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_ 어땠을까
Written by.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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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쌀쌀한 날씨가 콧대를 빨갛게 만들어버렸다. 루돌프, 오늘같은 날엔 딱 루돌프였다. 크게 숨을 들이쉬면 따라들어오는 식은 공기는 밤늦은 귀가시간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나에게 있어 하나뿐인 상쾌함이었다. 굵직한 파마를 한 머리는 정전기를 일으키지 않게 곱게 빗었고, 버스까지 끊긴 시간-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내렸다. 작은 굽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구두소리에 내 스스로 놀라 푸스스- 하고 웃음이 나오는 그런 날, 바로 오늘이었다. 차가운 날씨에 작은 물알갱이마저 차갑게 얼어붙어 내리는 오늘은 두껍게 입은 내 베이지색 코트위로 똑똑 눈을 녹아들여왔다. 안녕하세요- 이모. 빨간 비닐로 덮인 포장마는 이내 끄르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작은 내부에 울린 내 목소리에 다시 정겹게 어서오라며 받아주는 주인 이모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시 더 밝게 웃어주었다.
"오늘도 소주 골뱅이?"
당연하다는 듯이 메뉴를 읊어내는 주인이모에 나는 그저 생긋 웃어주었다. 이모는 참- 날 너무 좋아하나봐. 능청스런 대꾸에도 깔깔 웃으며 정을 한 번 더 심어주는 이모는 너무나 예뻤다. 저 이모에게도 나의 시절이- 나보다 더 어리고 여렸던, 고왔던 시절이 있겠지. 당연한 이야기면서도 언젠가 될 내 미래에 대한 조바심이 생겼다. 대학졸업하자마자 다행히도 된 취업에- 바쁜 일상.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일한 대가만큼 받아들이는 보수, 그리고 만족, 보람…. 난 만족했다, 정말로-. 하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확신은 내 인생을 건 커다란 베팅이었다. 찌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소주는 진한 알코올 향을 풀어내며 내 몸 속으로 타고 들어왔다.
"하- 이모도 젊었을 때 나처럼 고왔어요?"
"당연한 걸 묻네, 학생- 그래, 학생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도 참 고왔지."
"하긴, 제가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죠?"
이모는 그저 나처럼 푸스스- 그래, 푸스스 웃어주었다. 얼굴 가득 예쁜 미소를 담고 있는 이모를 뒤로하고 나 또한 쌀쌀한 날씨에 오소소 돋는 소름-. 얇은 바지만이 자리하고 있는 다리를 살짝 쓸었다. 여기다가 소주를 뿌리면 내 속처럼 뜨거워질까-. 멍청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돌린 시선에 옆자리에 앉은 그 남자는 열심히 속을 달구고 있었다. 무언가를 잊으려하거나- 생각하려 하고 싶지 않아 하고 있었다. 저 남자도 참 멍청하구나-, 그래 나만큼 멍청한 사람이 저기 또 있구나. 쓰디 쓴 소주가 다시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한 잔, 두 잔이 제 향마냥 쓰게 내 속을 채우기 시작할 때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제 얘기 좀 들어주실래요…."
아무런 응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애처로운 눈빛이 과거에 얽매이고 있는 나처럼- 미래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나처럼 너무나 외로워서, 슬퍼서-. 나는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드릴게요, 말씀하세요-. 그 남자는 한 잔 들이키고는 속이 뜨거운지 살짝 인상을 쓰다가 다시 풀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조차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고 그의 말이 찬찬히 이어졌다. 낮은 중저음-, 묵묵한 말소리. 내 귓가를 웅웅대는 음성이 너무나 달콤했다.
