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는 할 일이 있다며 연습실에도 들리지않고 그냥 쌩하니 가버리고 말았다. 힘이 빠진 채로 연습실에 돌아오니 날 반기는 김형태
“사과 했어요?”
“어?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브래드가 사과 안 받아줬어요?”
“그런 거 아닌데..그냥, 좀...기분이 그러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모으고 두 팔 사이로 얼굴을 묻자 살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오는 김형태의 손길이 느껴진다.
대체 어떻게해야 그와 다시 평범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이게 다 김형태 때문이야. 나쁜 놈.
“김형태.”
“왜요.”
“...나 진짜 좋아해?”
“아니요.”
너무나 태연하게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는 녀석.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손을 잡아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뭐?, 황당하다는듯이 물음을 던질때면 그는 곧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서는,
“나는 형 사랑하는데요.”
또 내 마음을 벅차게 만드는 말을 내뱉어버린다.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자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얼굴을 묻으려는데
나의 얼굴을 감싸오는 김형태의 손이 내 행동을 저지한다. 차가운 김형태의 손, 내 볼의 체온을 빼앗기는 걸 느낀다. 으...
“진짠데.”
“ㅁ..뭐가”
“내가 형 사랑하는 거, 진짜라고요.”
“누..누가 가짜래?”
“안 믿잖아요 지금.”
“아, 믿으니까 손 치워...니 손 차가워”
“형 볼은 따끈따끈하네요, 손 좀 녹여야겠당”
날 난로로 생각하는거냐, 하고 물으니 네. 하고 간단하게 대답해버리는 김형태. 얄미운 녀석.
하지만 그의 얼음장같은 손이 안쓰러워 내 볼 위에 놓여진 그의 손을 뿌리치지않고 얌전히 그 상태로 몇 분을 있었는지.
김형태의 손이 내 볼의 체온과 같아진 것 같다.
“이제 손 따뜻하지.”
“네, 귀여운 난로씨 덕분에요”
“...뭐?”
“..흐흐흐..아 나 이런 거 못하겠어요 내 체질아니야 진짜.”
발을 동동 구르며 실실 웃더니 곧 정색을 하는 김형태, 누가 그런 거 해달랬냐. 하지만...뭐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김형태한테 낯간지러운 말 듣는 거. 흠..조금 좋은 거 같기도..?
“형은 아무 말도 안 해줄거에요?”
“무슨 말.”
“뭐..사랑한다, 좋아한다...많잖아요.”
“싫어, 낯간지러워”
“와, 겁나 냉정해. 나 삐졌어요.”
아예 자기가 삐졌다며 광고를 내고 다니는 김형태. 우물쭈물거리다 사랑해. 하고 말하니 금새 기분이 풀어져서 나에게 안긴다.
은근히 쉬운 남자라니까. 쉬운 남자는 매력없는데, 김형태는 왜 이렇게 매력이 철철 넘치는지.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뭘요?”
“브래드말이야..”
괜히 분위기 망치는 말을 했나, 은근슬쩍 굳어지는 김형태의 얼굴..그러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다.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감싸고 둘 다 아무 말이 없자 살며시 입을 떼는 김형태.
“브래드한테 미안하죠..내가 아니었더라면 둘이 사귀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너 아니었더라도 브래드랑 연애 안 했을거라고.”
“왜요? 솔직히 브래드, 애인으로 괜찮잖아요. 자상하지, 배려심 넘치지..또 훈훈하고..”
“헐, 그럼 브래드랑 사귀지 왜 나랑 사귀냐.”
“에이..삐졌어요? 난 장범준씨가 더 좋으니까. 걱정말아요.”
내가 더 좋다는 김형태의 말에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으, 나 이렇게 쉬운 남자아닌데.
김형태때문에 차가워진 손을 가만히 볼에 대고 있으려니 진정이 된 듯한 볼. 그런 나를 보고 김형태는 흐흐, 웃어대다 갑자기 입을 뗀다.
“형, 우리 어디 데이트하러갈래요? 브래드없으니까 맞춰보지도 못하고..”
