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B. 헝거게임]
- 김한빈의정석 -
* 작가의 말 : 이렇게 제가 13일 동안 쉬었는데도 여러분의 변치않는 사랑에 힘이납니다. 차기작인 '나는, 제국의 왕자로소이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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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지원아
꽁냥꽁냥
갓바비
해롱해롱
파랑짹짹이
기맘빈과김밥
매력넘치는
주네야
깜백
뜟
콩듀
으우뜨
슬리데린
너에게로가는걸음
김빱
아오요유
디니
꿀갓빈
닐리리야
들레
캐서린
우현동자
지나니
달여우
헤헷
진주
김지원의 혀가 내 입술을 핥고, 내 입안을 침투하여 농락을 했다. 나는 그저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달빛의 향연에 김지원도 나도, 미쳤다.
잠시 움직이던 입술을 멈추더니, 작게 실눈을 뜬채 얼굴을 마주하고 바라보고있는 김지원은 누구하나 뭐라고 할 것 없이 아련하고 아련했다.
그의 숨소리와 모든 감각들이 온통 집중 된것만 같아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짜릿함,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감에 체온이 올라간 건 사실이다.
김지원은 키스를 멈추고 나를 끌어안았다. 차갑기만했던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이 좁혀짐과 동시에 더운 공기가 훅, 치고 올라왔다.
두근거리는 그의 가슴이 새삼 느껴지자 몸에 주고있던 긴장이 풀려왔다. 그리고 저절로 그에게 몸을 기대게 되었다. 김지원은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김지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핑핑 돌아가는 그의 눈길에 나는 저절로 방금전까지 맞닿았던 입술의 느낌이 생생했다.
지원아. 나는 그의 이름을 넌지시 불렀다. 김지원은 흠칫 놀라더니 날 껴안고 있던 그의 팔의 강도가 높아졌다. 있는힘껏 끌어안지는 못했다.
너의 무엇이 날 그렇게 두렵게 만드는 건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마저 김지원을 끌어안았다. 마치 그 날의 밤처럼, 그렇게.
잃을 것만 같았어. 김지원의 낮은 목소리가 내 어깨를 타고 전해져왔다. 눈 앞에 보이지않아서 널 잃을 것만 같아서 너무 아팠어.
몸을 움직여서 그의 전체를 끌어안을 수는 없어도, 김지원의 부분만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다.
다시봤는데 너는 다리가부러져 있고, 모두들 만신창이에 고통에 찢겨져나가는데 소중한 사람들은 무사하는지도 모르고. 김지원은 주절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너가 괜찮다는 거에 나는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정말 잘 버텨줬구나, 기특하다고.
김지원은 내 뒤 통수를 쓸어내리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겠지.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김지원은 다행히 예전처럼 팔을 떨지않았으나, 불안함은 더욱 증폭된 눈치였다. 마른침을 삼키고 안겨있던 품에서 빠져나와 그와 눈을 맞췄다.
지원아, 누가 죽었어? 묻고싶었던 질문을 바로 던지자 김지원은 흠칫, 아주 대놓고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뭘 그렇게 놀라냐고 그의 어깨를 톡, 치자 어색하게 웃더니 입술을 천천히 깨물었다. 난 김지원의 행동에 하나하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금 한창 달이 떴고, 어두웠음에도 게임진행자들은 무시한채 진행시켰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김지원이 봤겠다는 가정하에서.
김한빈 안 죽었지? 내 말에 김지원은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내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죽었지, 맞지.
"안 죽었다고 믿고싶어?"
"..."
"그래, 안 죽었어."
김지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헝거게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생존자의 숫자, 그리고 그 숫자가 구성되있는 인원들의 실명들.
김지원은 내 볼을 여러번 쓸어내리며 쉬- 하고 자신의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갖다댄 채 속삭였다.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아직 너에게 알려주고 싶진않다.
왜?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무슨 이유에서 알려주고 싶지 않는건지 나는 김지원의 사고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입가를 꾹 깨물고 있었다.
서로가 침묵을 타고 조금이나마 따뜻했다고 느꼈던 방금과 다르게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서로를 향한 눈치가 맴돌기 시작했고, 어색함이 짙게 베어났다.
너가 상상도 하지못했던 사람이 죽었어. 김지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젠 대답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난 그래도 김한빈이 죽지않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마음이 놓인 느낌였다. 무겁게 무언가를 짓누르고 있던 것을 빼낸 듯한 기분이였다.
