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어깨에 팔을 둘러도 불편하지 않을 키가 된 이후 처음으로 그 품이 불편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과 어색한 호흡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임에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웃는 얼굴이 밉기까지 했다.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목적한 9층에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의 알림에 접착제라도 바른 듯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옮겼다. 코너를 돌고 돌아 찾은 방은 찰칵, 하는 기계음과 함께 손쉽게 열렸고, 윤기는 네 등을 느껴질 듯 말 듯 살짝 밀어 안으로 들였다.
오빠 먼저 씻을게. 생전 처음 보는 호화로운 방에 들어선 네가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새도 없이 자연스레 수트 자켓을 벗어 응접실의 소파에 걸쳐 놓은 윤기가 살짝 웃으며 말을 건낸다. 네, 네. 아까는 그렇게 의식하더니방의 한쪽 벽을 이루는 창문 너머 반짝이는 야경에 정신이 팔려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말에 윤기가 넥타이를 풀기 위해 목 근처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고 탁, 탁, 걸음을 옮겨 널 돌려 세운다. ...왜요? 넥타이 풀어 줘. ...네? 당황한 얼굴로 가만히 되묻는 너를 보던 윤기가 어깨 즈음을 붙잡았던 손을 내려 네 손을 잡아 제 목 근처로 옮겨 놓고는 다시 말한다. 넥타이 풀어 달라고. 웃음 띤 얼굴로,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저를 내려다보는 윤기에 황급히 눈을 내려 머뭇머뭇하면서도 넥타이를 당겨 내면 윤기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네 흘러내린 옆머리를 정리해 준다.
"...됐어요."
"응. 고마워."
묘한 분위기에 움츠러들어 시선은 윤기의 가슴팍 어디 즈음을 헤매는 채로 됐어요, 하는 말을 내자 윤기가 선선히 뒤로 물러서 욕실로 들어간다. 하, 그제서야 탁 트인 숨을 내쉬며 차가운 유리창에 등을 기댄다.손에 남겨진 윤기의 넥타이의 감촉이 낯설어 선뜻 내려놓지 못하고 꽉 쥐어잡았다 풀었다만을 반복하던 네가 달칵,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퍼뜩 놀라 윤기의 자켓 옆에 넥타이를 걸어 두고는 씻고 나올게요. 하고 빠른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간다. 가운만 걸친 채 젖은 머리를 털며 그 뒷모습을 보던 윤기가 픽, 하고 웃고는 익숙한 듯 룸 내 전화를 들어달달한와인과 안주로 삼을 연어롤을 주문한다. 푹신한 소파의 한쪽 팔걸이에 기대어 길게 늘어지듯 앉은 윤기가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하다 띵동, 룸서비스가 도착했다는 초인종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준다. 직원이 들어와 응접실 탁자 위에 주문한 와인과 롤을 서빙한 후 나가고, 윤기가 샤워를 마치고서도 멈칫 멈칫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네 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연다.
결심한 듯 후, 하는 숨소리와 함께 달칵, 문이 열리고 옷을 꼭꼭 갖춰 입은 네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두드리며 주춤주춤 나온다. 이리 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다정한 웃음을 걸치고 팔을 벌리며 하는 말에 네가 어쩔까 고민하는 얼굴로 다가오다 윤기의 맞은 편 의자에 앉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벌렸던 팔을 갈무리한 윤기가 와인을 들어 제 잔과 네 잔에 와인을 따른다. 안 쓴 걸로 시켰어. 짠, 할까? 팅-, 두 유리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모로 튼 네가 꿀꺽꿀꺽 그리 많지 않은 양을 원샷한다. 그에 반해 홀짝, 입술만 축인 윤기가 롤을 한 개 집어 먹으며 여상스레 묻는다. 친구들이랑은 뭐했어? 잔뜩 긴장하고 있던 네가 윤기의 그런 목소리에 흠칫, 하고서 대답한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쇼핑은. 옷 사고 싶다며. 다시 병을 들어네 잔을 사 분의 일쯤 채우며 묻는 윤기에 네가 흔들리는 와인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혀를 내어 입술을 적시며 대답한다. 그냐앙... 친구 꺼만 보다 왔어요. 그랬어? 왜. 예쁜 게 없었어? 꼴깍. 또 한 모금을 넘긴 네가 아직 찰랑대는 와인잔을 내려놓고서 머뭇머뭇 윤기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연다. 음. 그런가. 별로 안 사고 싶더라구요. 그제야 저를 보는 네 시선에 윤기가 잔뜩 눈을 휘어 웃는다. 그랬구나. 뭐, 나중에 사면 되죠. 응, 그렇지.
약간의 술이 도움이 된 걸까, 윤기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너는 긴장이 풀어져 평소처럼 헤실헤실 웃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화가 뚝, 끊기고, 한쪽 팔을 괴고서 진득하니 너를 쳐다보는 윤기의 시선에 사로잡힌 네가 서서히 표정을 굳힌다. 탄소야. ...네. 이리 와. 아까처럼 상체를 세워 팔을 살짝 벌리고 허벅지를 두드리며 너를 부르는 윤기에 저항할 수 없는 기분이 된 네가 주춤주춤 일어나 윤기의 무릎에 앉는다. 잘했다는 듯 등을 토닥토닥한 윤기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널 올려다 보면, 네가 손을 들어 윤기의 턱선을 쓰다듬다 사르르 고개를 내려 입을 맞춘다. 윤기는 기꺼이 고개를 들어 네 키스를 받고, 한동안 입술만 닿은 채로 가만히 있던 네가 살짝 입술을 벌려 윤기의 아랫입술을 빨아들인다. 눈을 감은 채 네 키스를 받던 윤기가 살짝 눈을 떠 너와 시선을 맞추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네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문다. 장난치듯 서로의 입술을 핥고 깨물고, 빨아들이는 키스가 이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잔잔히 이어지던 입술을 떼고 네 허벅지에 놓여있던 손을 들어 네 입술을 닦아낸 윤기가 네 손을 제 목에 걸어주고는 무릎 뒤와 등을 받쳐 너를 안고서 침대로 이동한다. 채 스무 걸음이 되기 전에 마주한 침대에 너를 살짝 내려놓은 윤기가 네 위로 올라타 다시 키스한다.혀를 내어 네 입 안을 건드리면서 손으로는 네 티셔츠 안쪽의 배와 등허리를 쓰다듬는 윤기에 네가 으응... 불, 불 꺼 주세요... 하고 투정부리는 소리를 내며 윤기의 목에 팔을 감는다.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리모컨으로 방 안의 불을 끈 후 스탠드를 킨 윤기가 다시 네 옷 안쪽으로 손을 넣어 속옷 후크를 풀어낸다. 제 자리를 잃은 속옷이 부유하듯 가슴 위쪽으로 올라가며 네 정점을 스치면 네가 불편한 듯 목에 감은 손을 풀어 윤기를 밀어낸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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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건 아닌데 그래도 궁금해 할까 봐 올려요... 내 문체는 원래 이런 느낌이에요...
아 나 기빨렸어
다음 편에서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