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 암호닉 *
bobb_y
찌푸
기맘빈과김밥
♥기맘빈과김밥♥
하늘
지원아
코카콜라
보리차
분홍양말
콩듀
뿌리부터햫기가동동나네
쿠쿠
너에게로가는걸음
감자
도비
뚜기두밥 오뚜기밥
닭다리
쥬넹쥬네
옥수수
쎄니
으우뜨뚜
다이
유자
밤비
백년가약
꿍디꿍디
파랑짹짹이
두비두밥
뜟
슬리데린
한비니맘비니
으컁컁
비니비니한비니
꽁냥꽁냥
헛둘헛둘
꿀떡
매력넘치는
허니콤보
구릴라
쥬네야
라임
조으디
우현동자
됴아
뿌요
지나니
김밥이랑
토끼이빨
식빵
닐리리야
춘향
해피
종대생
미니슈
우왕굿
비빔밥
토마스
메추리맘빈
꾸준한 댓글 부탁드려요!
손승완은 활을 쏠 때와는 갭이 굉장히 큰 아이였다. 이홍빈과 함께 날 죽이려고 들 때는 오한이 들 정도로 한기가 든 얼굴이였는데.
오히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무심하면서도 평범한 친구가 건넬 정도의 타박도 늘어놓았다.
볼 수록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환경적응 탓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마음 놓을 수는 없으니까.
눈물자국과 김기범의 요소가 살짝 들어갈 뻔했지만 나와 손승완은 적극적으로 화제를 180도 돌려놨기에 입에 담지않았다.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날 지탱해주는 그녀는 여러번 느끼는 거지만 이곳과 어울리지않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김지원도 마찬가지였는데. 피가 잔뜩 묻은 비니가 아직도 생각났다. 가져오지못한 것이 너무 미련남았지만 거리가 굉장히 멀어졌다.
핀셋이 끝도 없는 것만 같아서 불평을 늘어놨다. 그러자 손승완 또한 짜증을 내면서 왜이리 멀리갔냐고 투정을 부렸다.
자신과 같은 구역이 벌써 죽었는데도 그녀는 굉장히 환해보였다. 외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않았다. 나는 한편으로 그 면이 부러웠다.
해가 어느덧 지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손승완은 내게 중얼거리며 반대쪽으로 날 잡았다. 힘을 전혀 쓸수없는 나는 그저 따랐다.
오세훈이 김한빈을 데려갔다고 했는데 해코지를 하지 않겠지. 해코지를 했다면 벌써 대포가 터지고도 남았을텐데.
첫 인상과 다르게 오세훈 또한 정도 많고 그 나잇대에 맞는 또래 남자애 성격이 강했다. 욱하는 성격도 그렇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그렇고.
역시 파헤쳐 보면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구별 못한다. 헝거게임에 온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까 말이다.
추운 공기가 감싸돌자 발걸음을 재촉하는 탓에 나는 부러진 다리의 고통을 있는힘껏 참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뽑아낸 핀셋 주변을 둘러보니 가방 하나가 팽개쳐 있었다. 피떡이 여기저기 묻어있었고, 물건이 흘러나와있었다.
나는 근처 나무에 기대서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가는 손승완의 뒷 모습을 지켜봤다. 손승완은 겁도 없는 모양이다.
힐끔 뒷 면을 보고는 내게 손 짓했다. 그녀의 긴머리가 찰랑거리면서 차분히 가라앉았다. 김한빈, 여깄어.
김한빈이라는 말에 저절로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무슨 모습일지 도무지 상상이 안갔다. 오세훈도 있는걸까. 더 망가졌을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릿해져오는 고통도, 당장 눈앞에 있는 김한빈 때문에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둘다 만신창이야..."
손승완은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뒤로 빠져주었다. 나는 그녀의 약간의 부축을 받으며 김한빈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김한빈은 얼굴에 남아있던 핏자국은 다 없어진 상태였다. 평온한 얼굴로 자고있는건지, 사지를 헤매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담요로 덮혀있는 그의 몸은 다행스럽게도 차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랜시간 동안 방치되있었는지 두 볼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손승완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들고있던 내 가방을 건넸고, 나는 내 가방에서 담요를 하나 더 꺼내 김한빈의 목을 감쌌다.
