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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별모양곰돌이

 

 

 

 

 

7.

 

 

 

 

 

오늘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라디오가 끝이 났다. 먼저 자리를 뜨려는 동우의 앞을 막은 호원이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동우는 호원을 외면하고 옆으로 비켜서지만 호원이 또 옆으로 다리를 움직여 동우를 막았다.

 

왜요.”

 

짜증이 가득한 동우가 호원을 쏘아 보니 호원이 또 씩- 하고 웃는다.

 

가방 가지고 가셔야죠.”

가지고 왔어요?”

 

잠깐 잊고 있었다. 가방. 동우가 반색하며 물으니 호원은 어깨를 으쓱 한다. 말로 하라고 인간아...

 

안 가지고 왔죠?”

잘 아시네요.”

...”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동우는 입으로 바람을 후- 하고 불어 앞머리를 넘겼다.

 

~ 섹시.”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호원이 박수까지 치며 깐족거린다.

 

오늘 우리 집에 가서 가방 가지고 가요. 내가 집에 데려다 줄게.”

진짜요?”

그럼.”

 

가방까지 그냥 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니. 못 미덥지만 또 장난을 칠까 싶어 홀랑 넘어간 동우다. 휴게실에서 자려고 세면도구까지 챙겨왔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동우는 호원에게 지하주차장에 가라고 한 뒤 사무실로 갔다. 사연 뽑아놓은 거랑 대본 미리 뽑아 놓은 프린트를 파일에 챙겼다. 집에서 여유롭게 작업 할 생각이다. 이제 호원이 촬영에 들어가면 하루에 2, 3일분 녹음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보라색이 자동차가 서 있다. 호원의 애마, 호라돌이. 정말 같이 타기 쪽팔려지는 색이다.

 

정말 가방만 가지고 갈 거예요.”

알았어요. 누가 뭐래? 내가 뽀뽀라도 할 것 같아서?”

, 진짜!!”

설마... 아까 한 뽀뽀가 태어나서 처음 한 거?”

아니거든요.”

 

호원이 가볍게 말 하면 말 할수록 동우는 속이 상했다. 밤의 황제라더니 진짜 그런 모양. 어떻게 상대와의 입맞춤을 이렇게 가볍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동우는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표정을 굳히고 호원의 차에 올라탄 동우가 안전벨트를 매고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호원은 동우를 한 번 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주차장을 빠져 나갈 동안에도 동우의 표정이 계속 굳어 있었다. ... 화 났나?

 

진짜 첫 뽀뽀예요?”

아니라니까요?”

근데 왜 이렇게 골이 났어?”

됐어요, 이호원씨가 뭘 알겠어.”

 

동우가 호원의 말은 듣기도 싫다는 듯 호원을 외면하고 창밖만 봤다. 살짝 내리는 비가 참 기분이 좋다. 오묘하게도 기분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다. 비가 와서 그런가... 야경이 예뻐서 그런가... 호원은 창밖만 보고 있는 동우 때문에 어색해진 공기에 답답해했다. 어쨌든 조금 익숙해 진 호원의 집에 도착했다. 호원의 집 바로 앞에까지 함께 간 동우는 현관문 앞에 우뚝 섰다.

 

안 들어가요?”

가방 가지고 나와요, 호원씨가.”

참 나... 의심병 말기야.”

 

호원이 얌전히 집으로 들어간다. 여기 있어요- 라며 꽤 친절해 보이는 말을 하고. 탁자에 있는 동우의 가방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온 호원이 동우에게 가방을 넘겼다.

 

, 여기 가방.”

“...”

 

동우는 호원에게서 뺐듯이 가방을 낚아챘다. 가방 안에 없어진 건 없나 꼼꼼히 확인한 동우는 지갑을 열어 돈의 액수까지 확인했다.

 

"돈 안 훔쳤거든요?"

알았어요. 아무튼 고마워요, 갈게요.”

