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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上 | 인스티즈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영화 '메이즈 러너'를 오마주 했음을 알려드리며

영화와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독자분들께서는 뒤로가기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도 찾다보니 오늘 처음알았네요! 하하 어쩌짛ㅎㅎㅎ? 똥글을 예상하며 시작하겠습니다!

 

 

 

 

 

 

 

 

1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上 | 인스티즈

 

 

 

 

무언가 끌어 올려지는 소리가 지원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철장소리. 무엇이 끌어올려지고 있는거지. 기분 나쁜 예감이 몸을 스쳤다. 제 몸뚱이는 언제부터인지 바닥에 처박혀 꼼짝도 못한채 뒹굴고 있었다. 동시에 몸이 붕 뜨는게 느껴졌다. 아, 내가 끌어 올려지고 있구나. 눈을 비스듬히 뜨니 형체 없는 형광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순간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역한 느낌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욱.. 겨우 상체만 일으켜 내용물 없는 토악질을 해대던 지원은 고개를 들어 제가 있는 공간을 살폈다. 사방이 철장이다. 철장이 쳐진 상자에 갇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지원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누구 없어요?! 대답이 있을리가 없었다. 끝도 없이 올라가는 철장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들이 지원과 함께 뒹굴었다. 철장은 점점 속도가 높아지며 위를 향했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에 지원이 다가가자 검은 개 한 마리가 상자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놀라서 뒷 걸음질 친 지원은 이번에 일어서서 위를 향해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철장 사이로 보이는 천장은 침침하고 어두운 네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규칙적으로 형광등이 박혀 있고, 천장은 의미 없어 보이는 붉은 빛을 뿜고 있었다. 점점 그 불빛에 가까워지자 어느새 철장이 급하게 멈추었다. 그 반동으로 지원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의 뒤로 보이는 원형의 통에는 'WCKD'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지원을 비추던 붉은 색 조명이 녹색으로 변하면서 이내 지원의 시야가 사라졌다. 한동안 지원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어둠만이 철장을 가득 채웠다. 천장이 열리고 빛이 쏟아졌다. 인위적이 빛이 아닌 태양빛이었다. 지원은 태양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것을 피하려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려보았다. 가린 지원의 손가락 사이로 낯선 사람들이 지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은 저마다 낄낄 거리며 지원을 향해 무어라 지껄였다. 철장이 열리고 누군가 말했다. 데리고 올라와! 그 중 인상이 진한 사내가 지원이 있는 철장에 단숨에 뛰어내려왔다. 짙은 이목구비에 한 눈에 봐도 '잘생겼다' 라는 느낌이 풍겨왔다. 사내가 풀쩍 내려와 지원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 첫날이다. 신참. "

 

 

신참. 신참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원은 지금 왜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내는 지원을 거칠게 잡아 끌어올리고는 내팽게 쳤다. 지원은 마른 풀 위로 몸이 처박혔다. 피부가 쓸렸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겨를이 되지 않았다. 지원이 정신을 차리기도전에 지원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렸다. 지원은 그대로 엎어진 채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낯선이들이었다. 청소시키면 딱이겠어. 식당에서나 부려먹자. 여전히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는 사람들에 지원은 사람들을 밀치고 다짜고짜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무작정 달렸다.

 

" 신참이 도망친다! "

 

뒤에서 웃음기 있는 소리침이 들렸다. 지원은 무작정 두 다리를 움직여 앞을 향했다. 처음엔 잘만 뛰던 다리가 점점 힘이 풀려 제멋대로 엉켰다. 또 다시 땅에 처박힌 지원의 모습에 여지없이 뒤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수치심이고 뭐고 지원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거지. 고개를 들자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서 있는 잔디 위의 길을 눈으로 천천히 좇았다. 넓은 공터 같은 원형의 공간. 그리고 사방에 높이 솟아있는 단단한 벽들. 짙은 풀빛 덩쿨이 쳐있는 잿빛 벽은 왠만한 건물만큼보다 훨씬 더 높았다. 지원은 넋이 나가 사방을 둘러 보았다. 사방이 벽이었다. 이곳은...

 

 

 

 

 

 

 

 

 

MAZE RUNNER

CHAPTER 1.

 

 

 

 W. 두번째손가락

 

 

 

 

 

지원의 몸이 고꾸라졌다. 방금전의 철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땅속에 처박힌 느낌이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지원을 내팽게 친 사내들은 나뭇가지로 된 문을 덜컥 닫았다. 지원은 그제서야 제가 구덩이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파서 만든 것일까. 아마도 저 사람들이 만든거겠지. 구덩이 위로는 나뭇가지가 빽빽히 천장을 이루고 있었다. 허술하지만 쉽게 나갈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것 같았다. 외관상 감옥과 엇비슷한 무언가 같았다. 지원은 몸을 일으켜 나뭇가지 틈 사이로 밖을 살폈다. 제가 본 거짓말 같은 풍경이 다시 눈 앞에 펼쳐졌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는 육중한 잿빛 벽이 서 있었다. 그에 좀 떨어진 곳에는 사내들이 가축을 부리며 무언가를 일구고 있었다. 저 벽은 뭐지. 눈을 가늘게 뜨며 관찰하려 하자 누군가 시야를 가렸다. 지원은 화들짝 놀라 주저 앉았다.

 

 

" 반가워, 신참. "

 

 

시야를 가렸던 다리가 굽혀지고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얼굴을 비췄다. 쭈구려 앉은 남자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지원의 표정에 남자는 픽 웃었다. 또 다시 '신참' 이라 불려진 지원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더불어 자신을 비웃는듯한 남자의 행동도.

 

 

" 또 도망 칠 생각은 하지마. "

 

 

제법 낮고 무거운 목소리에 지원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에 힘이 있다 생각했다. 지원의 끄덕임에 남자는 몸을 일으켜 구덩이 문(나뭇가지 철장)을 열어주었다. 지원이 나가려하자 그를 제지한 남자는 다시 쭈구려 앉았다.

 

 

" 난 구준회다. "

" ...... "

" .. 너는 누구지. 말해봐. 뭐든. 어디서 왔는지, 아무거나. "

 

 

자신을 구준회라 소개한 사내의 말에 지원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나는.. 무언가를 회상하려 하자 지원은 무언가 머리속을 관통하는듯 텅 빈 느낌에 식은땀이 흘렀다. 불안하게 손을 비비고 매만져 보아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나는.. 나는..

 

 

" 김.. 지원이야. "

" ...... "

" 그냥.. 그냥 그것만 알겠어. 다른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왜 기억이 안나지? "

" 괜찮아. "

" 내가 왜 이러는거야? "

" 진정해. 그게 정상이야. "

 

 

'정상' 이라고? 고통에 잔뜩 일그러진 지원과 달리 준회의 표정은 덤덤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지원은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골랐다. 준회는 뒤를 둘러보다 말했다. 우리도 다 그랬어. 지원은 준회가 '우리' 라고 칭한 사람들이 누군지 단번에 눈치챘다. 이곳에 있는 사내들. 준회도 그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본인도 그 일부가 되었겠지. 지원의 본능이 소속감을 찾아 머리에서 속삭였다.

 

 

" 그래도 넌 나은 편이군.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대부분은 하루, 이틀이 지나서야 떠올리곤 하지. "

" ...... "

" 그들이 그거 하난 기억하게 해주거든. "

 

 

이번엔 '그들' 이다. 지원은 준회의 말 속에 대명사가 유독 많다는 사실을 느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우리' 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겠지. 자신을 이곳에 보낸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지원이 준회의 뒤로 비치는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자신의 상황과 대조되는 조명이다. 그 조명의 따뜻함마저 오한이 서렸다.

 

 

" 여기 어디지? "

 

 

지원의 물을에 준회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지원은 망설이다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사방에 둘러처진 잿빛 벽. 그 사이로 저를 비롯한 사내들이 모여있는 푸른 들판. 한 쪽에 위치한 작은 숲. 군데군데 설치 된 오두막은 사내들의 작품인지 서툰 티가 역력했지만 그럭저럭 생활을 지탱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어보였다. 가축들과 농작물까지. 얼핏보기엔 시골의 작은 마을같다해도 과언이 아닌 풍경에 지원은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할 말을 잃었다. 무엇보다 사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평화로웠다. 들판을 가로질러 앞장서던 준회가 말했다. 우린 여기서 먹고, 자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지.

 

 

" 필요한건 '박스' 에서 오고, 나머진 자급자족이야. "

" '박스'...? "

 

 

지원은 준회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올려보내진' 곳에 여러상자들이 쌓여있었다. 함께 있던 상자들이 그것이었나.

