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친구
〈!--StartFragment-->
눈 질끈 감고 뒤를 돌아보니 보이는 얼굴은 정말 의외의 인물이었다. 몇 시간 전 미팅에서 만났던 그가 내 앞에 장난스러운 미소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민피디님?”
“놀래킬려고 한건 아닌데 많이 놀랐다면 미안해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손을 휘휘 저으며 큰 소리로 말해버렸다. 부끄러웠다. 왠지 모르게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자다 일어난 얼굴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피디님이라니.. 내 얼굴.. 어떡해
근데 진짜 왜 여기에 계신거지? 설마?
“이 아파트 살아요?”
“네 혹시 피디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이다 세상에 인연이 이렇게 되는구나 신기하다
“괜히 더 반갑네요 같은 아파트라니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거 같은데”
“그러게요 신기하다”
왠지 모르게 피디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편안한 기분이다. 저녁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고
난 분리수거를 하고 피디님은 퇴근하다 날 놀래키고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분리수거 열심히 하네요. 난 귀찮아서 자주 안 하는데”
차마 나도 귀찮아서 이렇게 밀렸다는 건 말 못한다. 부지런해 보이고 싶으니까.. 아닌가 그런 이유가 아닌가 어쨌든 그의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다
“퇴근하시던 참이세요?”
“탄소씨 지금 저녁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죠?”
내 물음엔 대답도 않고 대뜸 나에게 저녁식사에 대해 물어보는 그였다.
그러면서 슬쩍 내 쓰레기봉투를 들여다보는데.. 반투명한 쓰레기봉투엔 내가 먹는 간식 거리들의 잔재들이 잔뜩 남아있었다.
아 진짜 남이 보면 내가 무슨 어린 애인줄 알겠네. 스펨하며 과자하며 빵봉지.. 그런 쓰레기 봉투를 보며 피디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몸에 안 좋은 것들만 잔뜩 있네 건강 조심하라고 아까 전에 말했던 거 같은데”
쓰레기봉투를 보던 시선을 나에게 돌린 그는 놀리듯이 말했다. 부끄럽다. 그래도 할 말 없다.
진짜 군것질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해명할 거리가 없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쓰레기봉투에서 쓰레기를 꺼내 같이 도와주는 그였다. 더러운데..!!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안되겠네 김작가. 이거 다 하고 나랑 어디 좀 갑시다”
“네?”
“어린이입맛 고치러”
내가 벙져있는 사이 익숙한 듯 금세 분리수거를 끝낸 그는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빨리 가자는 듯이
“피디님 저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요..”
“싫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건 아닌데.. 너무 갑자기”
“지금 나 안 따라오면 당신이랑 일 안해”
"피디님!"
“어디 가는 거에요?”
결국 피디님에게 거의 반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집 앞 상점들 앞까지 나왔다. 슬리퍼 질질 끌고 자다 일어난 몰골에 음식점이라니 큰일이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나도 여잔데 이런 꼴은 부끄러운데 피디님은 그런 내 말에 아랑곳 않고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도착. 여기 알죠?”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니 집에 오면서 매번 지나치던 작은 맥주집이었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온지 거의 4년이 됬는데 그 전부터 있던 가게다.
거의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기 보단 정감이 가는 그런 곳이었다. 가끔 친한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갔던 기억은 있는데 그것도 엄청 오래전이라..
피디님이 이런 곳에 데려오다니 의외이면서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도 여기 사니까. 어쩌면 나랑 같은 마음일 수도 있겠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와요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텐데”
“아 네!”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가는 피디님의 뒷 모습을 따라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테이블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편안해졌다. 피디님 참 이상한 분이시네 낯을 엄청 가리는 날 이렇게 까지 편하게 만들 줄이야
낯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피디님과 저녁 식사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싫은 건 절대 아닌..
“나 맨날 저기 앉았었는데”
“피디님은 여기 자주 오세요?”
“술집은 어딜 가나 비슷하더라구요. 여긴 제일 가깝고 편하니까”
“전 맨날 집에서 마시는데”
“맨날? 그렇게 안 보였는데 김작가 술꾼인가보네 집에서 혼자 먹는 술은 제어가 안될텐데?”
“아니에요 가끔 마셔요 정말 가끔! 믿어줘요”
“알았어요 알았어 화 내지 마요”
농담삼아 던진 말에 내가 놀라며 발끈하자 졌다는 듯 두 손을 장난스럽게 올리는 피디님의 모습에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심장이 자꾸 무리하네 최근에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 찾아 왔는데 그 후로 자꾸만 심장이 별 일도 없는데 자꾸만 빠르게 뛴다.
