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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본 글은 애니메이션 SPY X FAMILY의 설정을 차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야, 까마귀.”


  서걱.


  고꾸라지는 남자의 옆구리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몸을 돌려 날아오는 단검을 튕겨내고 나서야 대답할 수 있었다.


“자꾸 부르지 마, 곰. 집중 안 돼.”

“아니 너무 급하잖아 지금. 냅다 그렇게 썰어버리면 뒤처리 힘들다고.”

“말했잖아, 오늘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아, 도와달라 할 때 무시했어야 했는데.”


  우는 소리가 끊기질 않는다. 내려쳐지는 방망이를 피하고 등에 바늘을 찔러 넣자, 다시 귓속이 시끄러워졌다.


“적당히 하라니까?!”

“덤벼드는데 그럼 맞고 있어?”

“아니, 좀 사람 피해 가면서...”

“뭐? 잘 안 들려.”

“...됐다, 마음대로 해라...”


  바늘 하나가 다시 다른 사람의 목을 그었다. 순식간에 절명하는 눈동자를 슬쩍 피하며, 신속히 타깃이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다 처리하고, 정리하고, 피 씻고, 음식 준비하고. 8시까지 모든 것을 마치기엔 조금, 아주 조금 빠듯하다.


“곰.”

“왜.”

“나 정리 안 하고 가면 안 돼?”

“진짜 망할 까마귀...”


  으득.


  ...설마 이거 이 가는 소리인가.

  항상 묵묵하고 무던한 편이라 이쪽에 부탁한 건데. 눈치를 보는 척, 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안 돼?”

“...신혼이라 봐준다.”

“그게 거기까지 소문이 났어?”

“호랑이가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데 뭐.”


  아, 망할 놈. 열이 오르는 건지, 괜히 귀에 손이 갔다.


“어쨌든 호의는 고맙게 받을게.”


  바늘의 손잡이 뒷부분으로 문고리를 내려치자 단번에 잠금장치가 떨어져 나갔다. 걷어찬 문짝이 뜯어지는 소리와 곰의 목소리가 겹쳐 날카롭게 울렸다.


“됐고 빨리 마무리나 해. 더 피 흩뿌리지 말고.”

“음...”


  검은 경호원 무리, 그 뒤에 숨은 타깃. 어림잡아 스무 명...

  이미 피에 젖은 바늘을 손에서 한 번 돌리고, 깊이 심호흡했다.


“노력...은 해볼게.”

“야-”


  오른발에 무게를 실었다가, 앞으로 튀어 나간다.


“자알 부탁드립니다-”


  조기 퇴근을 위해서.




*** 




  집에 도착한 건 아주 아슬아슬한 시간 즈음이었다. 몸에 밴 핏물과 피비린내를 전부 씻어내고 슬립을 대강 주워 입었을 때쯤, 현관문 밖을 울리는 민규 씨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찰칵-


“...여주 씨?”


  보통은 문 앞에 나와 있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바로 나를 찾는다.

  아마 내 신발도 봤을 테니... 아직 준비 안 됐다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여주 씨, 집에 있죠? 대답해봐요.”


  이상하게 방으로 다가오는 목소리가 좀 급한 것 같았다. 

  이게 이럴 일인가, 하는 마음에 입을 열려는데.


“아, 네! 저 여기 있-”

“괜-”


  벌컥.


“-는데.”


  이게, 무슨.

  활짝 열려 버린 문짝 너머로 마주친 민규 씨의 낯은 전에 본 적 없이 심각했다.

  놀란 것도 잠시, 정확히 나를 바라보지 않도록 살짝 비껴내는 시선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꽤 가벼운 차림인 몸을 가리려 팔을 들 때쯤, 민규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합니다. 퇴근을 늦게 했나 보네요.”

“...네.”

“무사하면 됐어요.”


  쿵.


  ...이거, 내가 화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잠깐 안 보인다고 냅다 개인 방을 벌컥 열고 들어왔으니, 예의가 없는 쪽은 저쪽인데.


“안 보여서, 걱정돼서 그랬어요.”


