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상한 소통방식을 가졌다 1 그럴 때 다들 있을 거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나에게 적성에 맞나, 잘하고 있는 게 맞나, 까마득한 미래에 갑자기겁 먹어 무서워지고 그럴 때. 짧게 말하자면 현타. 그래, 현타. 특히나 예체능을 하는 사람에게는 1년에 약현타 365 중현타 200 극대현타 7번 정도 오기 마련이다. 그래, 그럴때 누구나 그런 말을 내뱉을 것이다. “아, 죽고 싶다... 나 죽고 싶어 재현아.” “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그냥...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나 넘 힘들당...” “밥은 먹고 살이야지.” 그래, 밥은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앞이 보이질 않는다, 재현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다. 정말 수도 없이 내뱉은 문장이기에. 정재현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더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문득 우울해진 기분에 그냥 정재현 이름만 불러댄다. 야아, 정재현~ 재현아~ 재현~ 재훈~ 어, 그래, 응~ 왜~ 정재현은 까먹지 않고 모든 이름에 대답한다. 쇼파 끝에 목을 기댄 채 머리를 눕혀 창 밨을 쳐다본다. 매앰- 매앰-. 매미는 아직까지 울고 자빠지는데. 쟤네는 어떻게 하루종일 저렇게 울어재낄 수 있을까. 진짜 열정적이다.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너무 우울해. 나 우울해서 어떡하지. 진짜 죽어버리고 싶다.돌연사각. “목 꺾이겠다. 일어나서 이거나 마셔.” “밍... 아리가또 재훈상.” “우울할 땐, 단 게 최고지.” 재현이는 탁자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쇼파에 앉는가 싶더니 아직 일어나지 않는 내 배 위로 털썩 앉는다. 야! 아 뭐야! 저리가! 아 진짜 무거워 아등바등대며 정재현을 가까스로 밀어내면 녀석은 입꼬리를 활짝 올려서 실실 웃고 있다. “야! 너 살 쪘지? 왜케 무겁냐 진짜. 옛날의 정재현이 아니야~” “살이 아니라, 근육이 쪘지. 여주가 섭할까봐~” “뭐야;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왜. 너 내 가슴 좋아하잖아.” “내가 니 가슴만 좋아하는 줄 아니?” 정재현은 비식대며 웃었다.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나는 지구 끝까지 우울할데. 소파에 앉은 정재현은 인센스스틱을 꺼내들어 불 붙였다. 탄내가 퍼지더니 이내 쟈스민 향이 도드라졌다. 나는 정재현이 타온 코코아를 홀짝 마셨다. 초코맛이 쌉싸름하게 입안을 고루 맴돌았다. 그럼에도 우울이 가시질 않는다. “아... 정재현. 나 진짜 우울해. 죽고 싶어.” “그래, 그럼. 오늘 저녁은 간바스 해먹자.” “갑자기 간바스? 왜?” “새우 많이 먹으면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아져서 일찍 죽는대. 간바스 먹장.” 정재현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앞에서 여자친구가 죽고 싶다니까 죽음을 부추기는 꼴이구나. 맥락 없는 대화 흐름. 진짜 멍청하고 좋다. 2 맥주가 한 캔이 두 캔되고, 두 캔이 세 캔 됐다. 그니까 고로취기가 올라오더니 그만 취해버렸다. 은근 술이 센 정재현은 앞에 놓인 치토스만 우걱우걱 주워먹는다. 쟤는 분명 내일... 쌍커플 풀릴 정도로 눈이 부울 게 분명해... 아아 그런데 취하니까 시선이 점점 느려지고... 머리가 무거워지고... 아 개취랬다. “재현나... 나 치했성...”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내일 오프랬나?” “어프는 아니규... 두 시 츌군...” “그래도 두 시 출근이라 다행이지. 그만 들어가서 자자.” “재훈... 나 고백할 거 이썽...” 정재현은 자리에 일어나 내 팔을 잡았다. 침실까지 나를 부추길 건가 보다. 나는 그런 정재현의 팔목을 붙잡고 손을 끌어당겨 볼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고개의 힘을 풀고... “고백할 게 뭔데.” “진쨔... 저버네... 너한테 콜라 준 거... 사실 내가 엄청 흔든 거엿서.” “,,, 그거 너가 그런 거였어?” “웅,,, 너가 도용 씨한테... 엄청 모라 그랫따구... 이야기 들어써... 사실 나야...” 정재현이 이마를 짚었다. 저건 어이가 없거나 할 때 나오는 버릇 같은 제스처인데.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정재현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배때지에 얼굴을 문댔다. “아 진짱... 