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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난 지극히 평범했다. 평범한 부모님과 평범하게 학교를 입학하고,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평범하게 공부를 하기도 하고, 평범하게 다른 사춘기학생들과 같이 일탈도 꿈꿔보고, 평범하게 고민도 해보고,평범하게. 정말 지루할만큼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내 인생에 상처라던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그런 사건또한 없었다. 난 그저 평범한 17살 이성종이니까. 내 자신이라는 우주가 평범하기 때문에 내 주위로 몰려드는 수백개의 별도 평범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17살이되던 그 해 여름, 내 평범함을 바꾸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가고, 진기형네 집에 들어가기 전 그때까지는 나는 평범한 17살 이성종이었다.
그 당시 나는 평범한게 싫었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 상황도 한번쭘은 겪어보고 싶었고, 드라마 틱한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평범함이 싫었다. 내 평범함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평범함을 누군가는 미치도록 원하고, 바란다는것을.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 평범함은 사치라는것을.
언제나 느긋하고 평범한 환경속에서 내가 딱 한번, 급박함을 느낀적이 있다. 그것은 16살, 3일 동안의 폭설이 내린 뒤,겨울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 엄마가 오랜만에 작은어머니와 만나신다며, 나보고 거기 태민이라는 동갑애가 있으니 한번 같이 가자고 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던 때였다. 예전에 한번 만났다는 말때문이었을지 무엇때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때 당시 난 자석처럼 끌렸다. 기억도 안나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 애한테 그저 끌렸다고 할수밖에 없다.
"어머, 성종이도 왔네?! 안녕 성종아!"
반가워하시는 작은어머니의 꾸벅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다정하게 웃어주신다.
"우리 태민이 지금 방에 있으니까, 올라가봐- 내가 미리 말해놨어."
[네-]하고 대답을 한뒤, 우리 집 과는 너무 다르게 2층 까지 있는 이 집 좀 둘러볼겸,그 애를 만날겸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살펴보는데 미술에 관련된 전시물이 꽤 많다. 전시회장같은 느낌이 풍겨와 현대적이고 세련된게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까지했다. 계단을 다 오르고 그 애한테 가기 위해, 방이 단 하나 있는 그 곳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그 동선이 꽤나 짧아서 곧 방 문 앞에 도착했는데 노크를 할까 생각하다가 바람때문에 문이 조그만한 틈으로 내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수있을 정도의 틈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틈사이로 흐느끼는 듯한 젖은 목소리의 선율이 들려왔을때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 좁은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그 애, 이태민은. 금방이라도 사라질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래 정의 하자면 나비. 나비였다. 나비의 날개는 손으로 잡기만해도 바스라지는데 이태민이 그래보였다. 조그만 건드려도 바스라질것같았다. 나는 그렇게 울음소리가 끝날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주었고,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을때는 6분이 지났을때 그때 울음소리가 그쳤고 그제서야 노크를 세번이나 했다.
"누구세요."
"저기………이성종이라고…."
"……."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사라질것처럼 끝이날것처럼 울고있던 그 연약한 모습은 사라지고, 누구보다 강해보였다. 그것은 마치 암묵적으로 내게 말하는것 같았다. 건드리지마.죽어버릴지도 몰라. 날 건드리면 너도 같이 죽는거야. 강인함속 아직도 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에도 나는 생각했다. 저 강인함을 나도 갖고싶다 라고….
***
처음 진기형네 집에 갔던 날 밤이었다. 꿈에서 붉은 나비가 나왔다. 그 나비는 날개가 다 바스라진채, 힘겹게 날개짓을 하다가 검은 꽃의 떨어졌고, 곧 종현이형이 나타났다. 종현이형은 덜덜 떠는 모습으로 그 나비를 손으로 뭉게버렸고, 곧 꽃마저 시들어졌다. 종현이형은 그 꽃을 잡을것처럼 손을 뻗더니 곧 알수없는 표정을 짓고 돌아서지만 그대로 가지않고, 멈춰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듯 다시 뒤를 돌아 꽃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꽃은 갑작스레 보기만해도 살벌한 가시를 세웠고, 그 가시의 형이 찔릴까봐 나는 뛰어가 형을 잡았다. 고개를 두여번 젓자 형은 나와 꽃을 번갈아보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고 결심한듯 다시 꽃을 향해 손을 뻗었고, 내 기묘한 꿈은 여기서 끝이났다.
