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읍.."
"으음.."
"으응, 자장..자장.."
몇시지, 잠이 살짝 깨 몸을 반대로 뒤틀었어. 평소처럼 잠덜깬 목소리가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자장자장, 익숙한 소리를 냈고 백현이구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잠에 빠질락 말락했어. 근데, 이 쯤이면 백현이가 나를 끌어안아야하는데..백현이 대신 도톰한 이불만 내 어깨 위에 덮여졌고 익숙하지 않은 허전함에 눈을 떴어.
"백혀나.."
눈이 부셔 게슴츠레 떴을 땐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백현이 뒷모습이 보였어. 몸을 꿈틀거려 그 뒤로 가 허리를 끌어안고 비비적거렸어. 아, 백현이 냄새.
"..안자구 뭐해..잠 안와?"
"..응. 응. 자, 얼른."
허리부근에 얼굴을 부비부비거리는데 몸이 살짝 떨려. 그 때까지도 잠에 취해 눈을 감고 있다가 내 물음에 힘겹게 대답하는 백현이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어.
"..백현아?"
정말 깜짝 놀랐지. 백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한 손으로 눈을 꾸욱 누르고 있는데 팔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려서 잠옷자락이 붉게 물들어있었거든.
"뭐해, 왜, 왜 그러는데? 응?"
"..원래 눈 감고도 잘 했는데, 오늘 따라 안 되네.."
"이게 뭔데? 응?"
황급히 백현이 손을 잡아채서 손에 든 걸 확인했더니 주사기야. 팔을 몇 번이나 찌른건지, 내가 손으로 백현이 팔을 마구 닦아내니까 내 손을 잡아떼고 제 바지에 스윽 닦아.
"피 묻는다."
"지금 그게 문제야?! 너 저 약은 또 뭔데!! 내가 받아온 거 아니잖아!!"
"가서 손 닦고와."
"싫어, 너도 내 말 안들으니까 나도 니가 하는 말 안들어."
눈이 어떻게 아픈 건지 괜히 속상해서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고 백현이 옆에 널부러져있는 소독솜을 가져다가 피가 흘러내리는 팔을 닦아냈어. 몇번 찔렀던 곳이라 따가운지 팔을 움찔거려. 마음 같아서는 아프든지 말든지, 그냥 찔러버리고 싶었지만..
"..아파? 반대팔 줘."
어휴, 어휴..항상 내가 지는 거지 뭐.
"약은 뭐야? 저것도 진통제야?"
"아니, 하루종일 잤더니 잠이 안와서."
"수면 유도제야? 그렇다고 눈도 제대로 못뜨는 애가 주사를 드셨어요?"
내 말에 흐릿하게 웃으면서 바늘이 꽂혔다 빠져나온 자리를 솜으로 꾸욱 막고 있어. 나는 한번씩 백현이가 의사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은데, 이렇게 습관이 된 행동을 볼 때마다 백현이가 의사였지, 하고 생각해. 주사 뺀 자리를 솜으로 막는다거나, 수액을 꽂아주면 자연스럽게 약물 떨어지는 속도를 확인한다거나, 수시로 손을 닦는다거나, 그런..
"어디 봐, 몇 번이나 찔렀어?"
"다섯 번인가, 피 계속나네.."
"집에 반창고 떨어졌잖아."
손수건이라도 둘러야겠다 싶어서 침대 밑 서랍을 열어 손수건을 꺼냈어. 팔꿈치에 손수건을 대고 아프지 않게 매듭지은 다음 침대에 널부러져있는 솜들을 치웠어. 이게 새벽에 무슨 난리야. 약물 들어가고 나서 조금 괜찮은지 백현이는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새근새근 숨을 내쉬었어. 밤에 이 난리를 쳤더니 집이 병원인 것 같기도 하고..
"얼른 자, 이불은 내가 내일 빨아놓을게."
"됐어, 세탁기 돌리고 갈테니까 돌아가면 널기만해."
"미안해."
"죽을래?"
"아, 알았어. 안할게. 미,"
"또.또."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또 미안하다는 망언을 내뱉는 변백현 덕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변백현을 노려봤어. 나는 변백현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제일 싫단 말이야. 뭐가 미안해, 이 정도로 미안해야할 사이도 아닌데. 씩씩거리는 내 팔을 잡아서 다시 눕힌 백현이가 어깨를 감싸안고 이불을 목끝까지 덮어줬어.
