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궁으로 간다니요."
채홍준사 정찬우는 내게 그저 희미한 웃음만을 내어보였다. 큰어머님은 채홍준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모란방으로 향했다. 큰어머님께 이게 어찌된 일이냐 소리쳐 묻고 싶었지만 저 뒷모습이 모든것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별안간 불어온 센 풍랑에 눈이 아렸다. 가자. 채홍준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궁에 들어가 무엇을 해야할까. 갑자기 찾아온 상황은 나를 쥐고 마구 흔들었다. 사실 가고싶지 않아. 구준회가 보고싶어. 내 앞에 내밀어진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손을 잡으면, 나는.
"나리, 소녀는 미색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기생들처럼 가무에도 뛰어나지 못합니다."
제발 내 말을 듣고 채홍준사가 뒤돌아서길. 내게 내민 손을 거두어주길.
"안다. 내 그래서 너를 데려가려는 것이야."
"또한 소녀, 주상 전하를 전혀 뵌 적이 없는 몸입니다."
"그것 또한 가면 해결 될 거다."
간절히 바랬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활짝 꽃을 피워냈다. 그 꽃은 시듬을 넘어 썩어가는 것처럼 검었고, 독한 악취를 풍겨댔다. 무서웠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채홍준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채홍준사는 내게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연화방의 대문을 나서고 잠시 스치는 시장 어귀의 푸줏간에서 늙은 백정이 푸주칼을 높이 들고 검은 소의 머리를 내려쳤다.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렸다. 채홍준사는 내 손목을 굳게 잡고 어딘가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바쁜 걸음을 하는 채홍준사와 그에 끌려가는 나를 지나칠 뿐이었다. 문득 내 자신이 외롭게 느껴졌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쪽빛 하늘 위에 지나가는 구름이 희었다. 나도, 저 구름처럼 자유로워진다면. 남의 시선따위 의식하지 않고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고, 가고 싶었던 곳에 사랑하는 정인의 손을 잡고 다닐 수 있다면. 이렇게 임금의 앞에 끌려가는 일도 없을텐데.
저 멀리 궁궐의 정문이 보였다. 커다란 문은 장엄하면서도, 곧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문이 그저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저 안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 나를 물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너무 두려워 말아라."
궁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채홍준사가 작게 속삭였다. 알고 보면 주상 전하도 좋은 분이시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임금 앞에 간다는데, 그것도 일반 백성이 아닌 기생의 신분으로. 순간 기생이 되겠다고 나선 내 자신이 미웠다. 나를 말리던 동혁 오라버니가 떠올랐다. 그 때, 오라버니의 말을 들었어야만 했는데.
문 앞에 서자 양쪽에서 궁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문을 열었다. 병사들이 나를 보고 키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에 들어가는 기생을 바라보는 눈은 뻔했다. 하찮다는 눈빛과, 그저 음탕하게 바라보는 눈빛. 그런 수치를 받아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고개를 저어 어두운 생각을 떨쳐냈다. 머리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아주 조금.
눈 앞에 펼쳐진 궁 안은 싸늘했다. 넓게 펼쳐진 흙바닥에는 꽃 한송이, 풀 한포기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고 심지어 하늘을 나는 새조차 울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작게 피어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자리를 넓혀갔다. 앞서 걸어간 채홍준사가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궁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 아래로 느껴지는 궁궐의 흙은 거칠었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궁의 문이 닫혔다.
채홍준사는 나를 후위에 두고 걸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궁 안에 흐르는 공기는 무거웠다. 조금 더 걷자 맞은편에서 홍포를 입은 관료들이 행렬을 맞추어 걸어나왔다. 그들은 우리를 아니꼽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채홍준사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채홍준사를 따라 나도 그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우위에 있던 한 관료가 길게 뻗은 수염을 매만지며 크게 웃었다.
"채홍준사, 자네 제정신인가. 이런 년을 전하께 보이겠다?"
"임금이 퍽이나 좋아하겠군."
