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고개를 저었다. 오빠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빨리 씻고 옷이나 갈아입어야지.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1층으로 내려가니 시간이 딱 맞았는지 오빠 차가 라이트를 껌뻑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부드럽게 열리는 창문.
"얌마. 오랜만이다!"
"오빠!"
바로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은데 뭐 느낌이겠지...
차에 앉자 오빠의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나왔다. 아. 편하다. 내가 기대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우지호. 내 오빠다.
"회사는 어때. 재들이 안 괴롭혀?"
"그냥 그저그래. 솔직히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이 누가 마음에 들겠어. 나라도 별로일텐데."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깐.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는다. 동생"
"그러던지. 뭐 먹으러 갈꺼야?"
"글쎄...여기서 이렇게 멈춰있을 게 아니라 가면서 정하자.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걸로 먹어. 너 먹이려고 차 끌고 나온거니깐."
"그럼 보쌈 먹으러 가자. 나 보쌈 완전 땡겨."
"그래 그럼. 니 몇 시 까지 들어가야 해?"
"늦어도 3시까지는. 이번 컴백 앨범에 곡 참여하게 됐거든."
"하다 막히면 바로 연락해. 나 요즘 백수라 시간이 많다."
"뻥 치지마. 어디 동생 앞에서. 요새 오빠네도 컴백 준비하느라 바쁜 거 다 알거든? 눈에 다크써클이나 컨실러로 가리고 좀 말하든가."
이런 저런 영양가 없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보쌈집에 도착했다. 와. 이 집도 오랜만이다.
"야.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니깐. 오빠랑 나랑 맨날 몰래 먹으러 다녔잖아. 근데 뭐 오빠 데뷔하고 나서부터 못 다녔지."
"여기는 변하는 게 한 개도 없어. 그래서 좋아."
"맞아. 할머니! 저희 왔어요!"
내가 할머니를 부르자마자 주방에서 뛰쳐나오는 사장님인 할머니. 몇 년 못 본새에 주름이 더 느신 것 같다.
"지호랑 여주 왔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할매가 얼마나 기다렸는디..."
"할매 바빠서 그랬어. 바빠서. 우리 여주도 곧 데뷔해요!"
"뭐시깽이 티비에 나오는 겨? 그라믄 나가 서비스를 팍팍 줘야겄네. 좀만 기다려잉. 따끈하게 가져올 테니께"
금세 보쌈이 나오고 아무 말도 없이 계속 먹었다.
"너. 부모님한테 연락 안 오지?"
"갑자기 그런 소리를 왜 해. 연락 와도 내가 안 받을꺼야."
"그래. 그럼 됐어."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 갑자기 그런 소리는 오빠답지 않게 왜 꺼내서는. 그 사람들은 나에게 오빠에게 부모가 아니다. 아니 형식상 서류상으로만 부모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그런 사람들이 어찌 부모라 칭할 수 있겠는가.
한 번 가라앉은 분위기는 차에 타서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어휴. 우지호 저 자식, 분명 그 말 꺼낸 게 지 딴에도 당황스럽고 미안해서 나한테 말을 못 거는 게 눈에 보이는데. 말을 하려던 순간 차가 어느 새 회사에 도착해버렸다.
"야. 좀 아까 한 말 신경쓰지 말고 들어가라. 연락 좀 자주 하고."
"우지호."
"오빠라 안 하냐. 어디 하늘 같은 오빠한테."
"나한테 가족은 너 하나 뿐이야. 그 사람들 내 부모 아니야. 오빠 부모도 아니고. 그러니깐 신경 쓰지 마. 미안해 하지도 말고."
그 말에 차에서 내리더니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안는다.
"여주야. 오빠도 남은 가족은 너 하나 밖에 없는 거 알지? 고맙다."
"오글거리는 짓 좀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니나 먼저 들어가. 너 들어가는 거 보고 출발할 거니깐."
저 쓰잘데기 없는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 분명 내가 먼저 들어가기 전까지 출발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깐.
"그럼 먼저 들어갈께. 나중에 또 봐."
싱숭생숭 한 마음을 끌어 앉고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니 한 명이 팔짱을 끼고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길쭉한 몸을 보아하니 김종인이네.
"야. 너 남자 만나고 싸돌아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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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도 안 한 주제에 무슨 남자를 만나. 너 우리가 우습게 보여?"
"아니."
피곤하다. 저런 한심한 말을 듣고 싶지도 않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작업실에 들어가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왜 스폰서야?"
지 딴에는 나를 도발하려고 해 본 말이겠지만 넌 나를 도발하고 나를 따라오려면 한 참은 멀었다. 몇 살 때무터 눈치를 보고 무시하고 살아왔는데.
"미안, 나 피곤하다."
"미친 기집애야.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나가. 제발 나가라고. "
김종인의 뒤에 누가 오더니 어깨를 돌린다.
"김종인 그만 하고 들어와."
"경수형. 아 진짜. 남자 있대잖아요!"
"시끄러우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저건 나를 도와준 것이 아니다. 그냥 상황이 시끄러워서 정리를 한 것 뿐이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길길이 날 뛰는 김종인과 조용히 날 주시하는 도경수의 곁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작업실로 올라왔다.
작업실 문을 닫은 뒤 의자에 앉았다. 부모님. 딱 한 단어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이 약통이 있었다. 한 알.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다. 두 알.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 내성이 얼마나 생긴거야. 두 알을 더 꺼내 입에 털어넣었다. 그제서야 조금씩 편해져오는 머리다.
아직까지도 오빠와 나를 얽어매는 부모라는 그늘 아래. 아직도 나는 아파한다. 언제쯤 그들에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관계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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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엑소 분량이 조금 똥...이죠?ㅋㅋㅋㅋ
그 대신 여주의 오빠인 지호가 등장!
저는 주말에 한 번 더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