4시58분. 시계를 확인하니 잠든지 1시간도 안된 시간이었다. 자기 바로 직전까지 종현이형이 있었던것 같은데…꿈에서도 그렇고 괜시리 종현이형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내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종현이형이 밖에 나가지않을때 항상 잠이 들어있는 거실의 쇼파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다. 불안한 예감이 들어 조금 뛰어다니다시피 다니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신음소리? 조금 당황해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자 태민이의 방이 보였다. 조심히 아주 조심히,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다가갔다.
몇번이고 종현이형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격한 신음소리는 분명 태민이의 목소리였다. 순간 온몸의 핏기가 싹 다 가시는것 같았다. 말이돼? 남자랑 남자끼리?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덜덜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킨채 거기서 시간이 흐르는줄도 모르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러자 계단에서 뚜벅 뚜벅 발걸음소리가 들려 놀라서 옆에 있는 장식물들이 들어있는 큰 탁자 뒤에 몸을 숨겼고, 몰래 고개를 빼곰히 빼서 누군지를 확인하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민호형이었다. 민호형은 나와는 다르게 놀라지 않은 듯 보였고 문 앞에서 무언가를 꺼내 피기 시작한다. 곧 신음도 멎어가고, 종현이형이 방에서 나오고 민호형을 보고도 아무렇지않은지 담담하게 민호형이 피고 있덤 무언가를 빼앗아서 핀다.
"좀 조용히 할수없냐? 니들 소리가 2층을 울리고도 남더라."
"그래서 어쩌라고. 넌 여기서 자위라도 하지 그랬냐? 안꼴리냐?"
"내가 니 얼굴을 보면서 꼴려야겠냐? 아님 저 해골 얼굴 보면서 꼴려야겠냐? 저 마른거랑 섹스하고 싶냐? 나같으면 일단 뭐라도 존나 쳐먹인뒤로 섹스하겠다."
"쳐먹이긴 쳐먹였어. 마약."
"미친새끼."
"근데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냐? 이 형님이랑 섹스하고싶구나? 니가 깔려야하는데?"
"지랄하네 씨발 내 취향은 니새끼처럼 마약으로 미친 약쟁이 개새끼가 아니라 존나 도도한 여우라고. 알겠냐?"
"그 도도한 여우가 설마 김여사는 아니겠지?"
"와, 너 점집차려도 되겠다."
"김여사가 도도한여우? 지랄하고 있네. 그냥 지랄난 아줌마같더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려 하는데 민호형이 갑자기 진지해진 얼굴로 종현이형을 쳐다본다.
"뭐냐, 그 존나게 느끼한 눈빛은?"
"김종현."
"너 이딴 눈빛으로 여자 홀리냐? 어우 씨발 토 나온다."
"이성종이야 이태민이야."
"갑자기 이성종은 왜 갔다 붙이고, 이태민은 또 왜 끼냐?"
"너 아까보니까 이성종이랑 같이 있는것같던데, 뭔짓했냐?"
"뭔 짓 하기는."
"…한명만 해라."
"알아, 임마."
곧 종현이형이 졸리다면서 먼저 민호형을 앞질렀고, 민호형도 곧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발걸음을 돌려 기범이형이 자고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복잡해. 복잡하다. 이렇게 복잡한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
내가 온지 2주째가 되던 그날 저녁. 저녁을 먹으려고 밥을 차렸는데 태민이가 돌아오지 않아, 혹시 모르니 따로 남겨놨다. 그럼에도 몇시간이 지나도 오지않아 진기형은 [알아서 먹고 오겠지.]하고 퍽 여유로운 소리를 했고, 할수없이 상하지않게 냉장고에 넣고 형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 티비를 보는데 종현이형이 내 허벅지를 배고 눕는다. 처음에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살짝 굳기도 했는데 잠을 자는건지 조용해지는 모습이 왠지 사뭇 귀여워 보여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기범이형이 과일을 예쁘게 깎아주면 먹으라고 건네길래 냉큼 받아먹었다. 얼마나 지난걸까 나는 기범이형이랑 진기형이랑 웃으면서 계속 수다를 떨었고, 종현이형은 자고, 민호형은 티비 속 축구때문에 완전히 흥분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태민이가 들어왔다. 평소라면 [나 왔어-]하고 작게나마 소리라도 해주곤 하는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비의 젖은 모습도 그랬고, 피가 보이는것 같기도 하고, 옷은 더럽혀져 있었다. 무슨일이지? 걱정이되서 혹시 몰라 갖고 온 담요를 둥굴게 말아 베개처럼 한 뒤, 종현이형의 머리를 살며시 올리고 일어서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저녁식사때 상하지않게 넣어둔 음식들을 꺼내고, 따뜻하게 데운 다음 부엌을 나왔는데 종현이형이 그새 없길래 불편해서 방에 들어가 자는 구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쟁반의 모두 예쁘게 담아서 가져가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종현이형이 그게 뭐냐는듯 쳐다보길래 [태민이 밥 주려고….] 하니까 표정이 묘하게 굳는다.
