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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

W.순백



 


 사랑해.
 그게 뭔데?



 

 


 초점 없이 흐린 눈이 허공을 향했다. 지호가 공중에 손가락을 놀려 원을 그려냈다. 하얀 천장에 다만 남은 건 제가 그려낸 원의 잔상 뿐였다. 그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온몸에 힘이 풀리자 등과 침대면이 맞닿았다. 눈이 감겼다.


 

 지호야.


 나즈막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간질한 공기의 파동이 귓가에 닿자 지호가 몸을 일으켰다. 시리도록 무표정한 얼굴이 보이자, 재효가 미소를 그렸다.


 

 잘 잤어?
 응.


 

 짧은 대꾸에도 재효는 안색 하나 흐리지 않고 빙긋 미소지었다.




 




 이로써 지호가 반강제적으로 병원에, 그것도 사람 하나 없는 일인실에서만 생활하게 된 것도 반 년 째였다. 아버지는 의사셨다. 물론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다들 의사셨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아버지 대까지는 뵌 적이 없다. 조부께서 일찍이 서거하신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입양아이기 때문이 더 클 것이었다. 양부모께서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애가 생기지 않아 입양한 아이가 바로 지호였다. 그로부터 일 년 만에 애가 생겨버린 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애가 생기기 전까지의 일 년은 지호의 일생에서 가장 대우가 좋고, 가정 또한 화목했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지호의 기억엔 개미 다리 한 쪽 만큼도 남아있지 않지만. 친자와 양자 사이의 갭을 재라면 서울에서 거제 끝 쯤 될까. 느끼기에 따라 더할 수도 있고, 덜할 수도 있겠지만 지호에게는 더하고도, 또 더했다. 부모의 심각한 차별과 피 안 섞인 남동생의 모욕, 업신, 그걸로 십구 년. 어느덧 이십 세가 되어버린 그는, 성년을 맞이하는 자정조차 병원 한 구석에서 침대에 제 몸을 기울여 눈이 내리는 창을 바라보며 맞이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먹고 자고 자라난 지호에게 남는 거라곤 아마 친부모를 닮았으리라 예상되는 말끔한 외모와 바닥을 한없이 뚫고 내려가도 이보다 유약하고 암울할 수 없다 싶은 짙은 검남색 쯤의 성격 뿐이었다. 학교생활 내리 말 한 번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낸 지호에게 유일한 친구는 재효였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그는, 처음 그와 같은 반이 되었던 중학교 2학년 초반부터 끊임없이 치근덕댐으로써 지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어거지로라도 옆구리에 끼어 같이 다니게 했다. 그리하여 당황스러운 건 지호였다. 삶의 의욕도 없고 딱히 연을 맺을 사람도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으며 매사가 귀찮아 이젠 등하교마저 반유체이탈 채로 다니던 와중에, 갑작스레 제 하루주기를 무참히 깨뜨려버리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림자같은 저와 달리 밝고 화사한 재효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누구보다도 활기찼다. 그런 그가 저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관심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재효와 거리를 두려 애쓰던 지호는 재효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친해지는 것은 쉬웠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재효가 알아서 말을 걸고, 약속을 잡고, 놀아주었으니까. 그 이후의 재효와의 학창시절은 어둡고 가혹한 현실에 있어 한 줄기 빛같은 구원의 손길이 되어주었다. 재효와 있을 때면, 지호의 얼굴에도 희미하게나마 표정이 떠올랐다.


 맑은 날이 있다면 흐린 날도 있다. 흐리디 흐리던 지호의 나날들에 재효의 등장으로 날이 개이기 시작하는 무렵, 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서서히 번져나갈 때 쯤에, 지호의 양부모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그를 병원으로 몰아넣었다. 전보다 더 흐린 날들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막 2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지호는 그 주 주말에 재효와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있었지만, 그 일정은 병원에 입원하기, 로 바뀌어버렸다. 굳게 닫혀 잠겨버린 병실의 흰 문은 도저히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지호는 멍하니 문고리를 응시했다.


 따르르릉ㅡ.


 

 단조로운 기본 전화벨이 병실 안을 채울 때에야 지호가 넋을 잡았다. 제게 연락을 할 사람은 단 하나 뿐이었다.


 

 여보세요.
 너 왜 안 나와?
 갇혔어. 미안한데 다음에 가자. 다음에도 안 되려나?
 ...너 지금 어디야.


 

 ㅡ병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화는 끊겼다. 지호가 입꼬리를 조금 볼 쪽으로 당겼다. 웃는 게 이렇게 하는 거였나.
 안재효, 와줘.



 



 갇힌 것 치고는 영화처럼 막 막진 않더라?
 용케도 찾아왔네.
 데스크에 물어보니까 신상까지 되물으면서 호도 알려주던데. 감금된 거 맞아?

 

 툴툴대는 말 치고는 상당히 안심 어린 어조였다. 지호가 재효가 오기 전부터 연습하던 웃음을 지었다. 볼 쪽으로, 입꼬리를 끌어당기고,

 

 

 ..어렵다. 어떻게 웃는 거야?
 그런 걸 물어보면 대답이 되겠냐. 그냥 웃어지니까 웃는 거지. 행복하니까.
 행복한 건 어떤 거야?
 나랑 같이 있는 거?
 그런 건가?

