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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렸던 '저능아'와 이어집니다, 어제 올렸던 글의 제목은 곧 수정할게요.
모자란 글 초록글까지 끌어올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혹시 1편을 못 보신 분들은 http://instiz.net/writing/184678 먼저 읽고 오셔야 이해가 편하십니다.
낯선 자들의 시간 02
w. 하프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괴롭다.
끝내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춘 민석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 그저 입술만 꾹, 깨물었다. 제 마음을 걸어 잠구듯 단호히 닫아버린 현관문 너머의 루한이 눈 앞에 끝없이 아른거린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내며 시작하는 하루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차갑게 내뱉던 말이 여전히 입가에 남아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그런 제 마음을 모른 체하며 오늘도 홀로 아픔을 견뎌내는건, 민석에겐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홀로 어둠 속에 남아 자신 만을 기다릴 루한조차.
지금 그 와의 관계를 도대체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있을까.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이 콧대 높던 그가, 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를 사랑하는 동안 내내 진심 한 자락 비춰주지 않던 루한이 어린 아이처럼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민석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얼굴을 붉혔고, 어쩌다 지나가듯 제 이름을 불러줄 때면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하게 웃었으며, 답답한 마음에 민석이 모질게 그를 내칠 때는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랬기에, 민석은 그를 완벽히 끊어낼 수가 없었다.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비정상적으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집착하는 루한을 애써 내쫓고 다시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석은, 그러지 못했다.
민석은 몇 번이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때의 루한이 지금의 반 만큼이라도 제게 마음을 보여줬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민석은 한 번도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루한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없었고, 바라는 것도 많지 않았다. 그냥, 그의 마음 구석진 곳 하나라도 자신이 들어설 수 있다면, 그걸로 다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저버린 건 루한 본인이였기에, 민석은 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민석은 떠났고, 그를 끊어냈다.
자신이 없던 한 달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때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루한은 하얗게 질렸고, 온 몸을 덜덜 떨어가면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하염없이 민석을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숨을 멈출 것 처럼 기겁하는 루한 탓에, 민석은 끝내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한결같은 루한의 반응에 민석은 결국 포기했다. 어찌 되었건 결론은 하나였다. 루한은 변했고, 그런 루한에게 민석은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 김민석씨는 오늘도 퇴근시간에 제일 먼저 뛰쳐나갈 예정인가? ”
잡념에 잠겨있던 민석의 정신을 깨운 건 제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물어오는 익숙한 음성이였다. 순간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하며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담기는 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종대였다. 민석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작게 미소지었다.
“ 내가 언제 그랬어. “
“ 김민석씨 양심 이거 안 되겠네? 매일 퇴근할 때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던 사람은 누군지 몰라. “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자신을 나무라는 종대에 민석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종대는 대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였다. 그리고 루한의 회사를 떠나온 후 갈 길을 잃고 방황하던 제게 새로운 자리를 소개해주었던, 고마운 은인이기도 했다. 종대의 소개로 들어 온 회사는 전에 다니던 회사와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자그마했고, 팀을 구성하는 인원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석은 지금의 회사를 좋아했다. 규모는 작아도 사원들 간의 정이 끈끈했고, 수입은 적어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표출할 수 있는 회사였다. 현재에 만족할 수록 과거는 더욱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질 뿐 이였다. 그 때의 내가 그 회사에서 맡았던 일은 무엇이였나. 루한의 정부? 섹스 파트너? 민석은 쓰게 웃었다.
“ 오늘은 퇴근 하고 술이나 한 잔 하자. 진짜 집에 꿀이라도 발라놨어? 김민석씨랑 술 한 잔 하기 더럽게 힘드네. “
상사의 귀를 피해 소곤소곤 말을 전하는 종대를 바라보던 민석이 머뭇, 대답을 주저했다. 민석아, 오늘도 늦게 들어올거야? 더듬더듬 한없이 떨리던 목소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제게 물었었다. 민석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그 커다란 두 눈을 그렁그렁한 채로 하염없이 민석을 바라보던 루한이였다. 그리고 꽉 얹힌 듯 답답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민석의 대답은, 무엇이였더라.
“ …그러자, 그럼. “
어. 늦게 들어올거야.