*
밤이 깊고-, 눈이 내리고 그 날이 제가 그 사람을 본 마지막 날이었어요. 제 집 앞에서 벌벌 떨면서 오랫동안 기다렸었나봐요. 코는 참 빨갛고, 입술은 색을 잃고-. 하얗던 얼굴은 더 많이 하얗게 질려있었어요. 아니 어쩌면, 창백하게 식어있었던 걸지도 몰라요. 워낙에 하얗던 사람이라서- 그래서 제가 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가까이하기도 두려웠던 그 사람은 그 날 밤 울고 있었어요…. 끼익-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 녹슨 대문에 열쇠를 꽂아넣는 소리와 이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는 참 고요한 적막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나한테 말을 걸었어요.
"갈게."
가긴 어딜가냐고, 그 몸으로 갈 수나 있겠느냐고 따지고 싶었어요. 아니- 따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동안 사귀는 동안 그 사람과의 이별, 만남- 그 모든 게 잦았으니까. 그날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했어요. 곧 제게 달려와서 잘못했다며- 대화가 필요하다며 눈물을 흘릴 그 사람을 떠올렸어요. 분명 제 잘못임에 틀림이 없고, 제가 바래야할 용서임에도- 저는 그저… 그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어요. 제 방 2층 창문에서 흘깃 내려다본다면 하얀 가로등 밑에서 밤새도록 기다릴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방에 올라가고…, 창문을 열어 슬쩍 바라본 가로등 밑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었어요. 하얀 커튼 사이에 가려졌을까 거칠게 창을 열고,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 있을까 고개를 내밀어보아도… 그 사람, 그 사람은 없었어요.
*
누군가 또 부스럭대는 비닐소리와 함께 포장마차를 떠나갔다. 또 한번의 적막이 찾아왔지만 딸려나온 차가운 공기는 다시 그 속을 북적이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없었다는 그 말 뒤로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소주를 들이켰다. 크으…. 쓴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고 알싸한 알코올의 향기가 내 코까지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아…직 그는 말을 끝마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요.' 궁금한 듯 살짝 꼬인 혀가 그의 귓가에 울리었겠지-. 나는 그 다음이야기가 궁금했다, 정말로. 아니 사실은 분명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인데도- 나는 그 끝을 바라고 있었다. 아니, 혹시- 나는 웬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을 지도 몰랐다.
"더 말할까요."
"편하신대로 하세요…."
그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지금보니 그는 접히는 눈이 참 예쁜 것 같았다. 시끄러운 포차안에서도 정확히 내리꽂히는 저 목소리도 참 고운 것 같았다. 귓가를 맴돌다 부드럽게 맺혀들어오는 음성-. 이전에 만났던 그 사람과 닮아있는 것 같아서 조금씩 찾아오는 어색함을 이겨낼 수는 없었지만, 난 충분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말하는 그가 불편해하지 않게, 그렇게 그는…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얀 입김이 이슬로 번져갔다.
*
계단을 타고 내려갔어요-. 구겨신은 운동화는 질퍽하게 현관을 울리고, 내리는 눈은 저 어깨에 소복히 쌓였어요. 그 때서야 저는 알아차린거에요, 제 잘못을요. 참 멍청하죠-. 그런데 이 멍청한 남자는 도무지 그 사람을 찾아갈 줄을 몰랐어요. 금새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던거죠. 정말… 도무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그 사람을 보냈어요. 그 쪽이라면 용서할 수 있으시겠어요?
그 사람과 제가 한창 뜨거웠을 때-, 보고있어도 또 다시 보고싶던 그 시절. 이 소주보다도 훨씬 더 뜨거웠어요. 이 타는 속보다 더 뜨거워서 어떻게 할 줄도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그냥 부어마셔도 제 가슴속에 새겨지는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술병에 남은 그 술들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에 불과하고…. 술병속에 남은 진한 알코올 향은… 제 미련이겠죠. 언제쯤 방구석에 방치해 둔 그 술병들은 언제쯤 버려야 하는 걸까요…. 저 참 그 사람을 고파했어요-. 보고파하고, 사랑을 고파하고-, 그 사람 자체를 고파하고…. 그랬어요, 저-.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에, 그 사람 품 속에서 조그맣게 속삭일 때, 그 때가 행복인 줄 알았더라면… 아마 저는 그 사람을 잡았겠죠-. 제 가슴팍에 파고 들어온 그 사람의 살결이 닿는 곳에서 느껴지는 맥박소리-, 지구상의 적도보다 뜨겁던 그 사람의 몸 속…. 이제서야 알았죠- 그게 사랑인지.