그 말을 시작으로 행렬의 후위까지 웃음소리가 넘쳐울렸다. 그들은 한 나라의 국왕을 모욕하고 있었다. 채홍준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 입술이 달싹였다. 한 남자가 채홍준사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 속에서 검은 악이 꿈틀대고 있었다. 검은 악이 노리는 것은 채홍준사도, 나도 아니었다. 그 악은 임금에게로 발을 뻗고 있었다. 그 시선을 외면하기 위함인지, 혹은 왕실에서의 조잡한 예를 갖추기 위함인지 채홍준사는 고개를 숙이고 올리지 않았다. 그 검고 퀴퀴한 시선은 채홍준사를 벗어나 나에게로 닿았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라. 네년의 얼굴 좀 보자."
후에 들려올 조롱이 귓가에 선해서,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라 하지 않았나. 목소리가 점점 내게 가까워졌고, 위로 그림자가 뉘었다. 섬뜩한 손길이 내게로 다가왔다. 오금이 저렸다. 한시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 손길이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나의 얼굴에 닿았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시각이 늦춰지면, 전하께서 노하실 것입니다."
얼굴에 닿은 손이 떨어졌다. 관료는 킬킬대며 웃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채홍준사는 그 관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단호했다. 한시 빨리 전하께 가야 합니다. 붉은 행렬이 길을 텄다. 그 사이로 채홍준사는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채홍준사, 내 자네의 속셈을 모를 것 같은가.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울림이 궁궐 안에 메아리쳤다. 채홍준사의 걸음이 빨라졌다.
어느 방 앞에 다다르자 채홍준사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전하의 대전이다. 이곳엔 혼자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채홍준사를 따라 온 기생이라 하여라. 나를 바라보는 채홍준사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미약하게 웃어보였다. 얼굴에서 무언가 알수없는 미묘한 감정이 묻어났다. 나는 채홍준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마루로 올랐다. 대전의 문에 손을 대자, 청색 관복을 입은 환관이 나를 제지했다.
"주상 전하의 명이십니다."
채홍준사가 소리쳤고 환관이 나를 막아선 손을 거두었다. 전하, 채홍준사가 돌아왔습니다. 환관이 크게 소리쳤고 방 안에서 임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하라. 환관이 문을 열었고,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발 끝이 떨렸다. 그 떨림은 온 몸으로 퍼졌다. 잘못 걸었다가는 넘어질 것만 같아서, 최대한의 정신을 집중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선 임금의 대전 안에선 알싸한 술 냄새가 풍겼다.
"고개를 들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조선의 국왕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어질고 위엄있는 왕은 커녕 백주대낮에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왕이 궁에 기생을 들일 때 어느정도 짐작은 했건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흥을 즐기는 왕이겠거니, 했지만, 지금 내 눈 앞의 왕은, 참담했다. 차마 임금의 용안까지 바라볼 자신은 없었다. 임금의 붉은 곤룡포의 한가운데 금색 실로 수놓인 오조룡에게서는 어느 위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임금이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허리를 곧게 피고 발꿈치를 띄웠다. 최대한 느리게 왕의 앞으로 걸었건만, 그 시간 마저도 왜 이리 짧게 지나가는지. 착잡했다. 임금의 앞에서, 나는 깊이 허리를 숙이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입술을 애써 열었다.
"정찬우 채홍준사를 따라 온 기녀 자란이라 하옵니다."
임금의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퍼졌다. 알고있다.
"그나저나, 채홍준사는 어디 있느냐. 짐이 분명 절색의 미녀를 데려오라 했거늘."
짙은 술냄새와는 달리, 임금의 발음은 곧았다. 왕으로서의 최소한의 위엄은 지키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고 대답했다. 이 곳에, 소녀 혼자 들라 하셨습니다. 임금이 크게 웃었다. 어떤 이유의 웃음인지는 임금만이 알았다.
"그 놈이, 목이 달아나고 싶어 안달인가 보구나."