민석의 입에선 결국 루한이 가장 두려워 하던 대답이 돌아왔었고, 그 말에 루한은 속수무책으로 기운을 잃었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집에 있을 루한이 신경쓰여 지하철 하나를 놓칠까 뛰다시피 회사를 떠나는 자신이 싫어, 유독 더 날을 세워 뱉었던 거짓말이였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지금 현실이 되었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애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루한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무슨 바람이 들어 흔쾌히 수락하냐고 신이 난 종대의 음성과 함께, 민석은 질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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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한은, 잘 지낸데? ”
멈칫,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은 끝내 목적지에 도달치 못하고 허공에 멈추었다. 술자리를 제안 받았던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견했었던 질문이였지만, 불순물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던져진 질문은 역시 타격이 굉장했다. 루한이라는 이름 하나에 덜컥 굳어버린 민석을 예상했다는 듯, 종대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벌써 시간이 꽤 흘렀네. ”
“ ……. ”
“ 지금쯤이면, 한창 신혼을 즐기고 있으려나? ”
그러게. 지금쯤이면 달콤한 신혼 생활에 젖어있어야 할 루한이, 대체 왜 나에게 목을 매고 있을까. 민석의 대답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쓰디 쓴 술과 함께 삼켜졌다.
종대는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친구였다. 처음 입사를 하고 루한에게 반했던 순간부터, 루한을 피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일을 모두 털어놨았던 친구였다. 느즈막히 홀로 시작한 아픈 짝사랑을 혼자 견뎌내기엔 루한은 너무 지독했다. 민석은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고, 종대는 그런 민석의 아픈 외침을 말없이 보듬어 줄 대나무 밭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종대에게 조차, 민석은 루한의 변화를 털어놓지 못했다.
“ 잘…, 지내겠지. ”
“ ……. ”
“ 세상에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잖아.”
자신이 집을 나설 때 마다 세상을 잃은 듯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는 그는, 분명 세상에 아쉬울 것이 하나 없던 그 사람이 확실했다. 그랬기에 언제나 목을 매는 쪽은 이 쪽이였고, 집에 돌아갈 힘 조차 모자랄 만큼 피곤한 날에도 불평 한번 없이 그가 기다리는 호텔로 가야 했던 사람도, 물론 이 쪽이였다. 그랬던 우리가, 숨이 다 막혀오도록 길던 한 달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 그래, 그러겠네. ”
“ ……. ”
“ 근데, 너는 왜 아직까지 그렇게 못 지내냐. ”
“ ……. ”
“ 괴롭히기 딱 좋던 그 통통한 볼살이, 도대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
답답함이 잔뜩 깃든 종대의 음성 속엔 친구를 걱정하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가만히 종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민석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슬쩍 손을 올려 쓰다듬어 보는 볼은 제 손으로 만져도 홀쭉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민석은 그저 어깨를 으쓱 들어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민석을 묵묵히 지켜보던 종대가 착잡한 심정을 애써 눌러 담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아직도, 못 잊은거야? ”
그 질문에 민석은 주저없이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 아니, 다 잊었어. ”
“ ……. ”
“ 알 잖아, 나 한 달동안 떠났던 여행, 그냥 경치나 보러 갔던 거 아닌 거. ”
“ 그럼, ”
“ ……. ”
“ 왜 아직도 그렇게 괴로워 죽겠는 사람처럼 지내는 건데? ”
그리고 두 번째로 이어진 질문엔, 민석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목에 탁 걸린 대답을 도로 삼켜내기 위해 민석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런 민석을 바라보는 종대는 고맙게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민석의 침묵이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오랜 친구로서는 쉽사리 알아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다시 돌아 온 민석의 음성은, 보다 더 탁해져 있었다.
“ 다 잊었는데. ”
나는, 정말 다 잊었는데.
“ 아직은…, 힘이 드네. ”
싸늘한 내 시선을 홀로 견뎌내야 할 루한도, 그런 루한을 지켜보는, 나도.