그렇게 달이 뒤늦게 밝아오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쳤다는 이유로 자신이 매어준 거라며 다리를 감고있었던 붕대 위를 살짝 눌렀다.
김지원의 손가락이 느껴져서 약간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작게 웃으며 한번 움직여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이 다쳤어.
아냐, 너랑 도망친지 이틀이 지났어. 이제 슬슬 움직여봐야 되지않을까? 김지원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하며 다시한번 내 다리를 꾹 눌렀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쉽게 올려지는 다리는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설마하는 마음에 조금씩 무릎을 굽혔다.
찌르르 하고 타고오르는 전율이 조금이나마 있었지만 그래도 전과다르게 아무런 탈없이 움직이는 내 다리가 기특하기도 해서 살짝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있던 김지원은 한번 더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서는 김지원의 냄새가 났고, 어딘가 맡아본 느낌이라서 진정되었다.
무언의 화제가 돌려지면 그것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본능, 그리고 이어갈려고 하는 그 사람과의 노력.
김지원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참 고민이 되었다. 난 김지원 오른편에 앉아있었고 김지원은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며 정리하고있었다.
한참동안 김지원의 옆모습을 쳐다보다가 문득 영롱하게 빛나는 달을 쳐다봤다. 달은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같기때문에 항상 같은 면을 보여준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달의 뒷모습에 대해 참 궁금해 했었다고 한다. 이상한 괴담을 흘리기도 했으나 반대로 로맨틱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었는데.
달의 뒷모습이라, 항상 앞모습만 보여주면서 자신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그리고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같다.
김지원은 무언가를 꺼내며 뒤적거림을 멈췄고, 왼손으로 담요를 내 주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지금 담요두르고 있는데, 넌 안둘러?
"너 추워보여."
"하지만 그 담요는 너꺼잖아."
"아니, 난 상관없어."
김지원은 던지듯이 내게 건넸고 나는 엉겹결에 받아 멍 하니 있자 멍청해보인다며 타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두르라고 줬더니 가만히있어?
결국에는 아옹다옹 싸우다가 김지원과 내가 같이 덮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거의 삼중으로 겹치게 두르고 있었으나 김지원은 고작 한 겹뿐이였다.
긴 수증기가 입가에서 나오는데도 김지원은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이라 내가 더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은근히 김지원쪽으로 건넸다.
자꾸 그렇게 걱정하면 나 이상한 상상한다고. 내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게 한 살짝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미동도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겁먹었냐며 내 머리를 쓸어넘겨주는데 이딴 장난 받을 시간조차 없다고 짜증을 냈다. 김지원은 덩달아 짜증을 내지않고 그저 웃었다.
김지원 오른손에 들린 스프링 노트에 시선을 주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들흔들 들어내보이며 자신의 일기장이라고 답했다.
내 일기장이야. 너 일기도 써? 왜, 놀랬어? 일기 안쓰게 생겼는데. 그런소리 많이 듣는데 너한테 들으니까 기분 좀 나쁜데.
여러번 펄럭펄럭 소리가 났다. 꽤 오랫동안 써온 티가 팍팍 나서 슬쩍 눈길을 주니 보지말라며 과장된 몸짓으로 노트를 덮는다.
아, 쫌 보자. 왜이렇게 숨겨어어. 살짝 뒷 말을 늘리자 김지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그렇게 애교부려도 안보여줄껀데.
일부러 담요를 목까지 끌어 올렸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면서 오랜만에 들리는 연필이 종이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끔뻑이며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긴, 같은 구역이니까 이 설화를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너 혹시 달에 얽힌 설화 알아? 조그맣게 말했는데도 김지원은 곧바로 사각거림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
"옛날에 들었던 얘기거든? 12구역에서 내려오는 설환데 혹시 알아?"
"...뭔데, 그거."
김지원의 말투가 약간 날카롭게 빛났다면 내 착각인걸까. 나는 그저 무시하고 일부러 김지원의 뒷배경에 달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자칫 잘못보이면 김지원의 후광으로 보일 수도, 그리고 그가 내뿜던 무언가의 단정치못한 아우라를 달이 대신 빛내주고있는 듯해서.
