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 엄마가 생겼다구요! 바쁜 아빠와 노란 병아리 - 0 w. 오구오꾹 시계와 적색 신호가 들어온 신호등을 눈이 아플정도로 번갈아가며 쳐다 보았다. 좀처럼 바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신호에 애가 타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차는 지나다니지도 않는데 신호 한번 더럽게 기네. 일시정지를 시켜놓은 듯, 도로 한 편에 멈춰있는 차와 달리 잘도 달려가고 있는 시간에 더 초조해져 여기저기 각질이 잔뜩 일어나 성한데 없는 입술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어댔다. 정적만이 가득한 차 안에서 요란스럽게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기가 무섭게 사정없이 엑셀을 밟아대며 험하게 차를 몰았다. 어린이집 입구 옆에 홀로 쭈구려 앉아서는 오매불망 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제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힐끔-. 차 내부에 빨갛게 빛을 내고 있는 시계를 확인해보니 마지막으로 본 시간보다 10분이나 더 훌쩍 지나있었다. 벌써부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 고서 자신을 새초롬하게 올려다보는 정국이가 눈에 선하다. 며칠 전에도 정국이와 약속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어린이집에 도착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하루 종일, 다음 날이 되어서까지도 저와 한마디 말을 하지 않으려는 정국이에 진땀을 한 바가지나 뺐었다. "아빠 미어! 정구기보다 일이 더 소중해?" 입까지 꾸욱- 다물 고선 볼 위로 후드둑 떨어지는 눈물을 옷소매를 끌어 훔쳐내는 정국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연거푸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이 잔뜩 뭉그러지도록 뽀뽀를 해댔었다. 아빠가 많이 미안해, 그래도 아빠는 정국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 사실만은 내일 하늘에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아빠는 우리 정국이 마음에 새겨주고 싶다. 영화계에 당당히 출사표를 내던진 나는 온 갖 역할을 도맡아 연기를 해왔다. 말이 좋아 역할이고 연기였지 저가 나온 부분은 주연배우에게 밀려 통편집 당하거나 겨우 스크린 모서리에 눈 한쪽 정도 나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 분명히 있다 더라니, 최근에 흥행하고 있는 영화에서 한 역할 톡톡히 챙긴 나는 순식간에 그동안의 노력과 모서리 배우라며 받아왔던 무시를 보상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냥 길을 걸어도 알아보던 사람 없던 과거의 배우 시절과 다르게 요즘은 저를 알아봐 줄 뿐더러 팬이라며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무방비하게 거리를 걸어 다니기라도 하면 저에게 모든 인파가 몰려 제 몸을 가누며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인 최근이었다. 인기가 있나 없나 다 불편하긴 불편한 건 매한가지다. 아빠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해주지 못 하는 저였기에. 정국이를 볼 면목도 없을 만큼 많이 미안하다만, 뒤늦게서야 주목을 받아 여러 곳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러브콜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물론 저의 아들이지만 저가 봐도 하늘에서 콩- 하고 떨어진 아기천사 같은 정국이를 얼른 보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고 집에서 폴리를 보며 같이 놀기도 싶지만 정국이와 저의 생계를 위해선 일이 있을 때 일을 해야만 했다. 저는 혼자가 아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자 아빠였고, 냄비근성의 대중들은 언제 또 식어버려 저를 잊을지 모르니까. 정국이의 말 따라, 제 앙증맞은 아들보다 일이 더 소중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린 나이에 그런 말까지 하며 저에게 서운한 마음을 서툴게나마 토해내는 정국이를 보며 가슴이 쿡쿡 아려왔다. 부족한 아빠가 너무 미안해, 사랑하는 아들. 어린이집 앞 길가에 대충 차를 주차해 놓고서는 차 문을 열고 나와 어린이집 안까지 잰 걸음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노란색 원복을 입고 저 구석에서 쭈구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어 자고 있는 정국이를 보니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항상 저가 올 때까지 정국이는 어린이집 문 앞을 지키고 있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말했다. "아, 아버님 오셨어요? 오늘도 정국이가 아빠 오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구요 ... 기다리다 결국에는 잠들었나 봐요." "아닙니다, 매번 감사해요." 선생님이 무어라 건네는 말을 귀담아들을 마음이 없었다. 놀이터에서의 흙이 잔뜩 묻어있는 신발장에 기대어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완두 콩알만 한 제 아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안쓰럽고 미안하고 제 속이 다 상했다. 문 앞이라 찬 바람이 든다고 어린이집 안에서 기다리라고 몇 번이나 말해뒀었는데 고분고분하게 제 말을 들을 정국이가 아니지. 조심조심, 쭈구려 앉아있는 정국이가 깨지 않게 제 잠바를 벗어 정국이를 감싼 뒤 번쩍 안아들어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초봄의 저녁은 아직 춥다.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동시에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 추운 밖에 정국이를 더 품 안으로 고쳐 안고는 대각선으로 삐딱하게 주차되어있는 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 정국이를 앉혔다. 