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우열]인어공주(The mermaid)2편
부제:오늘은 인어공주의 생일입니다. " 2월 17일 … " 새하얀 달력에 눈에 띄게 표시된 붉은색 동그라미에 눈길을 둔 성규가 중얼거린다. 며칠전, 갑자기 들이닥친 성종과 호원이 기여코 표시해야겠다며 징징거린 후에 표시한 동그라미의 오늘. 항상 챙기지 않던 수많은 날들의 일부였던 생일 그리고 어머니의 기일인 오늘을 갑자기 챙길려니 제 적성에 맞지 않는 성규다. 솔직히 자신의 생일보다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져 지금까지 챙기지 못했다. 기일이라-
자신을 감싸줄 유일한 사람, 어머니에게 버려진 그날 이후 그의 마음 속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참히 짓밟혔다. 강간 당했다는 그 자체가 역겨워서였을까. 아님 성규가 자신과 똑같이 몸을 팔았다는 생각에 같은 길을 걸을까라는 걱정이 되서 그랬을까. 이유가 어찌됬든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때 그녀가 성규를 바라본 시선은 증오 그 자체 였다는 것이다.
" 이제와서 뭐가 달라진다고 괜히 옛 생각인지. 그치 엄마."
있지… 난 눈을 떳을때, 내가 있는 공간에 엄마가 있다는 그 사실에 모든 경계심을 풀었어. 내가 유일하게 믿을수 있고 사랑하는, 무슨짓을 어떤이유로 했던간에 이해해 줄 수 있다고 확신한, 내 편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모든게 내 헛된 망상이었고 부질없는 희망들이었나봐. 결국, 날 뒤에서 욕하고 시선을 외면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부류였던 거야. 그래서 나는 곱지못한 그 시선들과 같이 엄마를 잊어보려고 노력했어. 제일 먼저 그 동네를 떠났고, 보란듯이 기일을 챙기지 않았어. 나말야, 그러고 나서부터 독하다는 말 되게많이들었어. 순딩이라는 소리만 듣다가 독하다 그러니깐 처음엔 되게 적응안됬는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지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지더라. 근데, 왜 나는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잔해들이 잊혀지지 않을까.
"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나만 예외인건가봐. 3년이나 지났는데 …"
" 나가라고 이 더러운 새끼야 . " '쨍그랑-' 귓가에 울리는 괴음과 함께, 휘몰아 치듯이 날아오는 물건들과 엄마의 찢어질듯한 비명. 몰려든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눈앞에 펼쳐진 상황들이 그저 흑백 속 사람들의 이야기 처럼 느껴진다. 그저 멍하니 몇분을 지났을까. 무표정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한명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성규를 끌고서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모르는 사내의 손에 이끌려 정처없이 걸어간다.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수근거리던 상황이 점점 잦아들고,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만 살짝 끄덕인 뒤 자리를 비켜준다. 깨져있는 유리창과 열려있는 옷장 사이로 뒤엉켜있는 옷가지들, 헝클어진 머리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떠는 두 손. 그리고 금이 가버린 자신과 성규가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속 액자. 불과 몇분전의 비참한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뿌옇게 가려버린다. 성규야,성규야- 하염없이 이름만 부르며 액자를 세게 안아버리는 그녀다.
" 내가 너를 어떻게 내치니. 내가… 성규야 엄만 니가 밉거나 싫어서 또는 더럽다고 느껴서 널 버린게 아니야. 다만 니가 나처럼 웃음을팔고, 몸을팔아가면서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널까봐. 나처럼 될까 두려워서 그랬어.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깨끗한 너를 부러워했어. 그래서 사장이 애들 마음이 흔들린다며 이번일을 꾸몄고, 알고있었지만 너를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이렇게 나마 널 지키고 싶었고, 더이상 이런 곳 말고 좋은곳에서 나보다 좋은 분들 만나서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혹, 나중에라도 알아줄래. 널 절대 미워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엄만, 니가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이유라는 사실을. "
'끼익-'이라는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혼자만의 말들이 멈춰지고, 선택에 후회안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보지만, 울음때문에 한없이 가늘기만 하다. 끌고가라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소리소문없이 그녀는 사라졌다.
짙은 한숨이 섞인 말투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릿 속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성규다. 띠링- 폰소리가 울리고, 스팸이겠지. 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각으로 폰을 확인한 그는 '저번에 술 사준다던 약속 아직 안지켰으니깐 오늘 지켜라. 안지키면 2배. 바로 앞 막창집에서 기다릴께~' 라는 문자에 옅은 웃음을 지어보이고선,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회색 가디건을 챙긴다.
거실과 드레스룸, 부엌의 모든 불들을 끄고 현관앞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뒤, 약속 장소에 가기위해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 '펑-'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 미친 쟤가 어디가 이쁘다고 사랑해? "
" 야. 그래도 생일인데, 생긴게 저래서 그렇지. 암." " 됬고! 성규의 생일축하합니다!!!!!!! " 깜짝이야- 놀란가슴을 쓸어내린 성규가 눈앞의 상황에 작은 눈이 두배로 커진다. 자신의 생일을 표시하고 간 그들이지만, 평소에 생일을 안 챙긴다는것 또한 아는 그들이기에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치못했다. 빨리 촛불좀 꺼줄래? 촛농떨어져서 케이크 못먹긴 싫거든. 말하는 말투에 가시가 돋은 성종의 말 때문에 일단 촛불을 끄고보는 성규다.
" 매년 안챙기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챙겨? 부담스럽게. "
" 그냥, 여자 없는 니가 올해는 유난히 더 외로워 보여서 랄까. 크크크킄크킄 " 기분이 상했는지 씩씩 거리며 달려가는 성규와, 잡을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허세와 함께 저멀리 사라지고 있는 호원. 그에 비해 현관안에 들어간 뒤, 배란다를 통해 보이는 상황들에 쯧쯔- 하고 혀를 차며 케이크를 자르는 성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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