내 두손과 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냉랭한 기운이 손끝하나하나를 파고 들어올때마다 고문을 받는 기분이였으나,
김한빈의 얼굴을 보면 그런것도 잊어버렸다. 저절로 눈에 물이 고여오는 느낌이여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부스럭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던 손승완은 여러개 들고있던 자신의 가방들 중 두 어개를 김한빈 무릎 위로 던졌다.
뭐냐고 눈빛으로 묻자,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나는 강탈해온 것들 많으니까 이거라도 써.
미안한데, 의심이 간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손승완은 천천히 미소를 굳히더니, 어쩔수없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못 믿겠지. 그녀는 공감이 간다는 얼굴로 두어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내게 뭘 건넸다.
보아하니 반짝이는 핀셋 수십개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 고이 들어있었다. 날카로운 침들이 하얀 손을 위협하고 있었다.
중앙지에서부터 모아온거야. 내건 아니니까, 오세훈 주던가. 너 갖던가 해. 손승완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나는 보다못해 그녀에게 물었다. 약간의 자신감이 담겨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굴하지않고 물었다.
손승완은 나와 김한빈을 번갈아쳐다봤다. 무표정인 그녀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는, 딱 중간 상태로 변해버렸다.
들고있던 활을 꾸욱 쥐더니 손승완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차가운 바람이 또다시 불어왔고, 손승완의 표정은 머리카락에 가려졌다.
나는 김한빈이 날아갈까봐 두려워서 담요로 덮힌 그의 몸을 감쌌다. 해가 지는 탓이라 손승완 쪽에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잘해준다고 생각하구나, 너. 손승완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지도, 기쁜 어조도 아니였다.
그거면 됐다고. 짧막하게 손승완은 말하고나서 내게 건넨 가방들을 보란듯이 뺏어들어 내 눈앞에서 풀어헤쳤다.
투두둑 하고 떨어지는 내용물들은 모두 비상식량들이였다. 오세훈에게 줬다던 그 비상식량도 들어있었고, 생수병도 자리잡고 있었다.
이거로 김한빈, 쟤한테 먹여. 깨어나자마자 닥치고 그냥 먹여. 손승완은 쫓기는 속도로 반복해서 말했다.
먹이라니까.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숙이고 있던 몸을 다시 일으켰고,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손승완은 물끄러미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왜그게 위험으로 가득찼고 벼랑끝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까.
...나는, 너도 알다싶이 김기범을 잃었어. 눈앞에서, 막을 틈도없이. 띄엄띄엄 말하는 손승완은 목을 가다듬으며 마저 말했다.
후회, 하지말라고, 나는, 그 애한테, 말 못했어. 김한빈, 너 좋아하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 중 분명히 죽는사람이 생겨."
"..."
"그게 누구든. 그러니까 나중에가서 후회하지말고 사랑한다는 말은 꼭 해줘..."
"..."
"김기범 보내고나서... 가장 후회된거야."
손승완의 입술이 굴곡을 그리며 올라갔다. 두 눈은 반달로 어여쁘게 접힌 채.
그 뒤로 손승완은 사라졌다. 김한빈을 하염없이 보고있던 터라 언제 사라졌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공기만 대답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까마득한 땅거미가 다가오고 있어서 나는 김한빈의 목을 두르고 있던 담요를 가져와 내 몸을 감쌌다.
죽은듯이 잠을 자고있다고 믿었다. 김한빈은 시체처럼 정신을 헤매고 있는건지 몰랐다. 즉사는 아니고, 한기때문에 죽은것도 아니다.
대포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은 걸 보니 김한빈의 숨은 분명 붙어있다. 믿어야했다. 김한빈은 죽지않았다는 것을.
짙은 검정색 눈동자가 또렷이 다시 나타나주길 바랬다. 그렇다면 나는 김한빈을 전 일도 생각하지않고 무작정 달려들어서 울것 같았다.
너무 뻣뻣하게 자는 것 같아서 김한빈을 살짝 내 쪽으로 끌었다. 절로 따라오는 그의 몸에 나는 저절로 휘청이며 그의 머리를 내 다리위에 올려놓았다.