"그냥 냅두고 이리와."
"그래도…요즘 태민이 자꾸 말라서 걱정된단 말이에요."
"야 이진기!"
"왜-"
"이거 니가 이태민한테 줘."
"알았어."
"됐지? 가자."
조금 불안했지만 진기형을 믿어보기로 하고, 그대로 종현이형을 따라 내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창문을 열어둔 탓인지 바람이 불어와 꽤 춥다.
"야. 너 표정이 왜그렇게 뚱해."
"제가요? 형이 착각하는거에요."
사실 기분이 얹짢은게 사실이었다. 태민이가 걱정되지도 않나? 매일 저렇게 늦게 들어오면서 새벽에 나가거나 하는게 대부분이고, 밥도 줘도 안먹고…하루 하루 말라가는데. 종현이형이 내 옆구리를 간지럽혀왔고 놀라기도했지만 간지러워서 웃는데 종현이형도 따라서 웃는다.
"흐으-간지러워요오………."
"간지러우라고 하는데 간지러워야지."
"하지마요, 아…간지러워,푸흐- 간지럽구여-"
"이리와, 넌 웃는게 이쁘니까 이렇게라도 좀 웃을 필요가 있어."
"뭐에요 그게,푸흐흐- 간지러워……."
간지럼을 잘 타다보니, 괴로운데 웃기고, 또 재밌어서 미칠것같았다. 그런데 나만 당하는게 억울해서 나도 형을 간지럽히자 형도 기겁을 하면서 웃는다.
"야, 간지러."
"저만 당할순 없잖아요! 형도 한번 당해봐요!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
"야,흐흐- 흐,야! 간지러!"
"간지러우라고 하는건데요-"
"어휴, 이쁘니까 봐준다."
형이 처음으로 정말 재밌다는 듯 웃고있다. 항상 입꼬리를 올리거나 하는 웃는것같지 않은 그런 웃음이었는데 형은 웃을때 이렇게 예쁘게도 웃는구나………웃을때 입매가 꼭 여자애들이 환장하는 순정만화 속 잘생긴 꽃미남 주인공이 웃을때 그 입매랑 똑같다. 누군가 그린것처럼 이렇게 예쁘게 되는 입매를 가진 사람이 있구나.
"그거 알아요?"
"뭐."
"형은 웃을때 입이 정말 멋있어요. 만화보면 잘생긴 남자주인공이 웃을때, 그때처럼 거짓말처럼 누군가 그린것처럼 올라가요."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여……."
"그래서 너 나 좋아?"
"……."
입을 다물었다. 좋냐구요? 그 좋다는게 무슨 뜻이에요? 몇번이고 묻고싶었지만 형은 내게 점점 더 다가왔고, 나는 뒤로 슬슬 물러서는데 그만 벽의 부딪혔다. 형은 팔을 들어 나를 가둔것처럼 했고, 그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종현이형의 이름과 신음이 섞여 나오던 그 소리. 그럼에도 스르륵- 눈을 천천히 감아갔고, 종현이 형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곧 입술이 닿는다. 그 순간 무심코 문을 봤다가 태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안돼.
"태,태민이……?"
종현이형도 본건지, 금방이라도 태민을 따라갈것처럼 잔뜩 문을 노려보기만 할 뿐 내게서 떨어질 생각도, 그렇다고 다시 가까이 올 생각도 하지않은채 있는다. 그러다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내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홀로 남겨졌다. 예전에 그랬는데…첫키스는 평생 잊지 못할 곳에서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하고 싶다고. 아주 로맨틱하게. 괜시리 울고싶어졌다.
