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B. 헝거게임]
-김한빈의정석-
* 암호닉 *
지원아
뿌리부터햫기가동동나네
닭다리
춘향
닐리리야
♥ 기맘빈과김밥 ♥
코카콜라
꽁냥꽁냥
보리차
밤비
뿌요
비빔밥
하늘
너에게로가는걸음
bobb_y
해피
꿍디꿍디
쎼니
쿠쿠
라임
손가락근육
김밥이랑
파랑짹쨱이
두비두밥
조으디
한비니맘비니
다이
꿀떡
비니비니한비니
매력넘치는
구릴라
디니
주네야
갓빈워더
분홍양말
으우뜨
기맘빈과김밥
뜟
지나니
스무디킹
옥수수
찌푸
콩듀
감자
도비
뚜기두밥 오뚜기밥
쥬넹쥬네
유자
백년가약
슬리데린
으컁컁
헛둘헛둘
허니콤보
우현동자
됴아
토끼이빨
식빵
종대생
미니슈
우왕굿
토마스
메추리맘빈
중앙지로 발을 디디자 하나 둘씩 얼굴들이 보였다. 왼쪽에서 육성재와 경리가 독기어린 눈빛으로 한걸음씩 중앙지 가까이 다가왔다.
오른쪽에서는 손승완과 오세훈이 각자 무기를 들고 무의미한 눈빛으로 나와 김한빈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손승완을 힐끔 보자 그녀는 날보고 씩 웃었다.
보라색 비니를 간당간당하게 든채 손에는 그의 무기로 추정되는 짧막한 창을 들고있는 차학연이 북쪽 방향에서 소리없이 나왔다.
김지원, 김지원은 끝까지 보이지않았다. 김지원의 얼굴이 헛것이였나 싶을 정도로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김지원을 마음속으로 찾고 있었다.
김한빈의 어깨를 잡고 버티고 있기를 약 30분. 나레이션의 주파수 잡는 지지직 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울렸다.
모두들 움찔하고 각자 무기를 잡았고, 나는 한 쪽 주머니에 여분의 총알탄을 넣어둔 걸 기억하며 안전장치를 풀고 총을 잡았다.
[모이셨습니다.]
[1구역, 2구역, 4구역, 9구역, 10구역, 11구역, 그리고 가장 선두하고있는 12구역.]
나레이션은 나즈막히 웅얼거리며 지금까지의 살아남은 구역들을 읊어주었다. 내 허리를 잡고있던 김한빈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오면서 김한빈에게 이태껏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해줬다. 누가 누굴 죽였던 걸 내 눈으로 봤던 것도, 그리고 그와 같은 구역인 정수정도 죽었다는 걸.
김한빈은 무어라고 하지않았다. 그저 의미없는 눈빛으로 날 한번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정수정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없다고 그는 속삭였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이거니 했다. 그래도 일주일동안 정 붙이고 생활하던 여자아이일텐데, 김한빈은 삐걱거리기만 했다.
12구역이 불리자 모두 하나같이 날 쳐다봤다. 뭘 선두하고 있는건지 나 조차도 몰라서 그저 마른침만 삼켰고, 나레이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곳으로 모이라고 한 것은 다들 이유를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누가 누굴 죽였는지 모두들 대충 짐작은 하거니와 다 모르잖습니까?
김지원이든, 오세훈이든, 김한빈이든. 내 다리가 불구가 되어버렸으니 누구의 타켓이 충분히 될 만했다. 11점을 맞았는데 저렇게 끙끙대고 있자니,
모두의 죽임 대상 1호가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김한빈은 체념한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으나 내가 거절했다. 지겹도록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너가 죽을거라고 난 너가 죽는게 싫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김한빈은 할말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봤다.
너 마저도 죽으면 힘들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김한빈은 내 팔을 쥐어잡고 정신나간 사람의 울부짖음 처럼 내게 소리쳤다.
너도 죽으면, 아니 너가 죽으면 내 심정은 편할 것같냐고. 눈앞에 두고 너가 죽어가는걸 봐야되겠냐며 미쳤냐고 마구 쏘아붙혔다.
나는 그저 웃었다. 총구를 들고 내가 쉽사리 죽을것 같냐고 애써 안심시켰지만 내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않는다.