"그리고 너 약 처방 안 받은 거 막 먹지 말란말이야. 수면유도제는 또 어디서 가져왔어, 너 지금 먹는 약이랑 같이 먹어서 또 속 뒤집히면 어떡하,"
"나, 의산데."
그건 그런데, 니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도 맞긴 한데.
"의사라는 놈이 이러고 다녀? 어? 너 환자가 그러면 정색하고 화내면서? 너 이러고 다니는 거 환자들은 알아?"
"뽀뽀오."
"뽀뽀는 무슨 지랄맞게 뽀뽀야."
돌아오는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백현이는 빙글빙글 웃었고 나는 속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
"그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왜 혼자 일을 더 키우고 앉아있냐고, 내가 그거 제일 싫어한다고 말했지. 환자든 너든, 아픈거 말 안하는 사람이 나는 제일 싫어. 알겠어?"
"말..했는데."
"언제 말했어! 괜찮다며? 안아프다며?"
"아프다고 했잖아, 자기 전에."
"...어?"
"피곤하다며.."
"어.."
"자고 싶다며.."
맞다, 백현이가 아프다고 했었는데. 나는 꾀병부리는 줄 알고 피곤하다고, 자자고 그랬었고 백현이는 알겠다며 자연스럽게 나를 품에 안고 잠들었었지. 나는 전혀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했고 아마 백현이는 그 때부터 눈이 시큰시큰 아려왔을거야. 그러면 진통제 가져온 거 하나만 놔주고 자라고 하면되지, 그거 놓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간호사가 관찰력이 없어서야, 쓰나."
나는 벙져서 입까지 벌리고 내 잘못을 되짚었고 백현이는 그런 내가 웃긴 듯 실실 웃었어.
"미안하지."
"..응.."
"이리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팔을 쫙 벌려.
"..잠시만, 눈 좀 보고."
백현이가 팔을 벌렸는데, 내가 다가가서 안대를 끄집어 올리니 변백현 표정이 미묘해져가. 아플까봐 귀에 걸려있는 안대를 살살 벗기는데,
"연애를 안해봐서, 우리 김간.."
"야, 움직이지 말아봐."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안대를 벗겨냈는데, 눈이 퉁퉁 부어있길래 아프겠다 싶어서 손으로 살살 눌렀어. 붓기 좀 빠져야 내 마음이 덜 아프겠다 싶어서. 그런데 변백현은 아프지도 않은지 자기 혼자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갑자기 한 손으로 내 허리를 턱 받치더니 점점 몸을 붙여와. 얘가 또 왜이러 싶어서 인상을 살짝 찡그렸어. 피곤해 죽겠는데..
"나 넘어가, 비켜봐."
"이리오라고 하면 정말 오기만 하려고?"
"너 눈 부은 것 좀 봐. 이거 붓기 풀고 안아줄게."
내 말에 변백현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웃어. 나만 인상을 찡그리고 있고 백현이는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빙글빙글 웃고만 있어.
"어떻게 안아줄거야?"
"어떻게 안아주긴, 자꾸 토달면 등돌리고 잘,"
자꾸 말끝을 잡고 물어지는 변백현때문에 슬슬 짜증이 나서 몸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백현이가 고개를 빠르게 돌리더니 입을 맞춰와. 그리곤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허리에 있던 손을 빼서 내 몸을 뒤로 넘어가게 해 버리곤 옴짝달싹 못하게 자기 몸으로 막아버렸어. 내일 출근, 출근 해야되는데..
"..야, 나 내일 출,"
"이브닝이잖아요."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마, 백현이 어깨를 잡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절대 져주지 않겠다는 듯 강경한 모습이야. 아..내일 이브닝 뛸 생각하니 눈앞이 핑 도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현이 손은 이미 내 옷 속으로 들어와 자리잡은지 오래였어. 한숨을 푹 쉬면서 백현이 한쪽 귀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안대를 벗겨주니 허락의 의미로 받아드렸는지 눈을 맞추고 씨익 웃어. 너, 연애할 때는 어떻게 참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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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 불맠아니에여!!아니야!!!!다들 음마렌즈빼여!!!얼른!!!!
+아..짧네여...짧아...재성해여.........담편은 꼭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