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 졸라 져아. 오세훈이, 한 쟌 더 콜?"
"아줌마 여기 계산이요!"
"뭘 계산이야! 계산은 지랄..."
지랄은, 지랄은... 세후니. 헤헤. 세상이 돈다 돌아!
텅 빈 소주병을 들고 세훈이에게 윙크를 하니 더럽다는 얼굴로 지갑을 꺼내들었다.
너,.. 너 이 새끼... 이게 뒤질라고...
"오세훈 뒤질래? 오늘 계산은 내가 한댔쟈나!!!!!!!!!!!!!!!!!!!!"
"아오. 쪽팔리게 진짜. OOO 좀 조용히 해!"
"아줌마! 내 돈 받아여 내 돈!!!!!!!! 저 새끼 거지란 말이에여!"
"학, 학생! 이미 돈 받았어 왜 이래!"
이미 세훈이와 계산을 끝낸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앞치마를 붙잡고 말했다. 왜! 내 돈은! 안 받아여!
아주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세훈이를 보는 듯 했고
세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있던 나에게 왔다. 내가 학생이라는 말 때문에 앞치마를 놓은 건 전혀 아니었다. 절대. (방년 스물다섯 세)
의자에 몸뚱아리를 맡긴 날 끙차, 일으켜 세우며 옆에 있던 의자에 놓여있는 목도리를 집었다.
세훈아 우리 진짜 가...? 이대로 가긴 아쉬운데.
"후나. 우리 저어~기 편의점에서,"
"안 돼."
"좀 듣고 말해..."
"뻔하거든? 혀도 꼬인 게 내 이름도 제대로 못 말하면서 어디서 술투정이야."
"아 우리 오랜만에 봤잖아!!!"
"그저께 우리 집에 치맥 들고 온 등신이 누구더라."
"ㅎㅎ 새끼."
기억력도 좋은 내 새끼. 오구오구.
차근차근 내 목에 목도리를 감는 세훈이가 오늘따라 차암 잘생겨보였다. 나는 미친 게 분명할 거야.
미친 셈 치고 팔을 쭈욱 벌렸다가, 두 손바닥을 세훈이 볼로 명중했다.
짝!
"아 씨발. 진짜 아팠다?"
"새끼야~ 너 오늘 좀 잘생겼네?"
"...뭐라는 거야."
"너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여친은 존나 벤츠 탄 거네~ 잘생겼지, 이케 목도리도 돌돌 감아주구!"
"......"
"돌돌... 돌돌말이... 계란말이 먹고 시따 ㅎ"
"돼지년... 수고하세요."
목도리를 다 감자마자 내 가방과 자기 짐을 어깨에 매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으 씨발 존춥! 택시를 부르겠다며 세훈이는 도로 주변으로 갔고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려 눈바람을 피하려 애썼다.
...
눈바람?
"헐 눈 온다!!!!!!!!!!!"
"아 OOO!"
분명 나는 일 자로 잘 걷는 기분인데, 왜 옆 상가 유리창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그렇지 못한 걸까.
아까 눈 오는 것에 취해 존나 뛰어다니다 결국 한바탕 넘어져서야 눈놀이는 끝났다. 흐으, 졸라 아퍼.
내 중얼거림에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내가 작작하랬지. 세훈이의 엄한 목소리가 꼭 우리 엄마 같았다.
남자니까 엄마는 좀 그런가. 그럼 아빠? 아빠인 것 같긴 하지만...
"세후니 너 금방 내 남편 같았다."
"......뭐래."
"엄마는 좀 그렇잖아. 아빠 같다기엔 좀..."
"......"
"우리 아빠가 너무 잘생겼어. 넌 못생겼구."
"허."
"니가 내 남편은 존나 못생길 거라며? 그래서 그랬지~ 흐헤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훈이의 손가락이 내 이마를 통, 쳤다.
어쭈? 지금 한 번 해 보자는 거? 곧이어 내가 허리를 주먹으로 콱 치니 아프다며 찡찡댄다.
남자 새끼가 찡찡 대기는.
"그나저나 기분 개꿀인데?"
"술만 마시면 그렇잖아, 너."
"그러니까 우리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한 잔,"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술 깨게."
으응 그래... 씨발 나는 말할 권리도 없고 마실 권리도 없어요... 아빠, 아니, 남편 보다 못한 새끼...
***
"으으. 추운데 맛있어!"
"돼지니까."
"...그래! 나 돼지다! 하나 더 사먹을 거야!"
"감기 걸려."