*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4시다. 첫키스로부터 1시간이 지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달콤함이 아닌, 쓸쓸함이. 물이나 좀 마실 겸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자 음식이 그대로 있다. 형이 안줬나? 한숨을 내쉬고 물을 한모금 마신 다음 음식을 꺼내 다시 돌렸다. 나 같은 바보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다시 음식들을 따뜻하게 데우고 혹시 모르니 죽도 만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4시 39분.태민이가 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르게 음식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태민이의 방으로 갔다. 불이 꺼져있길래 자는가 싶어서 혹시 모르니 두고 나가자라는 생각에 금속으로 된 문고리를 열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Dormez-vous?]
[Avez-vous mangé?]
[Restez en chow.]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종현이형의 목소리가 혹 우는것처럼 서글프게 들려와서 괜히 울컥 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뒤로 들리는 태민이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결국은 주저앉았다.
[Cared……… Caïn.]
카인?진기형? 심장은 빠르게만 뛰고, 시간을 느리게만 흐른다.
[…………좋아해?]
조금 더 잘 듣기위해 소리가 나지않게 가까이 다가갔다.
[…누굴.]
[이성종……좋아해?]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주루룩- 흘렀다. 두근, 두근. 뭐라고 말할까. 나하고 키스까지 한 사이인데. 좋아한다고 말하려나?
[….]
[……이성종 사랑해?]
[…아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래, 맞아. 저 둘은 섹스까지 한 사이였지. 키스 정도야 종현이형한테는 애들 정도일텐데. 겨우 그런걸로……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처음이었는데……….
[….]
[….]
둘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땀이 아닌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애써 침착하게 닦아냈다. 우는게 싫다. 이렇게 바보같아 보이는게 싫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우는거라는데 난….
[그럼……나 좋아해?…사랑…해?]
죽은것같던 심장이 다시 한번 빠르게 요동친다. 아니. 안좋아해. 그렇게 말해. 그렇게. 더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마.
[아니…….]
[…나도….]
방문 가까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 냉큼 장식장 옆에 숨어 몰래 지켜보는데 태민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것같이 우는얼굴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고 방문이 열린 탓인지 종현이형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
[Je suis préoccupé. Restez dans l'arrachage.]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순 없었지만.
[Ouais. Ouais. Ouais.]
이것만을 안다. 종현이혀은 이태민을 사랑하고, 이태민도 종현이형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아니, 나도. 종현이형을 사랑하고 있다. 벽의 등을 기대어 눈을 감고 입술을 물었다. 눈물을 주체할수도 없었고, 혹시나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불안했다. 곧 또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난 그냥 여전히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야 김종현. 이태민이랑 이번엔 또 뭐야."
"또 왔네. 최민호."
"뭔데 이태민 저렇게 울면서 나가."
"넌 왜그렇게 오지랖이 넓냐? 니가 신경쓰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는거다. 임마."
"……."
곧 담배연기보다는 조금 더 이상한 냄새가 풍겼고, 후우- 하는 숨을 내뱉는 소리와 함께 내 위에 까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최민호."
"왜."
"……너 사랑이 뭔지 아냐?……."
"응."
"그래? 그럼 니가 좀 정의해봐. 나한테는 두 놈이 있어. 한 놈이 웃거나 울때는 내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다른 놈이 울거나 웃을때는 갑자기 막 죽고싶어져."
"죽이고 싶다도 아니고, 니가 죽고 싶다고?"
"응. 웃을때는 심장이 벅차서 그냥 죽고싶고. 울때는 모르겠느데 그냥 막 죽고싶어."
"…그리고 또."
"한 놈한테는 키스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고 그런데. 다른 놈한테는 요즘들어 자꾸 손도 못대겠어."
"왜."
"너무 연약해서 손만대도 바스라질것같아. 그러니까……꼭 그래. 대체 난 누구한테 사랑이란걸 하는거냐? 대체 어느 감정이 사랑이냐? 지켜주고싶은 애를 사랑하는거야, 아님. 대신 죽고싶어지게 만드는애를 사랑하는거야? 이 감정이 사랑이야?"
"김기범이 그러더라."
"……."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꺾어버리지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물을 준단다."
