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연화방 대문을 나선 준회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아직 궁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궁에 다다르지 않았을지도 몰라. 준회는 간절히 소망했다. 시장 어귀로 들어선 준회는 많은 인파에 제 몸이 치이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__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달렸다. 제 자신이 무엇에 그렇게 광분하였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준회는 땀에 젖은 도포자락이 몸에 들러붙었고, 눌러쓴 갓이 벗겨져 떨어졌다. 혼잡한 인해의 다리들이 준회의 갓을 즈려밟았고, 갓이 부서지는 소리가 무참했다. 하지만 당장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준회가 궁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장엄한 문은 굳게 닫혀 제 크기를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민가의 시장에서 들려오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우렁찼다. 준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문의 양쪽을 지키며 서있는 병사를 발견했다. 저 자는 보았을까, 궁 안으로 들어서는 그 아이를 보았을까. 병사에게 다가가는 준회의 발걸음이 박자를 잃었다. 병사는 제게 다가오는 준회를 향해 눈썹을 치켜세웠다. 준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에게로 다가가 눈을 마주쳤다. 병사는 준회의 눈에서 깊은 한기를 느꼈다. 자신의 오금이 저려옴을 느꼈다.
"혹시 궁 안으로 들어서는 기생을 보았습니까."
병사를 바라보는 준회의 눈은 한 번의 깜빡임도 없었다. 부릅 뜬 그 눈에 병사는 입술을 떨었다. 준회는 대답을 하지 않는 병사가 답답했다. 대답을 하란 말이다. 기생은 커녕 암캐 한마리 조차 들어서지 않았다고, 내가 헛걸음을 한 것이라고, 큰누님이 내게 거짓을 말한 것이라고. 대답을 하란 말이다. 준회가 눈을 더욱 부릅떴다. 준회의 눈에 들어찬 병사는 그저 자신을 농락하는 월매와 한 패일 뿐이었다.
"기생을 본 적이 있냐 묻지 않았습니까!"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진 전에 채홍준사와 함께 들어서던 기생을 보았소. 준회가 핏발이 가득한 눈이 감겼다. 발걸음을 옮긴 준회가 궁궐의 앞에 주저앉았다. 터져버린 허탈한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아이가 궁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그래, 기다리면 어디선가 나올 것이야.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실 지도 모른다. 그래,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면. 준회가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준회는 다른 이에게 갓도 잃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미친 것처럼 무언가를 읊조리는 선비가 얼마나 추해 보일지 개의치 않았다. 제비가 낮게 날았다.
그런 준회를 멀리서 동혁이 노려봤다. 저 자는 무엇 때문에 저리 슬퍼하는 것인가, 저 자는 왜 나의 누이를 그리도 탐하는 것인가. 동혁의 눈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저런 사내에게 그 아이를 뺏길 수 없다. 내가 먼저 알았고, 내가 먼저 연모했다. 내가 그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내가 더 사랑한다. 동혁은 손톱을 깨물었다. 위태로움이 담쟁이처럼 줄기를 뻗었다. 끝도 없이 뻗은 벽이 검푸르게 덮이기 전에 방도를 찾아내야 했다. 동혁은 뒤를 돌아 민가를 향했다. 지원을 찾아야 했다.
지원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찾아내 내 품에 안아야 했다. 만약 그 아이를 찾는다면, 그 아이의 제비꽃같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신이 내게서 영혼을 거둔다 해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다. 동혁은 지원의 집 앞에서 그를 애타게 불렀다. 닫혔던 문이 열리고, 지원이 부채를 펴들어 얼굴을 절반 가린 채 밖으로 나왔다. 쨍한 햇빛이 지원의 개나리색 도포에 부딫혀 산산이 흩어졌다. 또 무슨 일이야. 지원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웃고있을 때가 아니다. 속 편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그 아이가 궁으로 들어갔어."
지원이 사뭇 착잡한 표정으로 동혁을 바라봤다. 지원은 동혁의 안타까움을 깊이 느꼈지만, 가질 수 없는 상대를 처절하게 갈구하는 동혁을 언제까지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원이 입을 열었다. 동혁은 숨을 죽이고 지원이 뱉는 말을 기다렸다.
"이제 그만 해."
