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왔어."
"......"
"박찬열, 너 내가 다신 술 처먹고 오지 말랬,"
"오늘이 마지막이야."
"......"
"OO아, 정말 내가 다신 보기 싫어?"
구남친 히스테리
ep. 1, 3년만의 재회
머리? 완벽. 옷도 완벽. 완벽한 신입쟁이 같은 메이크업, 모두 다 완벽. 멘탈은... 나름 완벽.
전신 거울에 서서 모델이라도 된 양 이리저리 둘러 보며 완벽하게 된 모습을 확인했다. 나는 오늘,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될 면접을 보러 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 3년간 나는 짙은 백수 생활을 했어야만 했다. 물론 끝 없는 자소서 쓰기와 면접은 틈틈히 봐왔지만 모두 탈락. 항상 면접이 끝나고 나 같은 인재를 뽑지 않은 회사들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것도 지쳤다. 이번에 안 되면 내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른다. 기필코 합격하길 나도, 가족들도 모두 빌었다. 신이시여, 지겨운 백수 생활에서 탈출하게 해 주소서. 제발.
드디어 회사 앞을 도착했다. 회사 입구 쪽 큰 게시판에는 인재를 채용한다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 인재 자리 중 하나는 꼭 내 것이길. 당당하게 회사 안으로 돌진했다.
직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내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고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이리저리 뛰다니는 사람도 몇몇 보였다. 면접을 보러올 때마다 이런 광경을 봐왔지만 항상 부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도 시계를 보곤 늦지 않게 얼른 면접 대기실로 바삐 뛰어갔다.
"허얼......"
정녕 이 많은 사람들이 내 라이벌이라는 건가요...?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큰 강당인 대기실에 모여 각자 면접 연습을 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큰 기업 쪽 회사에 지원하여 1차 서류 심사에 통과한 게 자랑으로 여겼던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된 걸 깨달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조금 더 연습하고 올걸. 후회가 물 밀려오는 순간에도 최대한 사람이 덜 모인 곳으로 가 자리에 섰다.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아 미리 챙겨온 물을 가방에서 꺼냈다.
"저기."
"네?"
"저도 물 조금만 마실 수 있을까요? 정수기 쪽에 이미 줄을 서서."
"아... 네. 여기요."
물을 들이키고 나서 가방에 넣으려던 참에 옆에 있던 귀염상의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통을 가리켰다. 흔쾌히 건네자 후딱 헤치우고선 다시 나에게 되돌려주었다. 빈통으로 손에 쥐어진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같이 면접 보러 온 처지이니 괜히 예민하게 굴지 않고 조용히 물통을 받았다. 마음을 다잡으며 점점 면접장으로 불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또다시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떨리시죠?"
언뜻 들으면 되게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어투에서 나오는 공감의 표현에 나는 고갤 끄덕이며 대충 답했다. 네, 그러네요.
"저두요.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하하."
"그러게요."
"친절하게 물도 주셨으니까 꼭 붙으실 거예요."
물론 저도 꼭 붙었으면 좋겠지만요.
살짝 어린아이 같은 말에 웃으며 감사하다고 전하려 하는데, 번호를 부르는 면접장의 말에 자기 번호가 속해있었는지 인사를 하고 잽싸게 튀어나가는 모습만 봐야했다. 남 걱정보다는... 자기 일이나 잘 해야 할 것 같은 타입이다. 요즘 제 밥 챙기랴 바쁜 사람들이 널렸는데 그 사이에서도 순수한 사람이 있긴 있구나.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418번부터 426번 지원자, 면접실로 오세요."
그리고 418번인 내 번호가 불리고, 나는 지옥으로 가는 경험을 한 것 같다.
나에 대한 면접은 모두 끝나고, 뒷 번호의 사람들이 서서히 면접을 마쳐가는 중이다. 나름 엘리트 사원을 꿈꾸는 나로서는 꽤 당차고 자신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질문은 좀 더 관심있게 답할 걸 그랬나. 혹시나 라는 설레임, 뒤늦은 후회가 뒤섞여 기분이 미묘해지는데, 맨 마지막 순서의 지원자가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고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낯익은 한 인물이 들어왔다.
"오, 박 팀장. 서류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컨설팅 부서는,..."
믿을 수 없음에 눈을 여러 번 깜빡여 보기도 하고 남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여기는 회사 면접실이고 나는 지원자이며, 내 앞에 있는 면접관에게 서류를 건네 주며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네, 부장님. 가보도록 하겠,"
"...왜 그러나 박 팀장?"
나와 눈을 마주치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그 사람은,
4년 연애에 종지부를 찍게 해 준 구애인, 구남친 박찬열이었다.
- 허얼. 세상에 마상에. 진짜 박찬열이었어?
"내 눈이 고자가 아닌 이상, 박찬열이었어."
- 세상에... 걔 원래 공부 존나 못하지 않았어? 팀장이라니. 대박이다.
너랑 헤어지고 나서 올 A+ 받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였구나.
"그런 거 얘기하지 마."
- 니가 먼저 걔 얘기 꺼냈잖아, 지지배야!
오피스텔 안, 잡 것들을 넣어 만든 비빔밥을 먹으며 대학 때부터 친한 수정이와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면접은 잘 봤냐'로 시작해서 박찬열 얘기까지. 버스에서부터 입이 근질거려 집까지 참으며 오느라 고생한 걸 수정이에게 풀어내듯 모두 털어놓으니 또 옛 과거 생각나게 나불댔다. 괜히 성질을 내니 스타트를 찍은 건 나라며 저가 더 발끈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영 시원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좀 털어놓은 게 있으면 시원해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제외인가. 비빔밥을 입에 한 입 더 넣어 꿀꺽 삼켰다.
- 너 면접 통과하면 바로 사원 되는 거야?
"그렇지."
- 이번엔 좀 붙어라, 지지배야. 네 면접 후기 듣는 것도 질려 죽겠어.
다음 에 된다면 박찬열 마주친 후기도 꼭,
"진짜 죽을래 박수정!"
- 아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래도! 아 몰라 나 밥 먹을 거야. 끊어!
홧김에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진짜 밥 맛 떨어지게!
끊자마자 수정이의 비속어가 풍부한 문자가 오긴 했지만 휴대폰을 뒤집어버리고 먹는 것에 열중했다. 마주친 후기는 무슨. 그 큰 회사에서 어떻게 마주치겠어.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모를까 설마 맨날 마주치겠냐고. 그리고 내가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리고 나는 일주일 후,
"...붙었다."
노트북 화면 중앙에 크게 써져있는 'OOO: 합격' 이라는 문구를 보며 기쁜 마음에 울 수 있었고
"아, 두 분 다 이리로 오세요."
"......"
"두 분의 부서 팀장인 박찬열 팀장입니다. 인사하세요."
내 부서의 팀장인 박찬열을 보게 되었다.
*****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