 

동우가 호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동우가 걸음을 떼려는 순간 호원이 동우의 어깨를 잡아 동우의 몸을 돌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동우가 몸의 중심을 잡지 못 하고 호원이 하는 데로 몸이 돌아갔다. 비틀거리는 동우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현관문으로 밀친 호원이 동우의 입술을 찾았다. 호원이 강하게 어깨를 미는 탓에 호원이 키스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별 다른 반항 없이 호원의 키스를 받아드린 동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키스를 하고 있다. 이호원하고. 정신없이 입 안을 휘젓는 호원의 혀가 동우의 혀끝을 자극 하고는 떨어졌다. 호원은 동우에게 완전히 밀착해 있었다. 동우는 호원의 눈을 마주쳤다. 오묘한 눈매의 호원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들어가자.”

 

호원이 현관문을 열어 자연스럽게 동우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동우의 어깨에 걸쳐 있던 가방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호원은 빠르게 동우의 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동우는 이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알고 있다. 지금 동우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호원을 좋아한다. 하지만... 호원과의 섹스를 원한 건 아니다...

 

 

**

 

 

밝아오는 아침에 동우는 눈을 떴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뜬 것 뿐. 옆에서는 호원이 단잠에 빠져 있었다. 동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현관에서 허물처럼 하나씩 벗겨져 있는 옷들을 다시 주워 입었다. 정신이 차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호원과 섹스를 했다. 호원은 분명히 원 나잇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동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 나잇이라니... 그런 가벼운 관계는 싫다. 하지만 그랬다. 동우는 입술을 꾹 물었다. 옷을 다 입고 현관문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호원의 집을 그대로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전의 일이 생각났다. 비슷했던 상황 같다. 호원의 집에서 나와 나의 집으로 가는 이 길... 동우는 핸드폰 잠금을 풀고 명수의 번호를 찾았다. 몇 번의 수화음이 가고 명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 나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있다가 전화 할게.

“...”

-...? 듣고 있어? 나 지금 촬영이야.

“...”

-, 무슨 일 있어?

“... 명수야아...”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명수는 들고 있던 대본을 떨어뜨렸다. 상대와 대본을 맞추고 있던 터라 세트장의 모든 스텝들이 명수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술렁였다.

 

어이, 전화 빨리 끊어-”

 

감독의 재촉이 전혀 들리지 않은 명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전화를 내렸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후배님들 스텝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큰 소리로 연기자들과 스텝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한 명수는 재빨리 세트장을 벗어났다. 급작스러운 명수의 행동에 스텝들이 당황했다. 명수의 매니저는 명수를 쫓아갔지만 명수는 이미 없어진 후였다. 촬영 중에 주연 배우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매니저가 주차장에 갔을 땐 명수는 이미 차를 끌고 사라진 후였다. 매니저는 빠르게 성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대표님!”

-...

 

잠에서 막 깬 듯 잠긴 목소리의 성규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곧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무슨 일이야.

명수형이... 촬영 하다가 갑자기 뛰쳐나갔어요!”

-? 명수가?

!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서 놓쳤어요, 죄송합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갔어?

,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매니저의 전화를 끊은 성규는 바로 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착하게도 명수는 바로 성규의 전화를 받았다.

 

너 어디야.”

-급한 일이야.

촬영보다 급한 일이 어딨어?”

-촬영보다 중요한 일이야.

그게 뭔데?”

-나중에... 나중에 말 할게...

 

초조한 명수의 음성이 들렸다. 성규는 본능적으로 명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솔직하게 말해. 무슨 일이야.”

-...

빨리 촬영장으로 돌아 가!!! 내 얼굴에 먹칠을 할 생각이야?”

-젠장, 지금 동우형이 혼자 울고 있다고!!! 나한텐 그게 제일 중요해!!!

 

끊겨진 전화에 성규는 멍하게 전화기만 쳐다봤다. - 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상황 수습은 어떡하지. 기자들을 어떻게 막지. 손해액은 얼마나 될까. 윗사람 중에 믿을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이 따위의 생각만을 하고 있는 나는 뭐지. 김명수는... 어떡하지.

 

... 젠장.”

 

성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 숨을 쉬었다. 성규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동우를 향한 질투심에 이를 악물었다.

 

 

**

 

신호를 무시하면서 지하철역에 도착한 명수는 지하철역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동우를 발견했다. 동우의 바로 앞에 차를 세운 명수가 동우의 앞으로 뛰어 내렸다.

 

!!”

