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들의 시간 06
w. 하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커지는 빗소리에, 민석은 몸을 일으켜 병실의 창문을 닫았다.
눈을 감은 루한은 아름다웠다. 달리 어울릴 단어를 찾아낼 수 없을 만큼, 루한은 그랬다. 티끌하나 묻지 않은 하얀 병원복을 입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루한은, 형용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눈을 뜨지 않는 하얀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리던 민석이 손을 멈추었다. 그리곤 비어있던 다른 손을 뻗었다. 곱게 감은 두 눈을 덮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머리가, 많이 길었구나. 언제나 윤기가 흐르던 그의 머리가 푸석해져 있었다. 민석은 그 머리를 천천히, 천천히 쓸어 올렸다.
잔인하던 민석은 더는 잔인하지 못했다. 그를 찾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다. 애당초 타인에 의해 옮겨졌던 발걸음이었고, 그랬기에 민석은 홀로 다짐했었다. 이제 루한을 찾아가는 일은, 정말 없을거라고. 허나 눈을 감은 루한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지 못했다. 민석은 이제 자신을 잃었다. 변화는 없었다. 아픈 얼굴로 눈을 감고 누워있는 루한을 보는 민석의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온기를 잃은 루한의 손등을 감싸쥐었던 그 날, 민석은 차마 그를 내버려둔 채 떠날 수 없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이 되었다. 루한은, 여전히 잠에 들어 있었다.
민석은 매일 오후 병원으로 퇴근했다. 불편한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채, 그렇게 달려와 대답없는 자의 옆자리를 지켰다. 민석이 하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그저 그의 옆을 지키고 앉아, 그의 잠든 얼굴을 지켜보는 것. 이따금씩 그의 손을 쥐어볼 때도 있었다. 허나 민석은 마음편히 그의 손을 잡아보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그가 눈을 뜨고 제 숨을 조여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민석은, 언제나 멀찍이 앉아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세상의 사람을 지켜보듯, 그렇게 멀찌감치. 말 한마디 한 번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 지난 후 이어지는 귀가는, 매일밤 늦어졌다. 그를 멍하니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민석은 두려웠다. 그가 눈을 뜬 후 시작될 일상도, 그가 눈을 뜨지 않을 어둠도. 둘 중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루하루 그를 지켜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무엇이 더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그를 지켜보는 시간 내내 정체모를 불안감에 떨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초조함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민석은 그를 떠날 수 없었다.
“ 식사는, 하셨습니까. ”
손에 쥐었던 젖은 수건을 내려놓았을 무렵, 등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젖어들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상대를 예측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 아니요. 이제, 먹어야죠. ”
건조한 대답과 함께 민석은 몸을 일으켰다. 문 앞에 자리한 준면은 오늘도 언제나처럼 말끔했다. 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물끄러미 마주하던 민석이, 입을 열었다.
“ 준면씨는, 드셨어요? ”
“ ……. ”
“ 안 먹었으면 같이 먹어요. ”
“ ……. ”
“ 밥 먹을 때라도, 말 상대가 있으면 좋잖아요. ”
준면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민석은 그의 답을 전해들었다. 민석은 보조의자를 한 켠으로 밀어두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전, 당연하듯 루한에게로 시선이 닿았다. 민석은 괜스레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를 감싼 이불을 두어번 토닥인 민석이, 그제서야 발을 떼었다. 문가에 다다르자 준면은 문을 열어주었다. 민석이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자, 그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뒤따라 준면도 그의 병실을 빠져나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병실의 복도를 울렸다.
준면은 말이 많지 않았다. 한 마디를 꺼내기 전, 열 번은 더 고민하고 생각하여 말을 고른다. 그런 그가 타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잦지 않다. 민석과 나란히 걸음을 옮길 때에도, 그는 흔한 농담 한 번 꺼내지 않은 채 묵묵히 발을 맞춘다. 민석은 그의 침묵이 익숙해졌다. 숨소리 하나도 편히 내는 일 없는 그의 몸에 벤 배려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민석은 새삼 실감했다. 자신을 찾아와 루한의 이야기를 전하며, 부탁을 전했던 그날의 그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답지 않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기까지 했었다. 민석은 문득, 루한이 부러워졌다. 이런 이를 곁에 둔 그는, 얼마나 든든했을까. 이런 이를 곁에 두고도, 루한은 왜 보잘 것 없는 저에게 그렇게 매달렸을까. 민석은, 끝내 답을 내지 못했다.