 

 

" 매달 한 번씩 필수품과 신참을 올려보내지. "

" .. 신참.. "

" 이번 달엔 너야. "

 

 

축하한다. 전혀 문맥상 맞지 않는 말에 준회는 뭐가 우스운지 웃음기를 지었다. 반편 지원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물어볼수록, 알아갈수록 더 멍청해지는 기분이다. 올려보낸다고? 대체 누가? 지원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준회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 준회야! "

 

 

저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준회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과의 미소와는 꽤나 다른 아우라에 지원은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보다 한 뼘은 더 작은 남자가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 남자가 다가오자 준회의 얼굴엔 묘한 홍조까지 띄었다. 웃으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꽤나 무서웠던 인상이 풀어지자 지원은 생각했다.

 

 

" 신참, 이쪽은 김진환. "

" 어어, 안녕? "

" 내가 없으면 이곳의 대장이지. "

 

 

또, 또 그런다. 장난스럽게 준회의 팔을 툭 친 진환에 준회가 키득 거리며 진환의 어깨를 감쌌다. '대장' 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몸집. 그보다 이 준회라는 남자가 대장이었나. 처음 봤을때부터 무언의 통솔력과 분위기를 느꼈지만 본인의 입에서 '대장' 이란 말이 나오니 지원은 저 혼자 수긍했다. 대장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지원과 악수까지 나눈 진환은 씩 웃으며 말했다. 아깐 잘 뛰던걸?

 

 

" 근데 '러너' 감이라고 생각한 순간 고꾸라지더라고. "

 

 

진환의 말을 끝으로 준회와 진환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러너'? 알 수 없는 그들의 농담 따먹기에 지원은 어리둥절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 잠시만, '러너' 라니? "

" ...... "

" ...... "

 

 

순간적으로 웃음기를 거둔 두 사람 사이엔 무언의 소통이 눈빛으로 오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원은 알 길이 없었다. 인내심 있게 대답을 기다리는 지원을 보고 준회는 머리를 긁적이곤 형, 찬우 좀 데려와. 라고 진환에게 말했다. 진환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몸집에 알맞게 재빠른 동작으로 달려갔다. 다람쥐가 따로없다. 그 모습을 보는 지원의 어깨를 준회가 슬쩍 당기고 말했다. 신참. 준회가 지원을 또 그렇게 불렀다.

 

 

" 서둘러서 미안한데, 네가 늦게 와서 할 일이 좀 많아. "

" 할일..? "

" 밤에 특별한 계획이 있지. 뭔진 곧 알게 돼. "

 

 

준회는 지원의 어깨를 이끌고 꽤 높은 오두막 앞에 섰다. 고소공포증은 없겠지? 하고 물은 준회는 단단히 고정 된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지원은 들판을 둘러보았다. 오두막 중엔 이 곳이 가장 높은 것 같았다. 옆에 자리한 이름 모를 나무만큼 높은 오두막은 올라갈때마다 삐걱삐걱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그에 준회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꼭대기에 설 때까지 거침없이 발을 올렸다. 오두막이라 해봤자 나무 몇 가닥으로 사다리를 쌓아올린 것이 전부였다. 천장도 벽도 없는 위태로운 구조가 지원은 마냥 불안했다. 꼭대기에 올라서자 지원의 시야에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잿빛의 벽은 훨씬 높았지만.

 

 

" 우리가 사는 '글레이드' 야. "

" ... 저 밖엔 뭐가 있지? "

 

 

지원은 잿빛 벽을 가리켰다. 잿빛 벽들 사이로는 커다란 통로가 하나 있었다. 지원은 그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더 짙은 잿빛의 공간만이 존재할 뿐 특별한 점이라곤 없어보였다. 다만 음산한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준회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지원의 등에 손을 얻고 숨을 깊게 내뱉으며 말했다.

 

 

" 세 가지 룰이 있어. "

" ...... "

" 첫째, 맡은 임무를 다할 것. 둘째, 이곳의 누구든 해치지 말 것. "

" ...... "

"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건.. "

 

 

첫째, 둘째의 임무까지 빠르게 말한 준회는 지원에게 가까이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 절대 저 벽을 넘어가지마. "

" ... 왜지. "

" 알았나, 신참? "

 

 

 

 

 

 

 

 

 

" 우리도 다 똑같은 과정을 겪었어요. "

 

 

진환이 데려와 소개시켜준 찬우라는 남자아이는 지원보다 몸집은 컸지만 앳된 얼굴과 행동에 영락없는 소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찬우는 지원이 오기 바로 한 달전에 도착한 신참이었다. 찬우는 자신이 신참생활에서 벗어나 후배가 생긴 것이 마냥 좋은지 지원을 오두막에 데려가 이것저것 조잘거렸다. 오두막에 해먹을 단단히 묶은 찬우가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지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으휴, 지 침댄데 좀 알아서 하지. 이래서 신참들이란.

 

 

" 박스에서 깨어나면 준회 형이 구경시켜주고, 설명해주고. 그러곤 여기 살죠. "

" ...... "

" 걱정마요. 난 형보다 심했으니까. 형은 이름이라도 기억했죠. 난 박스 안에서 기절을 해ㅅ.. "

 

 

응? 해먹을 재차 살피고 뒤를 돌아선 찬우의 눈 앞에 지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간거야? 당황한 찬우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저만치 들판을 걸어가는 지원을 발견했다. 어후, 이래서 신참들이란! 새파래진 낯빛으로 찬우는 지원을 쫓았다. 지원은 잿빛 벽의 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 미치겠네! 형! "

 

 

겨우 지원을 따라잡은 찬우가 지원의 어깨를 짚었다. 형, 어디가요?

 

 

" 그냥 보고 싶어서. "

" 보는건 괜찮지만 들어가서는 안돼요. "

" 왜? 뭐가 있는데? "

 

 

멈추지 않는 지원의 발걸음에 찬우가 앞을 막아섰다. 지원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 몰라요. 형들이 그랬다구요. 우린 가면 안돼요. "

 

 

찬우의 단호함에 지원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고 잿빛 벽을 바라보았다. 지원이 바라보는 잿빛 벽의 틈 사이에 두 남자가 달려나왓다. 지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달려나온 두 사람을 눈으로 좇았다. 까무잡잡하게 체격이 좋아보이는 남자와 한 눈에 봐도 비쩍 마른 남자였다. 마른 남자는 진하게 생기진 않았으나, 매끈한 콧날과 단순한 듯 하면서 날카로운 눈매가 선 몇가닥으로 그 얼굴을 다 그려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묘한 인상에 시선을 뺏겨 지원이 남자를 쳐다보는 동안 까무잡잡한 남자가 새로운 신참이로군. 하며 지나갔다. 마른 남자는 지원의 옆을 스치면서 힐끔 돌아보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가 스치자 지원의 코에 묘한 땀 냄새와 남자의 체취가 멤돌았다. 지저분했어야 할 냄새는 오히려 인간적인 향기에 가까웠다. 지원은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찬우에게 물었다.

 

 

" 아무도 못들어간다며? "

" '러너' 들은 달라요. '미로' 에 대해 빠삭 하니까. "

" 뭐? "

" 뭐가요? "

" 방금. '미로' 라고 했잖아. "

 

 

찬우가 고개를 어설프게 끄덕이자 지원이 찬우를 밀치고 다시 벽의 틈을 향해 다가갔다. 찬우가 당황하며 지원을 막아섰지만 지원은 막무가내였다. 좀 봐야겠어.

 

 

" 우린 안된다니까요? 특히 지금은.. "

" 알았어. 알았다고. "

" 위험해요! "

" 안들어간다고. "

 

 

손으로 찬우를 저지하는 지원에 찬우는 안절부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원이 점점 틈을 향해 다가서자 누군가 지원을 강하게 밀쳤다. 아무런 방어없이 그 힘을 그대로 받아들인 지원은 바닥에 그대로 쓸려 넘어졌다. 오늘 여러번 땅과 스킨쉽하는군. 속으로 욕을 지껄인 지원이 고개를 들자 처음 자신을 끌어올린 진한 인상의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밀친 그의 얼굴엔 일말의 죄책감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신참치고 용기가 가상하군. 뭐하는거야? "

" 비켜. "

" 진정하라고. "

" 놔! "

 

 

자신을 붙잡는 남자를 있는 힘껏 밀친 지원이 소리쳤다. 순식간에 남자들이 달려와 지원의 주변에 모였다. 진환이 다가와 지원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일단 진정해. 진정하라고. 죄다 같은 말을 내뱉으며 지원을 말렸다.

 

 

" 늬들 문제가 뭐야? "

" 알았어. 진정해봐. "

" 왜 저곳에 뭐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지? "

 

 

뒤늦게 달려 온 준회가 지원에게 다가왔다. 널 지켜주기 위해서 인거야.

