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이 컴컴-하셨어요?" "어, 빵 좀 뜯어서 넣어줘봐. 그럼 더 불쌍해보이겠지?" "의사는 뭐래?" "아 몰라, 수술하래." "지금?" "수술 안 할거야. 근데 지금 몇시야?" 나는 변백현 이불자락을 꼬옥 잡고 화가나는 건지, 걱정이 되는 건지 잘 모를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변백현은 내가 왔을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하는 듯 했어. 결국 아무 필터링없이 수술이라는 말까지 들은 나는 가슴이 쿵쿵거렸어. 김종대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나는 스테이션으로 달려갔지. 변백현이 제일 잘하는 일인 평정심 찾기를 나도 시도했지만 손이 덜덜 떨리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스테이션에 있는 내 대학동기에게 변백현에 대한 상황설명을 대충 들었어. "제 발로 온 건 아니고, 밑에 인턴 한 명이 억지로 끌고왔더라구. 눈 엄청 심각하던데..쟤 담당쌤이 화나서 수술하라고 말하긴 했는데 아마 안해도 될걸. 근데 눈은 되게 아픈가보더라." "수술 안해도 돼? 그럼 이제 어떡해?" "뭐, 치료받고 며칠동안 눈 싸매고 있겠지. 나도 안과는 안가봐서 잘 몰라." 아오, 망할..그래도 수술은 안해도 될 것 같다는 말에 한시름 덜고 다시 비적비적 변백현한테 갔어. 커텐을 젖혔더니, 이런. 진짜 빵 먹고 있어... "야, 이 정신나간 놈아. 빵이 입에 들어가냐? 지금?" 결국 속이 터진 내가 변백현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고 변백현은 놀라서 두 손을 그대로 정지시키고 입을 쩍 벌렸어. 옆에서 빵을 뜯어 넣어주던 김종대는 빵을 내던지고 내 팔을 막으며 변백현을 보호했어. "야, 야!! 얘 때리면 안돼!" "변백현, 야, 내가, 너보고, 안과, 가라고, 했어, 안했어? 어?" 내가 변백현을 사정없이 때리고 김종대는 나를 저지하기 바쁜 와중에 커텐이 휙 젖혀지며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어. 누구겠어, 의사겠지. "야, 의사쌤 오셨어!!그만 때려, 좀!!" "아닙니다. 맞아야 정신차리죠." "쌤!!얘 죽어요!!" "여기 응급실입니다, 죽진 않아요." 내가 분이 풀릴 때까지 주먹질을 하고 나서 의사쌤을 보았을 때 쌤은 팔짱을 턱 끼고 내가 변백현을 때리는 걸 구경하고 계셨어.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에 씩씩거리며 보조침대에 턱 걸터 앉았더니 그제야 차트를 들고 변백현 옆으로 다가오셔. "변백현씨, 의사가 이게 말이 됩니까? 예?" 굵직한 의사선생님의 말에 변백현은 두 눈을 까만 안대로 가린 채 슬쩍 웃었어. 민망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 "레지던트 일년차부터 이러면 나중에는 감당 못해요, 지금이 제일 열의 넘치는 시기인 건 알겠는데, 눈 아예 망가지고 싶으면 계속 이러고 사세요. 알겠어요?" "쌔앰, 수술은 안해도 되는 거죠?" "한 번만 더 실려오면 수술장 직행시킬테니까 알아서 해. 인턴 때도 들어간 수술장 또 들어갈래?" 그 말에 또 변백현은 싱글싱글. 나는 속이 터져 죽겠는데. 의사 쌤이 나가고 김종대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며 나갔어. 결국 우리 둘만 남은 커텐 안에는 침묵이 흘렀지. "자기야.." "부르지마." "내일은 진짜 안과 가려고 했어.." "눈이 아프면 잠이라도 좀 자든가, 꼭 이렇게 일이 터져야 그만해?" "이잉, 자기야.." 손을 더듬더듬거리며 내 손을 찾는 것 같길래 슬그머니 변백현 손 앞에 내 손을 갖다 놨더니 찾았다, 하고 손을 턱 잡아. 야무지게 깍지까지 꽉 낀 변백현은 자기를 잠깐 일으켜달라고 요구했어. "수액 다 들어갔지?" "아직 좀 남았어." "빼줘." "남은 거 다 맞아." "나 팔 아파, 욱신거리구..아까 신규가 와서 찌른 것 같았어." "아파? 어디가? 욱신욱신거려?" "응, 나 아까 바늘 두번 찔렸는데..자기야, 뽑아주세요." 자기 팔을 감싸며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변백현의 말에 침대맡의 호출벨을 눌렀더니 변백현은 나보고 해달라며 또 칭얼칭얼. 근데 나 지금은 근무시간 아니라서 맘대로 하면 안된단 말이야. 