둘은 한식코너에 마주 앉았다. 갓 끓여진 찌개가 여전히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열을 내고 있었다. 민석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식욕은 없었지만 버릇처럼 식사를 시작했다. 홀쭉하게 볼이 들어간 루한을 대신하듯, 눈을 감은 그를 다시 찾아왔던 날을 계기삼아, 민석은 언제나 그렇게 꾸역꾸역 식사를 이어나갔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억지로 삼키는 음식은 역겨웠지만 식사를 멈출 순 없었다. 기계처럼 식사를 이어가다 문득, 민석은 앞자리의 남자가 신경쓰였다. 고개를 숙인 채 홀로 식사를 이어가는 자신에 비해 앞자리의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민석을 기다렸다는 듯이, 준면은 그렇게 민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석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 왜, 안 드세요? ”
“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
“ ……. ”
“ 실례가 될까요. ”
그 조심스러운 서두를 거절할 수 있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랬기에 민석은 별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뭔데요? ”
“ ……. ”
“ 괜찮아요. ”
“ ……. ”
“ 말씀해 보세요. ”
더는 그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들이 두렵지 않았다. 민석은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준면은 아무 말 없이 제 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민석은 그가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루한군이 깨어난다면, ”
“ ……. ”
“ 이 곳을 찾으시는 발걸음도, ”
“ ……. ”
“ 멈추실, 예정이십니까. ”
준면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덤덤하게 그의 말을 기다리던 민석조차 멈칫, 굳어버렸을 만큼 직설적이었다. 민석은, 멍해졌다.
쉽사리 답을 꺼낼 수 없었다. 민석, 본인조차 차마 자신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루한이 깨어난다면, 하루가 멀다하고 그를 찾아왔던 발걸음도, 멈출 수 있을까. 민석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길다면 길었던 시간동안 민석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노력했었다. 그를 놓기 위해선, 못할 일이 없었기에. 한 달을 울어보았고,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해봤으며, 잊을 무렵이면 언제나 자신을 찾아와 괴롭히는 고질병이 생겼다. 더 이상, 민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 ……그 때, 회사를 떠나오면서. ”
잠긴 민석의 목소리는 탁했다. 준면은 묵묵히 그에게로 귀를 기울였다.
“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울어봤어요. ”
“ ……. ”
“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람이 너무, 너무 좋아서, ”
“ ……. ”
“ 그래서, 정말 다음날 눈을 뜰 수조차 없을만큼, 그렇게 울어봤어요. ”
타지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민석은 그렇게 울었었다. 울음소리 하나 편히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울었었다.
“ 한 달이었어요. ”
“ ……. ”
“ 내가 루한을 잊기 위해, 나에게 주었던 시간이. ”
“ ……. ”
“ 그 한 달이 얼마나 길고, 서러웠는지, 준면씨는 모르죠. ”
“ ……. ”
“ 나, 되게 힘들었어요, 그 때. ”
죽고 싶을 만큼 괴롭던 그 때가, 어제처럼 생생했다.
“ 그리고 돌아왔을 땐, ”
“ ……. ”
“ 다……, 소용이 없었어요. ”
“ ……. ”
“ 루한이 있었고, ”
“ ……. ”
“ 나는 루한을 내치지 못했으니까. ”
표정없이 민석을 바라보던 준면이,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준면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민석을, 더 이상 바라볼 자신이 없어졌다.
“ 의미없는 시간이 또 흘렀어요. ”
“ ……. ”
“ 루한을 내치지 못했지만, ”
“ ……. ”
“ 루한을 용서하지 못했거든요. ”
“ ……. ”
“ 루한은, 하루하루 상처 받았을 거에요. ”
“ ……. ”
“ 그리고 그런 루한을 지켜보던, 나도. ”
꾸역꾸역 이어지는 말소리가 힘겨웠다. 준면은 마른 침을 삼켰다.
“ 도저히, 못하겠어서. ”
“ ……. ”
“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아서, ”
“ ……. ”
“ 그래서 보냈던거에요, 루한. ”
“ ……. ”
“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간신히, 정말 간신히 보낸거였어요. ”
“ ……. ”
“ 루한을 보내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 ……. ”
“ 그래도 나는, 점점 괜찮아지고 있었어요. ”
민석은, 점점 숨을 쉬고 있었다. 칠흙같던 나날들을 견뎌낸 민석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 근데 내가 지금, 이 곳에 있어요. ”
“ ……. ”
“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울고, 아프고 힘들어 했었으면서, ”
“ ……. ”
“ 제 발로 이 곳에 와서, 날이 저물도록, 루한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
힘겨운 목소리로 민석은, 허탈한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이었다. 듣는 이가 다 가슴이 답답해져 올 만큼, 민석은 쓴 이야기를 전했다.