동혁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지원은 동혁의 눈에서 절망을 읽어냈다. 불어오는 샛바람이 동혁의 뺨을 세차게 스쳤다. 동혁이 지원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안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자네가 뭘 안다고 그래! 동혁의 말이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지원은 그런 동혁을 세게 밀어냈다.
"나라고 친우가 피눈물 흘리는 꼴을 보고싶은 줄 알아?"
동혁의 눈빛이 뒤바뀌었다. 동혁은 지원에게 애걸했다. 제발, 제발. 나를 한 번만 더 도와줘. 동혁은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__을 데려오기 위해선, 친우에게마저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들추어 내야 했다. 동혁은 제 속에서 높은 파도가 몰아침을 느꼈다. 그리고 그 파도에, 동혁은 몸을 맡기었다.
"내 누이야."
지원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누이라 했는가? 동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붉게 물들어가는 동혁의 눈을 마주했다. 지원은 동혁의 눈을 바라보며 확신을 요구했다. 그런 지원의 속을 읽어내기라도 했는지 동혁은 한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단호하게. 지원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주워담을 수 없을 정도로 흘려버렸다. 지원은 동혁에게 소리쳤다. 미쳤다, 김동혁이 미쳤어.
"제정신이야? 그럼 지금까지, 누이를, 누이를..."
지원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제 누이를 연정 속에 담아놓은 동혁의 눈동자가 그 무엇보다 확고해서, 지원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지원은 눈을 감았다. 어릴 적부터 제게 귀를 붉히며 연모하는 여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동혁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동혁은 눈을 감은 지원의 입에서 긍정의 대답이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지원은 그런 동혁을 외면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동혁은 자신의 모든 것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고통을 느꼈다. 지원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동혁은 지원을 책망했다.
"내가 이렇게 부탁하지 않는가!"
지원은 몸을 돌려 동혁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미안하네. 지원이 대문을 닫았고, 동혁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혁의 주위로 흙먼지가 일었다. 사랑하는 정인을 찾지 못한다는 괴로움인지, 흙먼지가 들어간 탓인지, 동혁의 눈에서 가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내리쬐는 해는 밝았다. 하늘 위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은 떼를 지어 하늘을 횡단했다. 주위로 바쁘게 걸음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중에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꽃방석에 앉아 부귀를 누리는 이도, 고단한 생활로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동혁은 자신이 지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일 거라, 확신했다.
동혁은 눈을 감고 잠자코 누이의 얼굴을 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쉽게 그려지던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애를 써서 떠올리려 해도 그 잔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지난 날들을 추월해 돌아봐도 동혁의 욕구와 같이 완벽하게 그려낼 수가 없었다. 동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가 진득한 도포와 바지를 털어냈다. 동혁은 소매로 눈물이 말라붙은 눈가를 닦아냈다. 지원의 말대로 정말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일까. 동혁은 고개를 숙였다. 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동혁은 아려오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그 고운 아이를. 동혁은 비틀대는 걸음을 가까스로 옮기며 자리를 떴고, 그 아래로 작은 보라색 제비꽃이 짓밟혀 있었다.
*
내관이 대전 밖을 나서고, 문 밖의 그림자까지 사라졌을 때 임금은 미친 듯이 웃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 것인지 대전 안을 울릴 정도로, 손뼉까지 치며 크게 웃어댔다. 나는 그런 임금을 두 눈 안에 담았다. 무엇이 조선의 임금에게 흉악한 탈을 씌운 것일까. 어째서 임금은 그 탈을 벗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고요히 그 생각 안에 잠겨있는 찰나, 임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내게 물어왔다. 임금은 손가락을 길게 뻗어 조금 전 내관이 나갔던 그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임금의 혀가 꼬였다.
"보았느냐, 너도 보았느냐. 저 발칙한 내관이, 감히 짐을 비웃는 그 추악한 웃음을, 보았느냐."
임금은 발악하며 웃었다. 임금의 두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임금의 두 주먹이 한 겨울 숲 속 사슴의 목덜미처럼 떨렸다. 그리고 임금은, 한 겨울의 외로운 사슴이었다. 그의 주위로 스쳐 지나가는 토끼들조차 외로운 사슴을 비웃었다.
"예, 보았습니다. 똑똑히 보았습니다."