오세훈은 내가 봤던 칼보다 길이가 더 긴 칼을 왼 손에 쥐고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1구역. 캐피톨 뺨치는 부자동네.
오세훈도 나름 고충이 있었나 보다. 벌써부터 누굴 죽여야하나 눈치를 보고있는 걸 보면 당장 세워놓은 목표조차 없다는 것이다.
손승완은 활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화살을 반대쪽 손으로 빼내려는 자세를 취했고, 4구역인 육성재는 온종일 손승완만 노려보고있었다.
9구역인 차학연은 비니를 슬금슬금 쓰고있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김한빈에게 기대고있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10구역인 경리는 좌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능숙한 솜씨로 와이어를 뽑아내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날카로워 보이는 것이였다.
김한빈과 살짝 몸을 떨어뜨렸다. 불안하긴 해도 왼쪽 다리로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기대고있던 몸을 떨궜다.
[1구역, 배주현. 김종인에게 사망.]
[2구역, 김기범. 이홍빈에게 사망.]
[3구역, 김남준. 자살.]
[3구역, 강슬기. 박초롱에게 사망.]
모두들 덤비려고 했다가 나레이션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김남준 꼴이 다들 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이를 갈며 서로를 노려보고있었다.
차가운 기운이 경기장 중앙지 전체를 쓸고나간 기분이였다. 어떻게보면 룰 규칙을 지키지않고서 덤빈 김남준에게 마땅한 벌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자살, 이란 단어가 들리자 마음 한켠이 콕콕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김한빈은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를 내며 총알탄 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4구역, 이혜리. 남태현에게 사망. 이혜리라는 말이 들리자 자동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혜리를 멈추게 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나였으니까.
총구를 들어 처음으로 사람을 쐈다. 정통으로 맞춘 격은 아니지만 어깨를 박히게 하고 달아났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 치던 이혜리를 죽인 사람은,
남태현이였군. 나는 불안하게 요동치는 파도가 잠재우는 느낌을 한껏 느끼며 총고리를 잡았다.
5구역, 김종인. 차학연에게 사망. 5구역, 박수영. 오세훈에게 사망. 6구역, 전정국. 오세훈에게 사망.
6구역, 박초롱. 손승완에게 사망. 7구역, 이홍빈. 손승완에게 사망. 7구역, 초아. 이홍빈에게 사망.
8구역, 남태현. 육성재에게 사망. 8구역, 최진리. 경리에게 사망. 9구역, 현아. 오세훈에게 사망.
10구역, 김성규. 김지원에게 사망. 11구역, 정수정. 자연사.
김지원도 결국 사람을 죽였다. 나는 이 사실이 그닥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였을까.
내가 먼저 이혜리를 쏴서? 그래서, 이혜리가 남태현한테 죽어서? 끊임없는 질문은 파고들을 수록 질문만 낳았다.
김한빈은 사람을 죽이지않았다. 나는 갑자기 그가 순수하고 변질되지않은 사람으로 느껴져서 거리감이 들었다.
난 분명히 김한빈이 변했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김한빈에게 직접 말했었다. 왜 이렇게 변한 것 같지, 너.
그랬을 때 김한빈은 얼굴을 굳히고 사라졌다. 난 나름...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느끼며 이태껏 게임을 진행해왔었다.
김지원이 사람을 죽였다. 그것이 내 신경을 지배해버린 듯 나는 뒤늦게 텁텁해져오는 신경을 느끼며 가슴을 두드렸다.
자연사라고 하지만 어떤 방면에게 자연사인지 도무지 이해가가지않았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던 김한빈을 쿡 찌르고 떡밥을 던졌다.
연합할래? 내 말에 김한빈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물어왔고, 나는 총구로 차학연을 은근슬쩍 가르키며 속삭였다.
차학연부터 죽이자고. 쟤가 나다음으로 점수가 높은데 방해가 될 거 같아. 먼저 죽이는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김한빈은 내 말에 차학연을 쳐다보고서 아무말이 없었다. 사실, 먼저 차학연을 죽이고자 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김지원의 비니를 돌려받기 위해서. 저 모자를 쓰고 날뛰는 꼴을 보고싶지않았다. 당장이라도 벗겨내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고.