“여긴 뭐가 맛있어요? 잘 안 와본 곳이라..”
“글쎄.. 난 이게 제일 맛있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거든”
메뉴판을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 보니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적혀있었다. 무심결에 말을 내뱉었는데 피디님은 내 말을 들었는지 대뜸 대답했다.
“...나 김치찌개 잘 만드는데”
“정말요? 한 번 놀러가야겠네 어차피 바로 윗층인데”
놀러온다고? 예전부터 사람들이 장난삼아 우리 친하잖아 라는 뉘앙스의 막 내뱉는 말들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피디님의 놀러오겠다는 말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분명 농담일 텐데 그래도 좋았다.
“놀러오세요 나름 괜찮아요”
“...의외네”
“네?”
문 밖을 보고 있던 그는 문득 날 바라보며 말했다. 조그만 목소리로
“엄청 낯가리는 줄 알았는데 별로 아닌 것 같아서”
그런 말 태형이 다음으로 처음 들어본다. 항상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오다가 제 풀에 지쳐 먼저 떠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섣불리 남에게 마음을 잘 안 주는 타입이라 그런지 친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근데 저런 말을 듣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피디님”
“왜요”
“실례가 아니라면.. 피디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탄소씨보다 두 살 많아요”
내 나이를 어떻게 알지? 미팅 때 나이 이야긴 안 했는데.. 이력서? 설마 그걸 기억하고 있을 리가
별별 얘기를 나누며 그렇게 편안한 정적이 흐르고 한 20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김치찌개가 나왔다. 맥주 두 병이랑
“오랜만이다 술 마시는 거”
“내 앞에선 내숭 안 떨어도 되는데 솔직하게 말해요”
“진짜 술꾼 아니거든요?”
“아님 말고”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괜히 웃겨 웃어버렸다. 정말로 오랜만인건 사실이다. 특히 누군가랑 술을 마시는 거 기억도 안 날만큼 정말 오랜만이네.
피디님은 말 없이 맥주를 따 잔을 채워주었다.
“식으면 맛 없으니까 빨리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탄소씨 이번 라디오 어때요? 맘에 들어요?”
조용히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는데 문득 묻는 질문에 피디님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좋죠 프로그램도 좋고 작가도 좋고 디제이도 너무 좋고.. 피디님도 좋고
“좋아요 꿈만 같아요 정말로..”
“나도 이번엔 예감이 좋아요 엄청 잘 될 거 같아”
“그럼 좋겠네요”
“태형씨랑 친구에요? 친해보이던데”
괜히 밑반찬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묻는 그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태형이 앞에선 쑥스러워 별로 칭찬을 잘 안하지만 뒤에선 태형이 말만 들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정도로 소중한 사람이다. 태형이는 나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에요. 얘가 저완 다르게 성격도 너무 좋고 가끔 보면 부러워요”
“왜 김작가가 어때서. 성격 좋아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진짜 별 말도 아닌데 그저 성격 좋다는 수없이 들었던 인사치례에 불과하던 말인데 피디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특별하게 들렸다.
정말 진심이라는 듯이. 그러고 보니 피디님 농담할 때보면 참 어린 애 같다가도 무심결에 툭툭 던지는 말을 가만가만 들어 보면 참 좋은 분인 것 같다.
“오늘 고마웠어요 피디님 덕분에 저녁도 해결하고”
“나도 저녁 잘 때웠네요”
“그럼 이제..”
아 참 같은 아파트란 걸 까먹었다. 여기서 헤어지는 게 아니었지. 괜시리 눈치를 보며 피디님의 말을 기다렸다. 역시나 피디님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섭섭하네 김탄소씨 나 상처 받았어요”
“미안해요 피디님 잠깐 깜빡했어요”
“빨리 따라오기나 해요 어두워”
그렇게 피디님과의 예상치 못한 즐거운 저녁식사를 끝내고 어느 새 아파트 앞에 다다랐다.
“계단으로 갈래요? 소화도 시킬겸”
“그래요”
비교적 낮은 층수인 3층에 살지만 거의 계단을 이용해본 적은 없다. 체력이 워낙 약해서 금방 지치는 걸 알기에
아무리 기다려야 해도 늘 엘리베이터를 고수했는데 오늘따라 그냥 계단으로 가고 싶었다. 그냥
“여기서 헤어지겠네 잘 가요 넘어지지 말고”
“피디님도 쉬세요 오늘 감사했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피곤할 줄만 알았던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신 차리고 보니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아무래도 오늘 새 친구를 사귄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차가운 공기만 느껴졌던 집 안에서 왠일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배도 부르고 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이 더 좋아졌다.