 

 

" 지켜? 나를? 여기 가둬두는게 아니라? "

" 저곳에 가게 놔둘 순 없어. "

" 왜! 왜냐고! "

 

 

그때였다. 벽의 틈 사이로 기괴한 소리가 남자들을 덮쳐왔다. 쇳 소리도, 돌이 부딪히는 소리도 아닌 그것은 기다란 그 틈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지원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잿빛 벽의 틈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벽만큼이나 인공적인 느낌으로 흙과 먼지를 뿜어냈다. 먼지바람이 지원의 얼굴을 뒤덮음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원은 제 눈을 비볐다. 단순히 눈에 먼지가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무슨.. "

 

 

꼼짝도 않을 것 같던 회색 벽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육중한 벽 틈이 서서히 좁아지면서 마치 문이 닫히는 것처럼 벽의 틈을 봉쇄했다. 틈이 막히는동안 밋밋했던 벽 사이에서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드러났다. 톱니바퀴가 돌아감에 따라 벽의 틈이 완전히 닫혔을 때 지원은 깨달았다. 그것은 더 이상 '틈' 이라 부를 수 없는 공간이었다.

 

 

" 다음엔 꼭 들여보내주지. "

" ...... "

 

 

넋이 나가 잿빛 벽을 올려다보는 지원에게 준회가 다가왔다.

 

 

" '글레이드' 에 온 걸 환영한다. "

 

 

그 곳은 완벽한 '미로' 였다.

 

 

 

 

 

 

 


 

2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上 | 인스티즈

 

 

모닥불이 불꽃이 튀는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남자들 사이로 그 존재감을 비추고 있었다. 밤이 되자 아까의 살벌함은 어디에 갔냐는 듯 지원을 위한 환영파티가 시작되었다. '환영' 이라는걸 받는게 맞는건가. 이질적인 느낌에 지원은 일찌감치 사내들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하고 통나무에 대충 걸터 앉아 잿빛 벽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홀로 앉아있던 지원이에게 진환이 다가와 스스럼 없이 옆자리를 꿰찼다. 앉아도 되지? 하는 예의상의 질문조차 생략한 행동이었다. 지원이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앉아있자 진환이 싱긋 웃으며 술병을 건넸다. 술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느낌상 술이 맞았다. 더불어 진환이 다가오자 희미하게 알코올 향이 났으니까. 지원은 마지못해 술병을 받았다.

 

 

" 신참, 정신없는 하루였지? "

 

 

진환은 손에 든 구이를 맛있게도 씹어댔다. 작은 입에서 오물오물 씹는 모양새가 신기해 쳐다보다 술병을 입에 가져다댔다.

 

 

" 으웁.. 풉!!! "

" 푸하하하하!! "

 

 

꿀렁이는 액체에 혀가 닿자마자 지원은 모조리 바닥에 그것을 쏟아내었다. 구역질이 나는 맛이다. 아니, 구역질의 맛이다. 지원의 꼴이 우스운지 진환은 키득거리다 등을 두드려주었다. 지원이 여전히 컥컥거리자 진환은 술병을 빼앗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체 뭘로 만드는거야? 지원의 말에 진환은 미소지었다. 개구진 표정이다.

 

 

" 나도 몰라. 윤형이가 만드는건데, 방법은 탑 시크릿이지. "

" ... 역겨운 자식이야. "

 

 

진한 인상의 남자 이름이 윤형인 모양이다. 아까 전 자신을 있는대로 밀친 것을 떠올리자 지원은 욕을 중얼거렸다.

 

 

" 저 녀석이 오늘 널 구한거야. "

" ...... "

" 명심해. 미로는 위험한 곳이야. "

 

 

두 사람의 등 뒤로 사내들은 여전히 시끄럽다. 붉은 모닥불빛이 등을 비추어 두 사람의 얼굴로 그늘이 드리웠다. 진환은 술을 한 번 더 들이키고 잿빛 벽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 있었던걸까. 지원은 묻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 ... 우리 여기 갇힌거지? "

" 지금은. "

" ......? "

 

 

진환이 몸을 틀어 손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의 행동에 따라 지원도 몸을 돌렸다. 진환의 작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미로에서 나왔던 까무잡잡한 남자와 마른 남자, 그리고 몇몇 다부진 체격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 쟤들 보이지? '러너' 들이야. "

" '러너'? "

" 가운데 있는 녀석이 김한빈. '러너' 들 중에서도 리더지. "

 

 

저 비쩍 마른 놈이 리더라고? 지원은 미간을 구긴 채 그들을 살폈다. 아무리봐도 저 녀석이 제일 약해보이는데.. 뚫어져라 한빈을 쳐다보던 지원은 한빈이 고개를 들자 재빨리 시선을 진환에게 옮겼다. 눈이 마주쳤나. 다시 눈을 돌리기도 뭐해서 그냥 진환을 쳐다보기로 했다. 어어.. 러너가 뭐라고?

 

 

" 매일 아침마다 미로의 문이 열리면 '러너' 들이 그 안을 뛰어다니면서 구조를 외우고, 지도를 만들면서 나갈 길을 찾아. "

 

 

지원이 다시 '러너' 무리를 쳐다보았다. 한빈은 이쪽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제 무리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간히 웃기도 하는 그의 얼굴은 눈에서만큼은 웃음기가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얼굴이다.

 

 

" 얼마동안 그랬는데? "

" ... 3년. "

" 근데 아직도 못찾았어? "

 

 

조금 높아진 지원의 목소리에 진환이 씩 웃었다. 참 잘 웃는다. 조금 씁쓸함이 묻어있었지만.

 

 

" 말처럼 쉬운게 아냐. "

 

 

들어봐. 진환은 검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눈을 감았다. 지원은 눈을 감고 그가 시키는대로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시끌벅적한 남자들의 소음 너머로 무거운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원이 눈을 떴다. 마치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집중해서 듣지 않고서는 들리지 않을 묵직한 소리였다.

 

 

" 미로의 구조가 바뀌는 소리야. "

" ...... "

" 매일 밤 바뀌지. "

" 그게 가능해? "

" 우릴 여기로 보낸 놈들에게 물어봐. 만날 기회가 된다면 말이지. "

" ...... "

" 솔직히 밖에 뭐가 있는지 아는건 러너들 뿐이야. "

" 다른이들은? "

" 모르지. 나도 모르고. 그래도 그게 다행인거야. 우리 중 가장 강하고, 빠른 자들이니까. 미로가 닫히기 전에 빨리 돌아와야 하니까. 미로 안에 영영 갇혀 버리거든. 밤중에 미로가 닫히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

 

 

진환은 그렇게 말하고 입이 마른지 술을 들이켰다. 역겨운 그 맛을 잘도 삼켜내는 진환에 지원은 한 껏 인상을 썼다.

 

 

" 어떻게 되는데? "

" 일명 '그리버' 란 괴물들. 물론 놈들을 만났다가 살아 돌아온 애는 없지. 그 괴물들이 저곳에 있어. "

" ...... "

 

 

지원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자 그를 힐끔 본 진환이 큼. 큼. 하곤 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이쯤만 알아두라구. 피곤할테니까. 진환이 지원의 팔을 붙들었다.

 

 

" 널 위한 파티잖아? 구경시켜줄게. "

" 아니, 난.. "

" 어서! "

 

 

작은 몸집에서 힘은 어디서 나는 건지. 진환의 우악스러움에 몸을 일으킨 지원이 사내들의 틈에 덩그러니 섰다. 한 켠에서 격투기인지 무엇인지 규칙을 알 수 없는 경기를 하던 무리들을 가리키며 진환이 말했다. 쟤들은 건축팀이야. 손재주는 좋은데, 좀 덜 떨어졌지. 가만히 서 있는 지원을 떠밀며 진환은 궁금하지도 않은 설명들을 자꾸만 내뱉었다. 찬우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귀찮음이었다.

 

 

" 쟤는 남태현, 도살장의 리더지. 생긴거랑 안어울리지? 아아, 저쪽은 치료팀이야. 너 내가 치료팀이란건 알고있어? "

" 러너가 되려면 어떡해야 돼? "

" ... 러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어. "

 

 

진환은 이상한 것을 묻는 사람 대하듯 지원을 쳐다보았다. 게다가 선택을 받아야 하고.

 

 

" 누가 선택하는데? "

" 그건.. "

" 이봐, 신참!! "

 

 

지원의 등 너머로 지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윤형이 소매를 걷어올리며 웃고 있었다. 윤형이 지원에게 손짓하자 여기저기 환호성이 터졌다. 신참. 신참. 신참. 합창하듯 신참을 부르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느새 윤형과 지원 사이를 빙 두른 사내들에 지원이 윤형 앞에 섰다.

 

 

" 실력 좀 볼까? "

 

 

자신을 둘러싼 사내들 사이엔 어느새 러너들도 함께였다. 그 중엔 한빈도 슬쩍 끼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원은 왠지 모르게 긴장감을 느꼈다. 근육이 굳는 기분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까만눈에 지원도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자신을 평가하려는 눈빛이었다.