  이렇게 사람을 녹이니, 또 뭐라 하냐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좀 기다리시지. 뭐 얼마나 위험한 일이 있다고.”


  사르르 풀린 마음이 왠지 억울해서, 괜히 샐쭉한 투로 말했더니,


“세상이 좀 흉흉해야죠. 마음이 급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또 다정한 사과가 돌아온다. 

  ...그 어떤 흉흉한 인간이 와도 아마 내가 이길 텐데. 이걸 말할 수도 없고.


“제 몸은 제가 잘 지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어디 쉽나요.”


  놀라긴 했어도 세상 무던한 눈으로 나갔으면서, 하여간 사람 설레게 하는 데엔 장인이다.


“앞으로는 걱정돼도 노크할게요.”

“네에.” 

“천천히 옷 입고 나와요.”


  자박, 멀어지며 작아지는 발소리의 자리를,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채웠다.


“...진짜 이러고 사는 게 가능할까.”


  저렇게 설레는 인간하고 부부 연기를 어떻게 하냔 말이야.




*** 




“...어쩌다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

“...건물 100미터 밖에서도 꽃향기가 나던데요. 누가 봐도 초대받는 사람이었어요.”

“아하하. 제가 좀 신났지 뭡니까.”


  몸의 두 배쯤은 되는 듯한 장미꽃 더미에 파묻힌 채 눈을 흘기니, 얄미운 눈이 살짝 윙크를 해보인다. 저 얼굴에 대형 꽃다발이면 동네방네 소문나고도 남을 텐데. 망할.


“...좀 얌전히 와도 됐을 텐데, 오빠.”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3. 집들이 | 인스티즈 

 


“으음, 하나밖에 없는 동생께서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겨얼혼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오니~”


  이를 드러내고 생글생글 웃는 입 위, 반짝이는 큰 눈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황급히 꽃 뒤로 숨었다.

  ...단단히 화났다, 저 새끼. 입만 웃고 있어.


“...그, 일단 꽃 좀 어떻게-”

“무겁겠어. 이리 줘요.”


  팔에서 무게가 덜어지는가 싶더니, 장미들이 휙 민규 씨의 품으로 넘어갔다. 

  장미 속에 묻힌 민규 씨.


“...이렇게 보니 꽃다발이 별로 안 큰 거 같기도 하고.”


  ...눈호강. 좋다.


“...그러게, 남편분이 엄청 덩치가 크시네~ 여주가 든든하겠어.”

“그렇게 느껴지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세상에.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있다. 분명히 홍당무가 됐을 것이다.


“...저 이만 나가도 될까요?”


  소름이 돋은 건 승관 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승관 씨!! 죄송해요. 민규 씨 진짜-”

“그냥 한 소린데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거예요? 괜히 내가 민망하게.”


  가볍게 웃는 미소가 다정하기 그지없다. 누가 봐도 신혼의 달달함을 즐기는 부부다.

  승관 씨도, 윤정한도, 하다못해 나까지 얼굴에 똥 씹은 표정을 띄웠다. 각자 조금씩 의미는 달랐던 것 같지만.


“민규 씨.”

“네?”

“얼른 저쪽에 꽃 두고 앉아요. 제발.”

“네에.”


  서운한 마냥 눈썹을 씰룩이고 가는 것까지. 하나같이 심장 떨어지게 하는 것 투성이다.

  이 모든 게 연기라니. 믿기질 않는다.


“...일단 앉을까? 좋은 와인을 가져왔거든.”

“...그래요, 일단 앉죠.”


  민규 씨가 연기를 잘 해서 다행이야.

  ...아닌가, 서운한 건가.


“...그래, 먹자. 민규 씨가 요리하느라 고생했거든.”

“다정하시네, 아주.”


  까득.


  ...오늘따라 이 가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 




  의외로 식사는 무난히 흘러갔다. 걱정했던 것보다 대화가 잘 흘러갔다, 이 말이다.


“여주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어요?”

“미인이시라 눈이 갔는데, 너무 엉뚱하셔서 귀엽더라고요.”


