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운은 숨기려했다.
길어서 한쪽눈을 덮는 앞머리.
잦은 부딛힘에 줄여버린 움직임들.
숨길 수 있는것이라면
그 모든것을 동원해서.
이제 자신에겐.
반쪽밖에 남지 않았다고.
더이상 자신의 오른쪽 세상은.
빛이 아니라고.
어둠만이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고 숨기려했다.
*
모든걸하겠다 결심한 홍빈은.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제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이제는 자신이 지켜내고자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
홍빈은 어두워지고 더 어두워져서 돌아왔다.
예전처럼.
바깥세상 얘기를 해달라며 조르지도.
아무것도 몰라서 가짜세상을 믿지도 않으며.
홍빈과 소년들의 사이에
마치
벽이라도 존재하는듯.
김원식이 제가 강해져서 다른 소년들을 구해주고자
마음먹은뒤로 변한것과는 달리.
정말.
모르는 사이처럼.
벽.
이질감이 느껴지는 벽.
섞이려 하지 않는
모진 벽.
*
오랜만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는 그 예전의 막내처럼.
형들이 지켜주고자 했던 내 모습들을.
연기한다.
"그래서… 하…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울컥 비집고 올라오는 말들을
억지로 누르고.
재환이형이 해준 말을 열심히 듣는다.
바깥세상 이야기.
상처투성인
형들의 사랑.
"그래서 형아가 그 나쁜사람들 다 쫓아내고.
딱…! 지켜…줬…지…"
그만해요. 형.
"형이 원래 좀 멋쟁이 형아잖아…!
형은 …누군가를 지켜…주는게 …좋아…"
형은 지켜주는 사람 아니잖아.
"형은…해하는 사람이지.
절대로 …지켜는 사람이 아니잖아."
형의 썩어가는 그 속마음을 생각하란 말이야.
형은 형을 해하는 사람이지.
절대로 형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잖아.
"…응…? 혁아 뭐라고…?"
"…저 아무말도 안했는데요…?'
재환이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야기를 마저 해준다.
형이 거짓말할때면 눈에보이는
머쓱한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행동도 함께.
하지만.
난 아직은.
모르는 막내일뿐이니까.
*
새벽이 찾아오고.
모두 한 방에 누워 각자만의 꿈나라에 빠져있을때.
학연은 옷 소매로 입을 틀어막고.
고통의 소리를 죽여낸다.
'…아파…'
속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비명을
애써 무시하며.
학연은 참다못해 몸을 일으킨다.
저번에 그곳에서 빠져나올때
손에 쥐어져있던 '그것'이 없으면.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큰 고통을
참을 수 없다.
억지로 견디려고 해보지만.
이미 몸은 '그것'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
학연은 더듬거리며 벽을 잡고 문쪽으로
나아간다.
눈 앞에 불꽃이 튀는것처럼.
번쩍거리며 찾아오는 고통에.
학연은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턱끝까지 차오른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아
학연은 주먹으로 제 맨가슴을 내려친다.
*
복잡한 머리에 며칠째 밤에 잠 못들고
이런저런 생각을.
여긴 어디고.
우린 왜 이렇게 살고있는가.
길고 긴 새벽을 홀로 보내던 상혁은
학연의 심상치않은 호흡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듣기만해도 뜨거울것이 분명한
숨을 가쁘게 내뱉던 학연이.
몸을 일으키고 조금 걸어가다가.
이내 쓰러진다.
가슴을 내려친다.
상혁은 놀라서 몸을 일으킨다.
급히 다가가서 학연을 부른다.
"…저… 그거 주세요… 제발… 좀…"
학연은 정신도 못차리고
말을 이어나간다.
계속 찾는다.
그 무언가를.
갑자기 머릿속을 지나가는 그때
그 주사기를.
상혁은 생각해낸다.
재빨리 자신의 서랍 깊숙히.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았던 주사기를 꺼내.
학연의 손에 쥐어주면.
능숙하게 주사기의 뚜껑을 입으로 물어 열고.
그 마른 팔뚝이 보이도록
소매를 걷어올리고.
대충 주사기를 밀어넣는다.
피스톤에 의해 밀려난 약이
반 정도가 학연의 몸으로 밀려 들어갔을때.
학연은 옆으로 쓰러진다.
점차 숨이 고르게 변하고.
꽉 쥐고 있던 주먹도 펴진다.
상혁은
제가 쥐어준것도 모르고.
그저 급하게 주사기를 사용하던 학연의 팔에 꽂혀있는
주사기의 피스톤을 완전히 밀어넣어
모든약을 주사한다.
그리고 나선 소매를 원래대로 돌려주고 번쩍들어.
침대에 가지런히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학연의 침대밑에 앉아 등을 기대고.
이불밖으로 나온 학연의 차가워진 손을.
마주잡아본다.
이내 결심한다.
학연이 그렇게 찾던 그 주사기가
그 주사기에 쓰여있는
'진통제(마약)'
이라고 쓰인 그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야한다.
*
상혁은 서랍속에 숨겨져있던
마지막 주사기를 꺼내든다.
제 침대에 앉아 소매를 걷어올리고.
방금전 학연이 했던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약을 밀어넣는다.
피스톤이 눌리는 만큼.
몸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약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상혁의 손에서 주사기가 떨어진다.
주체할 수 없을만큼 입꼬리가 올라간다.
몽환적인 기분이다.
몸이 붕 뜨는기분.
상혁은 머리를 감싸쥔다.
입으로 쉴새없이 욕을 내뱉는다.
"…씨발… 안돼… 안돼…."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고
입은 여전히 웃는다.
생소한 느낌을 이겨내지 못하는 몸은.
제정신으로 받아들인 약에 지배당해서
어쩔줄을 모른다.
"…안돼… 정말 이러면 안돼… 씨발… 바보같이…"
상혁은 긴 밤이 새도록.
풀려버린눈으로 세상모르게 잠이든 학연을 노려보며.
그렇게.
밤이 다 도망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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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Paradise!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