펑, 펑.
내 다리위로 그의 머리가 드러눕자마자 터지는 대포소리 두 개에 화들짝 놀래버렸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혈액이 당장이라도 피부를 뚫고 나올것같았다.
남색으로 물들어버린 하늘에 검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기 사이로 분산되고, 그저 멍하니 쳐다봤다.
예고도없이 터지는 대포소리는 익숙해져야만 했다. 남은 인원은 이제 열 명 가량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김한빈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다.
김지원, 김지원... 나는 김지원이 제발 무사하길 기도했다. 잔인할 만큼 냉혹한 게임장에서 남을 위해 빌어준다는 행위는 비웃음을 샀다.
손바닥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쥐어락 펴락을 반복하며 그는 죽지않았을 것이라고 자기암시 비롯한 말을 중얼거렸더니 약간 차분해졌다.
김한빈의 가슴팍에 올려놨던 내 왼손을 옮겨서 애꿎은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밤이 다가오면서 찬 바람이 더더욱 세졌다.
앞머리를 쓸어주며 김한빈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쳐다봤다. 날 치켜보고 있을 때나 미워서 자세히 안 봤던 그의 얼굴은 높고 곧았다.
꾹 다문 입술과 이어진 콧대, 그리고 열리지않는 두 눈매는 무딘 날카로운 편으로 자리잡은 김한빈의 얼굴에는 평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까슬까슬해져버린 그의 두 볼은 제대로 먹지않아서 인지 마를 틈도 없을 텐데 홀쭉해져 있어서 괜시리 쓸어넘겼다.
이제 곧 있으면 달이 뜰 시간이다. 어제와 다른 점은 난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김한빈을 만났다는 것.
달이 뜨고 나면 죽은 자들을 보여주겠지. 손승완은 나와 헤어진지 얼마 안됐을테고, 공격력은 어느 누구도 제압하지 못할 정도라는 걸 안다.
오세훈? 그의 이름이 떠오르자 나는 손승완이 건넸던 핀셋을 다시 집어올렸다. 뾰족한 탓에 조그맣한 비닐 속에 넣어둔 핀셋들은 상당히 반짝였다.
'중앙지를... 부탁할게.'
오세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묘한 기분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게임장이 아닌 12구역의 외딴 곳에 온 것같다고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않아 또 다시 웅장한 음악이 퍼져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대로 떠오르는 죽은 자들의 얼굴들과 구역 번호들.
3구역의 강슬기, 6구역의 박초롱. 그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였던 5구역의 김종인과 8구역의 남태현.
놀랄 틈도없이 바로바로 넘어간 김종인 다음의 사람, 11구역의 정수정.
김한빈과 같은 구역에서 왔다고, 굉장히 보이지않는 곳에서 차별받던 것 같았는데 끝내 정수정은 죽은 자들로 올라갔다.
김한빈뺨치게 뾰족하게 생긴 정수정은 날 노려보는 것만 같아서 입술을 혀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5명의 죽은 자들을 한꺼번에 보여줬다.
남태현 또한 죽은 줄만 알고있었는데 김종인과 사투 끝에 둘다 살아남은 경우인듯했다. 결국에는 누구의 손아귀에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첫째날에는 그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었기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절로 들었지만 이젠 묵묵히 쳐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박초롱을 죽여준 손승완, 강슬기를 죽인 박초롱. 알 수 없는 일종의 먹이사슬이 점차 뚜렷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째날인 지금은 경쟁자들의 숫자가 눈에띄게 줄어들었지만 점점 정부들의 개입이 심해질 걸 알기때문에 긴장감을 늦추지못했다.
당장이라도 한 명을 가려내기 위해 뭐든 동원할 거라고. 김진환의 비스무리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가서 김진환에게 큰 소리 떵떵치면서 당신이 겪었던 헝거게임 얘기좀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김동혁이랑 김지원이랑.
살아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곱게 못죽는다며 우스갯소리를 해줬던 김동혁의 숨결이 콕콕 볼을 찔러오고 있었다.