두번째는 내가 김한빈에게 말한 이유. 나 다음으로 점수가 높다는 것으로 잔인함을 표출하면서 내게 달려들 것이 보였다.
마지막 이유는, 제일 위험하고 어디서 뒤로 치고들어올지 몰랐다.
김한빈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차학연 죽이는 거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덧붙였다. 난 망설임틈없이 바로 계획을 전했다.
보다싶이 나는 체력적으로 불리하니까 너가 뒤로 잠깐 빠져. 그리고 내가 절뚝거려서라도 차학연한테 갈께. 차학연 뒤를 쳐.
둘이서 포위망을 좁혀오는거랑 같은거지. 손승완이랑 육성재는 사이가 안좋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둘은 내버려둬도 괜찮을거야.
차학연이 너로 목표물을 바꾸는 순간 내가 다리를 공략하면 될꺼야. 그러자 김한빈은 오세훈을 고갯짓으로 가르켰다.
오세훈은 어쩔꺼야? 오세훈이 너를 치게 되면...
"아니."
"..."
"오세훈은 날 절대로 못 쳐."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세훈이 날 치지 못할 것이라고 강하게 생각했다.
막장아냐? 김한빈은 막말을 하며 쏘아붙혔고, 나는 그에 대응하여 명치를 퍽 찔렀다. 김한빈은 숨을 몰아쉬며 또 친다고 짜증을 냈다.
여기까지 죽은 사람들을 불러보았다고 나레이션은 말했다. 이윽고 대통령님의 의견아래에 참가자들의 단체 전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런 곳에 여러분들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개소리를 추가로 지껄이며 나레이션은 깊고 진득하게 웃었다. 소름끼게.
팔에 돋아나는 소름을 느끼며 나는 김한빈과 떨어졌다. 더이상 김한빈은 내게 물어보지않았고, 붙지도 않았다.
차학연만 올곧게 쳐다봤다. 나레이션은 30초 뒤 단체 전투를 시작하겠다며 소음을 끄고 사라졌다.
하늘에 커다란 숫자가 또 다시 떴다. 30초에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눈을 끔뻑이며 잔뜩 굳어버린 몸을 느꼈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 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명분아래에 실천해야한다는 강념이 박혀버렸을지라도 매번 새롭고 힘겨웠다.
피비린내 나는 중앙지가 어느덧 피바람이 불고 치열한 몸싸움으로 변질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했다.
김지원도 김한빈도 잃기 싫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는건 아니지만 왠지 모를 자기위로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였다.
15초.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들을 보니 그저 눈만 깜빡이게 된다. 긴장되냐고? 물론 긴장되지.
10초, 9초. 이 모든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가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또 다른 사실에 그나마 멀쩡하던 왼쪽다리가 굳어가는 느낌이였다.
카운트다운이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모두들 제각기 타킷으로 놓았던 사람들에게 달려나갔다.
나는 곧바로 차학연 쪽으로 몸을 돌려 총을 쐈다. 여기저기서 칼 부딪히는 날카롭고 매끈한 소리와, 화살이 날라가는 무서운 공기가르는 소리,
그리고 달려나가는 뜀박질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신경쓸 틈도없이 바로 차학연 몸으로 돌려쐈던 총알은 짜증나게도 빗겨나갔다.
그러나 타박상은 줬는지 곧게 뻗어나가던 총알이 그의 몸을 스쳐지나간 모양이다. 허리쪽을 쓸고지나간 듯 차학연은 신음을 뱉으며 허리를 감쌌다.
살짝 비틀거리는 그의 몸에 김한빈은 빠르게 달려나갔다. 꽤나 멀리 있는 거리지만 다리불구가 되버린 나보단 빨랐다.
눈으로 대충 계산을 찍어맞추며 차학연의 팔로 총구를 들었다. 한번더 내 총은 발작을 일으키며 총알을 뱉어냈다.
타다닥, 거리는 김한빈의 달려가는 소리에 차학연이 뒤늦게 깨닫고 몸을 그 쪽으로 틀었지만 내가 그의 어깨를 다시한번 정통으로 쏘자 그는 커다랗게 소리질렀다.