조수석 의자를 살짝 뒤로 젖혀 기대게끔 해주고 정국이 전용으로 설치해둔 베이비 시트의 안전벨트도 꼭꼭 채워준 뒤, 아직 용케도 꿈나라에 있는 정국이의 짧게 볼에 뽀뽀를 하고는 문을 닫았다. 차에 시동을 걸자 정국이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빠아...- 정구이, 정구기 발이 너무 아파, 지지직 거려, 아야해. 호 해줘 호-." "정국이 많이 아파? 어느쪽 발이 아픈거야 응?" "두개 다아 아파- 아, 아빠 손대지마아! 정구기 더 아프다구우!" 강아지반 선생님 말도 안 듣고 부득부득 고집부려며 쭈구려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잔뜩 구부러져 있다 쭉 펴진 다리가 저려오나 보다. 발이 찌릿찌릿해. 아파, 정구기 아파-. 훌쩍훌쩍 울며 저린 발을 주물러주려 손을 가져다 대는 저를 밀어내며 짜증을 내는 정국이가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빠 웃지마앙! 정구기는 아빠 시러, 아빠 정구기 데리러 또 느께와써 ...-" 정구기는 아빠말고 엄마가 더 조아! 빨리 정구기 엉마 데리구 와! 아빠야- 정국이의 울음기 섞인 말소리에 무어라 대꾸도 못하며 묵묵히 운전대를 돌려가며 집으로 가고 있을 뿐이였다. 요새 부쩍 엄마를 찾는 제 어린 아들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아빠가 꼭꼭 숨겨놓았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엉마는 어디이써? 구래서 정구기 엉마 언제 와? 정구기는 엄마 사랑해. 엄마도 정구기 사랑해? 날마다 유치원에 다녀와서는 저에게 하는 질문이 죄다 엄마에 관한 질문들이였다. 엄마라는 단어가 정국이의 입에서 나오면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정국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을 할지. 순진한 아들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때만은 새삼 원망스럽다. "정구기도 엄마가 이쓰면 조케떠." "정국이 엄마 보고싶어?" "우웅-. 아빠야도 조아, 그런데 엉마가 보고싶어." 엄마를 찾는 와중에도 속 깊은 제 아들은 기특하게도 제 생각을 하는건지, 아빠도 좋아한다 말해오는 정국이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인채로 입을 내밀어 삐죽거리고 있는 정국이를 내려다봤다. 우리 귀여운 요 아들에게 어떻게 엄마를 만들어주지? "우리 쿠키, 내일은 어린이집 가지말고 집에서 엄마 만날까?" "웅? 어마? 정구기 엄마?" "엄마가 잠깐 정국이 보러 온대." "지짜? 엉마 정구기보러 와?" "엄마도 정국이가 많이 보고 싶대." 아이는 순진하다. 생글생글 웃으며 기대에 찬 눈망울에 저를 가득 담아내는 사랑스러운 아들의 눈을 마주 보았다. 사랑이 흘렀다. 집에 가는 차에서 다시 꾸벅, 고개를 못 가누며 졸고있는 정국이를 보며 하늘에서 빛을 내고 있는 수 많은 별의 개수만큼의 감정이 들었다. 우리 아들 정말 미안하고, 정말 사랑하고. 집에 도착하자 기특하게도 정국이는 알아서 느릿하게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오른손을 뻗어 정국이의 뒷머리를 쓸어 빗어주었다. 통통한 볼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고 나서야 시트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원복과 똑같은 샛노란 색의 가방을 챙기며 차에서 내리는 정국이를 따라 반 박자 느리게 차에서 내렸다. 제 손가락의 두 마디만 한 작은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저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도 이리저리 벗어버린 뒤, 도도도 달려가 소파 위에 누운 정국이는 곧바로 저의 손보다 한 참이나 큰 리모컨을 잡아들어 많은 채널 중 유일하게 딱 하나 알고 있는 만화채널 번호를 누른다. 어휴, 내가 버릇을 잘 못 들였어. "정국이 얼른 씻고 자야지." "으응, 이거 보고 자꺼아 치카치카느은- 안하고 시퍼" "그럼 내일 엄마 안오는데? 엄마는 입에서 똥 냄새나는 정국이 싫어해." "아빠야, 나 치약에 손이 안다아요 ...-" 엄마가 저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제 말에 화들짝 놀란 정국이는 곧장 소파에 내려와서는 제 손을 잡아 화장실로 끌고 가서는 손가락으로 치약을 가리켰다. 내려죠요, 치카치카 해야 해-. 치약을 꺼내 칫솔에 짜준 뒤 정국이 옆에 나란히 서서 느릿하게 칫솔질을 시작했다. 알아서 고양이 세수까지 하는 아들을 보며 아무 말없이 웃다가 동글동글한 머리통에 뽀뽀를 해주고 나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제 코낸내 하자, 우리 쿠키. 엄마 볼 생각에 가슴이 콩콩거려서 잠이가 안 온다며 쫑알거리는 제 아들을 안고는 같이 양을 셌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 양 네마리...- 그다음이 모지 아빠? 옆에서 중얼중얼 양을 세던 정국이는 열 마리까지 세다가 곯아떨어져버린 제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눈, 코, 입.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니 저와 닮은 구석은 어느 한 군데도 없다. 자는 아들의 옆을 조심조심 빠져나와 혼자서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을 끄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한참을 머뭇거리다 저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한데 내일 스케줄은 좀 빼줄 수 있을까요? 응 ... 아들때문에 그래, 부탁해요. 네, 네 고마워요. 늦은 저녁에 전화해서 미안해요. 쉬세요. 저를 혼내오려는 매니저에게 정국이를 언급하며 차분하게 말을 전했다. 모두에게 죄송하지만 내일은 정국이를 위한 날을 보내고 싶었다. 매니저와 전화가 끝나자 마자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제 엄마한테 전화 할 차례이다. 정국이가 엄마를 많이 보고싶어 해서 그러는데. 내일, 정국이를 보러 와줄 수 있냐고. - 항상 감사합니다 -♡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