입가가 마른듯 입술을 쓰는 그의 혀에 살짝 눈이 갔다가 조금 텀을 두고 입을 열었다. 모르는거냐고, 그러자 그는 고개를 한번까딱였다.
어릴때 그런 이야기 들을 시간조차 없었어. 뻥치지말라고 하자 진짜라며 다시 연필을 놀리는 김지원이엿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왔다. 숲속의 나무들이 서로 스킨십을 하며 반갑다고 잎사귀들의 접촉으로 인해 나오는 소리가 귓가에 들썩였다.
어느새 내가 들고있던 보라색 비니를 꼬옥 쥐고 김지원 곁에 바싹 붙었다. 다시끔 올라오는 더운 열기가 나쁘지 않았다.
옛날 옛적에, 달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소년이 있었어. 소년은 달에게 사랑한다고 매일 고백하고 달도 소년을 사랑했대.
달과 멀어지는 날이 있거나, 달이 뜨지않는 날이 오면 소년은 매우 슬퍼했대. 그만큼 달을 아끼고 사랑했던거지.
다시 나타나는 날에는 소년은 뛸듯이 기뻐하며 사랑을 속삭였대. 달도 그에맞춰서 달빛을 내려줬고 둘은 행복했대.
그런데... 소년이 커가는 과정에서 크게 다쳐버렸어. 맹수의 습격인지 사람의 칼부림인지 모르지만 소년은 크게 다쳤어.
몇 주동안 깨어나지않고 나타나지 않는 소년을 달은 슬퍼하며 어서 나타나길 빌었대. 그리고 거짓말같이 소년은 다시 깨어났어.
달은 소년이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소년은 달을 무시하고 옆 동네 소녀를 만나러갔대.
거기까지 말을 마치자 김지원의 사각거림이 다시한번 멈췄다. 동시에 나 또한 놀리던 입을 멈추고 눈을 내리깔았다.
...다시, 다시. 김지원은 저주에 걸린 인형마냥 다시, 를 반복하며 가늘게 목소리를 떨었다. 애처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같이 차가웠으나 가만히 지켜보면 뛰는 혈액의 울음소리에 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에도 무시하고 있었다.
김지원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라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영롱하게 빛나던 하늘위의 달이 어느새 구름으로 가려지고있었다.
그 덕분에 김지원의 옆모습도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이야기를 재장비했다.
달은, 소년의 그런 모습에 가슴아파했대. 하지만 소년을 직접 불러서 무어라고 하진 않았대.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어.
몇 일이 지나고 정말로 소년이 달을 찾아오지 않았어.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았고, 열정적이게 고백하지도 않았대. 그저 무심했었고.
달은 소년의 행동에 깊게 상처를 받았어. 그리고 몇일동안 그 빛도 비추지않고 하늘에 나타나지않았대.
태양이 뜰 시간에 달은 몰래 숨어서 울었고 그러던 중 소년과 소녀의 결혼식이 올려졌대. 그걸 본 태양은 달에게 말했어.
그 충격의 여파가 어지간히 가시질 않아서 태양이 밤에 나타나기도 했었어. 서로 사랑하던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지.
다시 나타난 달의 모습에 달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어. 하지만 달은 소년을 보면서 그저 웃었대.
태양이 물었어. 달아, 너는 왜 화를 내지않는거야? 소년을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텐데, 넌 그아이를 매우 사랑했잖니.
그런데 달은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했대. 자기가 소년을 너무 사랑해서, 저런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태양은 다시 물었대. 너희는 약속도 했었는데, 그런데도... 너는 소년을 이해할 수 있냐고. 달은 태양의 질문에 입을 열었어.
하지만, 저 아이는 자기 보다 저 소녀를 좋아하고 있다고. 자기가 진정으로 소년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이해해줘야 한다고.
그게 자기 사랑의 방식이래. 달은 웃으며 행복한 소년의 가정을 바라보았지.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들이켰다. 김지원은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어두운 감색 숲속의 빛깔에 그의 표정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달빛은 구름 틈새를 뚫고 지나왔지만 그것만으로도 다시 김지원의 얼굴이 보이기엔 역부족이였다. 나는 한동안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사각거림이 언뜻 들려왔다. 3초에 한번씩, 끊겼다가 이어가고 끊겼다가 이어가길 반복했다. 나는 그의 비니를 여전히 잡고있었다.