 

명수가 동우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든 동우의 눈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충혈이 되어 있었다. 눈 가는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어 동우가 한참을 울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른 아침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시선을 느낀 명수가 동우를 강제로 일으켜 세워 차에 태웠다. 어느 외진 골목으로 들어간 명수는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명수가 동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니 동우가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소리를 내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동우를 보며 명수는 혼란스러웠다. 어설픈 손으로 동우의 등을 토닥였다. 달래주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워 명수는 그저 동우의 등만 두드릴 뿐이다.

 

흐흡, ... 으으...”

...”

... 나 있지이... 크흡, 으윽...”

왜 그래...”

이호원하고... 으흐흑, 잤어. 으흑, 잤어...”

 

충격적이었다. 동우를 토닥이던 손이 멈췄다. 잤다고? 장동우하고 이호원이?

 

강제로 했어?”

아냐, 그렇지 않았어...”

 

또 한 번의 충격이다. 합의하에 한 섹스라니. 하지만 동우형이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스킨쉽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교감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동물적인 섹스는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이호원 하고...

 

크흐으... ... 너무 후회 돼... 으흑, 내 마음은. 그게. 아닌. ...”

 

울면서 말 하느라 뚝- - 끊어지는 말 안에서도 동우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후회가 돼... 명수야아... 흐읍, 너무... 으흑.”

“...”

내가 왜... 으흑- 내가 왜 거절을 못 하고...”

“...”

내가, 으흑- 다 내 잘못이야...”

 

또 자기 탓 한다. 자책은 동우의 안 좋은 버릇이었다. 명수는 우는 동우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 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명수가 눈물을 닦아주자 동우는 울음을 멈추려는 듯 흑- - 하고 숨만 쉬었다. 눈물을 참아보려 이를 악물고 명수와 눈을 마주쳤다.

 

형 잘못 아니야.”

, , .”

 

고개를 끄덕인 동우가 또 눈물을 터뜨린다. 사실은 그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던가, 혹은. 화살이 호원에게 가서 더 이상 호원에게 마음이 가지 않게 막고 싶다던가. 명수는 끊임없이 동우에게 잘못이 아니라며 다독였다. 명수의 다독임 속에서 서서히 안정을 찾은 동우가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이제 괜찮다며 웃는 동우를 보며 명수는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웃지 마. ... 힘들면 힘든 티 내.”

아냐...”

웃는 게 버릇이지? 형은.”

아니라니까...”

 

또 웃는다 또. 이제 명수는 촬영장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성규에게 소리도 질렀다. ... 어떡하지. 명수가 걱정하는 얼굴색을 비치자 동우가 또 걱정했다.

 

미안, 나 때문에...”

아니야, . 가자.”

 

명수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쩌면 동우에게 닮아버린 걸지도 모른다. 웃는 것을.

 

 

**

 

 

잠에서 깬 호원이 시간을 확인했다. 어라? 이렇게 달게 많이 잤었나. 벌써 저녁 8시였다. 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미친 듯이 잤네.”

 

데뷔를 하고 난 뒤 신나게 놀기만 했다. 그래서 잠을 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놀기도 하면서 일도 했으니까. 그래서 잠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호원은 잠을 회피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난 뒤에 오는 공허함이 싫었다. 호원은 잠을 피하기 위해 놀러 다녔다. 그리고 술에 취해 잠이 들었지만 술이 깨면 잠에서 깼다. 어질 거리는 머리를 하고서도 다시 잠에 들지는 않았다. 잠이 드는 게 싫어 멀뚱히 서서 휑한 거실을 보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침대에서 편하게 오래 잤다. 꿈 한 번 꾸지도 않고.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공허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뭐지. 이 만족감은. 괜히 집을 빙- 둘러 걸어봤지만 예전과 같은 공허함은 없었다. 신기해...

 

호원은 동우가 생각나 동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동우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회의 들어갔나? 호원은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나와 방송국에 갈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대본도 꺼내 읽어 보고. 혼자 대본 연습을 처음 해 본다. , 어색해 죽겠지만 뭔가 기분이 좋아서 더 오바스럽게 연기를 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대본을 읽으며 나름 분석도 해 본다. 기분이 좋다, 아주 좋다.