“ 시간이 흐르면, ”
내가 루한에게 연민의 감정조차 느끼지 않을 때가 오게 된다면,
“ 괜찮아, 지겠지. ”
다시…,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 …그래. ”
“ ……. ”
“ 모든 일엔 시간이 약이 되는 법이니까. ”
“ …그렇지. ”
하지만 그 시간들이, 과연 우리에게도 약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루한을 보면서 그 어떠한 감정조차 느끼지 않아도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민석의 마음이라도 읽어낸 듯, 종대는 아무런 말 없이 술병을 들어 민석의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쪼르르 술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채워지는 술잔을 말없이 바라보던 민석은 문득, 세상이 다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울고 싶어졌다. 루한과의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었던 순간부터 민석은 울지 못했다. 제 몫까지 대신 서럽게 울어주며 애틋하게 저를 바라보는 루한과 시선을 마주할 때면, 민석은 차마 눈물을 쏟아낼 수가 없었다. 부르튼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을 참아내는 것도 역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술잔 가득 채워진 술을 미련없이 입 안에 털어넣었다.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술은, 상처에 헐어버린 제 마음이라도 대변하듯, 유독 더 쓰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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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과 종대, 두 사람의 술자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쉼 없이 마셔대던 술은 금새 바닥을 드러냈고, 종대는 그 쯤에서 술자리를 정리했다. 술자리에서 함께 나누었던 대화 주제가 너무 씁쓸했기에 그랬던 것 인지, 둘 중 그 누구도 얼큰하게 취한 사람 한명 없었다. 내일 보자는 익숙한 인삿말과 함께 종대는 먼저 등을 돌렸고, 그런 종대가 점이 되도록 종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민석은 한참만에 발걸음을 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지만, 오늘은 유독 더 그랬다. 평소보다 한참이나 늦은 귀가 시간에,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해지는지 민석은 본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한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기로 다짐했던게 수십 번이였다. 그리고 그 다짐을 어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였다. 종대가 말했듯 항상 쫓기듯 집으로 돌아왔다. 일분이라도 더 단축하려 걸음을 재촉하던 본인이였다. 이젠 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것 인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관계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현관문 앞에선 민석이 멈칫, 손을 멈추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꺼내 본 핸드폰이 가르키는 시간은 어느새 아홉시가 넘어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나니 마음은 한결 더 무거워졌다.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며 액정을 바라보던 민석이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는, 언제나처럼 경쾌하다.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잠금은 해제되었고, 민석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 ……. ”
그리고 곧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민석은 다시 한번 참담해졌다. 손잡이에 손을 놓자 문은 자연히 닫혀 경쾌한 알림음이 다시 문을 잠궈졌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숨막히는 정적은, 넓은 집에 오로지 둘만 존재한다는 것을 더 강조해주었다. 민석은 신발조차 벗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그대로 몸을 숙여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신발장에 등을 기댄 채 잠이 든 루한의 얼굴이 한결 더 가까워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 마음을 들었다 놓던 잘난 얼굴은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루한은 여전히 샘이 날 정도록 눈이 부셨다. 감긴 두 눈을 덮는 긴 속눈썹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 서럽게 쏟아냈을 눈물에 촉촉히 젖어든 눈가도, 지독하도록 눈이 부셨다. 민석은 할 말을 잃고 그 잘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아 정신을 못차리게 했던 그 잘난 얼굴을.
민석은 다시금 울고 싶어졌다. 허나 저 대신 하루종일 눈물을 쏟았을 루한 때문에, 민석은 다시 한번 울음을 삼켰다. 넋을 놓고 루한을 바라보던 민석의 손이 저도 모르게 그에게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손이 젖은 눈가에 다다를 무렵, 편안히 감겼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민석은 서둘러 손을 거뒀다. 잠에서 막 깨어나 멍하니 제 앞의 광경을 바라보던 루한의 두 눈이 금새 휘둥그레 해졌고, 두 눈가는 머지않아 다시금 눈물이 맺혀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석이 미련없이 몸을 일으켰다.
“ 민, 민석아…, 민석아…. ”
등 뒤로 이어지는 애절한 목소리에도 민석은 대답없이 거실의 불을 켰다. 갑작스레 환해지는 내부에 민석이 눈을 찌푸렸다. 고기냄새가 짙게 배어든 외투를 벗어 대충 소파 위로 던져놓았다.