달은 소년을 왜 용서했을까.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어릴적 엄마에게 물어봤었지만 도무지 생각나지않는 달이 소년을 용서한 이유.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걸 감수하고 희생할 줄 알았다는 달,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비웃었던 지난 날의 내가 보였다.
하지만 곧 김지원의 바람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의 반응이 엇나간 것만 같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이어 달이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달은 행복했대?"
김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감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웃었다.
참 멍청한 사랑이겠네, 너한테는.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곧이어 한숨을 내뱉으며 사각거림을 이어갔다.
난 왜 이상하게, 달의 심정이 이해가 갈까. 김지원의 말에 숨소리 조차도 멈춘 기분이였다.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한 기분.
왠지 나랑 비슷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달 존나 불쌍하네. 그러더니 짧막하게 웃어넘겼다.
달이 소년을 너무 사랑해서 가능했던 일이래. 담담한 척을 애써보이며 김지원에게 마저 말했다. 그러자 김지원은 잠시 숨을 골랐다.
너라면 이해할 수 있어? 그의 질문에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김지원을 쳐다봤다. 연필을 놀리던 손길이 멈췄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마."
"..."
"너랑... 후, 너랑 윤형이 사이라면 가능할... 아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대답을 원하는거야? 나는 그렇게 묻고싶었지만 그의 말투와 모든것이 차마 그렇게 대답못하도록 봉쇄하는 듯한 느낌이였다.
꽤나 애매하게 대답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김지원은 어, 그러냐. 하고 맞대답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추위가 한층 높아져가는 와중에 그는 일기를 다 썼는지 완전히 연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노트를 푹 덮더니 가방에 다시 주섬주섬 넣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쳐다보지않고 인기척으로만 그리고 소리로만 느꼈다. 김지원은 잠시 가만히 나무에 기대있었다.
누가 죽었는지 궁금하다고. 그는 또박또박말하며 마른 세수를 했다. 김한빈은 안 죽었다고 내가 말해놨으니까 별 의미는 없겠다.
너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한빈, 죽었다고 거짓말 칠 수도 있었는데. 왜 김지원과 김한빈은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인건지 대충 알고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먼저, 육성재가 죽었어. 4구역에서 손승완 못 죽여서 안달났던 새끼, 알지. 결국에는 손승완이랑 붙었나봐. 죽었어.
차학연도 죽었고. 차학연은 김한빈이 목따서 죽었어. 박경리는 내가 죽였고. 그 년이 너 배 구멍내서 눈돌아갔었는데 참았어.
나머지 타 구역인 손승완과 오세훈, 그리고 김한빈. 김한빈은 도망쳤고, 오세훈은 자살했어. 손승완은 오늘도 안떴어. 지긋지긋한 살 운명인가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말고 사랑해라는 말을 전하라던 손승완의 얼굴이 아른아른 떠올랐다. 그와중에 오세훈이 자살했다고?
오세훈이 자살했다니. 반복적인 내 말에 김지원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라고, 오세훈 죽었다고.
이런 갑박한 곳에서 살아남기에는 오세훈은 차마 못견뎠나봐. 한 마디로 미친거지. 아까전과 같이 조곤조곤 말하는데도 소름이 끼쳤다.
언제 죽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너가 내게 발견된 날 밤에 죽었다고 했다. 대포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사망자 명단이 하늘에 떴었다.
오세훈의 얼굴이 보이자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분명히 살아남을 것만 같았던 아인데 그 대포소리의 주인이 오세훈이였다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제 곧 살아남은 사람은 24명에서 고작 4명뿐이라는 사실에 자신도 꽤나 혼란스럽다고 덧붙였다.
근데 나는 오세훈 심정이 이해가 간다. 누가 이런곳에서 안미치고 살아, 죽이는 것만으로도 몸에 익지않은 사람이면 견디기가 힘들어.
죄책감과 공포감, 그리고 누군가 날 죽일 것이란 압박감에 온 몸이 조여올 정도니까. 김지원은 좌르르 말을 늘어놓았다.
김한빈이 딜을 했었던 그, 그리고 날 죽이지 말라고 했으면서 정말로 죽이지않았고. 내 정신까지 챙겨줬던 오세훈이 죽었다.
내가 그의 뒤를 덮칠 무언가 형체를 죽여줬었고 핏냄새에 잔뜩 난동을 부리던 오세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아무말 안하고 있자 이런반응이 나올줄 몰랐던 건지 조금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뭐, 무튼 나랑 너도 살았고. 난 너 죽은줄 알았어.