8명... 단 8명만이 넓디넓은 게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개를 숙였다. 김한빈의 차가운 손을 잡고, 입을 열면서 까지 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작한지 이틀만에 16명이 죽어나갔어, 김한빈. 너는 어쩌다가 이렇게 의식마저도 혼미해진 걸까. 그리고 왜 내 총구를 그렇게 잡아줬어.
피에 얼룩진 너의 얼굴이 내가 알던 너가 아닌 줄알고 순간 멍 했는데 쓰러지고나서 내 팔과 연결된 너의 손을 보니 너더라.
왠지 그때 후회감이 밀려왔어. 넌 날 지켜주려고 식량까지 건네면서 딜했던 넌데, 나는 왜 너를 외면하고 있었더라?
끝도 없이 중얼거리겠다. 환해진 숲속을 보아하니 정말 달이 떠버렸어. 너네 구역에서는 달에 관련된 전설따위는 없겠지.
우리가 헝거게임에 참여만 안했더라면 서로 각자 할일을 하면서 나름 즐겁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렸다.
나무 위가 아닌, 나무 밑에서 차가움을 느끼며 김한빈을 꼬옥 끌어안았다.
의식불명일때가 가장 체온조절하기가 힘들텐데, 이런 치열한 곳에서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물론 내 다리도 멀쩡한 건 아닌데,
살짝 움직여보니 고통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서 순간 큰 소리를 낼 뻔했다. 힘껏 침묵속으로 삼켜버리고 소리없이 고통을 호소했다.
이렇게 불구가 되어버렸으면 정말 불리한 하루하루가 될 텐데. 나는 일부러 고개를 틀어서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을 카메라를 쳐다봤다.
손을 뻗어서 매만지는 척을 했다. 그리고 아야야...하는 엄살까지 추가시켰고, 인상을 찌푸렸다.
얄밉고 야비하겠지만 이젠 나도 변해간다는 확신이 점차 들어왔다. 영악, 그것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 건넸다.
아침이 되면 김한빈을 숨겨두고 주변 경계나 해야겠다. 물론 김한빈이 깨지않았음을 고려해서 말이다.
김지원 또한 하루빨리 찾아내야 할텐데. 마음만 급해져서 큰일났다. 보라색 비니를 꼭 찾아줘야 겠다고 다짐했다.
김한빈을 감싸고있던 두툼한 담요를 꼼꼼히 여매주고 그의 얼굴을 여분의 담요로 감쌌다. 나 또한 추위를 바짝 느꼈기에 담요를 싸맸다.
불 피우고싶은데 연기때문에 들키겠지... 어쩔수 없는 상황에 눈동자만 요리조리 굴리다가 정신을 놓아버렸다.
사투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덕택에 내가 어디로 고개를 숙이고 자고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꿈속에서 헤맸다.
박초롱과 서로 죽일것만같은 분위기를 깔아놓으며 위협했고, 김한빈의 얼굴과 손승완의 말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후회.
...나는, 너도 알다싶이 김기범을 잃었어. 눈앞에서, 막을 틈도없이.
후회, 하지말라고, 나는, 그 애한테, 말 못했어. 김한빈, 너 좋아하니까.
이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 중 분명히 죽는사람이 생긴다는 그녀의 말.
그게 누구든. 그러니까 나중에가서 후회하지말고 사랑한다는 말은 꼭 해야하며, 김기범을 보내고나서 가장 후회했던 그것, 고백.
고백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설레지만 손승완이였기에 더욱 애잔하고 안타까웠던건 나만의 생각이였나, 그것은.
죽지마, 김동혁의 입술이 속삭였고 그렇게 펑펑 울면 잘도 누가 데려가겠다 아가야, 하던 김진환의 묽어프른 웃음.
"...바보네, 완전."
"..."
한빈은 정신을 가까스로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과 밤 사이를 걸쳐놓은 하늘에 그는 인상을 약간 찌푸리고 기지개를 폈다.
추운 한기를 견디지 못할만큼 나약하진 않지만 자꾸 무의식적으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한빈은 절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얼굴이 보이자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결국은 이 아이와 같이 동행을 하게 된 셈이라니. 한빈은 한편으로 매우 기뻤다.