머릿속에서 하얘졌다. 지금의 임금은 위험했다. 나를 데려왔단 이유로 채홍준사의 목에 칼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또한 잘못하다간 나의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거라는 두려움이 샘솟았다. 왜 나를 데려온 것인지, 나를 데려온 채홍준사가 원망스러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채홍준사를 탓한다 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굴렸다. 모 아니면 도였다.
"채홍준사는, 전하를 위해 소녀를 데려온 것입니다."
흐응, 하는 임금의 콧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임금이 말꼬리를 늘렸다. 분명 나를 우습게 여기는 듯 한 웃음이리라. 임금이 허리를 곧게 폈다. 곤룡포의 오조룡이 더욱 또렷히 눈에 들어왔다.
"네가 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눈 앞의 오조룡이 나를 비웃는 듯 보였다.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눈 앞에 구준회의 얼굴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잘못 말했다간 내가 죽는다. 나는 죽는걸 원치 않아. 여기서 두 발로 나가야 한다. 나는 임금의 용안에 시선을 고정했다. 날카로운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룬, 민가의 여인들을 모두 홀려낼 만한 미색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임금이 실소를 터뜨렸다. 감히, 짐의 얼굴을.
"소녀, 다른 기녀들과 달리 화려하지도, 가무에 빼어나지도 않습니다.'
임금이 비소를 흘렸다. 임금이 내게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짐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물었다.
"궁에 거문고가 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임금이 콧잔등을 하늘로 향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박 내관, 거문고를 들고오게. 임금은 내관에게 명을 내리면서도 내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임금이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제비꽃 향이 좋구나."
*
월매는 모란방에 들어앉아 붓을 들었다. 찍어낸 먹이 붓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얇은 종이를 펼쳐 난초를 그려내는 붓의 끝이 우아했다. 월매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 아이가 궁에서 평생을 지내게 된다면 좋으련만.
"큰누님!"
격양된 준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초의 꽃잎 하나가 일그러졌다. 월매가 세차게 붓을 내려놓았다. 검은 먹물이 샛노란 치마자락에 튀었다. 얼굴을 굳힌 월매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령.
"어디에 있습니까, 그 아이."
준회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분노가 으르렁대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회를 월매가 비웃었다.
"허, 안타까워서 어찌합니까 준회 도령."
준회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월매는 입꼬리를 길게 빼어낸 채 여유롭다는 듯 부채를 부쳤다.
"자란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월매가 부채를 부쳤다. 날씨가 덥네요. 준회 도령. 저와 담소나 나누시렵니까.
"누님!"
준회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으르렁대던 분노가 울부짖었고, 그의 두 눈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월매가 입술을 열었다. 붉은 연지가 묻어난 입술은, 치명적인 독화살이 되어 준회를 가격했다.
"궁으로 보냈습니다, 그 아이."
준회의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말이 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찌 하루만에 궁에 들어간단 말이냐, 그것도 기생이. 꽉 쥔 주먹이 크게 떨렸다. 준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준회에게는 화살을 막아낼 방패도, 맞서 던질 창도 없었다.
"어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저와 그 아이가 붙어있는 꼴이 그렇게 싫으십니까?"
"예. 싫습니다."
준회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월매의 눈빛은 서늘했다. 월매의 입술은 한번 더 준회를 향했다.
"그러게, 제가 안된다고 할 때 멈추지 그러셨습니까. 자란과 도령, 그 무얼 해도 만날 수 없는, 달과 태양입니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어찌..어찌...."
준회는 말 끝이 먹먹했다. 월매는 그런 준회에게서 서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월매의 입술이 향한 곳은, 준회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동혁이었다. 기방을 나오지 않겠다는 제 누이를 데려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연화방 대문에 들어선 동혁의 귀에 들린 건, 다름아닌 제 누이가 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동혁의 안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지금 저들이 하는 말이 나의 누이를 두고 하는게 맞는건가. 동혁은 떨리는 눈동자로 월매와 준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월매가 동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월매 입술의 붉은 연지가 검게 보였다.
"누구십니까."