 

혼자 연습을 하는 중에 우현이 집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왠 종이 뭉치가 있었다.

 

뭐야, 벌써 쪽대본이야?”

아니야, 너 라디오 대본.”

대본? 이거 아니야?”

 

호원은 미리 라디오 대본도 보고 있었다. 미리 대본을 보지 않아 매일 더듬거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미리 연습까지 하다니. 우현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 하다 대본을 호원에게 넘겼다.

 

일주일 치 대본이야.”

아니, ?”

장작가 병가 냈어. 3일 동안 안 나온데. 그 다음에는 너 드라마 때문에 녹음방송 틀어야 하잖아. 그래서 일주일 치. 장작가가 실시간으로 문자나 이런 건 봐서 보내 준데.”

 

호원의 손에 들려진 대본의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진다. 장동우가 병가를 냈다고? ?

 

거짓말. 어제만 해도 멀쩡했는데?”

몸살이래.”

에헤- 그럴 만도 하지.”

그게 무슨 말이야?”

 

우현이 물으니 호원이 훗- 하고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중심을 가리키며 또 웃는다.

 

, 설마-”

합의하에 한 거야~”

장작가...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는데...”

사람은 겉으로는 모르는 거야...”

 

호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제 중심부를 툭- 하고 건드렸다.

 

이 놈이 실하긴 하지~”

미친 놈.”

, 출근. 출근!”

 

호원은 동우의 타 들어가는 속은 알지도 못 하고 집을 나섰다. 하루 쯤 쉬어 줘야지. 첫 경험일 텐데. 호원은 차에 타자마자 다시 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가 켜져 있었다. 하지만 바로 뚝- 하고 끊기는 수화음.

 

뭐야?”

 

기분이 나빠진 호원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뚝- 하고 끊겼다. 이건 분명히 통화 거부를 한 것이었다. 참 나... 까탈스럽기는.

 

누가 이기나 보자...”

 

호원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이번에는 받는다.

 

-...

이봐요, 아니... 좀 쿨해 지자고요.”

-...

하루 푹~ 쉬면 괜찮아 져... 알았죠?”

-호원씨는...

 

동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심상치 않은 동우의 목소리를 느낀 호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이 분위기는.

 

-호원씨는... 인간쓰레기예요.

, 뭐요?”

-사람 마음을 그렇게 가지고 놀지 말아요.

참 나... 본인도 즐겼으면서 이렇게 말 하면 안 되죠.”

-...

 

호원의 말에 동우의 눈에서는 주르륵- 하고 눈물이 흘렀다. 그대로 핸드폰 배터리를 빼고 핸드폰을 던졌다.

 

으흐- 어어헝- 흐어엉-”

 

눈물이 난 게 아니라 엉엉- 하고 울음이 터졌다. 반면 동우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자 호원은 다시 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기분이 나빴다. 아니, 합의하에 해 놓고 뭐가 이렇게 까탈스럽데? 마치 자신을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동우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동우의 전화는 받을 수 없는 상태였고 호원은 잔뜩 인상을 썼다.

 

, 장작가 전화 안 받아? 무슨 일 있어?”

이 사람 왜 이래? 무슨 조선시대 사람이야?”

.”

몰라, 샌님같은 소리 해. ~ 짜증 나. 기분 잡쳤어.”

 

호원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건들지 않는 게 방법이었다. 우현은 가만히 운전만 하며 방송국으로 향했다.

 

 

**

 

 

한참을 울던 동우는 그래도 방송 한 시간 전 핸드폰 배터리를 다시 끼우고 핸드폰을 켰다. 컴퓨터도 키고 라디오도 틀었다.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고 마음 같아서는 호원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지만 견뎠다. 그래도 책임을 져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니까... 동우는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호원이라는 이름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싫었다. 모르겠다. 이호원이 싫은 건지 이호원하고 잠을 잔 장동우가 싫은 건지. 아니면 이호원을 좋아한 미련한 장동우가 싫은 건지...

 

라디오가 시작되고 동우는 잔뜩 긴장을 했다. 자연스럽게 오프닝이 시작되었지만 호원의 목소리는 급하게 다운이 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의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오늘 오빠 무슨 일 있나? 목소리가 안 좋네...]