아흑, 거리는 그의 신음소리가 내 쪽까지 들렸다. 김한빈은 내가 준 짧은 칼을 휘두르며 차학연 뒤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나는 최대한 차학연이 움직임을 줄이도록 그가 죽지않을 만큼만 총을 쏴댔다. 이말은 즉슨 심장 쪽과 머리 쪽은 빼고 모조리 총을 쏘겠다는 의미였다.
몇 개가 빗나갔다. 그 빗나간 것이 김한빈에게도 무리가 갔던 것일까, 김한빈 또한 쓸린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자신의 오른팔을 감쌌다.
김한빈! 나는 김한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집중하는 얼굴로 차학연의 등을 향해 직구로 꽂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차학연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김한빈의 발목을 발로 차버렸다. 순식간에 김한빈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김한빈!!!"
"아, 이런 개새끼가!!!"
"차학연, 안그래도 피 많이나는데 버틸 수는 있겠어?"
김한빈은 가볍게 자신위로 올라타는 차학연을 주먹으로 내리꽂았다. 그 사이에 어벙거리던 차학연은 기습공격에 숨을 쿨럭였다.
다시 전세역전이 된 차학연과 김한빈은 엎치락뒤치락을 여러번 하며 공세의 주도권이 수십번이나 바뀌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차학연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차학연이 김한빈위로 올라타서 창을 그의 목쪽으로 휘두르려고 힘을 쓰려면 김한빈은 그가 힘이 부치는 걸 깨닫고 바로 몸을 돌렸다.
김한빈이 차학연의 명치 쪽으로 칼을 꽂으려고 하면 차학연이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댔고, 명치가 아닌 다른 배나 팔 쪽에 스크래치를 내버렸다.
차학연의 옆구리로 총구를 들이밀었는데 이상하게 김한빈의 손을 쓸고지나가버렸다. 김한빈은 인상을 찡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김한빈, 미안해!!! 나는 소리높혀 말했고 김한빈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올렸다.
"야, 피해!!!"
김한빈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찌르자마자 퍽, 하는 소리가 내 머리를 울렸다.
"아악!!!"
"뭐야, 11점 맞은 주제에 존나 약하네."
아프다, 정말 아프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박경리 인듯했다. 박경리는 침을 찍 뱉고는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내 뒤통수를 거세게 내리꽂았는데, 나는 머리를 울려대는 고통때문에 신음을 호소하며 땅에 얼굴을 박아버렸다.
이거 놓으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박경리는 내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얼굴과 마주했다. 안봐도 만신창이 인데, 박경리는 혐오하는 얼굴을 지었다.
더러우니까 존나 못생겼네. 박경리는 악담을 퍼부으며 내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입안에서 피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볼을 제대로 가드올려 쥐어박았는지 입안 전체가 울렸고, 또 다시 피터지는 소리가 뒤늦게 나자 나는 순식간에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무슨 좋은 생각이 났다며 내 머리카락을 쥐고있던 자신의 손을 놓더니 날 땅바닥에 거칠게 내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내 몸은 다시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박경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더럽다고 속삭였다.
더러워. 박경리는 내 반응도 신경쓰지않고 불구가 되버린 내 다리에 힘을 넣는데 박차를 가했다. 다리가 부러졌지만 신경만은 온전했던지라 그 충격이 배가 되었다.
부러진다리가 또다시 부러진 느낌이 마구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윤형이, 윤형이가 너무 보고싶었고 종대가 너무 보고싶었다.
나약했다, 나는. 결국 나는 나약해 빠져버린 인간이구나. 나는 스스로 인정하면서 박경리가 하는 대로 이끌려갔다.
다리를 여러번 걷어차고 지져밟고, 내다리는 그녀의 발길질에 인해 여러번 공중에 떴다가 다시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기를 수십번이나 당했다.
오른쪽 다리는 이윽고 아픔이 느껴지지않았다. 다만, 나는 윤형이가 보여서 시선의 초점을 하늘로 두고 있었다.
"박경리, 씨발년아!!!!"
김한빈은 박경리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박경리는 코웃음을 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차학연이랑 비등비등 하신데, 차학연이랑 놀고있지그래? 왜 나한테 지랄이야, 당장와서 얘 도와주던가. 그리고 그녀는 망측하게 웃었다.
야, 너 김진환이랑 같은 구역이지. 박경리는 내게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멱살을 잡히고 몸이 억지로 일으켜졌다.