결국 커텐을 걷고 내 동기가 왜그러냐며 묻길래 바늘 뽑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라해서 내가 조심조심 뽑았지. "호오, 해줘." "요구사항이 많다." "나 일으켜줘." "누워있어." "내려갈래." "어딜 가려고." 내 말에 입술을 삐죽인 변백현은 그냥 그대로 침대에서 발을 내딛었어. "어, 어, 조심!!" "아파.." "그러게 앞도 안보이면서 무작정 내려오면 어떡해! 괜찮아? 어디 봐, 까졌어?" 그러다 발을 헛딛어서 침대 모서리에 팔을 한 번 주욱 긁히고, 다행히 살짝 긁힌게 다였지만. 무작정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변백현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변백현 허리를 끌어안고 부축했어. 허리 얇은 건 진짜, 속터진다.. "어딜 가려고, 응? 내가 대신 할게. 뭐 때문에 그러는데?" "나, 당직실에 좀 데려다 줘." "거기는 왜? 내가 가져다 줄게. 뭔데?" 내 말에도 절대 안된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하여튼.. 결국 난 변백현을 조심조심 데리고 당직실로 향해야했어. 의사가운을 입고는 눈에 안대를 찬 모습이라니, 이건 진짜. 밤이라서 다행이지 낮이었으면 환자 여럿 놀랐을거야. "잠시만, " "혼자 간다고?" "당직실 안은 눈 감고도 찾아." "또 어디 부딪히려고.." 내 걱정에도 변백현은 반드시 자기 혼자 들어가야겠다며 고집을 부렸어. 정말 익숙하긴 한 건지 눈을 꽁꽁 싸매고도 비밀번호를 잘 치더라구.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릴까싶어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변백현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와. 아유, 깜짝이야. "..뭐야?" 변백현이 눈을 가리고도 굳이 당직실을 가야했던 이유가 이제서야 이해됐지. 변백현 손에 들린 케이크와 작은 선물 상자. 눈이 안보여서 답답한지 한 손에 케이크와 상자를 같이 쥔 채로 반대쪽 손으로 다시 허공을 휘저어. 내가 허공에서 갈 길 잃은 손을 감싸잡고 케이크도 받아들었더니 그제야 변백현 입이 예쁘게 올라가면서 입을 열어. "생일 축하해." "이건 또 언제," "얼른, 끝나기 전에 초 불자." 백현이가 습관적으로 가운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보이게하더니 잠시 멈칫했어. 시계가 보일리가 없지. 백현아, 내 생일.. "이십분 정도 남았어." 내 말에 백현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복도 벽을 더듬거려 다리를 굽혀 쪼그리고 앉았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은 내가 직접 케이크를 꺼내서 초를 꼽았어. 내 생일케이크를 내가 세팅하기는 또 처음이네. 백현이가 고른 케이크도 어김없이 치즈케이크, 김종대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가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단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아간 타입이라고 한다면 변백현은 나에게 무슨 케이크를 좋아하냐고 물어서 답을 얻어가는 스타일이었지. 그만큼 변백현은 나에게 충실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어. 조용한 당직실 앞 복도에서 변백현이 나지막하게 부르는 생일축하노래를 듣고 촛불까지 끈 뒤에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변백현이나 나나, 11시에서 12시 사이는 간호사들이 병동을 도느라 바빠 당직실 앞은 올 일이 없다는 사실을 꿰고 있었던 거지. 케이크는 집에 가서 먹자아, 하곤 다시 백현이 팔에 팔짱을 쏙 꼈어. 느릿느릿하게 걸어 다시 응급실로 향했어. "너네 왜 이제 와! 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변백현. 아까 설명 들었지?" 응급실 입구에서는 김종대가 한 손엔 약봉투를 들고 한 손엔 아까 가져왔던 케이크를 들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치즈케이크만 두개네. 