피부가 상한 것 치고는 그리고 메말라진 것 빼고는 크게 부상은 없어보였다. 내가 총구를 잡아주고 의식을 잃은 것 까진 기억이 났는데,
하필 그 때 덮치고 잡아 패버렸기에. 겨우 도망쳐서 몸을 숨겼지만. 한빈은 이를 까득이며 조금 달아오른 체온에 열기를 뿜었다.
피곤했나보네, 한빈은 머리를 넘겨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얼굴을 훑어내렸다. 시퍼렇게 질린 입술이 보기가 좋지않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가방들을 뒤져보니 예상치못한 식량들이 들어있어서 한빈은 순간 눈이 돌아갈 뻔했다.
얼마만에 보는 식량인건지, 지켜주기 위해서 목숨과도 같았던 식량들을 맞바꾸면서 까지 이렇게 해댄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결론은 이 아이와 함께 있게 되었지만. 이득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며 비상식량 봉투를 게걸스럽게 뜯어냈다.
먹으면서 그녀 다리위에 잎들이 지저분하게 깔려있었기에 털어주고자 조심스레 잎을 탈탈 털어냈다. 드러나는 다리에는 찰박상들이 지저분했다.
그리고 아윽, 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는 그녀의 입술에서 한빈은 순간 잘못됨을 느끼고 얼굴을 굳혔다.
"...씨발, 어떤 새끼야."
한빈은 절로 욕을 뱉으며 주변을 또다시 살폈지만 적막하기만 했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알길이 없었다. 누가 죽었고, 누가 살아남았으며, 내가 최고로 아끼던 여자는 왜 이지경인지.
보아하니 삼 일째 되는 날인 듯 싶었다. 골절된 다리, 한빈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고 높지않은 가지에 꽂혀있는 작은 통을 발견했다.
자신이 육성재와 자잘한 전투를 벌이고 출혈에 끙끙대며 잠을 청했었는데, 다음날 보란듯이 옆에 있었던 스폰서의 말귀와 약통을 기억해냈다.
'칠칠맞게 아프지마라.' 짧막했지만 무언가 크게 다가온 느낌이라 한빈은 굳게 새기고 약을 이악물며 발라냈었다.
그녀에게도 스폰서가 있었나보다. 가지에 걸려있던 것을 꺼내고 뻑뻑한 이질감을 느끼며 열어보니 작은 직사각형 종이에 적혀있는 문장.
'너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어서 좋니?'
한빈은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고 재빨리 그 밑에 있던 물품을 확인했다.
비상약품들과 붕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고정할만한 거치대 또한 조립형식으로 들어있었고, 한빈은 그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붕대. 그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그는 허겁지겁 물품들을 털어냈다. 우수수 떨어지는 물품들은 꽤나 한가득이였다.
곤히 자고 있는 얼굴을 보면 한빈은 절로 웃음이 일었지만 지금상황에서 태평하게 얼굴감상하고 있을 때가아니였다.
부스럭 거리며 조립을 힘겹게 해냈다. 점심때까지는 자게 내버려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빈은 손을 움직였다.
너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어서 좋니? 스폰서의 질문은 끊임없이 한빈의 뇌를 파고들어 흔들었다. 그럴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멈추다가 조립하고, 멈추다가 또 조립하길 수십번 반복하며 그녀의 얼굴을 끝내 쳐다봤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정말, 알 수가 없어. 한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니, 눈이 저절로 떠진게 아니라 내레이션 목소리가 너무 큰 탓에 눈이 떠져버린 거라고 쳐야 맞는말이겠다.
여전한 목소리에 나는 끔찍함을 느끼며 다리를 움직였다. 덜컥 거리는 소리가 났고 딱딱한 무언가가 내 부러진 다리 쪽에 매여있었다.
이게 뭐야? 나도모르게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더듬더듬 만져보았고, 어느새 붕대로 칭칭 감겨있는 다리에 의문감이 휩싸돌았다.
그러고보니까 김한빈이 없어졌다. 김한빈이랑 같이 있었는데, 납치당했을리는 없을테고.
