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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3/9/08) 게시물이에요

경수는 태생부터 눈이 안보이던 아이

그래서 경수는 깜깜한것에 어느정도 익숙했고, 그래서 왠만한 생활도 혼자 할수있는아이야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은 경수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여튼 경수는 눈은 안보이지만 글을쓰는작가야.

점자판으로 자신의 일기나 하루일과를 쓰고, 그걸 출판하고.

아무래도 실제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다보니, 뭉클한 이야기도 많고 왠만한 독자들사이에선 경수는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렇게 매번 경수는 자신의 글쓰는것을 도와주는 회사를 출근하는데

출근이라기보단,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준면과 소소하게 떠들러 가는거야.

 

내가 생각했던 경수는 면바지에 빨간 가디건에, 차분히 내려앉은 검은 머리카락 같은 분위기? 히

여튼 경수는 그렇게 어둡지만, 나름 행복한 삶을 살고있었지.

 

 

매번 경수는 아침마다 회사 앞 커피숍에 들리는데,

자신을 조건없이 도와주는 회사사람들에게 간식거리라도 사가는게 하루 첫시작의 일과로 자리매김한거지.

표지판을 보지 못해도, 매번 오는 자신을 반겨주며 친절히 메뉴를 읊어주는 백현덕에 경수는 더욱이 들리곤해.

 

백현이는 처음엔 의아했지.

무슨장애인이 이렇게 많이 시키나, 커피.. 종류좀 알려주실수있으신가요? 라고 물으면 내가 저 수십개를 다 읊어야하나

그런데 두눈뜨고 사지멀쩡한 자기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싹싹한 경수를 보면서

원래 말도없고 웃음도 없고. 매번 그냥 건조하게 살아왔던 백현이는 천천히 마음을 열어.

 

이게 포인트임..

경수는 30살 백현이는 20살

 

여튼 가끔씩은 주인몰래 자리를 비우곤 경수를 도와 짐을 덜어주는등,

백현이는 천천히 경수의 하루일과로 스며들어와.

 

경수는 워낙 조용하고, 소심한탓에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든 성격인데

이상하게 백현이만큼은 오래전부터 알고지내온듯 편하지.

 

 

백현이의 손은 이쁘다, 코도 이쁘고, 입술도 이쁘고. 말하는것도 이쁘고 다 이쁜데

손으로말고, 눈으로 보고싶다. 백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처음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궁금해지는거야.

 

한번도 이런적은 없었는데.

태어난이래로 줄곧 난원래 이런사람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자라서 한번도 시야가 보이는걸 부러워한적이없는데

 

처음으로 누군가와 눈이 맞추고 싶은거야.

백현이를 사랑하게 된거지

 

둘 사이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경수가 먼저 알아채고, 숨기려해.

백현이는 워낙 눈치가 없는 탓에 이감정이 사랑하는건지도 모르고, 자신을 피하는 경수에게 화가나지.

 

전전긍긍하며 아예 숍을 나와 문앞에 쭈구려 경수를 기다리는데

마침 커피숍을 피해가듯 멀리 빙돌아 가는 경수가 보여.

진짜 너무하네. 백현이는 경수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려는데

 

갑작스레 숨이 가빠오면서 쉰소리가 쉴새없이 나.

시야가 하얗게 됐다가 경수가 뿌옇게 흐려지더니, 정신을 잃어.

 

 

차트와 백현이를 번갈아보는 의사.

유전때문에 발병했던 병이 다시 재발한거야.

폐에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못해서 큰 섬유종같은게 생긴건데

수술을 해도 재발,해도 재발. 될대로 되란식으로 그냥 뒀던 혹이 점점커져서 점점눌러왔던거지.

 

혹을 떼버리면 제기능을 못할정도로 악화됐고,

수술을 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 의사는 냉정히 말을 끝마치곤 방에서 나갔지.

 

 

그때, 경수는 긴시간동안 고심한끝에 백현이를 찾아갔었지.

준면이도 그렇고, 경수도 그렇고. 백현이를 좋아하는걸 숨기는건 고백했다 차이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서

경수는 조용히 문을 열고 카운터로 다가가서 백현아 하고 불렀는데, 오늘 백현이 없다며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

주인은 뭔가 말하면 안될것같아서 그냥 백현이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은 생략하지.

 

김이잔뜩샌 경수가 집을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자신의지팡이를 빼들어.

왜이러세요!! 경수가 허우적 대는데 누군가가 경수를 세게 꼭안아.

이제 나랑 다니자. 이런거 필요없잖아

오랜만에 맡는 백현이의 향에 마음이 놓이지만, 왠일인지 목소리가 가득 젖었어.

 

뭔일인지 묻고싶지만, 그럴틈도없이 백현이가 경수에게 키스를해.

"내가, 내가 오늘 조금 아팠다?"

"뭐? 어디가!!"

"아니, 그냥 조금. 아주... 아주 조금."

"괜찮아?"

"응. 당연하지."

"........."

"근데 딱 너 밖에 생각이 안났어... 아무 말도 안들리고, 너만."

"........"

"그래서 그때야 안거야. 내가 도경수 진짜 사랑하는구나."

"......."

"미안, 너무 늦어서."

 

 

정말로 침대에 누워, 응급실에 가득한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의사의 말따윈 다 안들리고

오직 경수만 생각났던 백현이였어.

이감정이 진짜 사랑이였구나. 자신에게 시간이 안남은걸 알고나서야 왜 사랑이였다는걸 알게됐을까.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발은 경수에게로 뛰고 있었지.

 

 

그렇게 백현이는 일도 그만두고,

오로지 경수와 하루종일 매일 조금씩 추억을 쌓아가.