“ 준면씨. ”
“ ……. ”
“ 나는 정말……, ”
“ ……. ”
“ 어떻게……, 해야 돼요? ”
오래도록 이야기를 전하던 민석은, 끝내 준면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 길었던 이야기의 끝에 다다랐을 땐,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돼요. 민석은 울지 않았다. 이 정도 일에 울기엔, 그동안 견뎌온 자신의 시간들이 아까웠다. 민석은 울지 않았다. 다만, 미소 지었다. 쳐져있던 입꼬리를 끌어올려, 준면을 보며 웃었다. 다시 눈을 맞춘 준면이, 민석의 미소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준면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웃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그에게,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싶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죄송합니다. ”
길었던 침묵 끝에, 준면은 사과했다. 그 때의 민석은, 웃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사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에, 민석은 더 이상 미소를 이어갈 수 없었다. 민석은 내려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었다. 괴로운 얼굴로 자신을 지켜보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었다.
“ 어서, 드세요. ”
“ ……. ”
“ 다, 식었겠다. ”
준면은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뒤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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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면을 오랜 기간 보았던 것은 아니였지만, 민석은 오늘 처음으로 그가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나 단정하던 그가 탁한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단 한번도 흐트러진 적 없이 말끔한 모습을 보이던 준면이 자신과 헤어진 후 담배를 꺼내든 모습을 목격했을 땐, 민석은 조금 씁쓸해졌다. 자신의 이야기가, 타인에게조차 쓴 이야기였다는 것이, 새삼 자각되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오래도록 연기를 토해내던 그를 지켜보던 민석은, 독한 연기로 쓰린 속내를 달랠 수 있는 준면이 사무치게 부러워졌다.
민석은 당연하듯 다시 그의 병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을 토해냈다. 더 이상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민석은 그저 버릇처럼 그에게로 돌아갔다. 생각치도 않았던 대화 주제로 인해 가볍게 시작했던 늦은 식사가 늦게까지 이어졌기에, 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어느새 얼굴이 익어버린 간호사들이 제게 인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못했다. 이런 것까지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요즘 들어 무리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민석은 유독 피곤했다. 이유없이 이어지는 두통이 잦아졌으며, 동료들이 걱정을 아끼지 않을 만큼, 짙은 피로에 눈 밑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나마 주말이 다가오는 것으로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한 시간이라도 더 눈을 붙일 수 있겠지. 민석은 피곤한 눈을 부비적거리며, 씁쓸한 마음으로 병실의 문을 열었다. 감흥없이 무덤덤하게 병실에 들어선 채 문을 닫던 민석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민석의 얼굴이 삽시간에 멍해졌다.
“ ……. ”
일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앉아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모습이 비현실적이었다. 환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민석은 쉽사리 그에게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멀었던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쉽사리 인식이 되지 않았다.
루한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예민한 루한이 인기척을 느끼지 않았을리가 없다. 허나 루한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 밖엔 여전히 비가 내렸다. 아까보다 거세진 빗줄기에 밖의 풍경은 보다 흐릿해져 있었다. 민석은 그렇게 굳어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석이 꾸역꾸역 입을 연 것은, 침묵이 오래도록 길게 지속되었을 무렵이었다.
“ 잘, 잤어? ”
간신히 꺼내든 말은 고작 그것이 다였다. 달리 다른 말을 전할 수가 없어, 민석은 그렇게 바보같은 인삿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러나 루한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민석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하나 떼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가야할 멀지 않은 거리가, 유독 더 멀게만 느껴졌다. 루한. 민석은 힘겹게 그를 불렀다. 눈을 뜬 그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허나 루한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민석은 한숨을 삼키며,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 루한. ”
“ ……. ”
“ 며칠을…, 잔 거야. ”
“ ……. ”
“ 너……, 누가 이렇게 생각없는 행동…, ”
솟구치는 감정을 애써 눌러담으며 차분히 말을 이어가던 민석은, 차마 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무치도록 멀게 느껴지던 그 걸음의 끝에, 루한의 곁으로 다가오고 나서야, 비로소 민석은 알 수 있었다. 루한은, 울고 있었다.
“ ……. ”
그의 눈물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루한은 웃는 날보다 눈물을 흘리는 날이 더 잦았다. 그럴때마다 민석은 괴로웠지만,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버리면,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와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허나, 오늘의 민석은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이 눈물로 젖어들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남자는, 울음소리 한 자락 흘려보내지 못했다. 우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는 사람이 다 마음이 아려올 만큼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의 하반신을 덮은 이불이 젖어 얼룩져 있었다. 민석은 서둘러 입술을 지그시 베어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떨리는 숨소리가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 루한……. ”
“ ……. ”
“ 루한아, ”
“ 잘…못 했어……. ”
“ ……. ”
“ 잘못…했어……. ”
쥐어짜듯 힘겹게 나오는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며칠만에 눈을 뜬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그것이라는 것에, 민석은 할 말을 잃었다. 제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루한은 몸을 떨었다. 고집스레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옮기지 않으면서도, 루한은 분명,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민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서있던 민석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호흡을 고르던 민석이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들었다. 루한은 여전히, 민석을 보지 않았다.