“ 왜, 왜, 늦게왔어, 민, 민석이 안 오, 오는 줄 알고…. ”
목소리 하나하나에 짙은 그리움이 가득한 것이 기가 막혔다. 민석은 하염없이 제 이름만 부르며 제 뒤를 쫓는 루한을 애써 모른 체 했다. 여느 때 처럼 가장 먼저 벗어던지는 넥타이에 조차 고기냄새가 배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민석은 문득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 너, 거기서 얼마나 그러고 있었어. ”
“ 어? 어, 어, 나, 나는, 민, 민석이 가, 가고, ”
“ 계속 그러고 있었어? ”
“ 응, 으응. 민석이가 언, 언제 올지 모, 몰라서…. ”
민석이 제게 말을 걸어 줄 때면, 루한은 유독 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민석을 향한 떨림 때문이라는 것은 몹시 뚜렷한 사실이였다. 민석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건네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루한은 민석을 용서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가 민석을 미워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 인지도 모른다. 루한은 젖은 눈을 그대로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루한을 말없이 바라보던 민석이 문득 자리를 옮겼다. 순간 자리를 뜨는 민석에 루한의 두 눈이 서둘러 민석을 쫓았고, 민석이 향하는 곳이 어딘 지를 알아챌 쯤에는, 절로 의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민석아, 배, 배고파? ”
그렇지 않아도 가녀린 민석이 밥이라도 굶은 것인지, 주저없이 부엌으로 향한 민석이 곧바로 냉장고 문을 열어 밑반찬을 꺼내드는 모습에 루한은 걱정이 되었다. 아침해가 들어가고 칠흙같은 어둠이 찾아올 때 까지 민석이 밥이라도 굶은 것일까, 루한은 속상함에 다시금 눈물이 맺혀오는 것만 같았다.
“ 왜, 왜 밥 안 먹었어…, 배, 배고프면 안 돼, 민석아…, ”
걱정이 가득한 루한의 목소리에도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꺼낸 밑반찬을 식탁에 내려놓고, 식은 국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주저없이 밥그릇을 꺼내들어 한 그릇을 퍼낸 민석이 멈칫,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민석은 두 번째 밥그릇에도 넉넉히 밥을 담아내었다. 막 밥솥에서 나온 밥은 윤기가 흘렀다. 왜 배가 고프냐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루한의 말을 무시한 채, 민석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민석이 홀로 만들어낸 밥상은, 그 누가봐도 두 사람을 위한 식단이였다. 금새 열이 달아오른 냄비 속의 국이 펄펄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민석은 미련없이 가스불을 껐다. 냄비받침을 끌어당겨 식탁 한 가운데에 그대로 냄비를 내려놓은 민석이 식탁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숟가락을 들어 올린 민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혼자 먹기 싫으니까, 앉아. ”
“ 어, 어? ”
“ 밥 혼자 먹는거 싫으니까 빨리 앉아서 먹으라고. ”
“ 어, 응, 응! 아, 알았어! ”
루한은 쏜살같이 달려 와 민석의 맞은 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 후엔 민석이 차려 준 따뜻한 밥상에 절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루 종일 현관앞에 쪼그려 앉아 있느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던 루한이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을리 없었다. 그랬기에 루한은 바삐 숟가락을 들어올렸고, 정신없이 입으로 음식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런 루한을 몰래 지켜보던 민석이, 애써 루한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크게 밥을 떠낸 숟가락을 바라보던 민석이 한숨을 삼켰다.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과 따뜻한 국 조차 목구멍까지 차오른 음식 탓에 반갑지 못했다. 그러나 민석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민석의, 두 번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제 올린 글의 덧글을 보는데 현실 오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ㅠㅠㅠㅠ
덧글이 30개가 넘어갈 때부터 이게 꿈인가 싶어 눈을 다 비볐는데 초록글 2페이지까지 올라간 것도 모자라,
덧글이 100개가 넘어가다니요ㅠㅠㅠㅠㅠㅠㅠ 글잡담의 특성상 이런 류의 글은 인기가 약한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꿈같은 덧글을 받게되어 연재를 결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ㅠㅠㅠㅠ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ㅠㅠㅠ
그리고 지난편에서 암호닉을 신청해주신 홍삼님과, zio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