너무 아플때면 경수손을 잠시 놓고 입을 틀어막곤 고통을 삼키곤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경수는 마냥 좋았고,

백현이는 야위어 갔지.

 

 

그렇게 경수네집에서

경수를 재운 백현이가 집을 나오다가 문앞에서 준면이를 마주하게되.

커피숍 사장님한테 들었어. 얼마...못산다며.

백현이는 일단 경수에게 말하지 말아달라는 말이 먼저튀어나와. 나도 생각이란게 있어. 준면이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지.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준면이는 고개를 숙인채 죄인마냥 백현이 앞에 서있어.

형. 왜그래요.

천천히 들어올린 준면이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지.

나 너한테 이런소리하는거 진짜 염치없다는거 알아.

...

경수. 너대신 이세상 보여주고 싶지않아..?

 

 

백현이도 이전부터 생각했던 바야.

그런데 그눈이 자신의 눈이라는거 알면, 경수가 너무 괴로워할까봐. 겁이나서 차마 생각조차 못했던 거였었지.

 

그래도, 경수가 나대신 세상을 본다면

내가 봐왔던 세상을 경수가 이어준다면

죽어서도 경수의 눈이 내가 된다면.

 

백현이는 의사와의 의논끝에 경수몰래 결정을하지.

 

 

 

 

"간거야?"

"아니."

"................가지마."

"그래."

".........가면 안돼. 알았지?"

 

 

경수의 손을 좀 더 꽉 붙잡았다. 너 옆에 있었고, 있어. 내 귓가까지 타고흐르는 경수의 심장소리를 재워주려 경수의 귀에 속삭였다. 차마, 앞으로도 있어줄거란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애써 감춘 떨림이 가득한 손으로 경수의 머리를 쓰담어 주니 허공에 맡겨졌던 경수의 초점흐린 눈동자가 풀석 가라 앉았다. 무서움에 회색눈동자엔 벌써 눈물이 한가득 맺혔다.

 

 

"울지 않기로 했잖아."

"...........그래, 맞아."

 

 

울지 않기로했지, 맞아. 경수의 중얼거림이 공기를 타고 흩어졌다. 텅빈 복도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우리 둘은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그 와중에 스쳐간 경수의 울음. 또 경수몰래 흘린 나의 눈물. 허공에 시선을 던진채 불안한듯 끊임없이 내게 말을하는 경수를 열의것 보았다. 세상에 갓 태어날 성스러운 네 눈, 내 향기를 맡던 아름다운 네 코, 내가 사랑한 네 입술, 살짝 흩어지며 눈썹아래 걸친 향기로운 머리칼까지. 꼼꼼히, 세세하게 보았다.

 

 

"준비해주세요."

 

 

이제 모든 떨림을 멈춘듯 경수는 체념한 표정으로 제법 비슷한 위치를 나를 보려 노력했다. 나는 그런 경수의 노력에 반응하려 내 귓가에 머무른 시선으로 내 시선을 맞췄다. 경수와 마지막으로 맞춰 보는 눈맞춤.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곤 천천히 경수의 눈가로 다가가 입을 맞췄다. 다가오는 내숨결을 느꼈는지 파르르 눈을 감는다.

 

 

"끝나고, 나 다나으면."

"...........응."

"아저씨네 농장가자. 우리가 키우던 로로도 보구."

"............."

"응?"

".............선생님이 부르신다."

".............백현아?"

"떨지말고, 다 잘될꺼야."

 

 

당황스러움이 가득찬 눈동자를 바라보다 꼭 잡고있던 경수의 손에 키스를 했다. 다시끔 나를 부르려는 경수를 무시한채 내 손에 들렸던 경수의 손을 간호사에게로 넘겼다. 내 손길이 떨어지자 경수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쳤다. 백현아? 백현이는요?

차마 걸어서 그 곳까지 갈 용기가 안나, 간호사에게 사전에 부탁해놓은 것이다. 푸르게 빛나는 수술실의 등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경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선 간호사의 눈에 눈물이 가득고였다. 울지 마시라니까. 그렇게도 당부했건만 간호사는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수는 여전히 나를 찾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경수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 싫지않았다. 느껴지는 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씁쓸한 표정의 의사가 서있었다. 수술, 준비하시죠. 작게 웃은 나는 언제까지고 떨어지지 않을것만 같던 발을 뗐다.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괴로웠다.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경수의 모습들이 펼쳐졌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곤 경수 하나뿐이였는데. 하나뿐인 그 경수가 너무 큰 삶의 이유를 갖게했다. 상황이 이지경까지 오니 어쩐지 긴장감이 풀리는 기분이다. 죽으러 간다. 기분이 오묘했다. 내가 보던 세상을 경수에게 안겨준다는 벅참에 가슴이 떨렸다.

 

걸음을 멈추곤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몇 발치 못간채 시선을 두리번 대며 울듯한 경수가 보였다. 선생님. 잠시만요. 앞서가던 의사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깐만, 잠깐만요.

 

 

"백현아.........어딨어.."

경수야.

 

"응?...어딨어...어딨어... 장난치지마...."

경수야. 나 여기있어.

 

"............변백현!!!"

그리고

내가 살아온 내세상에 네가 있어.

 

 

 

 

이런느낌??

그래서 결국 백현이는 몸이 쇠약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면 마취제가 과량 들어가다보니 죽을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알고도, 수술을 들어갔다가 수술도중에 쇼크사로 죽고.

백현이의 눈으로 세상에 태어난 경수는 백현이를 찾지만.

준면이도 그렇고, 커피숍 사장도 그렇고, 모두들 백현이가 누구냐며 해.

환상이라고 믿게끔 상황이 경수를 압박했고, 새로보는 세상에, 다시끔 더 힘든 삶을 적응하다보니 그렇게 사랑했던 백현이는 조금씩 잊혀져 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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