몸을 조금 일으켜서 큰 동작으로 숲 속을 둘러보았다. 김한빈, 김한빈! 나는 소리높혀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한빈!!"
"..."
"김한빈, 어딨어!!! 김한빈!"
"어, 왜."
김한빈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올렸고, 김한빈은 예전과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날 내려다봤다.
뭘 그렇게 급하게 불러. 그는 장난끼섞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순간 할말을 잃고 한참동안 그를 쳐다봤다.
정신 차린거냐고 뒤늦게 묻자 그는 기지개를 피더니 나름, 이라고 짧막히 대답한 후 바닥에 뛰어내려왔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못생겨졌다? 김한빈은 갈굼을 선사하며 내 머리를 흐뜨러 놓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그의 명치를 있는힘껏 꽂았다.
둔탁한 퍽,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한빈은 들어오는 가드와 충격에 컥 하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왜 때려, 존나 아파!!!! 김한빈은 소리높게 칭얼거리며 명치를 두들겼다. 말로 해, 말로!!!
"나쁜새끼."
"뭐, 뭐!!! 아오 씨바알, 개아파."
"그렇게 멋진 척 다 하고 쓰러지면 좋겠네."
"야, 그건."
"날 지키기 위해서인거 알아. 근데 좀 멋있게 쓰러져라, 알겠지?"
웃음을 짓고 역으로 머리를 쓸어주자 김한빈의 표정이 순간 멍 해졌다.
"...허, 정말... 미워할 수가 없어, 진짜."
지지직 거리던 잡음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겨우 주파수가 잡힌듯 힘겹게 내레이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김한빈과 그동안 말을 적절히 섞으며 뭐 하고 지냈냐는 질문을 던져왔고, 나는 있었던 일 그대로 주구장창 다 얘기를 퍼부어줬다.
그는 오세훈이 도와줬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먹은 얼굴이였다. 뺀질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의리는 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박초롱이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문장에서 딥빡의 근처를 보여주더니 그 년 어딨냐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그 새끼는 찢어죽여도 된다고 발악하길래 손승완이 죽여줬다고 하자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김한빈의 모습은 웃기게도 순수했다.
나중에 고맙다고 한번 말해야겠네. 김한빈은 홀로 중얼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 아.]
"..."
[전달, 전달합니다. 현재 살아남아 있는 생존자의 수는 총 8명 이며,]
"8명? 왜이렇게 줄었어?"
"아, 그건ㅁ,"
[모든 생존자들은 중앙지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단체 결투를 벌이고 다시 생존자를 가려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명령입니다, 그럼 이상.]
예상치도 못한, 생각지도 못한 나레이션의 말에 말을 하던 나와 김한빈은 숨을 멈춘 마냥 그 자리에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중앙지로 다시 모이라는 나레이션의 말은 한 순간의 독과도 같았다. 그 끔찍한 장소를 다시 가라는 말에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였다.
8명이라니, 왜이렇게 줄었어? 김한빈의 목소리에서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은사이 8명밖에 남지않았다니.
나레이션의 말이 제발 오류였다고 다시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또다시 박초롱의 칼부림과 강슬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손승완... 손승완의 얼굴이 보고싶어질 지경까지니 말은 다 한듯하다. 김한빈은 아무말없는 내 모습을 보고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 죽었구나. 김한빈은 텁텁한 목소리로 말을 끝내 이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원 죽었어? 김한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소식이 없어.
"그건 좀 아쉽네."
"너 명치 더 맞을래?"
"아니, 난 진심이야. 근데 아직 안죽었다니. 생존력 존나 강하네."
김한빈은 진심이였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김한빈의 장난어린 목소리보다 나레이션의 명령을 듣고나서인지 혼이 빠질지경이였다.
고작 남아있는 인원에서 더 줄여서 뭘하겠다는 거지? 극도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 뒤에 눈물어린 장면을 보여주면서 역대 최대의 장면을,
탄생시켜달라는 나레이션의 요구에 응하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게 나을텐데.
힐끔 김한빈을 쳐다봤다. 김한빈은 전혀 생각없는 눈치였다. 일종의 무념무상을 보여주며 그저 공기가 차갑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아니 똑바로 말하자면 나레이션이 말하지않은 대로 행동하면 김남준 꼴 나는거 밖에 더 있을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김한빈 쪽으로 아예 몸을 돌렸다. 삐걱거리는 거치대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갈래?"