[호디제이! 무슨 일 있어요?]

[오빠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요...ㅠㅠㅠㅠㅠㅠ]

[호디제이 아픈가?ㅠㅠ]

 

, 싫다... 정말 아픈 사람은 자신인데. 톱스타라고 저렇게 쉴드 받는 구나. 동우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인상이 찌푸려졌다. 동우가 듣기에도 호원의 말투 하나하나가 날이 서 있었다. 기분이 나쁜 티를 팍팍 내는 호원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동우의 신경도 점점 날카로워 지고 있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동우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일단 일 할 건 해야 했으니까.

 

너무나도 사랑하던 일을 이렇게 힘들게 하니 몸도 마음도 다 지쳤다. 라디오가 끝나자마자 동우는 침대에 엎드렸다. 이불 속을 파고들면서 동우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흘렀다.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기에는 기운이 빠졌다. 눈물만 주륵- 흐르는 것에 동우는 또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힘들고 괴롭다. 그냥 잠에 빠지고 싶지만 빠지지 않는다. 동우의 손이 자동으로 핸드폰으로 뻗었다. 다정하게 다독여 주던 명수의 손길이 그리워졌다. 그거라도 없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

 

명수의 전화가 울렸다. 명수의 핸드폰 액정에는 동우형이라고 떴다. 명수의 앞에는 성규가 있었다. 동우의 이름이 뜬 것을 본 성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망설이던 명수는 성규의 앞에서 동우의 전화를 받았다.

 

, ... 무슨 일이야?”

-그냥... 나 너네집에 놀러가도 돼?

우리 집? 나 지금 밖이야...”

-그래? 알았어...

 

기운이 하나도 없는 동우의 목소리에 명수는 한 숨을 짧게 쉬었다. 제 앞에 있는 성규의 시선이 따가웠다.

 

, 내가 있다가 전화할게. ?”

-아냐, 괜찮아. 나 잘 거야. 피곤해...

알았어... 미안.”

-아니야, 고마워.

 

전화를 끊은 명수가 한 숨을 깊게 내 쉬었다.

 

한 숨 쉴 사람은 따로 있어.”

“...”

촬영 펑크. 어떡할 거야. 지금 너가 한 짓이 뭔지 알아? 지금 너가 한 짓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봤는지 알아?”

“...”

내가 화가 나는 건, 이 모든 게 김명수 너가 원인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한 사람이라는 거야!!!”

 

전혀 상관없는 한 사람? 명수는 숙였던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명수의 눈은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마.”

, 뭐라고?”

나한테 화를 내, 동우형한테 화 내지 말고. 지금 형은 동우형한테 화를 내고 있잖아!”

내가 그 정도 공과 사를 구분 못 할 것 같아?”

지금 못 하고 있잖아.”

 

명수의 말에 충격을 받은 성규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져 갔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마냥 머리가 울리고 모든 사고 회로가 멈췄다. 명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불이익? 촬영 지연? 김명수의 이미지? 그딴 거 다 형이 다 커버할 수 있는 능력 있잖아. 그리그건 형 본인이 더 잘 알잖아.”

“...”

그리고 나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어, 사과할 것 다 하고 오늘 촬영분은 모두 마쳤어. 내가 한 행동에 최소한의 책임은 졌어. 형은 그런 거에만 화를 내야 해, 그게 맞아. 하지만 형은 지금 동우형한테 화풀이를 하고 있잖아, 여기도 없는 사람한테.”

“...”

형한테 실망이야.”

 

명수는 성규의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성규는 깊은 한 숨을 쉬며 어지러운 머리를 짚었다. 김성규... 왜 이렇게 가벼워 졌어, 사람이.

 

 

**

 

 

명수가 사무실을 나와 향한 곳은 동우의 집이 아니라 호원의 집 앞이었다. 호원이 집 안에 있는 듯 불이 켜져 있었다. 명수는 망설임 없이 호원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고 호원은 명수의 방문에 의아해 하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어엇-”

 

명수는 그대로 호원의 멱살을 잡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신발을 신은 그대로 호원의 집 안으로 들어간 명수는 그대로 호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돌발 습격에 그대로 노출된 호원은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아려오는 아래턱이 아팠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호원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온 명수가 호원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 이 쓰레기 새끼야.”

