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짝 - '
강렬한 마찰음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 누구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마치 고요한 밤처럼 말이다.
돌아간 고갤 다시 돌려 꼿꼿히 세웠던 목을 슬슬 푸는 찬열의 모습은 마치 사자가 잠시 쉬는 타임을 갖는 것처럼 오묘한 위압감이 넘쳐 흘렀다.
"너 지금 뭐 했냐."
"......"
"OOO."
위협적이게 자신을 부르는 찬열에도 OO은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듯이 조용히 이글이글 타오르는 찬열의 눈을 마주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 것보다는 솔직히 떨렸다. 굉장히. 그건 당연했다.
"네가 먼저 나한테 음담패설을 했잖아."
"...허."
"이건 정당방위야."
뻔뻔한 건지 맞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찬열은 OO의 벌벌 떠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귀를 찌르는 수업 시간 종이 울렸다. 약 15초간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소리 없는 신경전이 몇 분 간 흘렀을까. 여기저기서 교실로 들어오라는 선생님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제서야 그 주변의 방관자들은 하나, 둘 씩 움직이고 싶지 않은 다리를 옮겨 서서히 사라졌다.
둘만 빼고.
복도는 조용해졌다. 아직도 둘은 남아있다. 음담패설을 날린 찬열과 정당방위로 그의 뺨을 친 OO. 서로 소리 없이 몇 분을 보냈다. 물론 심심하게 보낸 것이 아니라, 둘 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그 후, 찬열은 갑자기 한 쪽 입고리를 올려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너 존나 재밌다."
"뭐?"
"저- 아래 하위층 년 맛은 어떨지 궁금해서 장난 좀 쳤는데 뺨을 쳐? 푸하."
"......."
"OO아, 우리 자주 볼래?"
어깨를 툭툭 치는 게 심히 거슬렸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어라 할 생각이 없었다. 웃는 그 얼굴이 마치,
"답이 없네. 자주 보자."
"......"
"덕분에 학교 생활 존나 재밌을 거 같다."
소설에서만 보던 악마 같아서.
어릴 때 나는 공주 같이 자랐었다. 실제로 우리 집은 존나, 진짜 잘 살았었다. 갖고 싶은 바비 인형과 그에 걸맞는 샤랄라 드레스는 기본. 얼마나 잘 살았던지 눈 한 번 감고 나면 여러 고위층 사람들과 그의 아이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항상 한 손에는 바비 인형을, 나머지 한 손에는 달짝지근한 쿠키를 들고 그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놀며 자랐었다.
그 행복한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중 끝이 나버렸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 아버지, 집에 찾아오는 검은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 비싸디 비싼 가구들에 붙어버린 빨간 딱지들.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단 말이지. 나름 어린 나이에 나는 충격을 꽤 받아 며칠 입원해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퇴원했어야 했다. 그 많던 돈들이 다 사라져버렸으니까.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아버지가 카지노에 가서 모두 진탕 썼다고 들었다. 게다가 우리 집까지 팔았다. 나쁜 새끼.
지금은 그럭저럭 자리를 잘 잡았다. 주변에서 돈을 받지는 않았다. 제대로 말하면 받지 못 했다. 어느새 소문이 난 건지 돈을 빌릴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우리를 감싸주는 이 하나 없었다. 차가운 시선들과 맞딱뜨린 우리 집안이 미웠다. 그리고 그들이 미웠다. 파티에서 그렇게 처마시고 처먹은 건 내뱉어야 할 거 아니냐며 벌벌 떨던 나와 힘 없는 우리 엄마. 그리고 가출 소년이 된 우리 오빠.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튼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렇다고 생각하려고 노력도 했지만 정말이다. 사회 배려자 전형 (실상은 이름 있던 망한 회사 사장들의 아들 딸 다니게 해주는 것이다) 으로 간신히 입학했다. 그냥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엄마의 반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협박 아닌 협박을 당했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뺨 친거 빼고는. 나는 친구 하나 없이 학교를 조용히 보냈다. 고1, 2학년을 허무하게. 반강제로 성적만을 위해 달려온 내 2년은 좀 어이 없게도 달라질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이동 수업을 위해 3층 음악실로 이동하던 중 목이 말라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어디선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쟤 누구냐."
"몰라. 니가 모르면 내가 다 아는 줄 아냐."
"처음 보는 앤데. 전학 왔나?"
"몰라."
"생긴 게 꼭 여우 같네."
그 이후로 나는 물을 들이키면서 수치심 가득한 음담패설들을 들어야만 했다. 무슨 술집에서 본 것 같다니, 며칠 전 같이 모텔에 간 년이랑 비슷하다니. 지랄 똥방구 같은 말만 싸지르는 게 너무 싫었다. 가만히 있으려 해도 온 몸에 이미 열이 올랐고 기분은 나빠질대로 나빠져 핀트가 끊긴 지 오래였다. 그런 엿 같은 소릴 들어본 적이 처음이어서. 그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는 뺨을 내리쳤다.
뺨을 내리친 댓가로 나를 자주 본댔다. 그리고 내 폰은 쉴 틈 없이 카톡이 울려댔다. 카, 카, 카토, 카, 카톡. 카톡. 처음에 렉이라도 난 줄 싶었으나 아니었다. 창을 켜보니 그들의 유치하고 깊은 괴롭힘이 시작이라도 된 것 마냥 나를 여러 명의 대화방에 초대하며 나에 대한 욕을 아주 상세하게 퍼부어주었다. 이게 웬 초딩짓인지. 처음에 보다가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어서 그냥 꺼버렸다.
시끄러울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내 휴대폰은 카톡, 카톡. 알림음을 내며 오랜만에 실어증을 벗어난 환자처럼 제 할 일을 다했다.
"어쭈. 안 봐?"
"니 새끼는 나이 헛값으로 먹었냐. 애들 불러서 뭐 하는 거야."
"이 정도는 애기들 장난이란 걸 알게 해 줘야지."
유치하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찬열의 행동은 이상하리 만큼 유치원생 같았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옆에서 들리는 웃음 소리에 세훈은 은근슬쩍 찬열의 휴대폰을 봤다. 보자마자 한숨과 동시에 나의 친구가 정말 병신이구나, 를 느꼈다. 대화방에 누군갈 초대해 놓고 치졸한 아이로 몰아가며 그 아이를 욕했다. 그것도 두 시간 씩이나. 할 일 없냐며 그만하라고 말하기도 지쳤다. 이 새끼가 왜 이러나.
세훈의 머리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풀어나갈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