 

 

" 룰은 간단해. "

" ...... "

" 원 밖으로 밀려 나지 않고 5초만 버텨봐. "

 

 

윤형의 조롱에 지원은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리꽂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자세를 잡았다. 내가 본디 뭘했던 놈인진 모르겠지만 약골만은 아니었길 바란다. 내가 왜 이 놈들의 경기에 맞춰주고 있는거지. 하루종일 땅에 몇 번이고 굴러서인지 지원은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준비됐나. 윤형이 입을 떼자마자 먼저 달려 들었다. 맥 없이 뒤로 밀려난 지원을 사내들이 받쳐 다시 원안으로 밀어 넣었다. 윤형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원을 밀치자 그대로 바닥과 밀착해야 했다. 씨발, 침을 탁 뱉은 지원이 윤형을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 일어나, 신참. 아직 안 끝났어. "

" 신참이라 부르지마. "

 

 

지원이 낮게 으르렁대자 주위에서 오-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윤형이 씩 웃자 그대로 지원이 윤형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지원의 반격에 윤형이 뒤로 밀려나다 이내 힘이 맞부딪혔다. 팽팽한 힘겨루기에서 지원이 다시 한번 뒤로 넘어갔다. 넘어진 순간 한빈과 눈이 마주친 지원은 죽고싶다 생각했다. 수치스러움에 벌떡 일어난 지원을 보고 한빈은 나른하게 눈을 돌렸다. 지원이 윤형에게 달려들자 한빈의 시선이 다시 지원에게 꽂혔다. 요령없이 무식하게 정면으로 돌진하는 것이 지원의 성격을 대변하듯 공격에서도 나타났다. 이를 악물고 윤형을 밀어붙이던 지원이 슬쩍 몸을 틀어 윤형을 넘어뜨리는데 성공했다. 오. 한빈의 입에 원이 그려졌다.

 

 

" 제법인데, 신참!! "

 

 

씩씩거리고 거친 숨을 내뱉는 지원에게 사내들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술을 건넸다. 윤형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악수를 건넸다. 얼떨결에 손을 잡은 지원이 술을 들이키자 아까 진환이 준 것과 같은 역한 맛이 났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기엔 제격인 맛이었다. 이젠 이들이 이걸 왜 마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왁자지껄한 그들의 환호 속으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파고 들었다.

 

 

" ... 무슨 소리야? "

 

 

순식간에 조용해진 남자들 틈에서 지원이 물었다.

 

" 그리버야. "

" ....... "

" 걱정하지마. 여긴 안전해. 저 벽을 넘진 못하니까. "

 

 

싸해진 분위기에 준회가 박수를 치며 정리했다. 사내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 자, 자. 다들 돌아가자고. 실컷 놀았잖아. "

" ...... "

" 너도 오늘은 푹 쉬도록 해, 신참. 아니.. 김지원. "

 

 

 

 

 

 

 

 

 

MAZE RUNNER

CHAPTER 2.

 

 W. 두번째손가락

 

 

 

 

지원은 그 날밤 꿈을 꾸었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그것은 꿈이 아니라 마치 '기억' 과도 같았다. 푸른 색의 배경.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그들은 자신을 '바비' 라고 불렀다. 스치듯 계속해서 보이는 형광등은 상자 속의 빛과 같은 빛깔을 띄었다. 푸르스름한 그것은 꿈인데도 불구하고 차가워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꿈 속의 여자가 말했다. 바비. 바비. 듣고 있어? 모든게 바뀔거야.

 

 

모든게...

 

 

 

 

 

 

 

 

 

 

헉. 하고 제 입을 막아오는 손에 지원은 비명을 그대로 삼켰다. 꿈에서 깨어났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제를 내려다보는 준회의 얼굴이었다. 놀란 눈으로 준회를 올려다보자 준회는 검지를 입가에 대고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따라와. 그의 입모양에 지원은 조용히 신발을 신고 그의 뒤를 따랐다.

 

 

" 평화롭지. "

 

 

준회를 따라 걸은 들판은 확실히 평화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새벽공기에 살짝 젖은 풀잎마저 걸을 때 기분 좋을 소리를 냈다. 준회와 지원의 얼굴로 아침햇빛이 쏟아졌다.

 

 

" 믿기 힘들겠지만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어. "

" ...... "

" 힘든 시기가 있었지. "

" ...... "

" 많은 두려운 속에 수 많은 희생들과 노력이 이뤄낸 결과야. "

" .. 그런 얘길 왜 나한테 하는거야? "

" 넌 남들과 달라. 호기심이 많지. 하지만 이 안에 있는 이상 우리 규칙을 따라야 해. 자각해야 하지. "

" ...... "

" 너도 이제 우리 일원이니까. "

 

 

준회는 품에서 낡은 칼 한 자루를 꺼내 지원의 손에 쥐어주었다. 칼을 멀뚱히 잡은 지원에 준회는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제 앞의 잿빛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앞엔 수십명의 이름들이 질서없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을 훑던 지원이 마구 지워진 이름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어떻게 된거지.

 

 

" 말했잖아. "

 

 

준회는 흔적없이 말끔하게 새겨진 이름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 끝엔 '김진환' 이 새겨져 있었다.

 

 

"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

 

 

지원은 말 없이 그 이름을 훑은 준회를 보고 칼을 세웠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지원은 '김한빈' 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 아래 쪽 여백에 칼을 박았다.

 

 

'김지원'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 벽 꼭대기까지 올라가봤어? "

 

 

지원은 쟁기질을 멈추고 진환에게 물었다. 진환은 포도줄기를 묶으며 지원을 힐끔 보고는 엉킨 포도줄기를 풀어내느라 애썼다. 엉키고, 풀고, 묶고. 반복하는 진환의 행동에 지원은 답답함을 느꼈다. 올라가봤냐니까.

 

 

" 시도는 해봤지. 담쟁이덩쿨은 거기까지 안자라. "

" 그럼 '박스' 는? 그게 올라오면.. "

" 그것도 해봤지. 사람이 타면 내려가질 않아. "

" 그럼.. "

" 이봐. 해봤다고. 모르겠어? "

 

 

진환이 허탈하게 웃으며 포도줄기에서 손을 놓았다. 줄기는 완벽하게 묶에 모양새를 갖추었다.

 

 

"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다 해봤다고. "

" ...... "

" 유일한 탈출구는 미로 뿐이야. "

 

 

지원이 시큰중하게 쟁기로 땅을 쑤시자 진환이 한숨을 쉬고 어린아이 달래듯 물었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환은 제 발 아래에 있는 바구니를 지원에게 던졌다. 짚으로 엮은 바구니는 가볍게 지원의 품에 안겼다.

 

 

" 그럼 가서 비료나 퍼 와. "

" ...... "

 

 

 

 

 

 

 

 

 

 

지원은 자존심 상한 얼굴로 숲을 향했다. 비료나 퍼 와, 김지원. 됐고, 비료나 퍼 와! 어딨는지 알지? 숲 한가운데라고. 중얼중얼 진환의 말을 곱씹은 지원은 삽을 이러저리 돌렸다. 도대체가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도 깊이 알려하면 선을 긋고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한다. 이렇게 비료나 퍼가면서 매일을 살다간 답답해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이제 이틀 째 이 곳에 접어든 지원은 참을성이 없었다. 하다 못해 러너라도 된다면.. 지원은 한빈의 까만 눈을 떠올렸다. 그 녀석은 지금 쯤 미로 속을 뛰어다니고 있을까. 숲의 중심부에 들어서자 음기가 돌았다.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는 무덤에 지원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뼈를 밟으며 무덤을 살폈다. 이름의 지워진 사람들의 것인가. 무덤에 새겨진 이름을 자세히 보려 할때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급하게 뒤를 돌았다. 한빈과 함께 미로에서 나왔던 까무잡잡한 남자가 거친 숨을 뱉으며 지원의 앞에 서 있었다. 어어.. 그러니까.. 이름이.. 사람인것을 확인한 지원이 안심하며 조심스럽게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 .. 민.. 호? 송민호? "

" ...... "

" 맞나? 정식으로 인사를 한 적이.. "

 

 

민호를 낮게 신음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눈에는 알게 모르게 광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었다. 괜찮아? 지원이 물음과 동시에 민호가 지원에게 달려 들었다. 또 바닥행이냐?! 그대로 뒤로 자빠진 지원은 자신의 목을 향해 손을 뻗는 민호의 팔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의 얼굴은 검은 핏줄이 울긋불긋 서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할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다 네 잘못이야. 널 봤어. 네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 뭐? "

 

 

민호의 말에 순간적으로 힘을 놓친 지원의 팔이 그대로 민호에게 잡혔다. 이성을 잃은 민호의 힘은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한 채 지원의 팔을 으스러뜨릴듯이 잡았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지원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왔다. 민호의 손이 지원의 목을 조르자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된 지원이 손을 더듬었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살핀 지원이 옆에 있던 짐승의 두개골을 집어 민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커억. 민호의 몸이 떨어지자마자 지원은 정신없이 숲 밖으로 달렸다. 민호가 놓칠세라 지원의 뛰를 따라왔다.