저, 왜 그랬을까요-. 어땠을까요, 제가 그 때 그 사람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요-. 그 날 밤 먼저 달려가서 그 사람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그랬다면 저 지금 그 사람과 함께 있을까요. 저, 정말 왜 그랬을까요-. 하…아, 그 땐 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던게 참 한심스러워요-. 헤어질 일 없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였는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저 그려보는 것 뿐이니까요.
*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이야기는 끝이 난 듯 싶었다. 다시 뜨거운 소주가 목 속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슬픈 이야기면서도 이미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든 듯 싶은 남자에게 있어서는 속 시원한 시간이었겠지-. 나는 배시시 웃어주며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지금은 그 사람 어디 사는 지 알아요? 내 질문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눈 앞에 살고 있진 않아요-, 근데 눈 감으면 살고 있어요. 둘 모두 다른 사람 품으로 흩어지겠지만 아마 그 사람도 같은 추억하고 있겠죠. 제 곁에 없더라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마 그 사람도 같은 추억하고 있을거에요."
"…, 하하- 많이 늦었네요. 전 이제 그만 들어가봐야겠어요."
"…네, 감사해요-."
그는 인상을 다시 예쁘게 웃어주었다. 조심히 들어가라며 인사까지 주고 받은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또로록 술을 부어내었다. 끄르륵-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리를 고쳐잡은 것 같았다. 이모- 저 가볼께요. 내 말을 뒤로 정많은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포차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여린 볼을 감싸왔다. 아씨… 왜 이리 추워. 술을 어느정도 마셨으니 좀 따뜻해질만도 하려만 얼마나 추운 날씨인지 도무지 따뜻할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다. 뽀드득- 뽀드득 대는 눈을 걸어가고 있을 즈음-, 누군가 내 뒤통수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저기요!"
"…네?"
"…어땠을 것 같아요?!"
"네…? 뭐…가요?"
"너랑 나 말이에요-. 그쪽도 제가 잡았다면 너랑 나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나 지금 그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만약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요…, 나 그러면 지금이라도 안아도 돼요?"
나는 그저 푸스스- 웃어주었다. 조금 긴 듯한 앞머리를 살짝 뒤로 넘기고는 크게 한숨도 쉬었다. 두 팔을 크게 벌려 양 옆으로 흔들었다가 두 손을 모아 입으로 모아주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쳐주었다.
"…저 지금 많이 행복해요!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 끝은 같았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더 아프지 말아요…. 우현아! 아프지마…, 그리고… 나는 이미 술병 다 갖다 버려서…, 괜찮아…. 조금만 조금만 아프고… 아프지마."
"…그래, 고마워-. 나도… 나도 오늘 밤 아무래도 그 술병들 다 갖다버려야겠지. 그래, 우리 내일은… 오늘처럼 다른 사람처럼 만나자…."
그 사람은 끝까지 나를 흔들게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곳에서 무슨 감정을 만들었다면- 그건 그냥 미련일 것이다, 아직 버리지 못한 술병처럼-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서 도무지 굴러나올 줄 모르는 그 술병처럼-. 끝난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남았다. 언젠가 또 다시 기억나겠지-. 이렇게 밤이 깊고-, 눈이 내리고 내가 그 사람을 기다렸던 그 날처럼-. 그래도 사실 나도 궁금했다. 만약 우리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 어땠을까. 어땠을까, 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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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오늘은 조각글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모티브는 싸이의 어땠을까- 입니다.
브금과 잘 어울리길 바라며, 저는 뿅!
헬로우, 마이 프렌드? |
우아, 내일 휴교한다, 앗싸 내일 또 15화 올려야징 하건가야징 뾰로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