"아 먹을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먹고 시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흐어ㅓㅓ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휴... 니 감기 걸려도 내 탓 아니다?"
"ㅇㅇ 당연하져 형! 그럼 나 사고 올게."
"ㅋㅋㅋ형이란다.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게. 걍 앉아 있어."
메로나 사야 돼 메로나!!!!!!!!!!!!!!!
나의 절규스러운 외침에 세훈이는 편의점 쪽으로 걸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보였다.
저래도 사오라는 건 참 잘 사와. ㅎㅎ.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앉아 이 새끼는 과연 아이스크림을 사는 데 몇 분이 걸리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으슥한 골목에서 나오는 남정네들을 발견했다.
발견이라기 보단, 눈을 돌렸는데 거기에 남정네들이 있었다라고 해야하나?
그런 이유로 나는 다시 새삼 새로운 우리 동네를 관찰하고 있는데
그 남정네들이 슬슬 주변으로 오는가 싶더니, 원래 세훈이의 자리였던 내 맞은편의 파라솔 의자에 한 명이 앉혀졌다.
거기 후니 자린데에... 내 중얼거림은 듣지 못했는지 지들끼리 쑥덕거리며 킥킥 웃기 바쁜 듯 했다.
"애기야, 여기서 혼자 뭐 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ㅋㅋ"
"혼자는 아니구우...ㅎㅎㅎ 아이스크림 머꾸 있잖아여."
"ㅋㅋㅋㅋ 존나 귀엽다. 오빠들이랑 안 놀래?"
애기라니... 내가 애기라니 ㅎㅎ!
은글슬쩍 테이블 위에 있던 내 손을 잡는 것도 모른 채 애기인 나로서 묵찌빠를 하자고 주장하려 했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하기 바빠 보여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대충 내용이 모텔, 폰카... 자세히 뭔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며 나를 이끄는 남정네들의 손에 이끌리고 있었다.
"개새끼들아."
"......"
"돌았나. 손 안 놔?"
씨발 좆됐다. 내 옆에 있던 남정네가 말한 것 같다.
좆은 무슨 좆이여. 좆은 남자의 신체 일부...
"콩밥 신세 되고 싶냐? 어딜 여자를 건드려."
"저, 저희 일행인데요!"
"지랄하고 있네. 걔 내 여자친구다 미친놈들아."
"...야, 튀어!"
그러면서 나를 바닥에 떨구고는 지들끼리 슝 가버렸다.
아니 씨발 사람을 두고 갈 거면 곱게 처가든가아... 아프게...ㅠㅠ
"OOO, 너 다친 데 없어?"
"아파 죽겠네에... 긍데 아이스크림 어디있,"
"너 지금 뭐가 중요한지 몰라?"
"......"
"너 뒤질 뻔했다고, 이 답답아..."
뒤늦게 술이 깨는 것 같이 머리가 아팠다.
그 이후로는, 둘 다 아무런 말도 없이 집으로 가는 중이다.
오세훈이 내 손을 덥석 잡고서는 '위험하다. 집에 가자.' 라며 거의 끌려간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걸었다.
술이 깨고 상황파악이 된 나도 금방 일어난 일에 대해 자책하며 빠른 세훈이의 걸음을 따라갔다.
나란 년... 거기에서 어떻게 실실 웃고 있을 수 있었지... 씨발 개소름이다...(자책)
무섭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밀려와 나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사과라고 해야 하는데... 망설이는 와중에 벌써 집 앞에 도착했다.
"...조심히 들어가."
"어어... 그래."
"집 불 켜지는 거 보고 갈게."
"......"
"너 창백해. 괜찮아?"
"어? 어..."
아니... 실은 괜찮지 않아 ㅎㅎ...!
아까 일이 자꾸 상상되면서 추운 건지 무서운 건지, 떨리는 몸을 웅크리며 먼저 들어가려고 하는데
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아 왜 걷질 못해... 지린 것처럼...
정적 속에 결국 나는 할까 말까 고민하던 말을 뱉었다.
"오세훈."
"왜?"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
"아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차피 한두 번도 아니고! 쇼파도 있고... 아니 긍께 내 말은,"
"무서워서 그렇다는 거지."
"...어 ㅎ"
"너 존나 쫄았지?"
ㅋ... 눈치 밥 말아먹진 않았네.
대충 들어오려는 눈치길래 집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차에 뒤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남녀 사이에 자고 가긴 그렇고."
"......"
"라면 먹고 가도 돼?"
이모저모로, 오늘 조금 위험한 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