“ 루한, ”
“ 잘못, 잘못했어……. ”
“ 하…, 루한. ”
“ 잘못했어, 민석아, 잘못……. ”
“ 고개, 돌려 봐. ”
“ 내가 잘, 잘못했어……. ”
“ 알았으니까, 나 좀 봐봐. 루한아. ”
“ 민, 민석이는, 나를 싫, 싫어해. ”
“ ……. ”
“ 나, 나는 민석이를 보면 안 돼. ”
“ ……. ”
“ 그, 그러면, 민, 민석이가 싫어하니까……. ”
민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했던 말에 되려 상처 받았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루한이 힙겹게 이불을 붙잡고 있었다. 울음소리를 내보이지 않으려 깨문 입술에서 피가 베어나오고 있음에도, 루한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있는 대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괴로웠다. 민석은 토해내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 민, 민석이가 나를 싫어해……. ”
“ ……. ”
“ 민석이는, 나, 나를 싫어해……. ”
민석은, 찢어진 마음을 다잡을 겨를도 없이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억세게 그의 팔을 잡아 쥐자 루한이 흠칫,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맞추자, 젖은 그의 눈이 처음으로 민석을 보았다. 그의 얼굴을 감싸쥔 손이 금새 축축히 젖어들었다. 민석은,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빨갛게 충혈된 그의 눈이 아팠다. 민석의 얼굴을 마주한 루한이 더 이상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넋을 놓은 사람처럼 민석을 바라보는 루한은 끊임없이 눈물을 떨어트렸다.
“ 민석아, 민석, 민석아……. ”
민석은 차마 견딜 수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오직 자신 때문에 숨이 멎도록 눈물을 쏟아내는 자를 사정없이 내칠 만큼, 민석은 잔인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바보같은 루한은 그렇게 하염없이 자신의 이름만 되뇌였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행여나 제 말 하나로 민석에게 또다시 미움받게 될까, 루한은 그렇게 민석의 이름 하나만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이를 눈 앞에 두고 견딜 수 있을까. 민석은, 결국 울컥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그에게로 몸을 숙였다. 처음 그를 떠난 후로 처음이였다. 민석이, 루한을 품에 안은 것은.
“ 민, 민석아, 민석아……. ”
“ …응, 나 여기 있어. ”
“ 민석아, 나, 내가 잘, 잘못했어……. ”
“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
정처 없이 허공을 헤매던 루한의 팔이 민석을 감쌌다. 민석은, 어린아이처럼 부들부들 몸을 떠는 루한의 등을 토닥, 토닥, 가만히 다독였다. 그의 다독임이 더해질수록 민석을 감싸안은 루한의 팔에 힘이 실렸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사람을 붙잡은 것처럼, 루한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민석의 옷을 움켜쥐었다. 루한이 처음으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괴롭게 참아내던 그 울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루한이 처음으로 소리내어 눈물을 흘렸다. 민석을 안고서도 루한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들바들 몸을 떠는 그는 쉽사리 안정을 찾지 못했다.
“ 민석아, 민, 민석아……. ”
“ ……. ”
“ 나, 나 싫어하지 마, 나, 나 싫어하지 마……. ”
“ ……. ”
“ 제, 제발, ”
“ ……. ”
“ 나, 버리지마……. ”
“ ……. ”
“ 떠, 떠나지마, 민석아……. ”
“ ……. ”
“ 민석아 가지마……. ”
민석은 그의 등을 다독이던 손을 멈추었다. 민석은 그대로 몸에 힘을 풀었다. 스르륵 제 품에 쏟아지는 민석에 루한이 움찔, 몸을 떨었다. 자신을 밀어낼까, 두려웠던 것이다. 허나 민석은 그러지 않았다. 힘을 뺀 민석은 그의 어깨로 얼굴을 묻었다. 루한은 그 와중에도 품 안의 민석을 몇 번이고 고쳐안았다. 그렇게 축 쳐져 루한의 품에 안겨있던 민석이,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응, 안 갈게…. ”
그날의 민석은, 결국 그의 품에서 눈물을 쏟아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 늦었지만 다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저는 어차피 해외에 살기에 명절이 큰 의미가 없습니닿ㅎㅎ.. 휴일따윈 없이 개처럼 일해야죠..하..
제 몫까지라도 다들 맛있는거 많이 챙겨드시고, 푹 쉬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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