 

 

" 도와줘!! "

 

 

숲에서 지원이 소리치자 밭을 일구던 진환을 비롯한 남자들이 고개를 들었다. 숲에서 달려오는 실루엣에 눈을 가늘게 뜨자 지원이 먼저 나타났다. 정신없이 뛰어오는 지원의 뒤로 민호가 보이자 진환은 찬우에게 준회를 불러오라 짧게 말한 뒤 삽을 들고 달려왔다. 또 다시 지원을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는 민호를 진환이 삽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흔한 신음소리 하나 없이 고꾸라진 민호를 남자들이 달려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짓눌렀다. 진환이 올라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민호는 발버둥치며 벗어나려 애썼다. 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진환이 지원에게 물었다. 왜 이래?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킨 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 갑자기 날 공격했어. "

 

 

그의 말에 일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준회가 다가와 민호를 내려다보자 진정되었는지 눈에서 광기가 사라진 그가 절박하게 말했다. 안돼.. 안돼.. 민호의 말에 준회가 고개를 돌렸다. 인상을 쓰고 눈을 감는 그는 괴로워 보였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지원이 눈을 이리저리 돌리자 준회가 말했다. 셔츠 올려봐.

 

 

" 안돼!!! "

" 어서. "

" 안돼.. 안돼.. "

 

 

민호의 몸부림을 막은 남자들의 그의 셔츠를 들어올리자 끔찍한 상처가 드러났다. 옆구리에 자리 잡은 구멍 주위로 검붉은 멍자국과 핏줄이 올랐다. 욕설과 함께 진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지원은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호의 배는 상처와 함께 위아래로 들쑥였다. 그가 숨을 내쉴수록 상처는 눈에 띄게 퍼져 나갔다.

 

 

" 그리버한테 찔렸어. "

" 이 대낮에? "

 

 

준회와 진환의 대화에 지원이 가까이 다가갔다. 민호는 살려 달라며 준회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제발.. 제발...

 

 

" 구덩이에 넣어. "

" 안돼!! 제발!!! 내 말을 들어봐! "

" 치료팀. 전부 도와. "

" 이거 놔!! 대장!!! 제발.. 살려줘! "

 

 

진환이 치료팀을 데리고 민호를 끌고 가자 지원은 뒤돌아선 준회의 뒤를 쫓았다.

 

 

" 송민호가 왜 저렇게 된거지? "

" ... 그리버에 찔리면 저렇게 돼. 감염이 심해지면 점점 더 폭주하지. 알 수 없는 소릴 지껄이고.. "

 

 

준회가 빠른 걸음으로 걷다 찬우가 앉아 나무를 손질하는 오두막에 걸터 앉았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지원도 말 없이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 녀석이 너한테 뭐라고 했지? "

" .. 날.. 봤다고 했어. 이 모든게 내 잘못이라고. "

" ...... "

" 이게 어떻게 내 잘못이야? "

 

 

준회는 대답하지 않은 채 어딘지 모를 허공을 응시했다. 네 잘못이라 아니라고도, 네 잘못이 맞다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주제 넘는 판단에 말을 아끼는 모습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지원은 생각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그렇다고 지원 또한 제 자신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었다. 좀 쉬어. 몸을 일으킨 준회의 등 뒤로 지원이 물었다. 송민호는 어떻게 돼? 준회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 ...... "

 

 

준회는 대답대신 눈을 짙게 내리 깔았다. 그의 행동에 지원은 말보다도 더한 잔인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육중한 회색 벽 앞에 사내들이 자신의 키에 두 배는 되는 기다란 장대를 들고 섰다. 손이 뒤로 묶인 민호가 한빈의 손에 질질 끌려 그들의 앞에 섰다. 내 말을 들어봐.. 제발.. 들어보라구.. 그의 입에선 여전히 절절한 애원의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를 끌고 나온 한빈의 표정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내들은 가슴을 찢는듯한 표정으로 장대를 눕혀 세웠다. 지원은 찬우와 멀찌감치 서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한빈이 민호를 잿빛 문 앞에 꿇어 앉히고 손목에 묶여있던 밧줄을 끊어냈다.

 

 

" 제발.. 한빈아.. 부탁이야... "

 

 

한빈은 귀가 먹은 사람처럼 민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민호의 짐으로 추정되는 작은 가방을 미로 속에 던졌다. 그리고 제 할 일이 끝났다는듯이 장대를 쥔 사내들의 뒤로 서서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행위이다. 지원은 한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도 함께 미로 속을 뛰어다니던 동료가 아닌가. 한빈이 물러서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미로 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민호는 흐느끼며 뒤를 돌아 제 동료들을 보았지만, 준회가 장대! 하고 외치는 소리에 눈에서 희망을 잃었다. 찬우는 보기 싫다는듯 오두막으로 향했다. 지원은 남아 그의 최후를 지켜 보았다.

 

 

" 앞으로. "

 

 

준회의 말에 장대를 든 사내들이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민호는 뒷걸음질 치며 지신의 뒤에서 서서히 닫히고 있는 문에 사색이 되었다. 민호가 미로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설수록 남자들의 표정 또한 그만큼 어두워졌다. 지원은 천천히 그들의 뒤로 다가갔다. 민호의 비명과 함께 미로가 닫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남자들은 다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한빈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입술을 굳게 닫은 그는 회색 벽을 한 번 쳐다보다 가장 먼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준회가 착잡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보다 말햇다. 이젠 미로가 녀석의 집이야. 장대를 벽에 세워두고 비틀대며 걸어가는 준회의 뒤로 진환이 쫓아갔다.

 

 

 

 

 

 

 

 

 

그 날밤. '송민호' 의 이름은 잿빛 벽에서 의미없는 선들로 인해 지워졌다. 민호의 이름을 지우는 모습을 보던 지원이 해먹에 누워 있는 찬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 거기서.. 살 수 있어? "

" 민호형이요? "

" ...... "

" 절대. "

" ...... "

" 이제 그만 잊어버려요. 다들 그랬으니까. "

 

 

제 말이 잔인했다는 것을 아는 찬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잔인하지만, 규칙이니까. 찬우의 떨리는 목소리에 지원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돌려 준회가 있는 오두막을 바라 보았다. 홀로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준회는 생각이 많아보였다. 저 사람은. 저대로 괜찮을까. 애내 진환이 준회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자 지원은 그대로 해먹에 누웠다. 내가 남걱정 할 때는 아니지. 눈을 감자 꺼림칙하게 들려오는 '미로의 변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지원은 잠을 청하려 몸을 한참이나 뒤척였다.

 

 

 

 

 

 

 

 

 

준회는 지워지는 민호의 이름을 지켜보며 그가 처음 이 곳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이 곳에 온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모두를 경계하며 적대시하던 민호였다. 그럼에도 그는 나중에 가서는 누구보다 쉽게 어울리는 성격 좋은 놈이 되어있었다. 모두가 꺼려하고 어려워하는 한빈과도 곧 잘 어울렸고, 힘도 잘쓰고 든든해서 한빈과 함께 러너를 시킨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밝고, 좋은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한순간에..

 

 

" 또. "

" ...... "

" 그렇게 혼자 빠져들지 말랬지. "

 

 

준회의 팔을 장난스럽게 쳐오는 작은 손에 준회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진환이 옆에 앉아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대장. 하고 부르는 입술을 준회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만졌다. 내가 잘못된걸까. 내가 만든 룰에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는 준회의 손길에 눈을 감았던 진환이 준회를 끌어 안았다. 네 잘못이 아니야. 진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준회가 어린아이처럼 진환의 허리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형. 낮에 보았던 대장의 모습이 아닌 마음 여린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진환은 말 없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매번 동료들을 이런식으로 떠나 보낼때마다 준회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뿜곤 했다. 진환이 준회의 고개를 들고 눈을 맞췄다. 허공에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 진환은 가슴 속에서 타오를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이 한 없이 약하고. 강하고. 부드럽고. 단단한.

 

 

" 형.. "

 

 

이 사랑스러운 남자를 어떻게 할까.

 

 

" 사랑해. "

 

 

먼저 키스한 것은 진환이었다. 진환이 준회의 입술에 달려들자 그에 맞추어 준회가 집어 삼킬듯 진환의 입술을 먹었다. 숨 쉴 틈도 허락하지 않는 키스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준회의 몸이 점점 기울어 그대로 진환을 눕혀 그 위에 올라탔다. 잠.. 흣. 잠시만.. 하아.. 잠시 떨어진 입술에 호흡을 찾기도 전에 오물거리는 진환의 입술을 본 준회는 다시 입술을 부딪혔다. 잠시만. 따위의 말이 들릴리 만무했다. 숨 쉬는 순간도 거슬려. 나한테서 떨어지지마. 애처롭게 부딪혀 오는 입술은 살려달라 외쳤던 민호의 비명만큼이나 간절했다. 준회의 입술이 진환의 입술에서 떨어져 목덜미로 향했다. 진득하게 목주변을 빨아오는 혀에 진환이 흣, 하고 허리를 튕겼다. 뜨거운 그 감촉에 진환이 준회의 머리를 잡고 끌어 안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준회의 검은 머리칼이 잡혔다.