  조금 심장 떨어지고.


“아아, 그러고 보니 의사시라고요?”

“네, 시 외곽 쪽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월급쟁이세요?”

“원장입니다.”

“되게 어린 나이신데 그 정도면... 어우, 낙하산 아닌가 몰라~”

“오빠-”

“물려 받았으니... 그런 셈이긴 하죠. 부족한 점은 채우려고 많이 노력 중입니다.”


  윤정한이 시비 좀 걸고.


“...어우, 이거 맛있네요.”

“...그렇죠? 저도 요리할 때 조금 집어먹어 봤는데, 맛있더라고요.”

“많이 먹어. 너 좋아하는 걸로 했어.”


  승관 씨가 좀 먹고.


“근데 차리신 걸 보니 여주 견과류 알레르기 있는 건 모르시나?”

“...네?”

“아, 서국 가정이시라 동국 사람들한테 많이 있는 알레르기는 모르실 수 있겠네요~”


  다시 윤정한이 시비 좀 걸고...

  음?


“...왜 갑자기들 조용...?”


  문득, 내 쪽으로 시선이 쏠려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특히, 맞은편의 민규 씨가 설명을 요구하듯 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진짜예요?”

“네, 그렇긴 한데... 아.”


  그제야 안주가 잔뜩 쌓인 식탁 위로 시선이 떨어졌다. 대부분 데코를 위해 땅콩과 아몬드를 조금씩 뿌린 음식들. 개중엔 아예 견과류만 볶고 구운 것도 있었다.

  작업하고 와서는 입맛이 별로 돌지 않는 편이라 크게 상관없었건만. 적당히 견과류 안 뿌린 연어만 조금씩 집어먹고 있었는데, 이걸 들키네.


“...말하지 그랬어요.”


  민규 씨가 입술을 물었다. 마치 속상한 듯이.

  ...음, 너무 진심 같아 보여서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에이, 별로 배가 안 고프기도 했고, 제가 늦게 퇴근해서 준비도 늦어졌잖아요.”


  팅-


“어이쿠, 죄송해요. 손이 미끄러졌네요.”


  식기를 떨구는 소리가 분위기의 맥을 끊었다. 고마운 마음에 눈인사라도 하려 했지만, 승관 씨는 민규 씨 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눈치 볼 건 없는데. 고맙기도 해라.


“여튼, 그간은 견과류 들어간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고! 오늘은 정신이 없었다 보니 다들 돌아가시면 얘기하려고 했다, 이 말이에요.”

“남편분은 생각이 많으신 거 같은데?”

“...어느 정도는 든든한 남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먼 것 같아서요.”


  하하, 작게 웃는 민규 씨 오른손에 들린 포크가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이 많을 때의 버릇이다. 나는 괜찮다고 부러 크게 웃어 보였다.


“진짜 괜찮다니까요? 내가 얘기 안 해서 몰랐던 건데 어쩌겠어.”


  괜히 저러니까 안 그러던 게 서운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왠지 티가 날 것 같다는 생각에, 혹시 모를 실수를 방지하려 밀어둔 와인잔을 급히 입으로 가져갔다.


“음, 이거 향 좋다, 오빠.”

“그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응. H공화국에 출장 갔다더니, 그때 사온 거야? 라벨이 그쪽인데.”

“아-”


  윤정한은 잠깐 고개를 들더니, 제 출장지를 떠올리는 마냥 눈을 샐쭉하게 떴다.


“음, 맞어. H공화국. 맞는 거 같다. 거기 유명한 매장에서 샀어.”

“오, 어디요? H공화국이면 저도 어릴 때 살아서 아는데.”


  승관 씨가 끼어들었다. 좋아, 좋아. 주제가 아주 자연스럽게 바뀌었어.


“아, 그래요?”

“네네. H공화국 가서 사신다고 해도... 이거 상당히 비싼 거잖아요. 외무부는 월급이 꽤 되나 봐요. 부럽습니다.”