"……."
"우정이라고 부르면, 우정이 되고. 사랑이라고 부르면 사랑이 되고……."
"……뭔 소리야…."
"솔직히 너 알고있잖아."
"뭘."
"니가 이태민 사랑하는거."
"병신. 지랄하네."
"……왜 자꾸 부정하는지 난 모르겠다."
"천사니까."
"뭐라는거야."
"천사니까……천사라서 그래."
"야……."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아주 산산조각으로 부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소리도 없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가루가되어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
진기형이 태민이의 방을 청소하라길래 들어오기전에 빨리 하고 끝내야겠지 싶어서 최대한 빨리하면서도 꼼꼼하게 하는데 책상에 있던 상자를 떨어트려 버렸다. 그 안에서 나온것은 천주교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묵주다. 그런데 이 묵주… 낯설지가 않다. 이걸 어디서 봤지? 대체 이게 왜 내 기억에……입술을 깨물고 기억해내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태민이가 들어와 화난 얼굴로 묵주를 뺐는다. 큰일났다….
"너 지금 뭐해."
"아,아니 그게……."
당황해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는데 태민이가 정말 화난건지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는다.
"씨발, 누가 함부로 들어오래!"
"진,진기형이 방 청소 하래서……."
"그래서 씨발,누가 내 물건 만지래!!!니가 뭔데 함부로 손을대냐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것에도 당황했지만 내 뺨을 때리는것때문에도 당황했기도 하고, 워낙 쎄게 때려서 그대로 넘어졌다. 그런데 이제 좀 기억이 난다. 이 묵주 분명히…….
다시한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종현이형이 다가와 나를 한번 보더니 태민의 뺨을 주먹으로 때리고서는 나를 일으켰다. 태민아! 태민이한테 가려고하는데 강한 힘으로 나를 잡는다.
"태,태민이……."
처음으로 보는 형의 화난 모습도 무서웠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잘못했고, 내가 맞을 짓을 했는데 왜 태민이가! 그리고 분명 형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태민이를 사랑하는데 어째서 나를? 괜시리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다.
"가자니까!"
결국은 따라서 방을 나왔고, 종현이형의 알수없는 행동과 이상한 내 기분때문에 처음으로 소릴르 버럭 질렀다. [태민이를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안그래도 요즘 아픈애를!] 사실은 태민이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냥 사실은.
"……상관없어. 너만 소중해. 너만 안아프면 돼."
이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그래도 이건………."
"그니까 제발 입 좀 닥치고 가자."
종현이형은 입술을 꾹 깨물며, 무언가를 억누르려는것 같았고 무언의 압박감의 결국은 종현이형을 따라갔다. 곧 내 방의 도착했고, 나는 종현이형을 이해할수도, 그러면서도 설레는 바보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서로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데 시간을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20분이나 지나고서야 쿵 쿵 하는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내 방 문이 열리고 지호형이 종현이형을 곧 바로 때렸다. 분명 종현이형은 피할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맞는것같았다.
"니가 이태민 때렸지."
"…."
"니가 이태민 때렸잖아 씨발!!"
"……그래. 내가 때렸어."
지호형은 종현이형을 죽이기라도 할것처럼 살기를 띄우고서는 발꿈치를 들어 형광들을 뺐고 [지지직-]하는 소리와함께 형광등의 반이 깨져나가는 소음도 들린다. 지호형은 종현이형을 향해 날카로운 부분을 들어올렸고, 나는 급하게 뛰어가 지호형을 끌어안았다.
"그만해요!그만해요 제발!"
정말 이러다 종현이형이 살해라도 당할것같아서 무서웠고, 두려워서 그런건지 아님, 무엇때문인지 눈물을 뚝 뚝 흘리자 지호형이 나를 보고는 갑자기 당황한듯 하다가 큰소리가 나서 올라온건지 급하게 뛰어 온 진기형이 지호형을 말렸다. 진기형이 지호형이 들고있던 형광등을 뺏어들었고 지호형은 종현이형과 나를 번갈아보더니 [아,씨발!]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린다. 진기형이 쓰러져있는 종현이형을 향해 화가난듯 소리를 빽 지른다.
"넌 왜 병신같이 맞고만 있어!!"
"…내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뭐?!"