내 물음에 김한빈은 뭔 질문을 하냐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중앙지. 내 말을 들은 그는 잠시 아무말없이 날 쳐다봤다.
중앙지... 가야겠지. 그는 말을 조용히 늘어뜨리며 합리화시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나는 김한빈의 대답에 힘부터 빠지는 기분이였다.
다리까지 부러졌는데 무리해서라도 싸워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기도 했고 내 자신한테 너무한 것 같았다.
설마 이 장면을 다 보고 뒤에서 조종하는건 아닐까. 설마하는 마음에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면 또 싸워야 할꺼아냐. 김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않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안드는데... 어쩔 수 없어. 가지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죽여버릴꺼야. 그게 캐피톨인간들이라고.
"마음에 안들어, 씨발아."
"누군 마음에 드는 줄 알아?"
"...후, 아니. 괜히 너한테 짜증냈다. 미안."
김한빈은 으으 거리며 괴로운 표정을 한껏 지어냈다. 나 또한 괴로웠으니 서로 이해하고 있을터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다리라는 점.
김한빈, 너 총 이제 다룰 수 있겠어? 내 말에 그는 머쓱히 웃어보였다. 그래도 맞출 물건은 잘만 맞춰, 걱정마라.
내 다리가 병신됐는데 가야할까? 어차피 가야하지만... 뒷말을 삼키며 김한빈에게 넌지시 물었다. 김한빈은 예상치못한 복병에 인상을 찡그렸다.
병신이라는 소리하지마, 너. 김한빈은 그와중에도 말 관리를 하라며 속삭였다. 나쁜말하면 니 얼굴 더 못생겨져.
중앙지까지 가보고, 널 숨겨놓든가 해야겠다. 그는 내다리를 훑어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일 수 있겠어? 절로 걱정을 일으키게 하는 목소리에 나도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한빈은 여전히 마음에 안든 눈치였다.
"힘들면 기대, 도와줄께."
"아니야, 이건 나 혼자 움직일 수도 있어."
"웃기시네, 자기힘으로 못일어나면서."
자기힘?
중앙지로 모이라는 말이 울려퍼진지 어여 2시간이 지난듯했다. 내 생체리듬은 오후라고 일깨워주고 있었기에 나른한 눈빛으로 중앙지를 쳐다봤다.
한편에서 슬렁슬렁 나오는 육성재의 얼굴이 절로 보였다. 강슬기와 함께 가방침탈을 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기에 그로 자연스럽게 눈길이갔다.
하룻동안 그는 안색이 더욱 좋아보였다. 강슬기가 죽은 것을 못 보고 도망쳐서 일까, 그는 오히려 편하게 보였다.
괘씸? 괘씸하기도 꽤나 그랬지만 그 보다 나는 차학연의 존재여부가 궁금했다. 어제 화면에도 나오지않은 차학연의 모습을.
여전히 보라색 비니를 쓰고있는 것인지 어제 박초롱이 올려두었던 곳을 살펴본 결과 비니는 없어져있었다.
약간의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김한빈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김한빈은 나를 힐끔 보고는 내 팔을 천천히 잡았다.
오면서 김한빈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가장 먼저 나눴던 대화는 자신이 기절해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의 경황을 이야기를 한 것이였고,
두 번째 대화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구역숫자였다. 1구역 오세훈, 2구역 손승완, 12구역 김지원.
10구역 경리랑, 9구역 차학연, 4구역 육성재. 그리고 너와 나.
대충 스토리 전개좀 해보라는 말에 귀찮았지만 조금 짧막하게 했던 터라 김한빈에게 꾸지람을 듣고나서야 제대로 말했다.
그제서야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
아무튼 김한빈과 나는 대놓고 덤비지 말기를 철칙으로 삼으며 절뚝거린 채 중앙지에 도착했다. 정말 여러모로 불편하다니까, 아프면.
"어, 가자."
"응."
김한빈은 나를 조심스럽게 부축하며 둘의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