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잠깐! 위안 = 토끼 입니다! 읽는 도중 토끼가 나온다면 그건 장위안이 토끼로 변한 거예요!
토끼 키우는 남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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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타쿠야와 함께 살게 된지도 1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열대야에 잠못들어 자꾸만 토끼에서 사람으로 변하던게 엊그제 같았지만,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있었다.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얼마 전 타쿠야는 위안을 데리고 가을 옷 쇼핑을 다녀왔다. 타쿠야가 위안과 만난 게 여름이었으니 위안에게는 여름옷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집에서 편하게 입으라고 사다준 기본 반팔이나 추리닝이었다. 얼마 전, 위안과 함께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 위안이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타쿠야의 옷을 입고 나간 적이 있었다. 타쿠야는 제 옷 중에서 그나마, 정말 그나마 작은 치수의 옷을 위안에게 건네주었지만 타쿠야의 옷을 입은 위안은 꼭 삼촌 옷을 훔쳐 입은 아이 같았다. 소매가 손등을 덮는 탓에 타쿠야가 접어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돼써. 내가 접을 거야.”
라며 위안은 타쿠야의 손길을 거부했다. 입이 삐죽 나와서 이건 왜 이렇게 긴 거야 라고 투덜거리는 게 아무래도 타쿠야의 옷이 제게 한참 크다는 사실이 불만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타쿠야는 열심히 웃음을 참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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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타쿠야가 한참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위안은 벽에 걸려있는 작은 시계를 바라보며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분명 아까 점심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위안은 간식이라도 먹을 생각에 부엌으로 향했다. 찬장을 열어보니 수북하게 놓여있던 과자는 어디가고 코코아 한 박스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위안은 그제서야 어제 마지막 남은 과자를 먹었던 것을 떠올렸다. 코코아라도 타 먹자라는 생각에 위안이 손을 뻗어 코코아 박스를 꺼냈다. 그 순간 위안의 머릿속에 타쿠야가 아침에 코코아를 타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코코아는 하루 한잔만 마시는 거예요. 그리고 뜨거운 물에 타서 마셔야하니까 내가 집에 없을 때 혼자 타먹으면 안돼요. 알았죠?
위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타쿠야 말 들어야하는데...하지만 배고픈데...
위안은 빠르게 합리화를 시도했다.
근데 타쿠야랑 약속한건 아니자나.
스스로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위안은 타쿠야가 코코아를 타줬던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 머그컵을 얌전히 식탁 위에 내려놓은 뒤, 오늘 아침에 타쿠야가 했던 것처럼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다시 주전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기 위해 위안이 몸을 트는 순간 위안의 팔꿈치에 머그컵이 닿아 떨어지는 순간 쨍그랑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위안이 뒤를 돌아 머그컵이 깨져있는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위안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컵을 깨뜨렸다. 타쿠야 몰래 코코아 마시려다가. 컵을 붙일 수 있을까. 타쿠야가 알면 안되는데. 타쿠야가 알면....
"화내겠지....?"
위안이 두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찌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몇 분 동안 멘붕에 빠져있던 위안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낙서장 하나를 찢어 와서 그 위에 유리조각들을 모았다. 다행히 자잘한 조각이 없어서 치우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위안은 그 조각들을 모은 것을 찬장 안에 고이 넣어놓았다. 그리고는 낙서장 하나를 다시 찢어 타쿠야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혹여나 타쿠야에게 들켰을 때를 위한 편지였다.(위안은 아직 안 들킬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타쿠야에게,를 쓴 뒤 위안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타쿠야 화나겠지? 나한테 실망했겠지? 위안의 머릿속에서 타쿠야가 화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내가 나없을때 코코아 타먹지 말랬죠!'
'미아내 타쿠야....'
"하....."
위안이 제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기시작했다. 이깍짓 코코아가 뭐라고.
위안은 후회를 뒤로하고 다시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슬쩍 바라본 벽시계는 오후5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타쿠야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편지를 다 쓰지못한 위안은 속도를 높여 글씨를 써내려갔다.
그 순간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타쿠야였다. 위안은 쓰고있던 펜을 집어던지고 허둥지둥 토끼로 변해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타쿠야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이런 위안의 사정을 모르는 타쿠야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녀왔다고 인사를 한 뒤, 위안을 찾았다.
"형, 어디있어요?"
위안을 찾던 타쿠야는 이불속에서 빼꼼 보이는 토끼 귀를 발견하고는 위안이 잠들었다고 생각하여(사실 잠든척)발소리를 낮추었다.