김진환이 마음에 들어서 널 살려두려고했는데... 김성규가 김지원한테 죽임을 당했어. 나는 그게 너무 마음에 안들어, 너도 김지원도.
김지원을 먼저 죽이려고했는데 이새끼가 안나타나. 그니까 너라도 죽어야겠어. 어때, 마음에 들지? 미워할려면 김지원을 미워해라.
박경리는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김한빈 쪽에서 푸욱, 하고 무언가를 찌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곧 팔을 드는 박경리를 쳐다보았다.
총구를 덜덜 떨며 들었다. 그 움직임이 하찮은 듯이 박경리는 거칠게 내 손에 쥐고있던 총을 빼앗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이런건 이제 발악에 불과하다구. 박경리는 내 이마를 툭툭 두드리면서 기분나쁜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는 멱살을 잡힌 상태에서 볼을 맞았다.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나는 왼쪽으로 고개가 꺾여졌고,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뺨을 반대쪽으로 맞아버렸다.
너가 죽고나면 김진환이 슬퍼할꺼야. 김진환은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 그는 정말 내가 마음에 든 사람이야... 너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 끝나야할 이유 중 하나고 내가 그를 만나야만 해. 박경리는 자신에게 속삭이는 건지 내게 타박을 늘어놓는 건지 분간이 안갈만큼 중얼거렸다.
무튼, 내가 죽어야 한다는 거구나. 나는 힘겹게 기침을 쿨럭이며 고개를 틀었다.
"죽어."
그리고 박경리는 다시한번 오른팔을 들었다. 무언가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반짝이는 것이보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통이, 목졸라 오고 있었다.
"..."
꿈틀거리는 액체가 내 배위에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피임을 단번에 느꼈고, 따뜻하고 꿈틀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내 배를 찌른 모양이였다.
그리고 박경리는 내 위로 엎어졌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야 정상인데, 그녀는 아무말도, 아무런 숨소리도 내지않은 채 내 위에 있을 뿐이였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없는 힘을 쥐어짜서 김한빈 쪽으로 고개를 쳐들었고, 김한빈은 이제서야 차학연을 제대로 진압한 채 차학연의 목으로 칼을 꽂았다.
부들부들 떠는 손길로 박경리를 슬쩍 옆으로 밀었다. 소름끼치게도 박경리는 손쉽게 옆으로 굴러떨어졌고, 나는 배 위의 액체를 찍어 확인했다.
피. 피는 맞았다. 그리고 살짝 만져봤더니 약간의 틈새가 벌어져있었다. 역시 박경리가 내 배를 찌른 것은 맞았다. 뒤늦게 올라오는 두배의 기침.
쿨럭, 쿨럭 거리며 눈을 감았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가 피비린내가 나길래 뭔가했더니 기침과 동시에 피가 올라온 모양이였다.
"이런, 썅년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못하고 약간 흘깃하게 뜬 채 내 앞에서 욕을 지껄이는 남자가 누군가 싶었다.
어떻게보면 내 목숨의 구원. 그녀의 손아귀에 잡혀 이도저도 못한 상황에서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찔러넣어준 덕분에 살아숨쉬게 되었던.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트, 그리고 양 손에 쥐고있는 칼, 한 쪽 손에 들고 있는 보라색 피묻은 비니.
피투성이가 되버린 망쳐진 수트위로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살구색 크림 피부톤의, 약 48시간만에 다시 만난 너가.
나는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릴 눈의 힘도 없이 나는 무언에 이끌림을 받아 정신을 놓아버렸고, 피가 주륵주륵 흘러나옴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정신끈을 놓아버리면서 까지 느껴지지않는 다리의 고통에 얕은 웃음을 지었다. 이젠 더이상 무리다, 정신도 육체도.
손승완과 육성재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노려보고있었다. 다만 둘의 다른 점은 손승완이 더 기운을 못차리고 움츠러들고 있다는 점이였다.
손승완은 재빠르게 활을 들어 약간 빗겨나가게 화살을 쐈다. 공기를 가로지르는소리가 육성재 귀 근처를 파고들어 뒷편으로 사라졌다.
육성재는 피식 웃으며 손목을 돌렸다.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있는 그의 웃음을 더이상 보지못한 손승완은 활을 다시 내렸다.