미얀미얀 미얀마.” “... 뭐라고...?” “미얀미얀미얀마 ㅎ” 정재현이 웃었다. 그것도 엄청 크게. 데시벨 120의 호탕한웃음소리. 재혀니가 웃으니 나도 좃타... ㅎ 3 정재현은 머릿결이 좋다. 염색을 몇 번 하긴 했는데 염색한 머리는 그대로 길러서 몽땅 잘라버리니 하나도 안 상한 머리들만 남아있다. 특히나 승무원 되더니 항상 흑발을 유지하면서 늘상 머릿결이 안 좋을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함께 누워있을 때면 나는 항상 재현이의 머리카락을 만지곤 했다. 부드러운 질감이 좋아서. 그리고 사건의 그날도 나는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정재현의 머리카락을 만져대고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한번 휘 저으면 하공에서 풀렸는데 그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상한 내 머리카락과 비교되었다. “째니. 솔직히 말해.” “갑자기 뭘 또?” “너 트리트먼트 쓰지? 야 머리카락도 짧은 애가 그러는 거 반칙이지~” “뭐래 진짜, 나 트리트먼트 안 쓰거든?” 정재현은 가슴 위에 얹어두었던 고개를 휙 들며 말했다. 덕분에 놀런 가슴 위에 내 손을 얹었건만 그 손 위로 정재현이손을 덮었다. “어후, 놀래라. 얘는. 갑자기 머리를 들고 그러냐 사람 놀라게.” “나 머릿결 좋아?” “웅. 엄청 부드러워.” “타고 나서 그래.” 뭐지? 이 어이없음은. 정재현은 손을 올려놓은 가슴 위로 턱을 괸다. 눈알을 위로 굴려서는 나를 쳐다본다. “왜. 뭘 그렇게 봐.” “뽀뽀.” 갑자기 애교를 부리는 정재현이 너무 귀여워서 순간 핀트를 놓을 뻔했다. 정재현의 머리통을 붙잡고 얼굴을 끌어당겨 다섯 번 뽀뽀를 퍼부었다. 눈꼬리를 활짝 접은 정재현이 비실대며 웃고 다시 한번 입맞춤한다. “아아 귀여워 정재현. 으 심쿵.” “사랑해 김여주~” 비식대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췄다. 외모는 3개월밖에 안 간다던 사람 누군지 몰라도 반성해야 한다. 외모는 평생 간다. 그거 내가 아니라, 정재현 얼굴로 증명할 수 있다. 정재현은 다시 얼굴을 베고 누웠고 나는 정재현 머리통 위에 손을 얹어 머리칼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럼 너 그런 것도 안 발라? 그거” “그거 뭐, 어떤 거?” “아 그거. 에스엔에스? 그거.” “에스엔에스?” “그래 그거. 안 발라?” “나 인스타 발러.” “엉?” “인스타그램 바른다고.” “나 방금 뭐라 했어?” “에스엔에스.” “에센스... 아... 에스엔에수...” 풉. 정재현이 웃었다. 이내 입을 크게 벌리더니 엄청나게 웃는다. 아... 자존심 상한다. 4 정재현은 어렸을 때 장농과 농장을 헷갈려 했다고 한다. 나는 카메라와 캬라멜을 헷갈려했다. 서로 헷갈린 단어들을 밝힌 날부터는 서로 놀리겠다고 농장을 장농이라 부르고 장농을 농장이라 부르고. 카메라를 켜라멜이라 부르고 캬라멜을 카메라라고 불렀다. 그게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려서는 글쎄 카메라를 사러 갔을 때, “찾으시는 상품 있으세요?” “아, 캬라멜 보러 왔는데요.” “아... 캬라멜이요?” “재현아, 제발... 캬라멜 말고 카메라.” “아? 카... 메라...요.” 정재현의 귀가 빨개졌다. 5 나는 출판사를 다니며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시를 주류로 쓰고. 그렇다 보니 시집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다.근래 읽었던 시집 중에 정말 감명 깊게 읽었던 시집이 있다.이현호 시인의 [라이터 좀 빌립시다] 나는 그 시집을 정재현에게 추천했다. “너 이현호 시인 알아?” “이현호 시인? 아니, 잘 모르는데.” “이번에 그 분 시집 읽었는데 넘 좋더라.” 정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그래? 무슨 책이었는데? 맥북 프로를 향한 시선을 돌리진 않고. 유튜브에서 노래를 틀었다. different age. 일렉 기타 소리가 스피커 밖으로 흘러 나오면 탁상 위에 노트북을 내려놓고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라이터 좀 빌립시다.” “... ...” 정재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넹?” “라이터 안 빌려드립니다.” “... ...” “돌아가세요.” 정재현은 인센스스틱 옆에 놓인 라이터를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잡아챘다. 어이가... 아리마셍 @ 하나만 쓰려고 작정햇던 게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되고...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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