 

 

" ... 매일매일이 불안해. "

" 하아.. "

" 알아..? 형도 언젠간 그렇게 될 상상을 하면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어. "

" 준회야.. "

" 러너가 될 생각은 꾸도 꾸지마.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

 

 

목덜미 주변에서 울리는 준회의 낮은 목소리에 진환은 작게 목을 떨었다. 알겠어? 명령조로 말하는 준회의 말은 이미 예, 아니오 중 선택을 허락하는 투가 아니었다.

 

 

" 안전한 출구를 찾을 때까지 미로엔 단 한발자국도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

" ...... "

" 다치지도 않겠다고 약속해. "

 

 

너는. 매번 뭐가 이리도 불안한거니. 진환은 자신을 보며 끙끙대는 준회가 한 마리의 대형견 같아 웃음 지었다. 응? 형..

 

 

" 약속할게. "

 

 

진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환하게 미소 지은 준회가 진환의 코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실은 매일 불안한건 나인데. 행여나 위험한 일을 하는건 아닐까. 무리를 이끌면서 크게 상처 받진 않을까. 이렇게나 여린 네가 혼자서 괴로워하진 않을까. 매일매일 불안해. 진환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 곳에서 가장 겁쟁이는 나일지도 몰라.

 

 

" 준회야. "

" 응? "

" 바보같은 얘길지도 모르지만. "

" ...... "

" 난 나름 감사하고 있어. 이 곳에 날 데려다준 사람들에게. "

 

 

너랑 만났으니까. 지금 이 상황이 아무리 개 같아도. 끔찍해도. 여기에서 널 만난 그 순간부터.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부터. 진환은 눈을 깜빡였다. 감사해 나는. 이렇게 널 볼 수 있으니까.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 있으니까.

 

 

" 바보같네. "

" ...... "

" 나도 그런데. "

 

 

우리 둘 다 바보네. 진환을 꼭 끌어 안은 준회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럴수록. 더욱 더 지켜주고 싶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모습이 아니라,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 ... 꼭 함께 나가자. "

 

 

그렇게 내일도. 네가 내 손에 잡힐 수 있는 하루라면야. 난 언제까지고 널 사랑해.

 

 

 

 

 

 

 

 

 

3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上 | 인스티즈

 

 

 

지원은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끝도 없이 올라가는 상자. 붉은 천장. 벽에 설치 된 형광등은 차례로 켜지며 차가운 빛을 뿜는다. 바비.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낯선, 그러나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들어. 바비. 모든게 바뀔거야. 앳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맑게 웃는 어린 소년은 어울리지 않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물 속에 잠겨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의 입과 코에선 기포 방울이 넘쳤지만 빠져나올 수 없어 보인다. 괴로워 보인다. 바비.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이어서 물에 잠기는 듯한 자신. 수술대. 의료 두구. 의사들..? 연구원들..? 바비. 조금 아플거다. 함께 누워있는 남자. 누구지. 그는.. 그와 자신이 손을 잡는다. 누구지. 앳된 남자는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네가 아니야. 누워있는.. 나와 손을 잡은 그는 누구지. 앳된 남자가 시야를 가린다. 바비.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바비. 선택을 해야 해. 바비. 바비.

 

 

" 허억...! "

 

 

몸을 일으키자 눈 앞엔 찬우가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또. 그 꿈이다. 조금 다른 것은 목소리만 들렸던 처음과 달리 얼굴들이 나왔다는 것. 지원은 아직까지 생생한 남자의 손의 감촉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 여자는 누구지. 그 앳된 얼굴의 소년은.. 그리고 내 손을 잡은 남자는? 무거운 쇳덩이 소리에 지원은 고개를 돌렸다. 미로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간 두 남자는.. 한빈과 준회였다.

 

 

 

 

 

 

 

 

 

" 왜 구준회가 미로에 들어가? "

 

 

나무를 손질하는 진환과 윤형에게서 조금 떨어진 통나무에 걸터 앉은 지원이 말했다. 찬우는 옆에서 작은 나무 인형을 손질하고 있었다.

 

 

" 러너가 아니잖아. "

" 상황이 달라졌어. 준회는 민호가 갔던 장소를 살피러 가는거야. "

" 안도울거야?! "

 

 

지원의 말에 진환이 들고있던 도끼를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도끼가 날을 세우며 지원의 발등 근처에 날아와 통나무에 내리 꽂혔다. 진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원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도울 수 있었다면 진작에 도왔어. 누군 그 지옥같은 미로 속으로 보내고 싶은 줄 알아? 진환의 말에 옆에 있던 찬우까지 침을 삼키고 눈치를 봤다.

 

 

" 그냥 그 애한테 놔두라고. 누구보다 잘 아니까. "

" .. 무슨 뜻이야? "

 

 

진환은 머리 끝까지 차오른 화를 누르고 지원의 밑에 꽂힌 도끼를 거칠게 뽑았다.

 

 

" 좋아. 설명해주지. 너도 들었겠지만 매달 신참이 박스에 담겨서 와. "

" ...... "

" 하지만 맨 처음에 온 사람은 글레이드에서 한달을 혼자 지내야 했지. "

 

 

진환의 말 끝이 조금 떨렸지만 그에 눈치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환이 입술을 깨물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삼켰다. 맨 처음. 홀로 이 곳에서 헤맸을 그 애를 생각하면. 진환은 시큰해져 오는 코 끝을 문질렀다.

 

 

" 그게 준회였어. "

 

 

진환은 일부러 도끼질을 거칠게 하며 말을 이었다. 도끼가 박히는 곳마다 이리저리 톱밥이 튀었다. 제대로 된 도끼질은 아니었다.

 

 

" 그 이후로 다른 애들이 줄줄이 들어왔고 준회는 진실을 봤어. "

" 진실..? "

" 가장 중요한게 뭔지를 깨달은거지. 힘을 합쳐야 살아남는다는거. "

 

 

그래서. 그 긴 시간을 싸워온거야. 지금의 우리를 만들기 위해. 지원은 진환을 응시했다. 이 사람. 구준회와 뭔가 있구나. 지원은 그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가 '애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인데. 지원은 눈을 가늘게 뜨다 회상을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의 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우린 다 한 배를 탔으니까. "

 

 

진환의 마지막 말로 지원은 찬우를 쳐다보았다. 찬우는 나무인형을 손질하게에 바빴다. 한 배를 탔다. 정확한 표현이다. 다 함께 살거나, 다 함께 죽거나. 모 아니면 도의 상황. 지원은 통나무에서 엉덩이를 떼고 진환과 윤형의 앞에 섰다. 손에 들려 있는 도끼로 나무를 힘껏 내리치자 깊은 자국이 남으면서 나무가 패였다.

 

 

" 잘하네, 신참. "

 

 

그의 행동에 진환이 슬쩍 웃었다.

 

 

 

 

 

 

 

 

 

MAZE RUNNER

CHAPTER 3

 

 W. 두번째손가락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를 하나 둘씩 떨어뜨렸다. 금새 젖어버린 땅과 비를 쏟아내는 하늘을 피해 사내들은 오두막으로 모였다. 오두막에 모여든 사내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비 덕에 더 짙어진 잿빛 벽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문을 보고 있었다. 윤형이 말했다. 지금쯤 돌아왔어야 했어. 문이 닫힐 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인영에 지원도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장과 대표러너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보다도 더한 불안감. 차가웠던 얼굴의 그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못 돌아오면 어떻게 돼? "

 

 

마른세수를 하던 지원이 손을 비비고, 매만지다 차우를 향해 물었다. 진환은 새파랗게 질려있고, 찬우 또한 지원만큼 불안한 눈치였다. 티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찬우 대신 진환이 대답했다.

 

 

" 돌아올거야. "

" 못 돌아오면? "

" ... 반드시 돌아올거야. "

 

 

진환의 대답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빗 속에서 지원의 불안한 발걸음을 잠재울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오두막을 이러저리 돌아다니는 지원의 발은 정신 사납다는 윤형의 말로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비가 그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소나기였을까. 비가 그치자마자 지원이 잿빛 미로 앞으로 달려갔다. 지원의 뒤를 잇따른 진환에 이어 남자들이 미로 앞에 다같이 모여 텅 빈 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남자들의 맨 앞에 서 있던 지원이 진환에게 말했다. 지원은 이 상황이 마냥 답답했다.