핏기가 가시는것 같았다. 울음도 멈췄다. 나는 다시한번 느껴버렸고, 아까의 맞기만 하던 형이 행동이 이해가 갔다. 형은 내가 가눔하지 못할 정도로 이태민을 사랑하는구나.
***
태민이가 오늘도 밥을 먹지 않았다. 연적이든 뭐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솔직히 하루 하루 말라가는 태민이를 볼때마다 종현이형의 표정이 너무 쉽게 읽혀져서 내가 쓸데없이 질투나 하는것도 문제고 말이다. 하여튼 밥은 아니더라도, 음식이라도 먹여야 겠다는 사명감의 그릇안 예쁘게 잘라놓은 토스트를 들고 태민이를 찾아다니는데 어디에도 없다. 어딨지? 태민이가 자주 가는 동선을 따라 다녔다. 아까 분명 집에 있었는데……….
"뭐해?"
기범이형이 놀라서 묻길래 태민이를 찾는다고 말하자 기범이형이 [태민이?]하더니, [옥상에 있어.]하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이라도 해봤자 지붕이지만……중간 중간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조심히 걷다가 제일 높은 곳에서 아슬 아슬하게 곧 떨어져 죽을 사람처럼 서 있는 태민이를 보고 굳어버렸다. 뭐하는거지? 뭐하려는거야? 태민이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것 같다가 휘청 휘청 중심도 못잡고 비틀거린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대충 그릇을 평평한 곳 위에 세워놓고 태민이한테 가니 나를 보고도 아무말도 않하고 아예 무시하고 여전히 서 있는다.
"위험해…."
"……."
태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는 짙은 안개로 가득차 있었고,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다.
「천사니까.」
「뭐라는거야.」
「천사니까……천사라서 그래.」
왜 사랑을 부정하냐던 민호형의 물음에 알수없이 몇번이고 중얼거렸던 그 천사. 찾은것같다.
"……천사."
"………."
"……."
"…뭐?"
태민이는 뭔 소리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다시 한번 발음했다. 김종현의 천사를.
"천사."
"…."
"……너."
태민이는 그 순간 갑자기 울것같은 표정을 짓더니 위태로워 보이는 미소를 짓고는 내 옆에 앉는다.
"내가 천사로 보여?"
"……응."
나비인줄 알았는데, 나비가 아니었다. 아주 위태로운 천사. 위태롭다 못해 금방이라도 사라질것만 같은 그런 천사. 하늘을 날아다닐 날개가 있어야하는데 그 날개가 없어서 앞으로 추락만 할수있는 혹은 해야하는 천사. 날개가 없기때문에 끝이 없는 추락은 천사를 죽음으로 몰고갈테지. 나는 생각했다. 잔인하겠지만, 어쩌면 나한테도 조금은 승산이 있을것이라고. 날개 없는 천사의 끝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리고 내 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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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시작이란것은 자유롭지만 끝이란것은 우리에게는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끝도 시작도 안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 끝이 파멸일지, 아님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나는 절때로 행복해질수 없다 라는 것을………….
사실 밍키의 스토리로 이어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팬픽의 중심에는 종현이랑 태민이,성종이 그리고 지호가 있더라구요.
아직 풀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밍키 이야기를 쓰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성종이의 관점에서 본 그동안의 일들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서로 다른 생각으로 나뉘는데 이번으로 아직 알수없는 종현이의 마음이나 성종이의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궁금한 점은 물어봐주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해요!♡♥
(번외는 항상 그 날 올려야 하는 본편이 일찍 끝날 경우, 시간이 남으면 올립니다. 저 잉여킹이라서 팬픽 쓰는것밖에 할일이..ㅜㅜ)
+비지엠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하는 곡들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게 쓸께요ㅎㅎ
+Thanks to
‘풀무원온두부’ 누나. 누나한테 고마운점이 한두가지 아닌데, 어떤 방법으로 전해야 가장 많이 와닿을까 생각하다가 써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벌써 이런거라니..쑥스럽지만ㅜㅜㅎㅎ
항상 누나한테 잘 안풀릴때 망했어요 누나ㅠㅠ 하고 투정부리는데 잘 받아주시고 같이 의논도 해주시고 생각도 해주셔서 매일 감사합니다.
이 팬픽을 끝났을때는 누나랑 다음 팬픽을 의논할 사이가 되어있기를 바래보면서.. 누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