동혁의 표정이 굳었다. 동혁은 월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건조하게 갈라진 동혁의 입술이 달싹였다. 동혁은 확신을 받아야 했다.
"제 사람을, 궁에 들이셨다고요."
이미 알고있는 답이었지만, 그래도 아니라는 답이 나오길 간절히 바랬다. 그런 동혁의 바람을 짓밟기하도 하듯, 월매가 코웃음을 빼냈다.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준회와 동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낱 기생을 마음에 품는 이들이 어찌 이리 많은지, 역시 연화방인가 봅니다."
월매가 부채를 부쳤다. 날이 아-주 덥습니다. 동혁은 당장에라도 그 부채를 빼앗아 짓이기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눌러냈다.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높고도 우렁찬 웃음소리가 연화방에 들어찼다. 동혁은 꽉 쥔 제 주먹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지금 자란을 궁에 들였냐 묻지 않습니까!!"
월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냈다면 어찌 하시렵니까. 웃는 월매의 얼굴이 추악했다. 동혁은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겨우내 삼켜냈다.
"그걸 말이라고..."
"제가 데리고 올 것입니다."
준회였다. 동혁은 놀란 눈으로 준회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__을 품겠다고 했던 그 사내였다. 준회는 동혁을 외면했다. 동혁은 그런 준회에 입술을 깨물었다. 준회 또한 위협을 느꼈다. __에게 누이 그 이상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자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준회는 월매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제가 그 아이를 데려온다면, 그 때는 그 아이를 놓아주셔야 할겁니다."
월매가 준회를 비웃었다. 월매가 부채를 접어 허공에 휘저었다. 부채를 따라 갈린 허공 속을 월매는 쓰디쓴 독으로 채워냈다.
"왕의 승은을 입으면 궁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걸 아시는 분이, 궁에 보내십니까!"
동혁의 감정선이 위태로웠다. 아니,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동혁은 월매를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려낼 듯 노려보는 눈자위가 붉었다. 준회가 목을 가다듬고 월매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두 남자가 자신에게 날카로운 말과 시선을 쏘아대는 와중에도, 월매는 여유롭게 부채를 부치며 영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데려 올 것입니다."
준회가 몸을 돌려 연화방을 나갔다. 이어 동혁도 몸을 틀었다. 연화방을 나서는 두 남자를 보며 월매는 비열하게 웃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겝니다. 새카만 웃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연화방 하늘 위에는 까마귀조차 날지 않았다.
*
임금은 거문고를 연주하는 __을 바라보았다. 앉은 자태에선 기품이 흘렀고, 거문고를 다루는 손놀림이 부드러웠다. 여섯 개의 현을 튕겨내는 술대에선 구슬픈 가락이 흘렀다. 임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구나. __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릴 적, 오라비께 배운 것입니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를 듣는 한빈의 얼굴에 묘한 빛깔이 머물렀다. 이내 제 빛깔을 되찾은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거문고는 __의 체구보다 컸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한빈은 거문고 가락에 맞추어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느새 __의 손이 멈추었고 흐르던 가락은 끝을 맺었다. 한빈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맛을 다셨다. 아쉽구나.
별안간 갑자기 한빈이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이걸 노렸구나, 정찬우 그 고얀 놈. 뱉어내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환했다. 창문 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한빈의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비추었다. 동고비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한빈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짐의 죽마고우니라."
찬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__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정이십니까? 한빈이 개구진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이다.
"이름이 무엇이라 하였지?"
"자란이라 하옵니다."
자란이라, 한빈이 고개를 숙이고는 낮게 읊조렸다. __은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임금과 채홍준사가 동무이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무언가를 알고있다. __의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갔다. 경각 __은 찬우가 제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주상 전하도 알고보면 좋은 분이시다. 그 목소리와 한빈의 목소리가 겹쳤다.
"자란아."
"예, 전하."
한빈이 엷게 웃어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웃음 속에는 깊은 고독이 서려있었다. 이 지독하게 넓은 궁궐에서, 한빈은 외로웠다. __은 조선의 국왕이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궁궐의 신하들조차 알지 못한 것이었다. 한빈은 무엇인가를 깊이 감춰 들추지 않고 있었다.