오랜만이야. 육성재는 손승완에게 반가운 듯이 말을 걸었다. 손승완은 티나게 몸을 떨며 그의 눈길을 피했다.
4구역에서 도망치니까 좀 살만해? 육성재의 말에 손승완은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깨물었다.
니네 엄마가 4구역에서 2구역으로 도망친건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버렸어. 참 재밌다.
"그렇게 우리구역을 비하하고 가면 4구역 사람들이 좋아할까?"
"..."
"나를 비롯해서 이혜리도 널 죽이고 싶어했어. 물론 이혜리는 나도 죽이고싶어했지만."
육성재와 이혜리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않았다. 그래서인지 육성재는 특별히 이혜리에 대해 관심도, 흥미도 없었기에 내버려뒀다.
그와 이혜리가 의견을 뭉친 일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손승완을 죽이자. 육성재가 낸 생각에 이혜리는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자고 부추겼다.
그런데 결국 이혜리가 죽었어. 12구역 그 년이랑, 8구역 남자새끼 때문에. 육성재는 불쾌한 침을 뱉었다.
결국 내가 내 손으로 널 죽여야 되는구나. 뭐, 잘됐어. 다른 사람 손빌려서 널 죽이고싶진 않았어. 내가 오직 내 힘으로 널 몰아놓고 싶었으니까.
4구역에서 2구역으로 등급이 올라가니까 눈에 보이는게 없지. 육성재는 이를 빠득 갈며 손승완을 당장이라도 칠 기세를 보였다.
니네 엄마던 너던 왜 도망쳐야 했던거야? 우리 구역은 너네 가족을 말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어. 너네 아빠는 우리 시위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
손승완은 육성재의 마지막 말에 하얗게 얼굴을 질렸다. 그, 그래서 아빠가... 손승완은 말을 잇지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응. 어떻게 전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네 가족은 충분히 말살당할 만했어. 구역은 넘어갈 수가 없지. 평생. 육성재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게 헝거게임에서 우승자가 되지않은 이상 너가 원하는일은 절대로 없어. 너의 과거를 지우는 일도,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래서 난 널 죽일거야. 육성재는 손승완에게 엄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주머니 깊은 곳에서 꺼내는 표창이 매우 날카로웠다.
널 죽이고나서야 내가 죽든가 해야겠어. 편하게 눈을 못감겠단말야... 손승완 씨발년아. 육성재는 치를떨며 욕을 뱉었다.
손승완은 천천히 활을 들었다. 익숙하게 활이 손에 감겼던지라 다행히 활을 든 손은 떨지않았다.
"하나만 물어보자."
"..."
육성재는 표창을 힘껏 손에 쥔 채 손승완에게 말했다.
"왜 2구역으로 간거야."
"..."
손승완은 대답하지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육성재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대신에 나아간 화살이 그녀의 침묵어린 질문을 대신해주었다.
육성재는 손승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표창을 던졌다. 대포가 다시한번 크게 터졌다. 하늘 속에서.
나를 잔뜩 덮고있는 답답함에 눈을 떴다. 나는 정신을 잃기 전에 수트를 기억해내느라 머리속이 띵해짐을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두워진 하늘에 나는 자동적으로 뚫렸던 칼질에 의해 내 배를 어루만졌다. 봉쇄되있었다. 엉성하지만 질끈 감겨있는 붕대로.
쓸어내리자 알알한 고통이 전해져서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러들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무언가가 나를 잡고있는 느낌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차가운 바람만 불고 있었다. 답답함의 이유는 겹겹히 쌓여있던 담요때문이였다.
겨우겨우 등을 밀면서 몸을 일으키자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시야가 확보되었다. 내 머리카락은 곧게 정돈되있었고, 가방은 내 옆에 있었다.
박경리... 나는 박경리를 떠올리자 박초롱과 겹쳐보여서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소름과 추위가 싫었다.
김한빈은 어디로간걸까. 그리고 내가 눈을 감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멍청해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친 다리를 의미없게 쓸어내렸다. 붕대가 다 벗겨진 채 약만 덕지덕지 흉물스럽게 발라져있었다.
신경이 끊긴 것만같았다. 당장이라도 다리를 움직여서 확인해 볼 수도있었지만 용기가 나지않았다.