“그냥 개인연습해..”
“아..그래두요.”
풀려버린 기타줄을 튜닝하느라 혼자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김형태의 수다에 대꾸도 잘 안하니 토라졌는지
금세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베이스를 꽉 쥐고 나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녀석. 베이스 부러지겠다 임마.
“아, 알았어. 데이트, 하자 해!”
“진짜죠?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봤냐. 대신 오늘만이다?”
“네!!범준 형 완전 멋져!!!”
금세 신나서는 방방 뛰어대는 김형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귀여워 웃음밖에 안 나온다.
신난 그가 고심하며 겨우겨우 고른 데이트장소는 카페. 남자 둘이 카페라니 예전같으면 절대 안했을 짓인데..
김형태 덕분에 별걸 다한다. 하여튼 자리에 착석해 나는 코코아를, 그 놈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 쓴 걸 무슨 맛으로 먹는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음료가 나온 뒤 그는 꽤나 만족한 표정이다.
“맛있냐, 그게?”
“나름..? 어린애는 모르는 어른의 맛이에요.”
“..너 지금 내가 애라는거냐.”
“아니었어요?”
겨우 아메리카노 못 마신다고 비웃음을 입가에 한껏 담아 날리는 김형태.
와나, 진짜 내가 서러워서 먹는다. 김형태의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집어들고 한 모금 넘겨보니.
역시나 목을 타고 느껴지는 쓴 맛에 내 손에 들린 핫초코를 두어모금 연달아 넘겼다.
“써...”
“애는 모르는 맛이라니까요, 장범준 어린이.”
얘가 방금 뭐라고 한거야...장범준 어린이...? 와...진짜..오글거린다. 그리고, 좀...좋은 기분?
입가에 살며시 웃음이 번지고 곧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린다. 낮은 웃음소리로 실컷 웃어버리니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대는 김형태.
“왜..왜요.”
“와..진짜, 귀엽다 너.”
“..흠, 제가 한 귀염하죠. 원래 아셨잖아요.”
“흐흐, 원래 알긴 했지..그런데 이렇게 귀여운 줄은 몰랐는데에..흐흐흫”
“아, 왜 자꾸 웃어요..흐흫..”
기분좋은 웃음이 내 귓가에 울려퍼지고 얼마나 그렇게 웃었을까. 우리의 웃음소리때문에 카페의 시선이 우리한테 쏠려버렸다.
어째 그 시선이 부끄러워 아직도 반쯤 남은 코코아를 남겨두고 김형태와 함께 카페를 나왔다.
“바보같이 그런 말은 왜 해서..코코아 아깝다.”
“먹고싶어요?”
“응.”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던 김형태가 발견하고 달려간 곳은 편의점? 어느 곳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그 초록색 간판의 편의점이다.
5분도 채 안되서 커피 컵에 납작한 빨간 빨대를 꽂아 내게 가지고 온 김형태. 컵을 받아보니 따끈따끈한 온기가 손으로 전해져온다.
“뭐, 싸구려긴 하지만 우리 범준형이 먹고싶다는데..”
“흐흐흐..와, 김형태..”
“왜요, 감동받아서 말이 안 나와요?”
“...고마워.”
“뭘요, 사랑하는 애인위해서 이 정도야 못해주겠어요?”
김형태가 내뱉은 낯간지러운 말들이 내 입가를 간질인다. 진짜 감동이다.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또 번지고.
“사랑해.”
“에?”
“..흠, 못 들었으면 말고.”
“와, 지금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거 맞죠?”
“...”
“진짜구나..흐흫, 나두요. 나도 사랑해요.”
내 손을 은근슬쩍 잡아오는 김형태. 그의 손은 내 체온 덕분이었는지 내가 들고있는 코코아와 같이 따뜻했다.
그와 손을 마주잡고 즐겁게 걷는 이 거리는 내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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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완결이 얼마 안 남았군요..
늦게 올리기는 싫은데 제 손도 안 따라주고 시험도 얼마 안남아서 말이죠ㅠㅠㅠㅠ
여튼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구, 완결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