 

 

" 누굴 보내서 찾아보면 안돼? "

 

 

진환이 묵묵히 미로를 쳐다봤다. 눈에선 당장이라도 떨어질듯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젠장, 지원이 머릴 싸매자 윤형이 툭 내뱉었다. 그건 룰에 어긋나. 스스로 알아서 돌아와야지. 그런게 어딨냐고 반박하려는 순간 진환이 말했다.

 

 

" ... 다른 애들까지 잃을 수 없으니까. "

 

 

준회의 말을 흉내내는 듯한 말이었다. 하나하나 힘을 주어 쥐어짜는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워 눈 뜨고는 못 볼 표정이었다. 주먹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잿빛 미로 속에서 먼지 바람이 불어왔다. 미로가 닫힌다는 신호였다. 진환이 입술에 피가 날 듯 깨물었다.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움직였다. 미로의 입구가 좁아지고 있었다. 안돼.. 찬우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남자들이 포기한 순간 지원의 시야에 사람의 인영이 잡혔다.

 

 

" 저기!! "

 

 

지원이 손으로 가리킨 곳엔 한빈이 준회를 부축한 채 미로 입구를 향해 오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걷는 준회는 이미 제 힘으로 중심을 잡기엔 틀린 듯 싶었다. 진환이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잘못됐어.. 아예 땅에 고꾸라진 준회에 한빈은 심히 당황한듯 보였다. 준회의 기다란 몸뚱이를 잡고 입구와 준회를 번갈아 보는 한빈의 눈동자는 이미 냉철함을 잃은 뒤였다. 한빈이 주춤거리자 남자들이 소리쳤다.

 

 

" 김한빈, 뛰어!! "

" 한빈아!! "

" 김한빈! 준회를 버려!! "

 

 

그렇게 소리치는 목소리에 진환의 발걸음이 입구로 향했다. 둘 다 죽겠어..

 

 

" 준회를 버리고 와!! "

 

 

남자들의 소리침에도 한빈은 준회의 다리를 붙들고 달려왔다. 미로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지원은 멍하니 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미로는 이제 성인 남자 하나가 들어가면 알맞을만큼 좁아졌다. 한빈의 얼굴이 서서히 절망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지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저 눈. 저 까만 눈. 지원은 홀린 듯 다가가는 진환을 밀쳐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어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소리치는 남자들. 닫히는 미로의 문. 자신을 바라보는 한빈의 눈이 마치 그 시간들을 집어 삼킨것처럼. 지원은 닫히고 있는 미로의 입구에 뛰어들었다.

 

 

" 김지원, 안돼!!! "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을 땐, 이미 지원은 미로 입구를 정신없이 헤치고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점점 좁아지는 미로에 압사의 위협을 느끼자 몸이 땅으로 처박히면서 목숨은 구했다. 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목숨을 버린 것일까. 지원은 충동적인 스스로의 행동에 나자빠져 완전히 닫혀버린 문을 보았다. 헉. 헉. 거친 숨을 몰고 육중한 문을 올려다보았다. 미로 안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뒷걸음질치고 뒤를 돌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한빈이 보였다. 한빈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지원을 흘겼다.

 

 

" 참 잘했네. "

" ...... "

" 너도 이제 죽은 목숨이야. "

 

 

그와의 첫 대화였다.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첫 대화라기엔 지나치게 살벌했고,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지원은 마음 한켠으로 안심 되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이 정녕 미친놈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왜 이곳에 뛰어든거지. 왠지 보이지 않는 것보단 볼 수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뿐이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저 한빈의 앞에 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뭐라고? "

 

 

되묻는 지원에 한빈이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원이 몸을 일으켜 다가와 쓰러져 있는 준회를 살폈다. 한빈은 그 행동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준회는 죽은듯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어떻게 된거야? "

" 보면 몰라? "

" ...... "

" 찔렸어. "

 

 

한빈이 차갑게 말했다. 한빈의 말만큼 차갑게 식은 준회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환이 이 모습을 못봐서 다행이다. 밖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 진환에 지원은 준회의 팔을 열심히 주물렀다. 한빈이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준회를 살피던 지원이 이마의 상처를 발견하곤 물었다.

 

 

" 이마는 왜 이래? "

"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야. "

 

 

둔기로 힘껏 내려친 흔적이다. 아마 준회가 한빈에게 달려 들었던 모양이지. 지원은 상상되는 한빈의 행동에 제가 더 아픈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때 기괴한 울음소리가 미로 안에서 들려왔다. 그리버. 지원은 이제 누군가의 설명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적응해가는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한빈은 담담하게 몸을 일으켰다. 지원이 준회의 양 다리를 붙들고 한빈에게 말했다.

 

 

" 좋아. 몸을 일으키게 도와줘. "

" 가야 돼. 벌써 미로가 바뀌고 있어. "

" 김한빈! "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이 불쾌한지, 당황스러운건지 한빈은 찡그린 채 뒤를 돌아서 지원을 내려다보았다.

 

 

" 이렇게 두고 갈 순 없어. "

" .... 오지랖은. "

 

 

그 성격. 여기선 빨리 버리는게 좋아. 한빈이 한숨을 쉬고 준회의 상체를 들어올렸다. 자, 일으켜. 준회의 몸을 일으키고 양팔을 한 쪽씩 걸친 한빈과 지원이 미로 속을 정처 없이 걸었다. 덩쿨이 이리저리 얽힌 미로는 정말 그 무엇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한참을 걷던 한빈이 준회의 팔을 내려 놓았다. 여기 앉혀. 준회를 한 쪽 벽에 기대어 앉힌 한빈이 좌우로 뚫려있는 미로를 번갈아보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지원을 쳐다보았다.

 

 

" 이러다간 다 죽어. 가야 돼. "

" 이렇게 두곤 못 가. 숨겨주자. "

" 하.. 도대체 어디에? "

" 나도 몰라. 얘 하나를 숨길만한 곳이 없단 말야? "

 

 

조급함에 발을 구르던 한빈이 나즈막히 욕을 뱉고는 지원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가느다란 팔목에서 나오는 엄청난 악력이 지원의 몸을 눌러왔다. 벽에 밀쳐진 지원에게 한빈은 코 끝이 닿을 정도로 밀착하여 낮게 말했다.

 

 

" 잘 들어, 등신새끼야. "

" ...... "

" 주위를 봐. 숨길 곳 따윈 없다고. "

 

 

한빈이 지원을 밀쳐냈다. 지원은 주저앉아 한빈을 올려다보았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저 편에서 들려왔다.

 

 

" 아직 잘 모르는군. "

" ...... "

" 우린 벌써 죽었어. "

 

 

나를 보는. 까만 눈. 지원은 한빈과 눈을 마주치다 고개를 흔들고 그의 너머로 보이는 넝쿨에 시선을 옮겼다. 재빨리 달려가 길게 위를 향해 뻗은 덩쿨과 기대어 누워있는 준회를 보던 지원이 마지막으로 한빈을 쳐다보았다. 지긋지긋함이 묻은 표정은 지원의 시선에 따라 길게 뻗은 넝쿨로 향했다.

 

 

 

 

 

 

 

 

 

" 하나, 둘! "

" 윽...! "

 

 

준회의 몸을 넝쿨에 단단히 묶은 두 사람은 준회의 몸을 끌어 올리려 안간 힘을 썼다. 굵은 줄기에 묶여 위로 올라가는 축 늘어진 준회의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잔뜩 우거진 넝쿨에 준회의 몸이 서서히 올려지자 지원이 뿌듯함에 웃어보였다. 지랄하네. 고개를 절제절레 흔든 한빈이 손에 힘을 주자 지원이 웃으면서 이제 내가 할게. 하고 한빈의 손을 슬쩍 잡아 내려 놓았다. 그 행동에 묘함을 느낀 한빈이 손을 훌훌 털었다. 방금 뭐지. 제 손을 빤히 쳐다 본 한빈은 곧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여기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 근육을 풀었다. 지원은 홀로 끙끙거리며 준회를 올리느라 앓는 소리를 냈다.

 

 

" 아.. 젠장, 힘드네. "

 

 

목운동을 하던 한빈이 왼쪽 미로 끝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에 표정을 굳혔다. 설마. 거대한 무언가는 천천히 움직이며 정확히 한빈과 지원에게 몸을 향하고 있었다. 한빈은 멍한 표정으로, 그러나 다급하게 지원의 팔을 툭툭 쳤다. 가야 돼, 당장!