일부러 힘을 주지않고 살짝 눌러보니 찌르르, 하고 올라오는 고통에 헉 하고 고통섞인 숨을 참아냈다.
가방을 끌고와서 물을 들이켰다. 한동안 긴장감에 마시지않은 물인터라 더욱 반갑게 느껴졌고 마구 쏟아냈다.
입가를 적신 물은 차갑지않고 미지근했다. 거칠게 입가를 닦고 담요를 다시 위로 끌어 덮었다.
저벅저벅거리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이제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경끼를 일으킬것만 같았다. 헝거게임의 폐해였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이젠 아무렇지 않게 될것이란 생각에 내 자신이 초라해졌고 안쓰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김지원은 또 어디로 간거야. 이틀, 아니 삼일째 김지원의 얼굴도 못보니 정말 궁금해서 미칠것같았다. 김지원의 비니를 찾아줘야할텐데.
저벅저벅거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고, 나는 지쳐버린 얼굴로 소리가난 쪽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어두운 탓에 얼굴은 보이지않았지만 형체는 보였다. 투박하게 무언가를 들고 휘적거리며 오고있었다. 오세훈의 발걸음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승완은 더더욱 아니였다. 손승완보다 덩치가 좀 있었다. 그 형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점점더 가까이왔다.
"아..."
그 형체와 눈이 마주친 기분에 나도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 형체는 저벅거리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내 목소릴 들었던지 내 쪽으로고개를 돌렸다.
달이 뜨지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 카메라도 보이지않을 터. 나는 검게칠해진 하늘을 미워하며 그 형체를 뚫어져라 봤다.
저릿해져오는 고통을 이를 악물었다. 키가 컸다. 차학연일까. 차학연은 김한빈에 의해 목이 따인 상태여서 벌써즉사를 했을텐데.
설마, 설마하는 마음에 옷깃을 쥐고 내 등뒤로 기대고있던 나무로 다시 등을 기댄 채 그 형체를 노려보았다.
하얀색이 보였다. 하얀색... 내가 눈감기전에 보였던 하얀색 또한. 그 형체는 다리를 접고 나와 같은 눈높이를 얼추 맞췄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주변에 널려있던 잎사귀들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왁자지껄하게 흩어지고 모여들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붐과 동시에,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
"..."
달, 그리고...
너가.
"...김지원..."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는 떨리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달은 환하게 웃으며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내민 달 탓에 김지원의 윤곽이 더욱 뚜렷했다.
48시간만에 만난 김지원, 그리고 나. 떨어져있는 동안 김지원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벙했던 내가.
지원아. 나는 너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비록 아무말 안하는 너지만, 이게 꿈이라도 믿고싶었다.
김지원, 고마워... 나는 정말로 그가 고마웠다. 버텨줬구나, 진짜로. 정말... 너가.
"...버텨줬구나."
김지원은 어둠속에서 날 바라보며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동안 너 못만나서 내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아?"
"..."
"박경리 죽이고 널 발견하니까, 너는 피쏟으면서 정신을 놓고있고."
"..."
달빛에 김지원이 더욱 밝아보였다.
"박경리 죽이고나서 눈돌아갈뻔했어, 정말로."
"그랬어?"
"응."
우쭈쭈해줘, 라는 눈빛의 김지원이였기에 나는 가까스로 손을 들어 김지원의 뺨을 어루만졌다.
"드디어 만났네."
김지원은 살풋 웃으며 또 다시 속삭였다. 쓰다듬던 내 손 위에 자신을 손을 얹혀놓았다.
차가운 내 손위에 비교적 따뜻한 김지원의 손이 덮혀졌다.
"아무데도 안가."
"..."
"너가 꺼지라고 해도, 너가 지겹다고해도. 난 안가."
"..."
"내가, 내 발로 갈 때까진 안 떠나, 너 곁을."
"잘 버텨줘서 고맙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야."
그리고 김지원은 바싹 내 곁으로 몸을 옮겼다.
자신의 뺨을 쥐고있던 내 손을 떼고서 그는 자신의손으로 반대로 내 뺨에 갖다대며 얼굴과 얼굴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좋아해."
입을, 맞췄다.
* 사진출처는텀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