"아, 코코아 마셔야지~"
타쿠야는 오늘 아침 바빠서 자신은 마시지못하고, 위안에게만 타주었던 코코아를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타쿠야의 목소리를 들은 토끼는 두손을 꼭 모으고 속으로 간절히 안돼를 외치고 있었다.
"어?"
찬장을 열어 위안이 깨진 컵 조각을 싸놓은 흰종이를 발견한 타쿠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걸 찬장에 넣어놓은 기억이 없는 타쿠야는 조심스레 들어서 내려놓았다. 흰 종이를 펴서 깨진 머그컵 조각들을 보는 순간, 타쿠야의 머릿속에서 위안이 컵을 깨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분명 찬장 안에 넣어 놓았는데 어느새 식탁 위에 놓여져있는 코코아 상자와 깨져서 흰 종이에 싸여있는 위안 전용 머그컵, 주전자 안에 가득 들어있는 물까지. 타쿠야는 곧바로 위안이 코코아를 타먹으려다가 컵을 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위안의 예상과는 다르게 타쿠야는 위안이 몰래 코코아를 타 먹으려고 했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깨진 머그컵을 손수 치웠을 위안을 걱정하였다. 깨진 머그컵 조각을 내려놓고 타쿠야는 한걸음에 위안에게로 다가갔다.
"토끼야, 자?"
타쿠야가 자신을 꾸짖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 위안은 타쿠야의 반말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눈을 꾹 감은 채 자는 척에 열중했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타쿠야의 시선에 위안은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숨고 싶어졌다. 타쿠야는 위안이 꽤나 깊게 잠들었다고 생각하고는 천천히 등을 쓰다듬었다.
“앞으로 컵 깨지면 그냥 그대로 놔둬요. 치우다가 손 다쳐. 아까 치우느라 손 안 다쳤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위안이 움찔했다. 화났다고 하기에는 타쿠야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다정했다. 타쿠야 화난 게 아니야...? 위안이 실눈을 떠서 타쿠야를 훔쳐보았다.
“어, 일어났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위안이 실눈을 뜬 순간, 타쿠야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위안은 타쿠야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깨진 유리 조각을 치웠을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잔잔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괜시레 위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타쿠야는 여태껏 위안이 만나온 대다수의 주인들과는 달랐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아 보는게 참 오랜만이라고 위안은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타쿠야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자는 척을 막 그만둔 토끼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타쿠야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고개를 들어 타쿠야와 눈을 한번 맞추고서는 조심스레 타쿠야의 팔에 머리를 부볐다.
타쿠야는 처음 받아보는 토끼의 애정표현에 놀라면서도 감격을 금치 못했다. 눈꼬리고 입꼬리고 잔뜩 올라가서는 토끼를 번쩍 들어올렸다. 애교를 부려놓고 민망한지 토끼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타쿠야는 토끼를 품에 안아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토순이 애교도 부리고 아이 착해.”
몸을 부지런히 비틀어 타쿠야의 품에서 빠져나온 토끼는 곧바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나 잘 거야. 졸려.”
이불을 주섬주섬 정리하여 폭 뒤집어쓴 위안은 타쿠야를 등진 채 누웠다. 이불너머로 위안의 붉어진 귀를 발견한 타쿠야는 웃음을 참으며 잘 자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
잘 준비를 하던 타쿠야가 탁상에서 위안의 편지를 발견하였다. 머그컵을 깬 뒤, 타쿠야가 화를 낼 것을 걱정하며 위안이 쓴 편지였다. 편지를 쓰는 중간, 편지는 타쿠야가 돌아오는 탓에 완성되지 못한 채 위안에게 까맣게 잊혀져있었다.
타쿠야에게
나 컵 깻어
컵아 미안해
타쿠야 미안해
아프로 안그래
깻어가 아니라 깼어. 아프로가 아니라 앞으로.
타쿠야가 펜을 들고 위안이 잘못 쓴 단어들을 고쳐주었다. 타쿠야가 봤을 때 위안의 한글 실력은 큰 발전이 없는 것 같았다. 제가 사다준 한글 교재를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검사해봐야겠다고 타쿠야는 다짐했다.
자는척 하는 토끼와 쓰담쓰담 해주는 타쿠야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글 속에서는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어요~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7화가 늦어졌는데ㅠㅠ앞으로는 더 열심히 써서 연재 텀을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