임금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이내 허탈한 웃음을 간간히 뱉어내던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금이 잠시 비틀거렸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고, 임금은 그런 내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괜찮다. 괜찮다. 저 한 마디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임금은 대전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임금의 발걸음을 따라 내 시선도 그를 따랐고, 임금은 대전 안을 돌아 다시 용상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 말이 없는 채 입술만을 깨물었다.
"자란아."
임금의 두 눈이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잡는 것일까, 임금의 눈동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예, 전하. 내가 대답했고, 임금은 허공을 젓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임금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궁을 나가거라. 짐이 널 번거롭게 했구나."
임금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 얼굴에는 짙은 당혹스러움이 서렸으리라. 임금이 눈을 접으며 낮게 웃었다. 임금은 웃음 하나로 여러 가지의 감정을 그려냈다. 그가 고개를 기울며 입술을 열었다. 임금은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내던졌다.
"왜, 싫으냐? 혹시 짐하고 함께 있고 싶은게냐."
"아, 아니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당장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내 대답에 임금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것이 너무 작아서 차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대전의 바닥을 울렸고, 그 울림은 미약하게나마 대전 전체로 퍼졌다. 내 앞에 선 임금이 내게로 손을 뻗었다. 잡거라. 그 손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내가 감히 주상 전하의 어수를 잡아도 되는 것일까. 아무 움직임이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임금이 더 가까이로 손을 뻗었다. 어명이다. 나는 느리게 임금에게로 손을 향했다. 어허. 임금이 나를 다그쳤고 나는 내 앞에 우뚝 선 외로운 손을 맞잡았다. 외로운 사슴의 손은 차가웠다. 임금은 손아귀에 힘을 실었고, 나를 일으켰다.
"궐의 문까지 바래다 주겠다."
"소녀 혼자 갈 수 있사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허, 임금이 또 나를 다그쳤다. 올려다 본 임금의 눈에는 엷은 장난기가 맴돌았다. 뺨이 매화마냥 붉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뜨거워진 내 뺨을 전하께서 알아차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다행스럽게도 임금은 정면만을 주시하며 나아갔다. 사로잡히지 않은 한쪽 손으로 달아오른 뺨을 감쌌다. 달아오른 뺨은 온기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대전을 나서 궁궐의 정문을 향했다. 바닥의 거친 흙의 질감이 그대로 발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그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그 길을 걷는동안 많은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쳤다. 나를 비웃는 시선과, 아니꼽게 여기는 시선. 또한 나를 벌레만도 못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들이 내 발목을 옭아맸다. 작은 두려움이 내 안에서 꿈틀댔다. 혹여나 저 자들이 궁 밖을 나선 나를 미행하여 해를 가하진 않을까. 궁녀들이 당장에라도 나를 찾아와 주상 전하의 어수와 손을 엮은 내 뺨을 갈겨내지는 않을까. 심장의 울림이 빨라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 궁을 나가고 싶었다.
개의치 말거라. 임금이 부드럽게 말하며 내 손을 더욱 세게 쥐어왔다. 순간 발목을 옭아매던 줄이 탁 풀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전하의 앞에서 내가 받아낸 시선들은 새 발의 피일 것인데. 임금은 이 궁 안에서 이것보다 더 많은 시선들을 받아내야 했다. 가슴 한 구석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폭포에 흠뻑 젖어든 나는 맞잡은 임금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익선관을 쓴 임금의 모습이 마냥 힘겹게 느껴졌다. 붉은 곤룡포가 어쩌면 외로운 사슴에게는 너무 벅찰지도 몰랐다.
정문에 가까이 다다르자, 임금은 마주잡았던 손을 풀었다. 임금은 나의 두 눈을 마주했다. 무엇가를 감추고 있는 듯 묘하게 꽉 막혀버린 두 눈이 미세하게 휘었다. 임금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수리에 닿는 임금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후에 또 보자꾸나."
임금은 그 말을 남기고는 내게서 뒤돌아섰다. 불어오는 연한 바람에 임금의 붉은 곤룡포 자락이 흩날렸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임금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어깨에 많은 것들이 실려있었다. 나는 조선의 국왕이 제 위엄을 되찾길 기원했다. 후에 다시 만났을 때엔 얼굴 한가득 짙은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서로의 안위를 묻는 말들을 건넬 수 있기를 소망했다.