?”

넌 사람 마음 그렇게 이용하지 마.”

뭐라는 거야, 지금? 이 새끼가-”

 

호원이 일어나려고 하자 명수는 바로 호원의 멱살을 잡아 호원을 내동댕이쳤다. 이미 한 대를 맞은 탓에 정신이 없던 호원은 힘없이 그대로 바닥으로 내던져 졌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섹스를 위한 게 아니야, 병신아.”

?”

넌 동우형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거야!”

“... 장동우?”

형이 매일 웃고 다니고 그래서 가볍게 본 모양인데. 그 사람 너가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건드릴 사람 아니야, 이 발정난 자식아.”

 

명수는 호원을 노려보다 그대로 호원의 집을 나섰다. 멍하게 있던 호원은 몸을 고쳐 앉았다. 명수에게 맞은 턱이 아려왔다. 아린 턱을 매만지며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에 호원는 멍하게 앉았다. 명수가 무슨 말을 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단지 단 하나 생각나는 건. 자신이 동우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것... 그렇다는 것? 어째서 도대체 뭐가... 뭐가 잘못 된 거지. 도대체 어느 부분이... 호원은 불현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입고 차키를 챙겨 나갔다. 장동우. 장동우를 봐야겠다.

 

어떻게 연락이 닿는 데로 동우의 집을 찾은 호원은 동우의 집을 확인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원룸주택인 그 곳에서 동우는 살고 있었다. 동우의 집 앞으로 간 호원은 문을 두드렸다. 명수가 온 것으로 안 동우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동우의 앞에는 호원이 있었다. 놀란 눈으로 호원을 본 동우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이호원이 있었다. ‘싫어.’ 동우의 뇌리를 스치는 단 하나의 말이었다. 동우는 다시 현관문을 닫으려 했지만 호원이 그 사이에 발을 집어넣고 힘으로 문을 억지로 열었다.

 

돌아가요, 당신 보기 싫어.”

사과 하고 싶어서 왔어요.”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내 앞에서 사라져요, 보기 싫다고!”

내가 미안해요.”

거짓말!!!”

 

동우가 악을 쓰며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와는 다른 동우의 모습에 놀란 호원이 멍하게 있었다. 동우는 벌개진 눈을 하고 호원을 밀쳐 밖으로 내 보냈다. 힘없이 뒷걸음질 친 호원의 앞으로 현관문이 단호하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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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마세요~

우리 엄마가 싸우면 나쁜 사람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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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헣 싸우지마요ㅠㅠㅠㅠ 얼른 화해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0년 전
별모양곰돌이
별모양곰돌이! (ㅋㅋㅋㅋ)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해용~
10년 전
독자3
싸우면 나쁜사람 ㅠㅠㅠㅠㅠ근데 호원이는 좀 맞아도 싼거같아요 ㅜㅠㅠㅠㅠㅠ 상호합의간이였다지만ㅈ진짜 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감성 이에요 ㅠㅜ 음....뭔가 동우의 오해에서 비롯해서 많은게 꼬인것같은 ㅠㅠ 으힝 동우야 호원이의 진심을 듣지 않고 그러면안돼 그러지마 ㅜ
10년 전
별모양곰돌이
오해는 곧 풀릴거에요ㅠㅠ
10년 전
독자5
허헐...ㅠㅠㅡ싸우지마ㅜㅠ생각이많아진 동우가 능글거리는 호원이의 말에 더 화가나고 상처받았겠어요.. ㅠㅠㅠ엉엉 호야 어서 니 진심은 그게아니라고말해ㅠㅜ어서어서ㅠㅠ우리동우 어케여ㅠㅠ
10년 전
독자6
ㅠㅠㅠㅠㅠ으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음편 빨리 보러갈게욮ㅍㅍㅍㅍㅍ 두큰두큰 ㅠㅠㅠㅠ
10년 전
독자7
양쪽 다 어후ㅠㅠ왜 이리 심각해져부렀대요..서로에 대해 터놓고 얘기도 하고 그랬으면 서로 마음대로 생각 안 하고 상처도 안 받았을 것 같은데..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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