겨우 살려낸 거 같은 기분이 없지않은데. 중얼거리며 말하는 김지원은 담요를 끌어올렸다. 너무 슬퍼하지마, 어차피 누군간 죽게되있었잖아.
나도 안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와 엮였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그닥 반갑게 들려오진 않았다.
차라리 내가 잔인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였다면 웃었을지도 모르지. 오세훈의 죽음을 기뻐하고 좋아했을지도 모를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승완도 죽을지도 모르고, 김한빈도 그리고 김지원, 나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니다. 생각이 아니고 사실이니까.
김지원은 내 눈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덮어줬다. 한순간에 깜깜해진 안목에 나는 뭐냐고 되물었고 김지원은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 자라고. 나한테 이런 얘기 듣는것만으로도 너 정신 깨질거, 다 보이는데 이제 좀 자는게 어때? 내일 어차피 숲속을 돌아다녀야 하니까.
정신 깨질거- 라는 그의 말에 손바닥을 치우라고 말하려던 내 목까지 올라온 말이 스르르 내려갔다. 다 알고있었다.
김지원은 약하게 끄덕인 내 고개에 만족한 목소리로 그럼 이제 자라며 자신의 어깨를 내 손으로 얹히게 했다.
딱딱하게 만져지는 그의 어깨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간지럽다고 낄낄거리는 김지원. 그리고는 웃음을 참는 목소리가 되었다.
내 어깨 기대서 자라고. 이게 어디 쉬운 일인줄 알아? 내 어깨 기대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
"당분간은 마음정리 하자."
"..."
"힘들었잖아."
김지원은 내 코에 입을 살짝 맞추었다. 그리고는 베시시 웃고는 내 얼굴을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고는 능청을 피웠다.
이번만큼은 눈감아주기로 했다. 김지원도 나름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그랬으니까. 그리고 하루빨리 헝거게임이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기를.
"김진환, 뭐해?"
진환은 담배를 물고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혁은 다가오지 말라는 압박에도 가볍게 무시한 채 진환의 곁으로 다가왔다.
또 보고있었구만. 쯔쯧, 거리며 혀차는 소리에 진환의 눈썹이 올라갔다. 뿌옇게 퍼지는 담배연기가 익숙해진 것도 병이였다.
진환은 아까전부터 지원과 그 아이가 입맞추는 것 부터 계속 돌려보고있었다.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나가버린 앨리스리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김진환, 이제 좀 경기 보지? 멘탈붕괴 온건 알겠는데 상황파악좀 하자. 김동혁은 놀리는 어투로 말했다.
김진환은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뱉어내고는 담배꽁초를 지졌다. 잿떨이에는 수북히 꽁초가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담배 맛있어? 나도 한 개피만 줘봐. 김동혁은 김진환 옆에 앉아 같이 들고온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신경을 긁어댔다.
"꺼져라."
"헐, 존나 너무해. 내가 이렇게 오징어도 들고왔는데."
"지금 오징어 씹다가 너 씹을거니까 좀 닥치지."
김진환의 어두운 말에도 김동혁은 아랑곳하지않았다. 답이 없다고 생각된 김진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리아픔을 호소했다.
입을 맞췄다.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할 것만 같았던 그 아이와, 자신의 제자로 생각했던 김지원이 입을 맞췄다.
이렇게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그냥 내 감정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치고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인정하지않았던 것이 예상외로 분출되어서 일까. 김진환은 담배를 다시 꺼내고는 불을 붙혔다.
달칵 거리는 라이터 소리에 김동혁은 지겹다며 오징어 다리 한쪽을 김진환에게 던졌고, 김진환은 얼굴에 맞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심심하다고 놀아달라는 거냐? 김진환의 목소리에 김동혁은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발을 밟혀버렸다.
"아악!!!!!!!"
"좀 조용히해. 저거 봐야하니까."
"씨발, 화풀이 하지마! 존나 아프네, 아아..."
김진환은 김동혁을 힐끔보고는 다시 원래 진행되는 게임의 화면으로 맞췄다. 김지원과 그 아이는 잠을 청하고 있었다.
턱을 괴고 뚱하게 쳐다봤다. 김지원의 어깨에 기대서 곤히 자고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잔뜩 상했다.