궁의 밖을 나서자 시끌벅적한 민가의 말들이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 굳건히 제 위엄을 지키는 창합을 바라보았다. 이 문을 두고 민가와 궁 안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적막한 궁의 안이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궁 안의 사람들과 내가 살을 부비며 지내오던 사람들은 그들의 태생부터가 다른 것일까.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궁이 그저 초라하게 느껴졌다. 궁궐의 하늘은 우중충했고 납빛 구름 틈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원을 돌며 빙글 날던 까마귀는 용마루에 앉더니 크게 울부짖었다. 제 몸만한 날개를 펼친 까마귀는 그대로 날아 궁을 떠났다.
연화방으로 가기가 싫었다. 나를 궁으로 보낸 큰어머님이 미웠다. 나는 좁게 트인 민가의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툭, 뺨에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소낙비였다. 노점을 찾아 갈모라도 사야하나 했지만 그만한 돈이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저고리가 젖어들어갔고 바닥에 고인 흙탕물에 치맛자락이 지저분하게 쓸렸다. 치맛자락을 감싸 올리려는데, 그만 발을 잘못 디디고 말았다. 빗물이 고여 보이지 않던 움푹 패인 웅덩이에 발이 빠졌고, 나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와 동시에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흙바닥에 쓸린 무릎이 따가웠다.
"괜찮으십니까?"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 팔을 잡아올려 나를 일으켰고, 나는 몸을 일으켜 나를 도와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고운 인상의 남자였다. 낭자, 괜찮으십니까? 그는 나에게 걱정이 듬뿍 묻어나는 눈빛을 건넸고 나는 고개를 짧게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남자는 나를 잡은 손을 떼지 않았다.
"옷이 다 젖었습니다."
남자가 자신이 입고있던 두루마기를 벗어 내게 씌웠다. 두루마기에서 여러 꽃이 섞인 짙은 향내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우선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남자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남자는 선한 웃음을 지으며 비만 피하고 가라며 나를 떠밀었다. 나는 그 남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세게 쓸린 것인지 무릎은 계속 아려왔다. 머리 위로 씌인 두루마기 위로 내리는 비는 전보다 더 세찼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에 나리의 귀한 옷이..."
남자는 내게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얼굴만큼 고운 마음씨를 지닌 사내였다. 우리는 지붕 위에, 나무 위에, 꽃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가락을 들으며, 빗 속을 걸었다. 얼마 안 가 남자가 나를 한 집 안으로 들였다. 마당이 넓은 가옥이었다. 올라오세요. 남자가 마루 위로 올랐다. 마당 한 켠에 넓게 자리잡은 화단에는 갖가지 빛깔의 꽃들이 만개했다. 굵게 내리는 비에도 꽃들은 입을 열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꽃들이 좋아하겠네요."
남자가 웃었다. 예. 좋아하겠지요. 아마 밤새 내리길 소망할 텝니다. 저 녀석들. 남자는 꽃을 '저 녀석들' 이라 칭했다. 꽤나 애정이 있는 어투였다.
"꽃들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 화훼 장사를 합니다."
남자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전 그의 두루마기에서 풍기던 꽃내음이 떠올랐다. 저마다 제 모습을 뽐내는 꽃들 틈에서 손님을 맞을 남자의 모습이 썩 어우러질 것만 같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으십니까. 남자가 꽃을 파는 것이 우스우십니까. 남자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의도의 웃음이 아니었는데, 그저 미안했다. 내 웃음이 비웃는 듯 했나, 다음부터는 웃지 말아야지. 우선 저 분에게 해명을 드려야 했다. 나는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나리가 꽃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남자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농입니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남자는 아이같은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남자의 웃음이 빗방울을 한껏 마신 꽃처럼 싱그러웠다.
"아, 그런데 제가 꽃과 잘 어울립니까?"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인인 저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사실이었다. 여인에게서 풍길만 한 꽃내음이 짙게 풍기는데도, 남자에게선 그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제 본래 향인 것 마냥 자연스러웠다. 그것이 썩 부럽기도 했다. 내 대답에 남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에이, 아닙니다. 남자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진정입니다! 나리,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진정 그렇습니까? 남자가 어색하게 웃어보였지만 은근히 만족감이 묻어나오는 웃음이었다. 나는 힘주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남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낭자께서도 잘 어울리십니다. 제비꽃 향이, 잘 어울립니다.