“그래도 할인하는 매장이 따로 있잖아요. 평균적으로는 한 20%? 제가 산 건 30%까지 했던 것 같아요.”

“할인 매장이요?”

“네, 그 옆에 유명한 식당 있잖아요. 할아버님이 하시는 맛집.”

“아아, 그 공항 근처 미슐랭 레스토랑 옆에 있는 가게 말하시는 거면 저도 가봤습니다. 거기 좋죠.”


  이번엔 민규 씨가 끼어들었다. 뭐야, 이 분위기. 나만 빼고 다 가봤나 보네.


“오, 아시나요? 이야, 나만 아는 매장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다 털렸었나 봐요?”

“저야 승관이가 알려줘서 갔죠. 그때 쟁여둔 와인이 좀 됐는데.”

“아이고, 다 어쩌시고.”

“다 비웠죠, 뭐. 여주 씨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묵혀둘 걸 그랬어요.”


  화기애애 이어지는 대화가 안정감 있었다. 조금은 마음이 놓여, 숨 한 번 돌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그래요.”


  민규 씨가 다정하게 웃더니, 내 얼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삐걱거리며 굳어 버린 귓속으로, 가벼운 숨과 목소리가 들어왔다.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3. 집들이 | 인스티즈 

 


“승관이 금방 갈 거래요. 방금 눈으로 말했어요.”

“...아.”

“좀만 참아요.”


  ...아무렇지도 않지, 아주.

  부러 살짝 흘겨봤다. 짓궂은 장난에 샐쭉하게 반응하는 마냥.


“...하여간.”


  얼른 움직여야겠다. 그래야 이 여러모로 목 막히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뚫을 수 있을 것 같거든. 




***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윤정한뿐이었다. 승관 씨가 곧 나간다고 했으니, 아마도 민규 씨가 배웅하는 모양이었다.


“승관 씨는 간 거야?”

“응. 너 남편은 배웅 갔고, 나도 갈 준비 중~”

“민규 씨 오면 가지 왜.”

“아까 인사는 했지~ 너랑 좀 얘기하고 내려가려고.”


  본인의 말대로, 윤정한은 의자에 걸어둔 재킷을 입는 중이었다. 

  그래도 간만에 본 의남매인데, 이렇게만 보니 조금 아쉽기도 해서 슬쩍 옆에 붙어 어깨를 툭 쳤다.


“어때, 궁금증은 풀렸어?”

“서국인 이민자 출신 정신과 의사. 29살. 키 크고, 단정하고, 꽤 잘생겼고.”

“뭐야, 그런 것만 궁금-”

“너 알레르기 있는 거 모르고. 너 진짜 생일 모르고. 너 고향도 정확히 모르고.”


  다시 숨이 턱, 막혔다. 역시 속여넘기긴 부족했나.


“...그거는.”

“몸은커녕 숨결만 닿아도 불편해하고. 애정 표현도 저쪽만 하고.”

“...오빠.”

“너가- 아, 진짜 별게 다 빡치게 하네.”


  단추가 튕겨 나간 윤정한의 장갑이 테이블에 내리쳐졌다. 웬만해선 볼 수 없는 심각한 눈이라, 난 잠자코 입을 닫았다.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3. 집들이 | 인스티즈 

 


“저 새낀... 그래, 적당히 멀쩡하고 잘 대해주는 것까진 부정 안 하겠는데.”

“.......”

“너가 쟬 좋아해서 1년을 같이 살고 있다고? 그건 도저히 못 믿겠다.”


  호감 있는 건 맞는데. 좋아하는 게 맞단 의미로 고개를 저었지만, 윤정한은 남은 장갑 한 짝도 마저 테이블에 던져버렸다.


“아무튼 나는 인정 안 해. 확신 들기 전까지 넌 나한테 미혼인 줄 알아.”

“...그래, 그래. 믿든 말든 알아서 하셔. 뭔 말을 해도 안 믿겠네.”

“알았으면 됐어.”


  살짝 얼굴을 가렸던 모자가 제자리가 돌아오고 난 후에야, 원래 내가 알던 윤정한의 눈이 돌아왔다. 화가 풀린 것과는 별개인 듯 했지만.