들어간지도 벌써 일주일 채 안됐는데 저렇게 힘들까. 김동혁은 중얼거리며 내심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였다.
김진환은 담배를 다시 꼬아물고 빨아들였다. 머리를 조여오는 기분좋은 느낌이 들다가 다시 풀려왔다.
그런데, 김진환. 김동혁은 김진환을 불렀다. 당신이 헝거게임 참가했을때도 저런 경우가 있었어? 난 저기 들어가면 오세훈처럼 자살할것 같은데.
김진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김동혁의 말에 생각에 잠긴 얼굴이였다. 화면을 보고있었으나 머릿속은 과거로 돌아가고있었다.
핏비린내는 잘못 길들이면 평생을 짊어지게 되지. 당시 김진환의 멘토였던 여자가 자주 했던 말이였다.
돌고 돌아서 언젠가 너의 목을 쥐고 흔들거야. 그게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았던 것이였어. 인생은 뒤늦게 알아버려서 앞으로 가지못한다는 것도.
당시에 16살이였던 김진환에게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어려운 말이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도 못했고.
내가 살아오면서 깨달았던 것. 김진환도 이제 알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었던 건지. 그리고 앞으로 가지못한다는 아쉬움의 말도.
그런 말이였어. 김진환은 중얼거리며 진득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김동혁은 자신도 이해하자며 징징거렸다.
일단 화면이나 쳐다보자. 아니면 좀 자고있어. 눈가가 시뻘겋게 변해버려서 보기가 무서울 정도야.
"김진환."
"..."
"저 아이가 돌아오면 뭐부터 해줄꺼야?"
김동혁의 질문에 김진환의 눈초리가 그에게 옮겨졌다.
"뭐 그렇게 노려보라는 뜻은 아니고요."
"..."
"12구역의 자존심이 되고 이유의 존재가 될 아인데, 뭐 하나쯤은 해줘야 할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또 한 챙겨줌 하지. 김동혁은 눈을 찡긋하고는 재빠르게 방을 나갔다. 후폭풍이 몰아친 것만같은 기분이들었다.
곧 있으면 동이 터올 시간이다. 동이 트면 다시 움직이겠지. 김진환은 4명밖에 어느새 남지않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3명을 죽이고 과연 우승자가 될 수 있을까. 여린 마음에 죽이지 못하는 것도 잘 안다. 처음에 이홍빈을 직격을 쐈을때도 분열을 일으켰었던 것도 기억한다.
잘한 짓이라고 마인드컨트롤을 겨우하고 일부러 빗나가게 쏘고 그랬는데, 최대한 사람을 죽이지않으려고 노력한것도 안다.
그런 아이가 3명이나 죽일수는 있을련지 김진환은 오랜만에 도박에 다시끔 손을 얹은 기분이 들었다.
돌고 돌아서 언젠가 너의 목을 쥐고 흔든다는 말이 이런것이였군. 김진환은 침을 탁 뱉고는 기분나쁘게 웃었다.
동이 터왔다. 아침의 기운이 김지원과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누구 하나 뭐라고 할 것없이 동시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김지원이 내게 잘잤냐고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바보같이 웃더니 자신도 잘 잤다고 손을 흔들었다. 뭔가 바보같은데.
덩달아 웃어주니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서 아무말하지않았다. 자리의 흔적을 없애고 그동안 싸매왔던 담요를 주섬주섬 챙겼다.
뚫렸던 자국을 더듬거리면서 만져보니 피딱지 얹은 모양이였다. 김지원에게 붕대를 달라고 하자 자신이 갈아주겠다며 밀어붙혔다.
아니, 꼭 너가 해줄 필요는 없어. 됐고 내가 해줄께. 김지원은 내 말을 필터링을 해버린 것인지 내게 한걸음 다가왔다.
고집불통이란 생각에 군말없이 묶어있던 붕대를 풀었다. 옷을 살짝 들어올리자 김지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붕대를 입에 물었다.
"좀 다치지말아."
"어."
"그래놓고 또 다칠것 같은데, 병신."
김지원은 푸핫 하고 웃다가 내게서 이마를 한대 쥐어박고는 조용히 붕대를 풀어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직접적으로 닿자 몸이 떨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조심스럽게 바르고는 새로운 붕대로 다시 꼼꼼하게 묶었다. 당분간은 몸조심하고 다니자.