어느새 마당에는 비가 그쳤고, 하늘 위로 제비가 높게 날았다. 납빛으로 우중충하던 구름은 면화처럼 희고 보드라운 살결로 바뀌었고,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오색 햇무리가 나타났다. 색색들이 제 빛깔을 뽐내는 색들이 참으로 고왔다. 저 햇무리는 어딜 향하고 있을까. 괜히 궁금해지는데, 옆에서 한껏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십니까? 남자도 햇무리를 본 듯 했다. 예, 보입니다. 남자가 싱그러운 웃음을 활짝 꽃피었다.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마루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햇무리를 구경하던 나는 조금씩 희미해지는 빛깔들에 시간이 꽤나 지났음을 인지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나리."
뒤를 돌아 나가려는데, 마루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내가 쓰고왔던 두루마기가 눈에 들어왔다. 빗물에 젖어 색이 탁해진 두루마기는 얼마나 마셔댄 건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두루마기를 품에 안았다.
"제가 빨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해도 됩니다."
나는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아닙니다. 제가 지저분하게 했으니,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응당 도리입니다. 남자가 목소리를 줄였다. 정말 괜찮은데... 나는 그런 남자에게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혔다. 남자도 내게 고개를 숙였다. 참 성품이 바른 사내구나, 생각했다.
"송윤형입니다."
낭자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남자가 물어왔다. 존함이라, 다른 이에게서 내가 높여진 것이 처음이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가슴 속의 작은 간지러움이기도 했고, 남자에 대한 크기를 잴 수 없는 고마움이기도 했다.
"자란이라 합니다."
"자란이라,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후에, 시장 어귀에서 꽃을 팔고있는 상점을 보시면 언제든지 들어오세요.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남자에게서 돌아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지나가는 마당 한 켠에 하얀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주상 전하와의 만남, 윤형과의 우연. 모두 필연일지도 모르는 일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한 일들일까. 문득 구준회가 떠올랐다. 지금쯤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떠오른 그 위로 짙은 그리움이 덮였다.
소낙비가 내린 뒤의 하늘은 맑았다. 들이마시는 숨이 깨끗했고, 하늘 위를 나는 새들의 지저귐마저 한층 더 청량했다. 나는 서둘러 연화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프렌디입니다ㅎㅎ 오늘 많이 늦었죠ㅠㅠㅠ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고, 이걸 글로 풀어내자니 막막하고...엉엉ㅠㅠㅠ흐흐, 하지만 이렇게 써냈으니 됐어요!
오늘도 초록글! 전부 그대들의 성원과 사랑 덕분이에요ㅠㅠㅠ 추천도 17개나 받았어요! 생전 처음 받아보는 큰 숫자의 추천에 가슴이 벌렁벌렁ㅠㅠㅠ
아 맞다, 제가 짧막하게 글을 써놓는데 아직 나오지 않을 대사중에 가슴이 술렁였다, 이게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걸 가슴이 출렁였다로 보시고는 너 야설쓰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거 아닌데...ㅁ7ㅁ8 억울해요ㅠㅠ
감사한 암호닉!♥
준회 님, 구닝 님, 엘사 님, 콘초 님, 팬 님, 용군 님, 뿌요를 개로피자 님, 두둠칫 님, 무룩이 님, 주네야 님, 보랏빛 난초 님, 뿌링클 님, 부농부농 님, 거북이 님, 찌푸 님,!0!이모티콘, 바나나킥 님, 알콩달콩 님, 마그마 님, 알린 님, 지난봄 님, 무지개 님, 징징이 님, 꽃 님, 설렁 님, 파란짹짹이 님, 뽀로로 님, ㄱㅈㅎ 님, 코코리 님, 주네띠네 님, 네티 님, 러비엠 님, 1104 님, 피아 님 그대들에게 경의를! 모두들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빠트린 암호닉이 있다면 제게 속닥속닥 말해주세요!!
암호닉 신청은 항상 감사하게 받고 있어요! 무릎꿇어 신청해주세요 하고 구걸해도 모자란데 이렇게나 많이 신청해주셔서 정말 몸 둘 바를 몰라요ㅠㅠㅠ
흐흐 아무튼 오늘도 즐거운..저녁!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