“그러게 그냥 예전처럼 나한테 시집오겠다 하라니까~”

“으, 언제적이야.”

“간다. 곧 승진할 거 같은데, 축하 파티 때 부를게.”

“그래.”

“남편은 꼭 떼어놓고 와라~”

“오빠 진짜-”


  쿵.


  어느새 닫힌 현관문 밖으로 멀어지는 발걸음. 저녁 내내 바라왔던 소리인데, 속은 영 시원하지가 않다.


“진짜 고집불통.”


  집들이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3. 집들이 | 인스티즈 

 


  팅, 찰칵. 팅, 찰칵. 팅-


“그럴 거면 그냥 피지 그래.”

“금방 들어갈 텐데, 굳이.”

“저걸 보고 참을 수가 있어? 하여간 대단해.”


  찰칵.


  사탕을 물고 웅얼거리는 ‘섬’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황혼’은 무심하게 왼손에 들려 있던 지포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분명 비흡연자라고 밝혔던 주시 대상은 벌써 세 개피째의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임무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대응 매뉴얼이 최신화된 걸 모르는 거 같지?”

“그냥 최신화가 안 된 걸 수도.”


  H공화국의 와인 매장, 노인이 운영하는 미슐랭 식당. 유사해 보이지만, 현지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패턴을 띄는 브랜드 라벨.


“국가 기관은 아무래도 매뉴얼을 일괄적으로 뜯어고치기 어려우니까.”


  분명히 그 와인은 동국의 보안국에만, 그것도 비밀 경찰들에게만 보급되는 최고급이었다.

  김민규의 아내에게 의남매라기엔 과도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게 분명한 인간이, 보안국 소속 경찰이라.


“...그냥 동생으로 보지는 않는 거 같은데.”


  아무리 가짜 부인이라지만, 진짜 김민규였다 한들 기분이 더러워질 것이 분명할 수준의 적의였다. 마치 연적을 보는 듯한.

  ‘섬’ 역시 동의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에 쌍심지 켜고 뒷조사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런다고 뭐가 나오진 않을 테니까.”

“여튼 조심해. 보안국이 한 다리 건너 수준에 있는 건 심각한 문제야.”

“알아.”


  왜 이렇게 시나리오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한숨을 삼킨 ‘황혼’은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남편으로서 작게 툴툴대는 말 정도면, 직접 집에 찾아오는 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맞아, 여주 씨에 관해서 하나 더 말할 게 있는데, ‘황혼’.”

“...아, 아까.”


  ‘손이 미끄러졌다’였으니까.


“늦게 퇴근했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조퇴를 썼지.”


  ‘황혼’의 눈썹이 삐딱하게 꿈틀거렸다.

  ‘시간’을 버는 거짓말. 보안국 소속의 지인. 일반인이라기엔 기민한 감각.

  과연 우연일까.


“깨끗한 게 무서운 쪽일지도.”


  토독, 토독.


  고개를 숙이고,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두드리는 게 몇 번.

  ‘섬’이 인내의 한숨을 내쉴 때쯤, ‘황혼’이 고개를 들었다.


“고민할 거 없지.”


  라이터가 딸깍거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황혼’의 입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간만이라고 그새 낯설어진 향을 깊숙이 들이마신 그는 빠르게 쪽지 하나를 썼다.


“뭐야?”

“전보. 들어가는 김에 부탁할게.”

“그래.”


  배웅이 아주 길어져야 할 것 같았다.




*** 




“김여주. 28세. 5월 26일생. 미혼.기혼. 수도 시청 기록관리부 소속.”
“남부 출신으로 예상. 고아.”
“기타 인간관계로 보이는 것은 확인 불가하나 친하게 지내는 남성 1명 존재.”
“- 윤정한. 31세. 정부청사 외무부 소속. 동향 지인으로 가족처럼 생활.
“- 보안국 비밀경찰 간부. 가족보다는 이성으로서의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관찰.”
“- 연루 가능성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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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
몰입도 최고

1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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