살짝 자세가 야시꾸리한데. 김지원은 무릎을 꿇고 내 배와 가까이 있는 상태였고 나는 옷을 살짝 들어올린 자세였다.
이거 자칫하면 파상풍 걸릴지도 몰라. 혹시모르니까 약은 너가 챙겨. 멍하게 서있던 내가 화들짝 놀래자 고개를 갸우뚱한 김지원은 약을 건넸다.
이제 네 명밖에 남지않았어. 손승완이 널 죽일지도 모르고, 김한빈이 예전에 말한대로 널 죽일지도 몰라.
김지원은 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차가운 공기가 다시 불어왔다. 김지원은 날 내려다보며 걱정어린 눈치를 보냈다.
"언제까지나 같이 있고 싶은데."
"..."
"그럴수가 없어서 짜증나."
그리고는 김지원은 나를 껴안았다. 급작스럽게 나를 껴안고는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내 목덜미에 파묻고있던 자신의 얼굴을 조금 들어올리더니, 귓가에 완전히 밀착한 목소리로 김지원은 속삭였다.
난 널 좋아하니까. 김지원은 그렇게 말하며 내 뒷통수를 쓸어내렸다.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나 야하게 들린건 처음이였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붉어졌다.
팔이 떨려왔으나 애써 모른척하며 김지원을 마저 안았다. 그의 약간 헐떡이는 숨소리가 귀를 타고 감각을 진동시켰다.
으스러지게 안아주는 그의 움직임이 좋았고, 인정하기가 어려웠으나 그 또한 살짝 떨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의 등을 감쌌다.
"지금 나 안아준거야?"
김지원의 목소리가 조금 들떴다. 나는 아무말안하고 그의 품에 얼굴을 푹 파묻혔다. 그러자 김지원의 목소리도 같이 올라갔다.
내가 살다살다 너가 날 안기는 처음이라며. 김지원은 허허, 웃으며 다시 머리를 쓸어넘겼다.
감기는 안 들었어?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추웠는데.
다리는 이제 일어설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그는 말을 덧붙혔다. 나는 고개를 다시 끄덕이며 살짝 다시 다리를 움직여봤다.
어색한 면이 조금은 있었지만 다쳤을 때보다 훨씬 수훨하게 움직이는 움직임이 좋았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김지원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따. 이틀동안 간병을 들어준 그의 노고에 조금 더 심장이 빨리 뛰어왔다.
"나 정신잃었을 때 존나 추했겠다."
"..."
"다리도 병신됐었는데 짜증은 안났어?"
내 말에 김지원은 허탈하게 웃고는 다시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거 없었어."
"..."
"너무 소중해서 그런거 신경안써."
"..."
"그런거 신경쓸 시간에 널 보고 손을 잡아주겠다, 차라리."
탕-, 하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김지원은 잔잔하게 웃으며 다시 재차 속삭여 왔다. 그런건 개나 줘버리라지.
등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고, 나는 온몸이 잔뜩 굳어버려서 멍 하니 김지원 품에 있었다.
김지원은 내 등뒤에 꽂혀있던 총을 어느샌가 잡아빼서 뒷 편을 향해 총구를 놓아버렸다.
소리의 생명체는 괴로운 소음을 잔뜩 뿜어내며 더욱 숲속을 어지럽혔다. 날카롭기만 한 총알의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김지원은 차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씨발, 이젠 짐승새끼도 나타나네.
"...뭐, 뭐야."
"보지마, 징그러워."
"아니, 뭐냐고."
"..."
김지원은 내 목소리에 한숨을 쉬고는 끝내 입을 열었다.
정통으로 맞춰서 한방에 즉사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짐승이란 것이 한 마리였다는게.
미쳤어? 왜 쏴, 그냥 도망가면 되잖아! 내 질타에 김지원은 진정하라며 이와중에 나를 다독였다.
그럴 시간에 쏴서 죽이고 도망가는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저 짐승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풀을 밟는 소리만 들려.
주변에 한 마리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김지원은 뭘 보냐며 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지원과 나는 서로 안던 팔을 풀었다.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한 마리를 죽이면 핏냄새가 진동해서 짐승들의 자극제가 될것이다. 그리고 몰려올 것이다.
"...김지원."
"씨발..."
그리고, 짐승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