있던 짙은 갈색의 커피찌꺼기들을 플라스틱 스푼으로 조금 퍼서 화분안의 흙과 버무려 주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가게에 나와 꽃들을 가꾸는 것은 경수에게 항상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수 있게하는 활력소 였다.
가게 안 나머지 꽃들에게도 정성을 쏟은 경수는 남은 마지막 한 꽃을 보러 잘보이지 않는 가게 구석에 위치한 미니 온실의 문을 열었다.
온실 속 바이올렛. 미니 온실의 안에는 바이올렛이 한가득 차 있었다.
경수는 작고 연약한 바이올렛들에게 소형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그 중 자신의 손에 잡힐 만큼의 바이올렛을 꺼내어 작업대로 가져갔다.
오늘은 얼굴을 볼 수 있으려나. 작업대에 내려놓은 바이올렛 한묶음을 바라보던 경수는 생각에 잠긴얼굴로 정성스레 바이올렛의 줄기를 다듬고 길이를 맞추었다.
무늬없는 연분홍색깔의 종이포장지에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바이올렛들을 감싸 꼼꼼하게 포장을 마친 경수는 다시 샵의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자신이 다시 가게에 오기 전에 먼저 와있을 견습생들을 위해 경수는 샵의 문만을 잠근 채, 포장된 바이올렛 한다발을 들고 조용히 샵을 나섰다.
가게를 나선 경수는 가게 앞에 놓여있는 자신의 흰색 자전거를 타고 앞 바구니에 바이올렛를 내려 놓고, 페달을 밟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선지 몇십분이 흘러, 경수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거리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던 경수는 고급 주택들 중 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고급스러운 주택 앞에서 멈추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다보니 주변이 매우 고요했다.
경수는 거대한 아치형의 대문앞으로 다가갔다. 오늘도 이 집의벨을 누르지 못할 것 같다. 경수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고싶었다. 20년 동안 벌려진 세월. 이젠 알아 볼수도 없을, 아니... 난 이 저택에 사는 그 애의 얼굴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만날 수 있다면....
지독한 짝사랑이다. 나의 아프로디테.
경수는 쓰디 쓴 슬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우아하게 자신을 뽐내고 있는 예쁘게 포장된 바이올렛 한다발 을 거대한 대문앞에 살포시 내려놓은채,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다시 샵으로 향했다.
경수가 놓고간 잘 포장된 바이올렛 한다발 속에는, 하얀 종이의 작은 카드가 들어있었다.
My Aphrod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