"짐을 처음 보았을 때, 무엇을 느꼈느냐."
__의 입술이 굳게 닫혀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한빈은 '몰락' 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방탕한 왕이었다. __이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여냈다. 괜찮다. 말해보거라. 한빈이 웃으며 __을 다독였다. 그 순간 __의 눈에 비친 한빈은 인자하고, 어질었다.
*
"진정으로 말해도 되겠습니까?"
임금이 나를 보며 웃고있었다. 지독하게 풍기던 술냄새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향주머니에서 풍기는 제비꽃 향만이 대전 안을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래. 한치의 거짓도 있어선 안될 것이다."
임금의 억양은 장난스러웠다. 나는 맞잡은 두 손을 꼼지락거려렸다. 임금이 한치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겠다 하셨다. 나는 임금의 명을 곱씹으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방탕한, 국왕이라고..생각했사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임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래, 그래. 나는 방탕하다. 게다가 아주 추악하지. 네가 아주 잘 봤구나. 임금이 중얼거렸다. 그는 손을 뻗어 제 앞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술병이 탁, 소리를 냈고 이내 엎어졌다. 임금은 그 술병을 보고 다시 잡아 세우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모습인지, 아느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금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오른손으로 삐딱하게 기운 고개를 받친 임금이 짙은 숨을 내쉬었다. 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내뱉고 싶은 심정이리라. 임금이 그저 안쓰럽게 느껴졌다.
"모두를 위한 일이다."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가 들어앉은 듯 복잡했다. 모두를 위해 방탕하다.
"이 나라를 위한 일이야."
임금이 짧은 실소를 흘렸다. 보거라. 임금은 문을 향해 소리쳤다. 박 내관, 술을 더 들여라! 그 말은 대전 안에서 몇 번이고 메아리쳤다. 소리친 임금은 만족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내관이 술병을 들였고, 임금은 그 술을 보며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 좋구나, 좋아. 내관이 방을 나섰고 임금은 표정을 굳혔다.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지존의 자리에 선 임금은, 고독했다.
"후에 알게 될 것이다."
임금은 내관이 들여온 술병에 손을 대지 않았다.
방을 나서는 내관은, 웃고있었다.
안녕하세요! 프렌디입니다! 음, 우선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어요ㅠㅠ
초록글 감사해요! 추천도 여덟개나ㅠㅜㅠㅠ많은 분들이 긴 댓글도 써주시더라구요ㅠㅠㅠ저 진짜 감동받았어요...
보잘것없는 글이 이렇게(현실눈물) 흐흐 그래서 더 힘내서 썼습니다!!
항상 댓글로 저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 고마워요! 음, 이번편은 조금 힘들게 썼는데 재미있으실지 모르겠네요ㅠㅠㅠ
한빈이를 조금 사연있는 왕으로 바꾸어봤어요! 흐흐흐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되긴 하지만ㅠㅠㅠ
준회 님, 구닝 님, 엘사 님, 콘초 님, 팬 님, 용군 님, 뿌요를 개로피자 님, 두둠칫 님, 무룩이 님, 주네야 님, 보랏빛 난초 님, 뿌링클 님, 부농부농 님, 거북이 님, 찌푸 님,!0!이모티콘, 바나나킥 님, 알콩달콩 님, 마그마 님, 알린 님, 지난봄 님, 무지개 님, 징징이 님, 꽃 님, 설렁 님, 파란짹짹이 님, 뽀로로 님, ㄱㅈㅎ 님 흐흐 전부 애정해요!
암호닉은 항상 감사하게 받고있어요! 그리고 답글을 달지 못해도 전부 읽고 있답니다ㅜㅠㅠㅠ
그럼 즐거운 하루!
+) 독방에서 제 글이 묘사가 짧막하다는 지적을 발견! 흐흐, 조금이나마...바꿨어요! 군데군데 추가된 내용이 있으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글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