 

 

 넌 내 말을 너무 곧이 곧대로 믿어. 덥수룩한 지호의 머리를 헤집으며 재효가 픽 웃었다. 그래도 어디를 다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기 입으로 갇혔다니 자의로 온 건 아닌 듯 싶었지만 이렇게 병실도 찾아올 수 있다면 적어도 연이 끊기진 않을 테니까. 재효도 지호의 입양 이야기는 알았다. 새벽까지 함께 놀던 적에 졸음에 비몽사몽하던 지호가 실수로 말한 것을 제대로 들었으니. 술에 취한 것도 아니어서 지호 또한 제가 잠결에 죄다 불은 기억이 또렷했다. 딱히 창피할 만한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니었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겨 넘어가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 일은 지호가 자신의 가정사를 타인에게 밝힌 첫 사건임에 의의가 있었다. 지호는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재효가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건, 그만큼, 그를 믿는단, 증거였다.





 

 지호가 말을 잃어가기 시작한 건 병실에 갇힌 지 이개월 쯤 될 무렵부터였다. 외출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이 채 안 되게 정해져 있었다. 복도 끝에 위치해 있는 지호의 병실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몇 개의 감시 카메라에 노출되는 위치였다. 병실 밖으로 나갈 때는 꼭 병원 관계자인 누군가와 함께 나가야만 했다. 탈출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어차피 금세 잡힐 게 불보듯 뻔한 걸. 다만 육개월 간 끊임없이 저를 짓누르던 의문점이 있다면, 자신은 대체 왜 이 곳에 갇힌 것인가. 지금껏 평탄하지만은 않았더라도 조용히 잘 살아왔건만, 대체 어떤 연유로 저를 이렇게 구속하는 것인가. 물어볼 이도, 물음에 대답해줄 이도 없었다. 철창 안에 갇힌 새가 이런 기분이려나. 누군가와 함께 밖으로 나서 감시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홀로 자유로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나았다. 병원 내의 자그마한 휴게실에서 종종 빌려오는 두꺼운 서적들과 책들만이 외로운 그를 달래줄 놀잇감이었다.


 타인의 방문은 허락이 되었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호가 밖으로 나서는 것은 엄격한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같은 문을 통과함에도 지나치게 다른 대우. 고작 저 문이 뭐라고 저를 이렇게 가둬두는 게, 지호는 새삼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고민한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괜히 해답 없는 문젯점만 잡고 골골 앓아봐야 제 머리만 아프겠지. 다시금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훑었다. 종종 찾아오는 재효가 오늘은 오지 않았다. 우울한 기분에 지호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씌웠다.

 


 끄으ㅡ, 미세한 흐느낌이 사륵 공기에 머물렀다.
 고요한 병실에 어둠이 드리웠다.




 그렇지만, 나도 행복하고 싶어.

 


 눈부신 햇살이 창을 통해 지호의 콧등에 내려앉았다. 초봄도 되지 않아 쌀쌀한 늦겨울의 아침 햇살은 그런대로 따스했다. 잠시 눈쌀을 떨던 지호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한 줄기 햇빛이 눈을 강하게 강타했다. 햇빛에 눈이 따가워서인지, 정신이 몽롱한 아침의 여운인지, 알 수 없는 느낌에 지호의 눈가에 소리 없는 울음이 맺혔다.





 


 아. 해봐.
 아아.


 

 아기 새가 어미 새에게 지렁이를 낼름 받아먹듯 지호가 아기 제비마냥 입을 쩍 벌렸다. 재효가 제 손에 들린 밥 쌓인 숟갈을 지호의 입에 넣었다. 지호가 뜬금없이 연락해 제가 지금 아프단 소리를 하자 한 걸음에 달려온 재효였다. 안 그래도 비쩍 말라붙은 몸이 더 홀싹해졌다. 재효가 걱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 재효는 지호가 저 마른 몸으로 밥은 제대로 퍼먹을 수 있을까, 싶어 굳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떠먹이겠다 고집을 피웠다. 몇 번 거절하던 지호도 한 번 받아먹으니 그 뒤로는 오히려 제가 더 재촉해 밥을 먹여달라 졸랐다. 손발 하나 안 쓰고 먹는 것이 어지간히도 편했을까. 아니면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모성애의 기분이 반가웠던 걸까. 지끈거리는 머리가 거슬렸지만 그래도 지호는 웃음을 지어보려 애를 썼다.


 재효는 지호가 걱정스러웠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삭막한 병실에서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제가 자주 찾아오려 하긴 하지만, 홀로 있는 시간이 배의 배로 많을 것은 분명했다. 제가 찾아오면 그는 밝아진 듯한 표정으로 저를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항상 그렇게 기뻐보일리 없었으니. 잘 지내는 거야? 라고 말하기에는 도저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인관계도 좋지 못한 지호가었기에 제가 없다면 그저 창 밖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딱히 이렇다할 행동조차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밥은 잘 챙겨먹는 걸까. 나날이 말라가는 몸을 보아선 그것도 아닌 듯 싶었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 가장 친한 친구의 입에서, 제가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대답이 나오리란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두려워서. 그래서 묻지도 못했다.


 졸업식이 코 앞이었다. 다음 주 수요일. 성인이 된 후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한다는 게 이질적이었으나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에 뜻을 두기로 합리화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반복하는 지호을 곁에서 바라보며 혼자만 행복하기엔 양심의 가책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저는 여전히 밝았지만 지호는 날이 지날수록 지하로 파고들어갔다. 그래도 이 년 반을 다닌 학교이니 졸업식 때는 꼭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차마 말못한 구절이 목구멍에서 맴돌다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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