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춥다.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어. 올라가는 광대도 주체가 안 되고.
자꾸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서 미치겠는 거야. 어쩜 태형이는 정색하는 것도 잘생겼다니.
자식. 여자 설레게 하는 건 좀 잘하네. 근데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편의점 알바생이랑 친해졌는데, 저 말고 다른 여자한텐 철벽 쳐요.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그럼 그린라이트지 뭐겠어. 근데 좋긴 한데, 아직은 내 감정을 잘 모르겠으니까 밀당 한번 해볼까.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어.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려오고, 밀면 미는 대로 당황할 태형의 모습이 눈에 선했거든.
내가 바로 연애를 글로 배운 사람이지마는. 그래, 그런 건 다 상관없는 거야. 지금 내가 이렇게 썸을 타고 있는 걸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
근데 진짜 추워. 어깨로 편의점 문을 밀며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몸을 휘감았어.
으아, 완전히 노곤해진다. 귀찮긴 해도 놀러 올 맛이 나는구만.
"어서 오세여."
오냐.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고개를 드는데, 계산대에는 태형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있었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당황하기도 잠시,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고.
어젯밤에도 편의점 꼭 오라고 들들 볶던 김태형은 어디 가고 저런 찹쌀떡 고등학생이…….
"누구세요."
"알바인데여."
알바 바뀐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봐도 김태형이 폭풍으로 보내온 카톡이 없어져 있진 않았어.
오라고 해놓고 없으면 나보고 어쩌자는 거야. 근데 쟤는 나를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부담스럽게.
내가 스캔하듯 쳐다보자 똑같이 따라 하는 꼴이 또 웃기더라. 진짜 완전 애기 같은데. 잠시 어디 가서 대신 맡아주는 애인가.
"저기,"
혹시 김태형이라고 알아요? 되게 비글거리고 말 많은. 키는 이만한데, 첫인상은 조금 무섭게 보이기도 하고.
태형의 모습을 설명하는 나를 보며 알바생은 입술을 불퉁 내밀더라고.
모르는 건가. 팔까지 들어 이래저래 설명하던 행동을 멈추니까 알바생이 입을 열었어.
"전 친구 같은 거 없어여."
저런, 안쓰러워라. 애잔하게 쳐다보는 내 모습에 고개를 숙이는 알바생.
그나저나 얘는 언제 온대. 정말 모르는 건가.
그냥 체념하고 대충 벽 쪽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어. 문자도 보내봤는데, 웬일인지 답장이 안 오더라고.
사정이 생겨서 못 나오는 거면 분명히 얘기했을 애인데 뭔 일이라도 났나.
내가 얘 걱정을 왜 하고 있는 거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봐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어.
그래도 그새 정 들었다고 걱정은 되더라.
"저기, 혹시 대타 뛰시는 거에요?"
"네."
예. 이 미칠 듯한 어색함 어쩔거야. 누가 수습 좀.
여기에 차라리 김태형이라도 있으면 시끄러워서 어색하진 않았을 텐데.
근데 친구 없다면서 무슨 대타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휙 돌리더라.
뭔가 짜고 치는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묘한 느낌이 드는걸.
내가 너무 나갔나. 한숨을 쉬고 김태형한테 카톡을 보내봤지만 역시나, 읽지도 않더라고.
나도 나중에 카톡 다 무시할 거야, 두고 봐.
"근데, 저기여."
네. 내가 쳐다보자 알바생이 싱글싱글 웃었어. 보면서, 김태형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
물론 외모는 이 쪽이 고등학생이고, 더 찹쌀떡 같지마는. 약간 성격 같은 거. 좋게 말하면 붙임성이 좋은거고, 응.
"그쪽 되게 예쁘시네여."
아이고 세상에, 감사하네요. 그런데 그런 거 이미 김태형한테 많이 당해봐서요.
내가 별 감흥 없이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데, 알바생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어.
"번호 좀 알려주세여."
여자 고등학생 버전 2.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나도 태형이처럼 막 정색하고 가라고 하면 되는 건가. 아니지 얘가 알바하고 있으니 내가 가야 하는구나.
차라리 내가 알바를 하고 얘를 보내버릴까. 대타 주제에.
내가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멀뚱히 서 있자 알바생은 별다른 반응 없이 다시 고개를 돌리더라고.
지금 찔러본 건가. 왜 갑자기 기분이 나쁘지. 말이나 똑바로 해주실래여.
싫다고 대답하니까, 그러시구나 하면서 싱거운 반응을 보이더라. 그리고 다시 찾아온 어색함.
집이나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나가려는데, 계산대에서 갑자기 머리통이 툭 튀어나왔어.
"지금 너 철벽 친 거죠?"
헐. 당황스러움에 굳은 내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히히 웃는 태형.
그러더니 다리에 쥐가 났다며 코에 침을 바르고 난리를 피우더라. 계산대에 서 있던 알바생이 자연스레 옆으로 밀려났어.
내가 측은한 표정으로 다시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는 알바생.
그 와중에 태형이 멀쩡한 다리로 알바생을 밀어내며 가라고 징징거렸어.
너, 가도 돼 이제. 야 내 시급은. 아 기억 안 나는데, 와 안 들린다 에베베. 미친 새끼.
작게 욕을 한 알바생이 나한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나갔어.
덩달아 나도 같이 인사를 하고. 그 모습을 보고 김태형은 또 웃다가 다리가 저리다며 난리 피우고.
역시 누가 아니랄까 봐, 등장과 동시에 산만해진 편의점 분위기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어.
비글이다 비글. 정말 엄청난 비글 한 마리.
또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계속 싱글벙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갈 생각을 않는다.
"방금 나간 애, 제 친구에요."
끼리끼리 논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얼굴 나이 고딩끼리.
어쩐지 성격이 조금 비슷하다 느끼긴 했는데.
내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니까 저건 자기가 시킨 거니 뭐니, 하면서 상황설명을 시작하더라고.
뭐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설명하시겠다니까 말리진 않을게…….
"근데 나 완전 감동."
"네?"
"철벽 쳤잖아요."
너 짱 좋은 여자. 내가 인정. 아무한테나 번호 안 주고 완전 멋있었던 거 알아요?
혼자 신 나서 주절주절. 그러고 보니까, 얘한텐 번호를 언제 알려줬더라.
맞다, 알려준 게 아니고 강제로 까인거였지. 아, 머리야.
그래도 좋다고 내내 웃는 녀석을 보니까 뭐, 철벽 잘 쳤단 생각도 들고.
"아 아쉽다,"
"뭐가요?"
"그 알바생 귀엽던데, 번호 알려줄걸."
"헐."
얘도 귀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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