김종대는 약봉투를 건네주며 변백현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지. "하여튼, 너 이번에는 진짜 꼼짝없이 쉬어야 해. 또 안대 벗고 딴짓하다가 걸리기만 해봐, 내가 수술장 쳐 넣을거니까." 김종대의 어마무시한 발언에 백현이가 아이고 무서워, 하며 슬핏 웃었고 내가 대신 약봉투를 받아들었어. 이 답없는 변백현을 어떻게 해야하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어. "차키 줘봐, 데려다 줄테니까." 그렇게 김종대가 운전하는 백현이의 차 뒷자석에 올라탔어. 앞이 안보이니까 차에 올라타는 것도 잘 못하더라구. 아기보듯이 하나하나 다 알려주면서 겨우 뒷자석에 나란히 앉을 수 있었지. 김종대는 하품을 쩍쩍 하면서 차를 몰았어.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도착한 집 앞에서 김종대가 변백현을 현관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김종대는 자기 집으로 향했어. 짧은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탓인지 몸이 주욱 풀리는 느낌이었지만, 저 장님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이리와, 이 닦고 세수만 하고 자자." "내일 몇시 출근이야?" "항상 내 출근시간 꿰고 있더니, 왜 내일은 모른대?" "못봤어, 눈이 안보여서." 그러고보니 변백현은 항상 자기가 퇴근할 때 내 다음날 듀티표를 확인하곤 했는데 오늘은 퇴근 전에 눈이 말썽부리는 바람에 못봤던거야. 괜히 더 안쓰러워보이기도 하고, 조심조심 화장실 앞으로 데리고 가서 입에 칫솔을 물렸어. "다기야.. 이고 해즈세여.."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누니 엄써여.." "양치를 눈으로 해? 얼른 안 닦아?" 또 이때다 싶어 제 멀쩡한 두 손을 뒤로 숨긴 변백현이 칫솔을 물고 해주세요해주세요 투정을 부렸어. 저러고 있는 거 보니, 고등학교 다닐 적에 변백현 팔 다쳤던 일이 생각나기도 하고.. "..오늘만이야. 너 피곤해보여서 해주는거야." 못 이기는 척 변백현 뒷통수를 감싸쥐고 치카치카, 칫솔질을 했어. 내새끼 뒷통수도 동글동글 예뻐요. 세수까지 마쳐주고 수건으로 물기까지 닦아내고서야 변백현을 침대로 눕혔어. "씻고싶었는데." 하긴, 일 때문에 이틀은 못씻은 것 같더라. "내일은 머리 감겨줄게." 내 말에 착하게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가 자기 옆자리를 톡톡 쳤어. 누우라는 뜻이야. 내가 얌전히 들어가 누웠더니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더듬더듬 이불을 잡아다가 내 목끝까지 덮어줘. 귀 아플까봐 백현이 얼굴에 안대를 벗겨주고 거즈가 얇게 붙어있는 눈가를 매만졌어. "눈 시린 건 괜찮아? 욱신욱신거리는 것도?" "응. 아까 진통제 먹었어." "내일은 출근 못하니까 푹 쉬고.. 또 뭐 한다고 돌아다니지말고. 넘어져서 더 다친다. 내가 담당쌤한테 말해서 약물같은 거 타 올 테니..야, 그만 만져." 아까부터 계속 말하는 내 입술을 만지작 만지작, "하루 종일 혼자 뭐하지?" "못잤던 잠 몰아서 자. 계단걸으면서 졸지말구. 그러다 굴러떨어지면 너 진짜 골로 가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닥치지 말란말이야..자꾸 잔소리하는 내가 싫었던 건지 뭔지 변백현은 열심히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손에 힘을 줘서 입을 맞춰왔어. 그래, 눈 아프니까. 눈도 안보이고 내일 혼자 집에 있어야하니까 눈감고 넘어가준다. "나는 네가, 잔소리 할 때마다.." 입술이 살짝 떨어지고 백현이는 눈을 감고있는건지, 뜨고 있는건지. 답답해서 거즈를 뜯어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는데. "바가지 긁는 아내같아서 너무 섹시해." 너도 참, 변태같은 취향을 지녔구나. ㅡㅡㅡ 우와 오십!!!!!! 한달뒤면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드네요... (먼산) 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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