 

 

" 뭐? 안돼, 조금 더 올려서 묶어야 된다고. "

" 가야한다고! "

" 안돼, 지금 여기서.. "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무언가' 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것은 확실히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씨발, 네 맘대로 해! 한빈이 지원을 밀치고 달리자 지원이 중심을 잃고 준회의 무게에 휩쓸려 넝쿨로 처박혔다. 덕분에 준회의 몸을 지챙해주던 줄이 내려와 준회의 몸뚱이는 데롱데롱 넝쿨 한가운데에서 흔들렸다. 넝쿨에 처박힌 지원은 정신을 차리자 기괴한 울음소리에 급히 몸을 숨겼다. 넝쿨 아래로 몸을 뉘어 지원의 시선에 비춘 것은.. '그것' 의 다리였다. 그리버. 기괴한 그 다리는 움직일때마다 찌걱거리며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를 냈다. 평범한 곤충은 아니었으나, 외관상 거미에 가까웠다. 지원은 숨을 죽이고 그리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마에서 콧잔등까지 땀줄기가 흘렀다. 울음 소리가 멀어지자 지원은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넝쿨에서 빠져나와 놓쳤던 줄을 잡고 매달린 준회의 몸뚱이를 올려다보았다. 더 올려야 해. 지원은 힘을 주어 줄을 끌어 올렸다. 울음소리가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젠장... 어서..! 급한 마음에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그리버가 모습을 보이자 지원은 급히 모퉁이 뒤로 몸을 숨겼다. 철근이 움직이는것처럼 들리는 다리의 움직임이 몇 번 들리다 사라졌다.

 

 

" .....?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원은 모퉁이를 돌아 고개를 내밀었다. 없다. 그리버는 보이지 않았다. 지원은 준회의 몸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 준회는 처음 계획했던대로 높은 넝쿨 상에 묶여 몸을 숨기고 있었다. 지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리버는 보이지 않는다. 지원이 급히 뒷걸음질 치며 삽아을 돌아보았다. 어디야. 어디있지.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철벅.

 

 

" ...... "

 

 

지원은 제가 밟은 진득한 액체에서 천천히 발을 뗐다. 주욱 늘어나는 그것은 액체라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기분 나쁜 덩어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원이 그것의 정체를 알아채기도 전에 어깨에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누런 빛깔의 액체는 지원이 밟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지원이 고개를 올리자 그리버가 그르릉거리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끔찍한 형상이었다. 미끄덩한 몸뚱이에 등에는 북슬북슬 나있는 털. 발달되어있는 턱 위로 뾰족한 이빨을 셀 수도 없을만큼 많았다. 다리는 무엇으로 이어붙였는지 선들이 그득했다. 기계와 곤충의 조화. 아니, 부조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 좆 됐다.. "

 

 

지원의 읊조림과 동시에 그리버가 달려들었다. 지원은 간간히 비춰오는 달빛에 의지하여 미로 속을 달렸다. 그러나 다리가 8개인 생물과의 술래잡기는 애초에 패널티 없이 이겨내기엔 무리였다. 우린 벌써 죽었어. 하고 말했던 한빈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잘 도망쳤을까. 도망치는 와중에 떠올린 한빈의 생각에 다리가 더뎌지자 그리버가 지원의 앞을 가로 막았다. 서둘러 뒤돌아 달리는 지원은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로 속은 모두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다. 미로 사이로 달리고, 달릴 뿐이었다. 이제 막 그리버를 따돌렸다 생각하자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빌어먹을..! 그리버가 바짝 뒤쫓아오자 지원은 고개를 돌리다 넝쿨을 발견하곤 벽을 향해 크게 점프했다. 가까스로 넝쿨을 잡은 지원이 있는 힘껏 벽을 타고 오르자 그리버도 철근 같은 다리를 벽에 박다 싶이 짚으며 벽을 올랐다. 벽을 오른 지원은 눈 앞의 광경을 볼 틈도 없이 달렸다. 벽과 벽 사이의 간격을 마구 뛰어 오른 지원은 낭떨어지, 벽의 끝자락에서 멈추어 몸을 크게 휘청였다. 벽 아래에는 까마득한 높이로 차가운 바닥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향을 틀려던 지원은 바로 제 뒤에 있는 그리버에 건너편 벽으로 몸을 던졌다. 벽에 얽힌 넝쿨을 잡은 지원이 안도할 틈도 없이 그리버가 지원의 몸 위로 날아왔다. 그리버가 촉을 세워 벽을 마구 찌르자 넝쿨과 함께 지원의 몸이 추락했다. 몸을 일으킨 지원은 그리버의 촉수를 뒷걸음질 쳤다. 그리버는 벽에 붙은 넝쿨에 얽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지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모퉁이를 돌자 튀어나온 인영이 지원을 덮쳤다. 지원은 놀란 가슴을 달래고 눈을 크게 떠 인영을 확인했다. 달빛에 인영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빈이었다.

 

 

" 이 미친자식! "

 

 

한빈의 욕설에 지원은 한 품에 그를 끌어안았다. 뭐하는거야?! 상황도, 분위기도 맞지 않는 지원의 행동에 한빈이 있는 힘껏 지원을 밀쳐냈다. 쉽게 떨어져 나간 지원은 멍청히 한빈을 보고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 본인 꼴이나 보고 말하시지.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닌건 알고 있어? "

 

 

한빈이 넝쿨에서 빠져 나오려는 그리버를 보고 지원의 손을 잡았다.

 

 

" 이쪽이야! "

" 어..?! "

 

 

달리는 도중에 들리는 무거운 쇳소리에 한빈이 말했다.

 

 

" 미로가 바뀌고 있어, 빨리! "

 

 

한빈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구역이 닫히고 있어, 놈을 따돌리자! 한빈의 말에 지원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달리던 한빈은 멈춰있는 지원을 향해 소리쳤다.

 

 

" 뭐하는거야?! 빨리 와! "

" 먼저가! "

 

 

뭐? 한빈은 통로에 서서 망설이다 지원의 말대로 반대편 구역으로 먼저 달려갔다. 지원은 그리버가 올 방향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 와라.. "

 

 

한빈이 지나간 구역의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한빈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기다려?!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 김지원!!! "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 한빈의 목소리에 지원은 알 수 없는 데자뷰를 느꼈다. 김지원. 그렇게 불렀다. 처음이었지만,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문이 서서히 닫히고, 한빈은 까마득해진다. 지원은 여전히 그리버가 나타날 곳을 노려 보았다. 마침내 그리버가 거대한 8개의 다리를 이끌고 나타나자 지원이 입을 축였다. 온다. 그리버가 달리자 지원도 있는 힘을 다해 한빈에게로 달렸다. 통로가 닫힐수록, 그리버가 지원을 추격하는 공간이 좁아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 뛰어, 김지원!! 빨리!! "

 

 

그리버의 울음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 소리치는 한빈이 가까워질수록 지원의 숨도 가빠웠다. 자꾸만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조금만 더...!

 

 

" 김지원!!! "

 

 

마침내 통로가 닫히고, 한빈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지원은 눈을 감았다.

 

 

 

 

 

 

 

 

 

 

두번째손가락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上 | 인스티즈

 

 

 

 

안녕하세요 두번째손가락입니다! 예... 영화랑 똑같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점이라곤 호모호모한 것을 넣은 것 뿐입니다. 아마 스토리 전개는 똑같을거에요!

근데 이게 2탄이 나온다면서요..? 그때 또 써야하는건가(먼산)

 

영화를 오마주해서 써보는건 처음이라 전 쓰면서 즐거웠지만 독자분들께선 어떻게 보셨을지..... 걱정되네용

 

메이즈러너 시리즈는 상, 중, 하로 중편연재를 할 생각입니다.

아마 별 일 없으면 상, 중, 하로 가고 별일 있으면 상, 하로 바뀔 수도.. 챕터는 3개씩 넣을 생각이에요.

 

아무쪼록 재... 재밌게 읽으셨음 좋겠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셔요!

 


메이즈러너 시리즈에선 암호닉을 받지 않습니다.

중편 연재이기 때문이 완결이 빨라 이 곳에선 암호닉을 받지 않습니다:-)

김칫국이 아닐까 예상됩니다만 혹시나 싶어서ㅠㅠㅠㅠㅠ

암호닉은 지금 장편으로 연재중인 피아노 협주곡에서만 받고 있어요!

 

기존에 암호닉이신 분들은 댓글에 알려주셔도 상관없습니당^~^

 

 



 
독자1
헐 다! 기대되요!!!!!!!!!! 역시 두번째 손가락님 최고!!!!!!!!사랑해여!!!!!!!!!!!!
9년 전
독자2
헐....으어ㅠㅠㅠㅠㅠㅠ뭐지ㅠㅠㅠ진짜 재미있어요ㅠㅠㅠ역시 작가니뮤ㅠㅠㅠㅠㅠ진짜 짱드세여 피아노로 모자라서ㅠㅠㅠㅠ사랑함둥♥
9년 전
독자3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짱 ㅠㅠㅠㅠㅠ짱먹으세요 진짜 대박 내취향저격 이렇게하면 나 못삼 ㅠㅠㅠ오늘은 여기 이불깔랍니다
9년 전
독자4
으아아ㅏㅏ저obsession이에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금손뉴ㅠㅠㅠㅠ 피아노말고 기다릴게 또하나 생겼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짱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까님언제나제사라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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