냉장고 안의 캔맥주를 봐도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괜시리 설레는 마음에 재빨리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작가 잘 들어갔습니까 설마 혼자 집에서 2차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화내지 마요 농담이니까 푹 쉬고 녹음 날 봅시다]
웃으면서 문자를 읽고 있는데 하나가 더 왔다.
[어린이입맛은 좀 고쳐졌나 모르겠네]
완전히 고쳐졌네요 피디님 덕분에
[피디님 오늘 정말로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그 때 봬요]
문자를 보내고 나니 나른해졌다. 아직 9시도 안됬는데 이상하게 잠이 온다. 그렇게 피디님을 생각하며 불면증을 이기고 잠이 들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길은 정말이지 즐거웠다. 심야라디오인 걸 알지만 도저히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결국 6시에 집 밖을 나와버렸다. 피디님은 녹음이 있어서 먼저 출근 했다고 한다.
태형이랑 같이 기다리려고 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일찍 못 온단다. 바쁜 것도 복이다 김태형 힘들어 하지말구!
그렇게 방송국에 도착하고 곧 꿀FM 방송을 시작할 7층 주조정실 앞에서 서성거리다 휴게실로 들어갔다. 근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전정국?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먼저 날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는 정국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정국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 털썩 앉았다. 그 날 이후로 연락을 한 적은 딱히 없지만
둘 다 처음 만났을 때보단 긴장이 풀린 편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닥 어색하진 않았다.
“잘 쉬었어요? 전 도저히 못 기다리겠어서 일찍 왔는데.. 혹시 정국씨도?”
“네 저도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일찍 와서 시간 때우고 있었어요”
“뭐하고 지냈어요 그동안”
“원고 쓰고 그냥 쉬었어요 탄소씨는?”
“저도 정국씨랑 똑같아요”
사실 피디님과 술을 마신 그 날 이후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편의점에서도 만나고 그 술집도 한번 더 같이 가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엄청 친해져서 요즘 마음이 편하고 좋다. 친구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게 이렇게 좋았던 적은 없었는데 정말 좋은 동료를 만난 것 같아 행복하다.
“탄소씨는 몇 살이에요? 어려 보이는데”
“올해 26이요”
“어 동갑이네요”
“우와”
“그럼 그냥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슬쩍 말을 놓으며 웃는 정국을 보니 감히 나 따위가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님을 느꼈다. 태형이만큼 잘 생겼다. 무엇보다 눈이 진짜 이쁘다. 내가 갖고 싶을 정도로.
날 보고 웃는데 주책맞게 심장이 두근댔다. 너무 잘생긴 거 아닙니까 진짜.
“어차피 계속 같이 일할 건데 편하면 좋죠”
“흠.. 그럼 이제부터 반말 안하면 그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지금부터 시작”
“그래요..가 아니고 그래!”
방심했다간 소원 들어주게 생겼네 어쨌든 생각보단 꽤 재밌는 사람인 건 확실하다. 나랑 비슷한 점도 있는 거 같고.
“곧 생방인데 잘 해보자”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받아줬다. 손도 이쁘네 그래 김탄소 잘하자
스텝들도 다 좋은 분들이고 디제이는 말할 것도 없고 행복하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 처럼
그렇게 빅히트방송국 7층 휴게실은 꿀FM 동갑 막내 작가들의 친목의 장소가 되었다.
무척이나 소박한 이벤트 |
저의 글이 초록글에도 올라가고 요즘 독자님들 덕에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박한 아주 소박한 이벤트를 연재하는 동안 진행하려고 합니다! 댓글 이벤트인데 1~3등으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께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추천해드릴께요! 별 건 아니지만 저 노래 듣는 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하 어떤 분위기의 노래를 원하시는 지 적어주시면 그에 맞춰서 추천해드릴께요! 늘 감사합니다! |
암호닉 = 사랑 |
김남준 민윤기 봄 현지 늉기 노래 들레 디즈니 짱구 브이 꾸울 윤아얌 하늘 꿀만두 예워아이니 단거 카누 알라 민트 초딩입맛
혹시 누락된 암호닉 있으면 꼭 알려주셔야 합니다! 암호닉은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받을게요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